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성중이 진짜로 있나요? 관음보살님께서 진짜로 중생을 구제해 주실까요?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극락 정토가 실제로 존재하나요? 영가천도는 진짜 가능한 것인지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사실 방편법을 말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입을 벌려 하는 모든 말들이 방편법입니다. 근본법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말도 꺼낼 수도 없고, 어떻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함과 동시에 방편법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방편법문입니다. 본질에 가까이 간 법문들도 있지만, 그 또한 엄밀히 말한다면 세속제(世俗諦)인 언어를 빌어 설명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극락세계도, 영가천도도, 화엄성중도, 불보살의 가피도 믿으세요. 다만 머릿속에 어떤 형상이나, 고정된 틀을 만들어 놓고, 만들어 놓은 그 상에 갇혀서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활짝 정신을 열어 놓으세요. 극락, 천상, 영가, 화엄성중 등 이런 말에 대해 내 안에서 어떤 특정한 상을 만들어 놓고, 내 안에서 만든 그것만을 믿게 되면, 그것은 상에 갇히는 것입니다.
극락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규정지음과 동시에 거기에 갇히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락이 어떤 모습이고,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는, 생각으로 따져서 모양을 짓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되, 활짝 열고 믿으세요. 영가에 대해서도, 영가천도에 대해서도, 화엄성중에 대해서도 당연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또한 화엄성중은 어떤 모습일 것이고, 영가는 어떤 특정한 방식을 통해 천도가 될 것이며, 천도가 되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등 특정한 생각의 틀로 형식을 만들어 두지는 마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일정한 차원의 틀 속에서만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주법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넓고 더 깊고 우리의 생각을 넘어선 차원에서 생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바람도, 구름도, 태양빛도, 도량의 꽃 한 송이도, 짐승들도, 또한 절을 찾는 신도님들도 모두가 화엄성중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보이지 않는 성중,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 같은 형태의 화엄성중도 있지 않겠습니까? 믿으시되, 어떤 특정한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활짝 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특정한 방식대로만 믿게 되면, 물론 그 믿음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창조하면 내가 창조하는 그것이 현실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천사나 예수나 신을 무의식에서 창조해 내고, 실제로 기도 중에 그분들을 친견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알라를 친견합니다. 내가 믿는 방식대로 나의 세상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활짝 열어 두고 믿게 되었을 때는, 내 생각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됩니다.
사실 더 깊은 근원에서는, 부처님과 화엄성중, 영가들이 사실은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와 근원에서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곧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 둘은 서로 다르지 않아요. 그렇기에 또 다른 차원에서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부처님의 가피를 받는 것이며, 성중의 가피, 천도의 공덕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고, 지금 이 자리가 곧 극락 정토가 되기도 합니다. 이뿐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그런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두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회사의 대표인 저의 친척이 저에게 "좀 더 잘 팔리게 할 수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게으르고 성과도 별로내지 않으면서 월급만 받아간다고요. 저는 이런 질책을 들을 때 죄의식, 열등감, 화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이것도 수행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답답하고 괴롭고 화가 날 것입니다.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상대방의 질책이나 꾸지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질책을 내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말이지요. 대표께서 "더 잘 팔리게 할 수 없느냐?"고 한 말 자체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법우님 마음 안에는 그래도 친척이니까 나에게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틀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친척이니까 나에게 비판하고 나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려면 그 회사를 다니면 안 되지요. 다녀야 한다면 그런 마음은 놓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사장의 문제도, 그 나무람이나 꾸지람의 문제도 아니라 다만 법우님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방어벽, 생각,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합니다. 거기에 내 식대로 온갖 해석을 덧붙인단 말입니다. '책 좀 더 잘 팔리게 할 수 없느냐?' 는 말을 들으면,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보통 우리는 그 말에 살을 붙입니다. 자형이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지, 나를 완전 무시하는군,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등등으로 말이지요. 이것은 그 말에 대한 나의 판단일 뿐입니다. 생각과 판단을 개입시키지 말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해석과 판단, 생각을 개입시키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지고, 문제 아닌 것들이 문제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법우님 안에 잠재되어 있는 방어벽들, 생각의 구조물들, 고정관념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에 대해 화가 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열등감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생각, 해석, 판단을 중지하세요. 그저 외부에서 오는 말, 환경 등에 대해서 온갖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눈앞의 그것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로, 내 안에서 반응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깥 경계에 대해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전통 방식인 지관(止觀) 수행법입니다. 당연히 수행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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