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부산 송도 암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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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 눈으로 모든 대상들이 끊임없이 보여집니다.

억지로 보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이 보는 작용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저절로, 있는 그대로 보이는 작용을 '보는 작용', 혹은 '보는 놈' 혹은 '첫 번째 자리에서 본다', 혹은 '있는 그대로 본다', '분별없이 본다', 정견(正見)한다', '중도로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첫번째 자리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있는 그대로 보일 뿐! 이지만, 우리는 곧장 그 대상에 대해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이름을 붙이고 분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분별해서 본다', '의식으로 본다', '안식으로 본다', 두 번째 자리에서 본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왜곡해서 본다, 있는 그대로를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첫 번째 자리에서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작용이 곧 말로 하자면 불성의 작용이고, 자성이 보는 것이며, 부처로써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두 번째 자리에 떨어져서 대상을 해석하고 분별하고 좋거나 나쁘다고 나눈 뒤에,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을 버리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등의 취사간택심이 시작되면서, 본래 부처였던 우리가 곧장 중생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온갖 문제가 생겨나고, 취해야 하고 버려야 할 일들이 생겨나고, 얻지 못해 괴롭고, 거부하지 못해 괴로운 등의 온갖 문제가 생겨납니다.

대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지만, 우리의 분별, 견해, 중생심이 대상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분별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중생이 중생인 이유입니다.

첫 번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때, 아무런 문제도 없고,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은 본래 완전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첫 번째 자리와 두 번째 자리 중 어디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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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금련사 일요법회 설법
https://youtu.be/FYyw6ArWpQc
Posted by 법상
행복이 온다고 그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쓸 것도 없고, 행복이 멀어져 간다고 그것이 못 가도록 붙잡으려 애쓸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인연 따라 갈 뿐입니다.

그것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시절인연 따라 그렇게 흘러갈 뿐입니다.

제행무상이 진실이듯, 변화하는 것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 하거나, 더 많이 가지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내 인생에 무엇이든 오고 가도록 하락해 주세요.

그것이 부처님의 명호인, 여래여거의 뜻입니다.

모든 것이 여여하게 있는 그대로 진리로써 오고, 진리로써 가도록 내버려 두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것이지요.

내 삶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것들을 내가 주도적으로 붙잡거나, 밀쳐내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에, 그저 객석으로 물러나 앉아, 그 모든 것이 오고 가도록 허용한 채, 다만 분별없이 바라보는 관찰자, 구경꾼으로 남아 보세요.

영화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스크린은 언제나 그 내용에 물들지 않듯, 삶 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깊이 개입되지 않으면, 언제나 우리는 텅 빈 바탕으로, 배경으로 남게 됩니다.

전혀 흔적 없이, 걸림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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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해운대 장산에서 본 풍경
Posted by 법상

* 금련사 유치원 어린 부처님들이 새배를 하러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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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서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머물고, 안주할 곳을 찾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집을 사거나, 사람과 사랑을 나누거나, 혹은 생각으로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견고히 하여 '거기에' 의지해서 살면 안심할 수 있는 어떤 '사상', '철학', '종교', '물질적 대상' 같은 것을 찾아 거기에 머물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래 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머물 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든든한 나의 고향이 될 만한 의지처를 찾게 만듭니다.

그런 추구심은 곧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지 못하고, 의지처를 찾아 나서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진심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추구심, 안주하려는 마음, 머물 곳을 찾는 마음이 놓여질 때,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 자체야말로, 온전한 진실입니다.

그렇다고 진리를 깨닫겠노라는 발심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되 하지 않아야 하고, 하지 않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도의 길입니다.

이 말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하고 답답하고 모르겠는 그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곧 머물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공부 아닌 공부입니다.

* 새해 복되고 밝은 삶이 되시고, 발심이 더욱 환해져서 괴로움에서 벗어난 대자유를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 도반들에게 발심과 공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혹시 무언가 통 밑이 쑥 빠지거나 가벼워 진 체험, 혹은 이 자리에 대한 확인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목탁소리 다음카페 신행수기 게시판에 자신의 공부이야기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일이 또 하나의 상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도반들에게는 공부에 큰 동력이 되고 발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작은 공부 인연이라도 나누어 주실 분께서는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신상은 빼고 닉네임으로 올려주시면 좋겠네요.

* 서울, 부산 19년 3월 법상스님 경전강의 안내 : https://brunch.co.kr/@moktaksori/40
Posted by 법상
지금 나에게 없는 새로운 깨달음을 따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문제가 사라지고,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저 아무 일이 없어질 뿐입니다.

말 그대로, 깨달음의 자리는 아무 일이 없는 자리일 뿐이지, 깨달음이라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무 일 없이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새들은 지저귀고 있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뺨을 스쳐갑니다.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일이 생각나거나, 어떤 일이 하고 싶어지거나, 특정한 생각이 일어나면서 그 생각에 끌려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고, 무언가 일을 해야 할 것이 같은 느낌이 올라옵니다.

바로 그 때, 아무 일 없던 평상심에 갑작스런 생각의 파문이 일어나고, 그 때부터 우리는 분주해지고, 일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고,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곧 중생심이고, 생사심이며, 일 없던 부처에게 허망한 생각이 만들어내는 일이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일 없는 순간은 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대로 있으면, 이미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거기!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서서 아무 일 없는 이 순간에 그저 있어 보세요.

내일부터 입춘기도가 시작되는데
정말 봄이 오나 봄
Posted by 법상

내 생각으로 특정한 상황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은 완전합니다.

지금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삶은 이대로 완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드는 무언가가 나타나고 그것을 갖고 싶어지면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고, 행복해 보입니다.

부모 또한 큰 문제 없이 직장 생활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 마음 속에서 다른 부모, 혹은 경쟁자의 자녀와 비교하다가, 내 아이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집착이 생겨납니다.

점점 더 그 생각이 커지고, 세상의 모든 정보들도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할 것이라고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평화롭던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주변에 공부를 좀 한다는 사람들을 사귀어 보니, 옆집 다른 아이는 몇 년을 벌써 선행학습을 끝냈다고 합니다.

내가 무능한 부모였음이 확실해졌고, 내 아이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으며,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실패한 삶을 살게 뻔해 보입니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고, 아이를 그 때부터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면서 밤 늦게까지 공부, 공부, 또 공부를 시킵니다.

성적이 오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성적이 떨어지면 실패자의 그림자가 자신을 짓누릅니다.

공부 때문에 자식과 계속 싸우면서, 이것이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보지만, 이 어리고 뭘 모르는 아이는 지혜로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갑자기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추구심, 집착심, 그것이 문제였을 뿐입니다.

삶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어느날 갑자기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일 뿐이지요.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애초에 문제는 없습니다.
Posted by 법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저 불행이 없는 것일 뿐, 또 다른 행복이라는 무언가는 없습니다.

괴로움이 소멸된 것이 열반이지, 따로 열반이라는 신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목적은, 사성제라고 하듯이, 그저 괴로움의 소멸일 뿐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이 곧 해탈일 뿐이지, 괴로움을 소멸시킨 뒤에 더 좋은 열반, 해탈, 진리 같은 것을 찾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여러분 삶에 큰 괴로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도 없어서,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지, 행복이라는 별도의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로 있는 특별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 마음만 쉬면, 곧장 이미 있던 행복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에게 오늘도 숨을 쉴 수 있는 우리는 부러움의 대상이겠지요.

바로 지금, 근원적이고도 완전한 행복은 이미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이미 있는 행복을 놔두고, 또 다른 생각 속의 행복을 찾아나서기를 멈추기만 하면 됩니다.

추구하기를 멈추면, 이미 있는 것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행복 #불행 #괴로움 #사성제
Posted by 법상
우리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건 그저 내 문제를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것 밖에 되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는 내 문제이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바깥에 그 누구도 근원에서는 나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내 스스로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화가 난다는 쪽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은 내 생각이고, 내 판단이며, 내가 나 자신을 향해 쏜 화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화도 내고, 자기 식대로의 옳음을 강요하려고도 들겠지요.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 사람의 그런 말과 행동을 보고, 내 스스로 화를 내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나에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여긴다면, 그건 하나의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과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 해석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지요.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말을 할 겁니다.

거기에 하나하나 다 대응하고, 화를 내며, 판단을 하다가는 우리 인생 전체가 끊임없는 괴로움에 휘둘릴 지 모릅니다.

방향을 전환해서, 거기에 대응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기를 선택해 보세요. 어차피 세상 사람 모두를 내 입맛에 맛게 바꾸기는 어려우니까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내 식대로' 판단하기를 그치기만 해 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마음은 평화를 되찾고, 남들과의 다툼은 종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경주 칠불암
Posted by 법상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바다 위에
인연 따라 파도가 치듯, 
삶이란 파도에 불과하다.

온갖 존재가 벌이는
울고 웃는 삶의 스토리가
다만 ‘파도’일 뿐이다.

파도는 본질이 아니다.
‘하나의 바다’만이 참된 본성일 뿐.

당신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당신은 감정이 아니고 몸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바다와 파도의 비유처럼, 모든 파도는 바다 위에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파도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 위에 인연 따라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듯, 바로 ‘이것’이라는 바다 위에서 생각도, 감정도, 욕망도,육체도, 사건도, 삶도 파도처럼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하나의 바다가 있을 뿐, 파도가 실체로써 있는 것은 아니듯, 하나의 본성이 있을 뿐 따로 떨어진 실체적 존재나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오고 가는 파도가 아니라, 그 배경에서 언제나 한결 같이 있는 바다일 뿐이다. 

파도가 내가 아니라, 바다가 진짜 나다. 
Posted by 법상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무언가에 대해 집착을 하고 살아갑니다.

단지 그 집착의 '대상'을 계속 바꾸어 가면서,

혹은 더욱 더 키워가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집착을 하게 되면 그 집착으로 인해

집착되는 대상으로 의식의 폭은 한없이 좁아지고 제한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협착이라고 해서,

의식이 특정 대상에 사로잡혀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과 지혜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에, 무언가에, 어떤 일에 사로잡혀 있느라,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지혜가 가로막히게 된 것이지요.

이것을 보고 불교에서는 '무명' 곧,

어리석음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진실은 단순합니다.

바로 그 무명이 사라지는 것이 곧 밝음입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거나,

수행하거나, 노력하는 것을 통해

집착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집착하던 의식적인 습관,

늘 어떤 것을 추구하고, 소유하려던

그런 밖을 향한 헐떡임을 그저 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는 것은 어렵지만,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노력이 필요하거나 힘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계속해서 집착만 하고 살았다보니,

그것이 습,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업습의 장애가 있을 뿐이지요.

집착해 오던 업, 그것을 그저 멈추는 것, 그것이 공부입니다.

멈출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보입니다.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장엄하고도 온전하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더 추구하고 집착하려던

바로 그 생각만 없다면,

이미 온전히 갖추어진 삶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이런 방향으로 공부를 해 나가겠노라는 열정, 믿음, 발심,

그것이 바로 보살의 서원이며 발보리심입니다.

한 해의 시작,

이런 집착에서 무집착으로의 방향전환을 발심하는

한 해가 되어 보시면 어떨까요?

 

Posted by 법상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두려워한다.

미래에 대한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대와 희망을 세워 놓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걱정할 것은 전혀 없다.

~!

 

왜 그럴까?

어차피 그건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알 수 없다.

내일 일어날 일이 어찌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

 

그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

 

그렇다!

아이러니 하게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안다고 여기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사실 모름이라는 진실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혜다.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과거에 그랬으니 미래에도 그렇겠지 라고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짐작일 뿐 진실은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확률도 많지 않은가.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어떠 어떠한 결과가 일어거야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진실은 아니다.

 

그런 생각은 곧

내가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미래를 안다고 여기니까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게 되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게 된다.

 

이 모든 유위(有爲)의 노력이 모두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은

엄밀히 따져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완전히

불완전할 뿐!

 

그렇다면,

미래를 계획하고,

애써서 노력하고,

어떻게 되기를 기대하고,

어떤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원하며,

특정한 방식대로

미래가 벌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가?

 

그것은 전부 내 생각이 만들어 낸

허망한 착각일 뿐이다.

바로 그 내 생각이라는 허망한 착각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모른다는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여 보라.

 

미래에 대한 기대바람추구가

순간 놓여진다.

 

어차피 모르는 것이니

안다고 여기면서

내가 아는 방식대로 일어나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과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았지만,

미래에는 다르게 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일어나는 일이

과거의 기억으로 비추어 보면 괴로운 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돕는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지만,

자녀가 어떤 대학에 갈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또 어떤 대학에 가는 것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 아이는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

전혀 한 번도 원하지 않았던 대학이

그의 귀인을 만날 수 있는 인연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안다고 여긴다.

아이가 A라는 대학에 가야만 한다고 여긴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생각인가?

 

더욱이 그 어리석은 안다는 생각에

집착함으로써 아이를

공부 공부 공부의 길로 내몬다.

 

안다고 여길 때,

우리 안에는 두려움이 동시에 쌓인다.

내가 안다고 여긴 것이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 인생은 이렇게 되어야 해!

나는 언제까지 얼마를 벌어야 해!

내 아들은 어떤 대학에 들어가야 해!

나는 건강해야 해!

 

그렇게 정해놓는다는 것이 곧

내가 내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안다고 착각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내 인생은 다르게 되어야 할 수도 있고,

나는 그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으며,

아들이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안다고 여기며

정해 놓은 추구와 희망에 집착하면

그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괴로움과 화원망도 함께 커진다.

 

모를 뿐

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보라.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

그것이 진실인 것은 아닐까?

 

단순하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인정해 주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내가 특정하게 되기를 바랄 것도,

기대하거나 추구할 것도 없어진다.

 

그저 지금 이대로 라는

삶의 진실에 비로소 발 딛고 서게 된다.

입처개진(入處皆眞)이라는,

서 있는 자리가 곧 진실임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공연히 고민하고 걱정하고,

희망하고 추구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내일 당장 죽을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행하는 일은

마음을 내어 최선을 다해 행할 수도 있고,

계획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 영역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모를 뿐의 미지의 영역이다.

 

어차피 모를 뿐이라면,

왜 공연히 걱정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혀~!

 

그러면 어떤가?

삶에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있을까?

없다.

 

완전히 안심하게 된다.

어차피 머리를 굴려서 계획하고 기대해 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안이고,

예상일 뿐,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야지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그러면서 동시에 그 기대한 바 대로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런 망상 속에서 살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청하게 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매 순간 순간,

나에게 처한 삶,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라는 이 생생한 진실의 삶에

인연 따라 반응하면서

현재를 온전히 누리고 느끼면서

바로 그 순간에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인연 따라 해야 할 때는 무엇이든 행하되,

집착 없이 행하고,

바라는 바 없이 마음을 내며,

주어진 삶을 온전히 만끽하며 살라.

 

모르는 자가 될 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두려움은 사라지고,

오직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안다고 여기면 두렵지만,

모름을 받아들이면

완전히 안심한 채,

공연히 삶에서 힘을 빼지 않고,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을

온전히 받아들여 살 수 있게 된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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