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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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밤 하늘, 별똥별 관찰 – 안나푸르나 순례(4)

촘롱의 밤하늘, 이것이 별빛이구나 촘롱의 초입 즈음에 한 두 채 작은 게스트 하우스가 보인다. 그런데 이 히말라야 산중 마을에, 그것도 지금까지 한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이곳에 익숙한 한글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내용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간다. 한국인이 많은 것인지,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주인이 사는 것인지, 한국 라면에 김치찌개 심지어 한국식 백숙까지 해 준다니! 촘롱은 지나 온 간드룽 보다도 더 크고 더 장대한 품으로 나를 이끈다. 산위 한 쪽 능사면 전체가 저 위 봉우리부터 저 아래 계곡까지 온통 게스트 하우스 천지다. 그 사이 사이로 중간 아래쪽 부터는 평범한 이 곳의 원주민인 구릉족들의 삶의 터전, 평범한 시골 농가가 펼쳐져 있다. 당연하다는 듯 제일 꼭대기의 게스트 하우스..

나의 전생은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 – 안나푸르나 순례(3)

2일차 산중 도시, 촘롱을 지나며 밤늦도록 빗줄기가 이어지더니 이른 새벽 빗물 머금은 산과 나무와 풀들과 논의 벼까지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고 생기어린 춤을 춘다. 밤새 비는 그쳤고 비 그친 산은 더없이 개운하고 청명하다. 간단히 베지누들수프(야채라면)와 직접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소에게서 짜 끓인 우유로 만든 찌아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떠난다. 오늘은 간드룽을 거쳐 촘롱(Chhomrong, 2170m)까지 갈 계획을 잡고 여유 있는 느린 걸음을 옮긴다. 한두 시간 산길을 오르니 간드룽을 만난다. 얕은 산 정상 즈음에 올망졸망 게스트 하우스들과 시골 농가가 모여 있는 우리나라 작은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그래도 산에서 처음 만나는 규모 있는 도시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비난과 험담에서 자유로와지려면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평가를 내린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아주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그 부정적인 말의 위력에 굴복당한 채 그런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 깨어있는 의식으로써 그 말이 그저 아무 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그의 단편적인 관점일 뿐이며, 그 말은 진실도 거짓도 없는 중립적인 에너지일 뿐이다. 그 말이 힘을 가질지 말지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별 의미 없이 쉽게 내뱉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언제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함로써 스스로를 그 말에 자신을..

꺼려지는 것들과 만나라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 내 스스로 마주하기를 꺼려하는 부분, 피하고 거부하려고 애쓰는 부분이야말로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만들며 나아가 질병을 일으키게하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괴로운 과거 기억들과 만나고, 싫은 성격과 대면하며, 몸의 아프고 불편한 부분을 관찰하고 느껴보라. 내가 피하려고 애쓰는 부분으로 인해 내가 점점 고통받고 있다! 꺼려지는 부분과 만나라. 만나고 느껴보고 대화하며 관찰해 보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길 선택할 때 길은 열린다.

화엄성중, 관음보살은 진짜로 있나요?

화엄성중이 진짜로 있나요? 관음보살님께서 진짜로 중생을 구제해 주실까요?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극락 정토가 실제로 존재하나요? 영가천도는 진짜 가능한 것인지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사실 방편법을 말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입을 벌려 하는 모든 말들이 방편법입니다. 근본법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말도 꺼낼 수도 없고, 어떻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함과 동시에 방편법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방편법문입니다. 본질에 가까이 간 법문들도 있지만, 그 또한 엄밀히 말한다면 세속제(世俗諦)인 언어를 빌어 설명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극락세계도, 영가천도도, 화엄성중도, 불보살의 가피도..

초심을 유지하려면/짜증이 날 때는?

초심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성경 필사를 통해서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경험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사의 마음은 줄어들고 의무적으로 필사를 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후 마음이 너무나도 차가워져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중 불교와 절 수행,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 안에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다시 보았습니다. 첫 사랑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그 마음, 그 초심을 겨우 찾았는데, 이제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게요. 그 초심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마음이 잘 그렇지 못하죠. 계속 변하고 바뀌어요. 그런데 그런 변하는 마음 또한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변하는 마음에 대해 시비를 걸 필요도 없고, ..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우리의 인생에는 직접적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의지로써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괴로움 없는 삶을 바란다면,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가게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점만 잘 깨달으면 된다. 삶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써 행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은 애써 붙잡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별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는 것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욕심내고 집착하면서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의지로써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또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 있..

타인에 대해 대화할 때

대화를 할 때는 가급적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에 대해 칭찬하든 비난하든, 좋게 말하든 나쁘게 말하든 타인에 대한 화재를 될 수 있는 한 끌어들이지 말라. 누군가에 대한 판단, 비교, 평가를 대화의 주제로 삼지 말라. 누군가가 대화중에 상대를 비난할 때, 동조하기도 동조하지 않기도 어렵다. 어떻게 하든 양 쪽 다 대화 뒤에는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가장 좋은 대화는 제3자를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우린 타인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를 평가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하며, 무엇보다도 판단 평가 해석 자체가 어리석은 분별심과 번뇌만 키울 뿐이다.

고통에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

괴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리석은 이는 남을 탓하거나 상황을 탓하면서 끊임없이 외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반대로 지혜로운 이는 그 모든 것이 자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고 자기 자신을 탓할 뿐이다. 그러나 완전히 깨어있는 자는 자신도 남도 탓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불행이라거나 행복이라고 해석하지 않은 채 아무런 동요없이 그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일어나야 할 꼭 필요한 '어떤 일'이 일어날 뿐, '좋거나 싫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가 할 일은 그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뿐, 더는 할 일이 없다. 삶은 언제나 가볍고 자유롭다.

괴로운 일이 일어나는 이유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할까? 부처님이나 하느님은, 혹은 진리는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실까 아니면 벌을 주실까? 사실 진리는, 부처님과 하느님은 죄 지은 사람을 단죄하는 법칙을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오로지 대자대비한 사랑으로 용서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과응보는 뭐고, 잘못한 사람이 받는 과보는 뭐고, 천벌은 무엇이며, 지옥은 또 무엇일까? 그리고, 나쁜 짓 한 사람도 다 용서 받는다면, 왜 애써 착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부처님이 오히려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선인선과 악인악과라고 말하는 편이 더 진리와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그 또한 진리이고 진실이다. 인과응보도 진실이고, 잘못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는 것도 진실이다. 뭐라고? ..

안나푸르나 입산 첫 날의 풍경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2)

홀로 산길을 걷는 신성함 홀로 바쁠 것도 없이 홀연한 가벼움을 짊어지고 맑게 비운 가슴으로 소담한 마을 나야풀을 지난다. 오후의 햇살 아래 마을에서는 막 산에서 내려 온 듯한 짐꾼 나귀들이 줄지어 짐을 풀어놓은 채 지친 피로를 식히고 있다. 홀로 걷는 이 텅 빈 호젓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산길을 너무 많은 인원이 함께 가게 되면 자신의 페이스와 호흡과 즐거움 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춰야 하다 보니 산행이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보다는 또 다른 산 아래 직장이나 관계 속에서와 똑같은 인간관계의 연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산행은 혼자면 가장 좋고, 아주 좋은 영혼의 깊이를 자연의 깊이처럼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벗이 있다면 그것은 그 다음으로 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초의 스..

당신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상태로 있는가? 어떤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당신의 하루하루의 삶을 살펴보라. 그 삶은 나 자신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있는가' 오늘 하루 나는 어떤 마음, 어떤 느낌으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당신이 원하거나 되고 싶은 삶, 혹은 당신이 생각하거나 욕망하는 삶, 그것도 물론 삶을 창조한다. 그러나 진정한 창조의 힘은 ‘있음’에서 온다. 당신의 삶을, 당신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오늘 당신은 어떤 존재로 되어 있는가? 당신이 지금 ‘되어 있는’ 그 ‘있음’의 상태야말로 당신의 미래를 만드는 창조의 힘이 된다. 당신은 행복한 자로 있는가, 불행한 자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가? 당신은 성공한 자가 되어 ..

순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13, 14일차 순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몸살감기에 간절한 차 한 잔 생각 쿰중의 아침이 창창하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진하디 진한 물감을 한껏 풀어 놓은 것처럼 선벽하고 햇발은 그 어느 날보다도 쨍하게 빛난다. 어디 하나 보유스름한 것이라곤 없어 보인다. 아주 선명한 렌즈를 낀 것처럼, 세상에 샤픈(sharpen)을 강하게 준 것처럼 세상이 또렷하고도 역력하다. 저 앞산 뒷산만 없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시거리는 무한대가 되고도 남을 법하다. 이 장장하고 쨍한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무겁다. 마음은 경쾌한데 몸은 으슬으슬 떨려온다. 순례길도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 어제 밤에 모처럼 목욕을 하고, 2주 동안 벗지 않았던 내복을 벗고 잤더니 밤새 감기몸살이 찾아 온 것이다. 조금 더 참았다..

히말라야 하산, 신의 거처 마체르모를 지나

에베레스트 고쿄 라운딩 12일차 하산, 신의 거처 마체르모를 지나 외로운 설산 마을에서 한생을 유유하다 침묵에 잠긴 고쿄의 새벽을 두드린다. 서리차고 맑은 공기가 호수의 시린 안개와 어우러져 고쿄는 더없는 신비에 잠긴다. 이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바지 단잠을 몰아 자느라 이 선경과 만나지 못한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먼동에 호수도 언덕도 봉우리도 마을도 사람들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몇 천 년, 몇 만 년 전의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 지구 행성의 모습도 이러했으리라. 오직 태곳적 비경과 침묵과 이제 막 시작된 대자연의 여리고 깊은 몇몇 생명들이 자유롭게 이 드넓은 대지와 초원과 푸른 언덕을 누벼왔을 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푸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곳 쿰부의 자연은 그다지 큰 훼손 없이, 변화 없..

히말라야에 오기까지의 꿈같은 사연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1

1일차 (포카라-나야풀-김체) 포카라 사랑콧의 꿈같은 하룻밤 4년 전, 포카라(Pokhara) 페와호수(Phewa Lake)에 나른해진 심신을 띄워놓고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도반들과 나누던 안나푸르나의 품속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 져만 가고 있었다. 포카라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콧(Sarangkot, 1592m)에 올라 거센 오후의 빗줄기를 만났을 때, 또 그 빗속을 뚫고 새벽 첫 안나푸르나 일출의 장엄한 연주를 들었을 때, 아마 그 때부터 나의 그리움은 설산의 은빛 속살을 타고 내 뼛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었을 터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 트레킹이나 라운딩을 마치고 산에서 막 내려온 사람들..

직장인들의 공금 유혹, 사적으로 쓸까말까

직장인들이 선뜻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운, 누구나 있음직한 내밀한 고민이 하나 있다. 정직하고 투명한 분들께서 때때로 자신의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자신의 내면적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공금을 사용할 때, 때때로 애매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공금으로 쓸 수도 있고, 사비로 쓸 수도 있는 경우에 마음속에서 계속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깊은 양심에서는 공금이 아닌 사비로 지출하라고 말하지만, 표면적인 욕심과 아상은 끊임없이 ‘괜찮아, 공금을 써도 되.’ ‘그 정도는 괜찮을거야’ ‘설사 누가 안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잖아’ 라고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 돈을 쓰지 말고 공금을 쓰라고 속삭여 댄다. 이런 정도라면 그래도 좋다. 때때로 좀 더 집요하게 아상과 아집은 ..

'공의 명상'으로 자유로와지기

한 거사님의 고민은 진급에 대한 불안에 있고, 한 보살님의 고민은 사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있다. 거사님은 토끼 같은 자식들 공부라도 다 시키려면 어떻게든 끝가지 버티면서 진급에 목메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보살님은 벌여 놓은 사업이 왜 신통치 않은지 날이 갈수록 고민만 쌓인다. 그런데 어느 날 설법을 듣고, 방하착에 대한, 무집착에 대한, 그리고 공의 명상에 대한 가르침 대목에서 큰 깨달음이 있었다. 조금 내려 놓으니 답이 없었던 것이, 완전히 내려 놓아 보니 시원한 답이 나왔던 것이다. 자식들 공부 시키고, 마누라 월급도 갖다 줘야 하고,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진급도 해야 하고, 특히, 자식 공부 끝날 때 까지는 포기할 수 없다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진급, 직장에 대해 완전히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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