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22일(화) 오후 4:30 법상스님 줌법회 있습니다.
회의 ID: 768 025 0135
암호: btn3270
Zoom 회의 참가 링크
https://zoom.us/j/7680250135?pwd=dXZhK0xRWmtyRVlvYytsazN2M01tUT09


* 줌법회에 이어서, 오늘 22일(화) 저녁 8:00~9:00 BTN 불교TV 유튜브 채널에서 고인사이드 실시간 초청강연이 있습니다.
유튜브 불교tv 채널로 오셔서 실시간 스트리밍에서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



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좋고, 나를 미워한 사람, 배신한 사람도 좋습니다.

사실 그는 가해자, 괴롭힌 자라는 역할을 맡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나와 남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둘이 아닌 한 존재이며, 그들은 또 다른 나 자신입니다.

그를 미워할 때, 그 미워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기에,
그가 다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다치게 할 뿐입니다.

그가 나를 괴롭혔지만, 그것을 계속 떠올리며 괴로워하느라
우리 마음은 더 많이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내가 나를 더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를 미워하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상처주는 것입니다.

그를 미워할 때, 내 안에 증오의 씨앗이 커갑니다.

그 증오와 미움은 나를 점점 더 시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를 용서하는 것은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를 용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그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되지 못한 죄의식과 증오, 미움은 트라우마가 되어
비슷한 파장의 괴로운 삶을 내 삶으로 자꾸 끌어오게 될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 미움과 증오가 없다면,
나의 세상에서도 미움과 증오가 사라져 갈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그와 내가 만든 상처를 끝낼 수 있습니다.

합장하고 한 구절씩 따라해 주세요.

‘당신이 밉지만, 이제 이 미운 마음을 놓아보냅니다.
증오와 원망을 내려놓습니다.

더 이상 미워하는 마음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을 의지해, 나를 괴롭힌 당신을 용서합니다.

나를 힘들게 한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도 나처럼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다만 지혜롭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그 어리석음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그 무지함에 연민을 보냅니다.

더 이상 당신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미움의 마음을 떠나보냅니다.

또한 나를 괴롭게 한, 모든 이들을 용서합니다.

내 안에 미움과 증오를, 훌훌 털어버립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미움이 없습니다.

증오도 원망도 죄의식도, 모두 다 떠나보냅니다.

마음은 가볍고, 맑게 텅 비었습니다.’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삶은 영원하다.
삶은 꿈이고, 죽음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일 뿐이다.
죽음이라고 해석된 관념이 있을 뿐, 근원에서 죽음은 없다.
죽음은 두려운 무엇이 아니라 장엄한 삶의 연장이다.

삶과 죽음은 실재가 아닌 나의 생각, 망상일 뿐이다. 나고 죽는다는 망상분별의 꿈에서 깨어나면 불생불멸한 진정한 삶 그 자체의 진실이 드러난다. 바로 그 때 삶은 이대로 완전하고 장엄하다.

삶을 앗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삶은 무한히 살 기회를 주지만 우린 매 순간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생생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생각 속에서 산다.
생각으로 해석된 현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살라.

생각 속의 삶은 삶이 아니다. 삶을 죽이는 것일 뿐. 진짜 삶 속으로 뛰어들라. 생각으로 걸러지고 오염된 삶이 아닌 진짜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삶으로.

현재를 놓치는 것은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그것은 인생 전체에 대한 직무유기다.
지금 이 순간을 회피하지 말고 온전히 책임지라.
생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느라 현재의 삶을 놓치지 말라.

지금 여기가 전부다. 생각으로 지금 여기를 덧칠하느라, 진짜 지금 여기의 진실을 놓치지는 않았는가. 매 순간을 온전히 허용하라.

지금 여기의 현재라는 진실 속으로 온전히 뛰어들어 보라. 삶이 곧 당신의 진정한 본래이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길은 곧 지금 여기를 100% 사는 것이다.

현재에 대한 네 가지 질문.
현재에 만족하는가?
현재에 깨어있는가?
현재를 받아들이는가?
현재를 사랑하는가?
지금 이대로의 현재야말로 참된 진여(眞如) 실상이다.

현재에 대한 질문은 곧 진리에 대한 질문이며 진정한 자기가 누군지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라는 진실에 깨어나게 되면 판단분별 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삶으로 산다. 이 삶이 곧 진실이며, 삶이 곧 진정한 나 자신이다. 완전히 만족한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삶은 곧 완전성임을, 불완전한 모습 조차 그대로 완전임을 깨닫게 된다. 이대로에 오롯이 참여한다. 그것이 곧 깨어있음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곧 생각과 분별로 해석한 세계가 아닌 분별 이전의 생생한 진실을 산다는 뜻이다.

이처럼 주어진 현재를 받아들인다. 삶을 온전히 수용한다. 내가 곧 삶 그 자체가 된다. 불이법.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이 몸이나 느낌, 생각 같은 에고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삶 전체를 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차별없는 동체대비심이다.

[오늘! 법상스님 실시간 줌법회 안내] 

일시 : 6월 8일(화) 오후 4:30(격주 오후 4:30)

회의 ID: 768 025 0135
암호: btn3270 

Zoom 회의 참가 링크
https://zoom.us/j/7680250135?pwd=dXZhK0xRWmtyRVlvYytsazN2M01tUT09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직 2021.06.19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문수보살님께 ‘해탈의 문을 열어주시고,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 때 문수보살은 ‘보리심을 발하여, 선지식을 구하고, 보현행원을 갖추라’고 법문하신다.

또한 ‘모든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양하는 것이 완전한 지혜를 갖추게 되는 최초의 인연이다.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는 데 싫증내지 말라. 완전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선지식을 구함에 게으름이 없어야 하고, 선지식을 뵙고 싫증내지 않아야 하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며,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한다’ 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설한 선지식은 부처님 같은 분만 선지식이 아니라, 53명의 다양한 선지식이 나온다.

그 53명의 선지식 중에는 바라문, 의사, 외도, 장자, 왕, 야차, 비구니, 심지어 창녀 등도 있다.

53 선지식 중에 여성이 20명, 보살이 5명, 비구 5명, 비구니 1명, 우바이 4명, 장자 9명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누구나 선지식이다.

내가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누구라도 바로 나의 선지식일 수 있다는 뜻이다.

화엄경은 불화엄(佛華嚴)이라는 말처럼, 모든 존재가 그대로 장엄한 꽃처럼 피어난 한 분의 부처님임을 설하고 있다.

일체 모든 존재가 장엄한 부처님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대로 선지식이다.

좋고 나쁘거나, 높고 낮거나, 잘나고 못난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금 이대로 부처님이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했고, 도오스님은 촉목보리(觸目菩提)라 했다.

모든 것이 곧 실상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로 깨달음이란 뜻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깨닫게 할 나만의 맞춤식, 최적화된 선지식이다.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님이야말로 가장 나를 깨닫게 할 스승이다.

내가 삶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스승이다.

나에게 처한 일들, 버거운 삶의 경험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일깨워주고 있다.

.....

* 오늘 3월 16일(화) 오후 4:30분 부터 불교TV 주관 실시간 줌강의를 40분씩 2편을 연이어 촬영합니다.(4:30~6:00, 43분 촬영 후 중간에 10분씩 휴식) 3편이 아니라 2편만 촬영합니다. 입장이 안 되는 분은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입장이 됩니다.

줌 회의 ID: 768 025 0135
줌 암호: btn3270

* 매주 일요일 13:30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서 법상스님 일요법회 법문 실시간 방송합니다. 아울러 일요법회 대면 참석자는 매주 수요일 10:00부터 목탁소리 홈페이지(www.moktaksori.kr
)에서 선착순 접수 받습니다.
 
* 대한불교진흥원 주관, 서울 불교방송 법당에서 열리는 육조단경 대면 강의 참석자(무료)는 매주 목요일 10:00부터 목탁소리 홈페이지(www.moktaksori.kr
)에서 선착순 8명씩 매주 모집합니다. 참석 못하시더라도 유튜브 헬로붓다TV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 전체 강의가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  지난주 개강한 목탁소리 대원불교대학 초기불교과정 온라인 수강자 분들 또한 매주 금요일 13:30부터 실시간 불교대학 강의를 목탁소리 홈페이지, '온라인 강의교실'에서 들으실 수 있으며, 강의 후 곧바로 홈페이지에 업로드 되어 반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4월말까지는 계속 접수 받습니다.
www.moktaksori.kr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직 2021.06.19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분별없이 내 인생을 바라보자.

처음 태어날 때 인연따라 어떤 몸을 빌어 이 땅에 나왔다.

분별없이 보면, 그건 그저 인연이 화합하여 어떤 육체 하나가 그저 생겨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육체를 '나'라고 이름붙였고, 나도 사람들에게 이 육체가 '나'라고 교육받으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생각을 믿지 않으면 그저 한 존재가 생겨났을 뿐이다.

그것도 빈 몸으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알거지로, 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홀연히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상황이 펼쳐졌다.

이 몸을 '나'라고 믿게 만든 사람 중 한 사람, 그 여인이 자신이 나의 엄마라고 하면서 젖을 물리고, 죽을 만들어 주고, 똥오줌도 갈아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며 살려주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이 지구별이라는 낯선 땅에서 게임이 시작됐다.

나와 너라는 게임, 부모와 자식이라는 게임, 살고 죽는다는 게임, 성공과 실패라는 게임...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성장하다 보니, 엄마와 아빠라는 사람만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다!

와우~ 이런 놀라운 행성이 있나!

이 행성에서는 배가 고프면 밥이 생기고, 잘 때가 되면 어디든 잘 집이 생기고, 추우면 옷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 밥이 아빠가 가져오고 엄마가 요리해 준 것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농부와 소매상, 도매상, 마트직원, 택배 배달원, 반찬가게 사장, 정수기 업체, 밥을 할 있도록 수도 배관을 깔아 준 사람들, 밥솥을 만든 사람들과 회사, 가스레인지를 만든 회사와 사람들 등등 무수히 많은, 아니 어쩌면 크고 작은 인연을 다 합치면 온 우주 전체가 내가 한 끼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완벽한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이 행성이란 놀랍다! 가만히 보니, 태양, 하늘, 바람, 구름, 별, 바다, 강, 산하대지 전부가 나를 살리고자, 내게 놀 자리를 펴주고, 밥을 주고, 집을 주고, 옷을 주며, 또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이 행성에서 그냥 저냥 노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일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고, 서로가 서로를 먹여주고, 친구가 되어준다.

태양과 구름, 지구 같은 대자연에서부터 사람과 동물 식물 곤충 심지어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일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하고, 서로를 개댈 수 있게 자기 품을 내어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며, 서로가 서로를 살게 하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 실천의 장이 아닌가.

나를 살게 하고자 온 우주 전체가 돕고 있다니!

이 감사함과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지?

다행스럽게도, 나 또한 나의 일을 하고, 내 길을 가는 것으로써, 이 사회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존재들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동등하게 동참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이 지구별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무한히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 이 우주는 사랑과 자비가 그 근원의 운행 원리인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을 온전히 사는 것을 통해 이 우주에게 사랑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눈물겹게도 내가 밥 한 끼를 먹을 때 먹은 고등어 한 마리조차 자신의 한 평생을 바쳐 바다를 헤엄치고, 놀고, 삶을 살다가 농부의 손에 잡혀 내 한 끼의 반찬이 되어주는 것을 통해 나에게 사랑을 온전히 베푼다.

저들이 자신의 온 생명을 바쳐 나에게 한 끼를 주었든, 나 또한 언젠가는 죽는 것을 통해 이 세상을 살릴 것이다.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육식동물을 사람이 먹고, 사람이 죽어 박테리아를 살리고, 박테리아는 다시 죽은 생물을 분해해 산 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 준다. 

생태계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자리의 생명은 다시 가장 낮은 생명에게 먹힘으로써 자비의 순환을 돕는다. 

생태계는 이처럼 순환하며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살려줄 뿐, 높고 낮음은 없다. 

아! 이 세상은 높고 낮다는 분별 없이, 사실은 무한한 상생과 무한한 자비, 사랑이 매 순간 그 근원을 이루고 있다.

내가 사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고, 죽는 것도 누군가를 살리는 사랑의 실천이다.

매 순간의 삶 자체가 거대한 사랑/ 자비의 연기적 순환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 3.7일 지난 일요법회부터 매주 일요일 13:30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서 법상스님 법문 실시간 방송합니다. 아울러 일요법회 대면 참석자는 매주 수요일 10:00부터 목탁소리 홈페이지(www.moktaksori.kr
)에서 선착순 접수 받습니다.
 
* 3.8일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한불교진흥원 주관, 서울 불교방송 법당에서 열리는 육조단경 대면 강의 참석자(무료)는 매주 목요일 10:00부터 목탁소리 홈페이지(www.moktaksori.kr
) 에서 선착순 8명씩 매주 모집합니다. 참석 못하시더라도 유튜브 헬로붓다TV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 전체 강의가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  지난주 개강한 목탁소리 대원불교대학 초기불교과정 온라인 수강자 분들 또한 매주 금요일 13:30부터 실시간 불교대학 강의를 목탁소리 홈페이지, '온라인 강의교실'에서 들으실 수 있으며, 강의 후 곧바로 홈페이지에 업로드 되어 반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3월 16일(화) 오후 4:30분 부터 불교TV 주관 실시간 줌강의를 16일에는 40분씩 3편을 연이어 촬영합니다.(4:30~7:00, 40분 촬영 후 중간에 10분씩 휴식) 방송국 사정으로 그 이후 23일과 30일에는 줌강의가 없고, 4월 6일에 또다시 줌강의가 3편 연이어 촬영할 예정입니다. 
줌 회의 ID: 768 025 0135
줌 암호: btn3270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괴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빨리 해결하여, 건너뛰려 하지 마세요.

그것은 경험되기 위해 찾아온 저 너머로부터의 선물입니다.

그 너머가 바로 지금 이대로이고, 나 자신이고, 지금 이것이라는 하나의 진실입니다.

빨리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그저 그것을 경험해 주세요.

나를 찾아 온 모든 것들은 경험되기 위해, 진리로써 온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오는 것들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돕기 위해, 깨닫게 하기 위해 옵니다.

쌓여있던 해소되어야 할 것들이 발산됨으로서 해결되기위해 찾아옵니다.

그것을 해소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기에 지금 그것이 나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내면에 쌓이게 되면 지금보다 더 큰 폭발로 나를 괴롭힐 지 모릅니다.

그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현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업장, 업장소멸이라고도 부르지만, 업장이 두텁다는 의미를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그것은 나를 돕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온 모든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며 진리로써 옵니다.

모든 번뇌는 그것이 곧 보리(깨달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옵니다.

지금 이대로의 문제 투성이인 나 자신을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럼으로써 진리의 일원이 되어, 진리의 일을 하세요.

일어나는 일을 분별 해석 판단없이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는 것이 곧 진리와 하나되는 중도의 실천입니다.

괴롭고, 아프고, 슬프고, 답답하고, 가난하고, 남들보다 못난 그대로 당신은 온전합니다.

그 모든 아프고 싫은 요소들이 없어지고 난 뒤에 더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없애려는 생각만 없다면, 지금 이대로, 그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그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그 문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온전히 허용하고, 그것으로 살아줄 때, 비로소 내가 본래 이대로 완전한 부처였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로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수행을, 행복을 위해 그 무엇도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 이대로 존재하면 됩니다.

지금 나에게 찾아온 것이 무엇이든 그것과 함께 있어주면 됩니다.

지금 이대로가 바로 그것입니다.


YouTube에서 '[2011 설법 다시듣기] 사랑해서 하는가? 두려워서 하는가? 삶의 2가지 의도, 지혜=자비=무아=불이, 무명=두려움=에고=분별, 분별하지 않는 것이 참된 사랑' 보기
https://youtu.be/2pyR6ejGXLY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의 내면에는 늘 어딘가 모를 공허감, 결핍감, 허무함, 부족함 같은 허한 느낌이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끊임없이 채워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바깥으로 찾아 나선다.

돈, 명예, 지위, 친구, 사랑 등 나를 충족시켜줄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 무엇도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시간과 공간, 그 어디에도 나를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또 미래를 향해 충족을 바란다.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충족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미래의 언젠가에 나는 반드시  깨달을 수 있으리라.

과연 그럴까?

그런 모든 추구와 충족을 향한 갈구는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본질적인 공간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충족된 무량대복의 공간이고, 본래부처의 현현이지만, 우리는 그런 현재는 걷어차 버리고 곧장 미래를 향해, 다른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속에 당신이 원하는 그 모든 것은 이미 구족되어 있다.

이미 충족되어 있다.

당신은 전혀 결핍되어 있지 않은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이 단순함으로 돌아오라.

이 평범함으로 돌아오라.

풀벌레 소리로 당신의 현존을 채워보라.

뺨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모든 것은 충족될 것이다.

들숨의 이 단순한 호흡하나가 당신을 가득 채운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가?

생각으로 쫓아가는 그 추구와 갈구를 버리고, 분별과 망상의 생각을 잠시 내벼려 둔 채,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YouTube에서 '괴로움이 괴로움이 아닌 이유, 마음공부 하면 현실생활도 좋아져, 질병, 고통, 문제를 대하는 마음자세, 삶이 곧 수행이다! 비대면 법회' 보기
https://youtu.be/ChfPvVIAbmo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직접 책을 읽고 좋은글을 뽑아 그림을 그려 제작한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moktaksori.net BlogIcon 법상 2020.10.03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고 교정 봉사자 모집이 완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해'라고 믿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건 둘째 치고, 먼저 그 '올바르다'는 것은 무엇이죠?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그 생각을 믿음과 동시에 우리는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내 식대로의 '올바름'을 내세우고 그것을 믿게 됩니다.

내가 만든 '올바름'이라는 잣대, 색안경에 사람들의 행동을 저울질해 본 뒤에,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여기며 비난하거나, 그런 사람을 보기 역겨워하곤 합니다.

TV에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이 나오면 인상을 찡그리며, 인터넷을 찾아 악플을 달 수도 있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패배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생각의 잣대, 옳고 그름의 잣대를 세워 놓고, 그 생각에 집착한 채,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자기를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올바름의 기준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사람들마다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첫 번째 명제 즉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해'라는 명제를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할 수도 있고 올바르지 않게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이며, 그것이 정말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내 식대로 판단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그 생각을 믿을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요?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해'라는 그 생각이 사실은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들을 묶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묶고 있는 족쇄와도 같습니다.

어떤 생각도, 어떤 견해도, 그것을 절대시하며 믿지는 마세요.

그 생각은 도리어 자기 자신을 구속합니다.

생각 자체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가 없습니다.

생각은 허망합니다.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일 뿐입니다.

세상을 그저 지금 이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내 생각으로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되라고 조종하려고 해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렇게 존재하도록 그저 허용해 주세요.

내 생각으로 규정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모든 판단을 유보해 보세요.

그럴 때,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완전합니다.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생각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특정한 믿음이 없을 때, 어떤 견해가 없을 때,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저 이대로 평화롭습니다.

평화로운 오후 아무 일 없이 완전히 고요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야, 무언가를 해야만 해,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거야 라는 생각, 믿음, 견해가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죠.

그 순간 갑자기 모든 평화는 깨지고, 나는 일순간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토록 간단하게 당신은 고요한 적멸의 평화를 누리는 자에서 갑작스럽게 무능한 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천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는 이토록 간단합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이렇게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각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 그저 왔다가 가는 바람과 같은 것일 뿐,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만히 있는 것을 무능하다고 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무수히 많은 증거들이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르게 이 세상에는 가만히 고요히 있는 것을 깊은 평화로, 부처님의 적멸로, 깊은 명상 상태로, 지혜로운 현자와 성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 그 두 가지 생각 중에 어떤 것일 옳을까요?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둘 중에 어느 생각이 옳은지의 증거를 찾아도 끝끝내 결론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정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가 옳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면 거기에 성공할 것입니다. 그런 증거는 너무 많으니까요.

후자가 옳다는 증거 또한 무수히 많으니 그것도 성공할 것입니다. 

왜 이럴 수 있을까요?

도대체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요?

옳다고 결론을 내리든, 틀리다고 결론을 내리든, 전자의 손을 들어주든, 후자의 손을 들어주든, 그 모든 것은 그저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생각은 진실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생각을 몰아갈 수 있을 뿐.

그러니 생각을 쫓는 삶의 방식에서 우리는 언제나 괴로움을 맛볼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상에 있다가 지옥에 떨어지기는 한 생각에 달렸거든요.

그런 생각의 농간을 아직도 믿으시겠습니까?

YouTube에서 '초기경전의 성립과 결집, 아함경과 니까야의 성립, 불교경전과 마음공부' 보기
https://youtu.be/bhhCbPM1QLM


그림 및 글카드 : 김형준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은 언제나 그것이 있어야 하는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어떻게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일까요?

지금 이렇게, 지금 이대로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고, 조금도 남을 것도 없이,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이렇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전부 우리의 생각이며, 이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현실에서 더 해야할 무언가는 없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지금 이대로이어야 합니다.

현실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며, 망상이고, 판단일 뿐입니다.

세상은, 현실은, 진리는 늘 있어야 하는 온전한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늘 있습니다.

누구도 거기에 해서 판단하거나, 해석하거나, 규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판단, 분별, 해석, 규정을 내리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허망한 분별망상일 뿐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원인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곧장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 엉망진창인 이대로가 진리라고?', 

'이렇게 괴로운데 지금 이대로여야 한다고? 아니야 나는 지금 이대로에서 벗어나야 한다구!'

'나는 지금 이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대로 삶이 변하고 나야 행복해질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돈도 더 벌고,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면 그 때 행복해질거야'

끊임없이 생각은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현재의 내 상태를 괴로움이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라는 현실에 대한 나의 규정, 판단, 해석, 분별이 없으면, 지금 이대로는 그저 지금 이대로일 뿐입니다.

지금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있는 그 생각이 없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현실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때는 괴로움이라고 여겼지만, 훗날 되돌아보면 그 때의 괴로움이 나를 살렸구나, 나를 성장시켰구나 하고 느끼곤 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해석을 믿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면서,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힐 뿐입니다.

이처럼 사실은 내가 나를 괴롭힐 뿐,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근원에서 세상은 결코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엉망진창인 현실 조차 말이지요.

이 세상, 삶 그대로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삶은 나를 늘 도울 뿐입니다.

무엇으로 도울까요? 삶으로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요 사랑입니다.

삶은 이처럼 장엄한,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삶은, 세상은 늘 나를 완벽하게 돕고 있습니다.

생각으로, 괜한 걱정을 만들지 마세요.

내 생각이 오로지 나를 괴롭히고, 나를 죽일 뿐입니다.

삶은 나를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늘 돕고 있습니다.

아직 내가 그 도움을, 그 사랑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무명, 어리석음, 원죄 때문입니다.

분별이라는 원죄, 생각이라는 어리석음 때문이지요.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바른 견해, 정견의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으니, 늘 세상을 내 식대로 판단하고, 지금 이대로를 내 생각으로 해석하기만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원죄가 생겨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선악과는 세상을 선과 악,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내 편과 네 편 등으로 나누고 분별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입니다.

그 생각, 망상, 분별이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곧장 에덴동산, 천국, 장엄한 정토에서 쫓겨나 이 현실이라는 괴로움의 고해바다에 내던져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는 현실은 괴로움이야'라는 이 생각이 없다면, 지금 여기에 곧장 지금 이대로 여법한 에덴동산, 불국토가 펼쳐집니다.

세상을, 현실을, 진리를 지금 이대로 있도록 허용해 주세요.

내 생각으로 그것을 규정, 판단, 분별, 해석하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과, 현실과, 진리와 싸우지 마세요.

현실이 그대로 진실입니다.

현실을, 세상을,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고, 사랑해 주고, 지금 이대로 존재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 아무것도 아닌, 할 일 없는 무위행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단 하나의 실천 아닌 실천입니다.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무애 2020.09.15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에 법회가있으신지 알고싶어요.감사합니다

  2. 아미선 2021.02.19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그림 및 글카드 : 김형준님


내 인생에 일어나는 좋고 나쁜 다양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업(業) 때문이다.
업이란 과거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3업의 행위를 말하고, 그런 행위는 결과를 끌어온다.

그 행위의 결과가 업보(業報)다.

사실 과거의 행위는 이미 지나갔다. 대부분의 행위는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즉 무위행은 행위를 했지만, 그 행위가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행이다. 그래서 하되 함이 없는 행이라고 한다. 무위행에는 업보가 없다.

아픔, 상처, 괴로움 같은 기억이나 원한, 화 같은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특정한 업은 업보를 불러온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화와 증오, 원한 같은 것을 남긴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했거나, 무시했거나, 빼앗아 가는 행위를 했을 때 당한 사람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남는다.

그 복수심이 바로 훗날의 복수라는 업보를 불러온다.

그 복수심이 바로 찌꺼기요 업장이다.

모든 일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우리들 또한 행위를 하고 나서 왔다가 간 뒤에 흔적 없이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 의식, 분별심을 가지고 그 행위에 대해 판단하고, 집착하고, 화를 내고, 증오를 하는 등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찌꺼기를 양산해낸다.

본래 아무 문제 없이 인연 따라 왔다가 가는 것들에 대해, 붙잡고, 사로잡히고, 화내고, 원한을 느끼고, 집착하는 등의 마음으로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에 문제, 업장, 찌꺼기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풀려나고 해소되어야만 한다.

이처럼 과거의 특정한 업이 해소되지 않고 쌓여 있는 것을 업장이라고 하고, 그 업장의 찌꺼기들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다양한 삶의 경험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해소되기 위해, 풀려나기 위해 일어난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결되지 않은 복수심이나 원한심은 내 몸에 병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무시당한 경험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해소되기 위해 찾아오는 모든 경험을 해소되도록 허용해 주어야 하는 이유다.

나를 찾아온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게 되면, 해소되기 위해 올라온 것이 해소되지 못한 채 또 다른 찌꺼기를 남기며 억눌릴 뿐이다.

억눌러 놓기만 하면 훗날 더 큰 화가 되어 폭발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괴로움이 오든, 역경이 오든, 아픔과 슬픔이 찾아오든, 나를 찾아 온 그 모든 괴로운 것들이 풀려나가도록, 해결되도록, 해소되도록 마땅히 허용해 주라.

온전히 그것을 경험해 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살아주는 것이다.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해 주고, 괴로울 때 그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괴로워해 주기를 선택해 보라.

그것이 바로 직접적인 마음치유다.
그것이 곧 불이중도의 실천이다.

불이(不二)란 곧 그것과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 그것과 하나가 되어 허용되는 경험이다.

하나가 되어 그것을 살아주게 될 때, 그것은 잠시 해소되며 올라오겠지만, 빠르게 해소되었기에 빨리 지나가게 될 것이다.

괴로움을 피해 도망칠 때, 괴로움은 더욱 나를 옭아맨다.

괴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하나되어 경험할 때, 괴로움은 금방 흡수된 뒤 사라져 간다.

해소가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업장 소멸이다.

주어진 삶이야말로 진실이다.

진리이기에 지금 여기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진리와 하나되어 그저 경험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수행이다.

* 9.6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어 법회중지도 거리두기 2단계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 같습니다. 법회가 다시 시작되면 공지드리겠습니다.

YouTube에서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기,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라, 참선공부란? 꿈에서 깨는 공부' 보기
https://youtu.be/7Kl0TMu5ev0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