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 12월 서울법회 및 부산 불교아카데미 공지
[서울법회]
- 일시 : 2019.12월 21일 오후 4시~6시(20년에도 계속됩니다.)
- 장소 : 서울 용산구 원광사(4호선 신용산역 1번출구 용산우체국끼고 골목 도보 8분)
[부산 금련사 불교아카데미]
- 12월 아카데미는 12월 18일(수)에 종강합니다.
- 2020년 3월 모든 대소승 불교 경전의 핵심 가르침만을 모아 '불교경전과 마음공부' 과정이 3월~6월까지 매주 수요일 14:00~16:00 시작될 예정입니다.
.....
자녀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느냐 하는 점입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아! 눈에 하트가 그려져'
이렇게 느끼는 정도가 된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는 그 어떤 역경이나 괴로운 일들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큰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사랑하기만 하면 버릇없이 큰다고 말하곤 하시는데요, 잘못했을 때조차 무조건 잘했다고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늘 그 큰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게 되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무한한 마음이 커가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으면, 착한 행동을 하면,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그 때 가서 그 결과로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그냥 하염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향한 자비심과 사랑이 내면에 중심을 잡게 됩니다.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그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인해 저절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무한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사진 : 금련사 김장봉사 : 금련사, 금련사유치원, 사회복지단체 보시할 김장까지 많은 불자님들께서 이틀에 걸쳐 봉사 해 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YouTube에서 '[보현행원품(1)] 불면증 해결, 당면한 괴로움을 해결하려면, 화엄경과 보현행원품 소개' 보기
https://youtu.be/kMGePUGg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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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여기에 '나'가 있고, 내 바깥에 외부의 독자적인 세계, 대상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인식한다고 여기지요.

오늘 절에서 떡국을 먹었는데요, 어떤 사람은 이 떡국을 짜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싱겁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그 싱겁다거나 짜다는 것은 떡국 속에 실체적으로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에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나에게 그렇게 느껴질 뿐입니다.
내 바깥에 짜거나 싱거운 떡국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내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짜거나 싱겁다는 인식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인식하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는 다른 떡국이 있는 것입니다.

한 여인을 봅니다.
한 사람은 너무 예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너무 밉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사람에 따라, 인식에 따라, 인연 따라 존재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쁜 여인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미운 사람으로 있지요.
이것을 인연가합으로 있다, 가짜로 있다, 실체가 아니다, 무아다라고 합니다.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식이 있을 때만 그런 존재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 여인 뒤쪽에 있던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여인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존재, 하나의 대상은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사람의 의식에 따라서만 존재합니다.
이것을 십이처, 십팔계가 공하다고 합니다.

즉 나와 세상과 인식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내가 있고 밖에 세상이 있고,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 가지가 서로 연기적으로 인연화합할 때만 거짓으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육근, 육경, 육식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그 대상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인연이 화합되어야지만 인연따라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있어야 저것도 있는 것이어서, 이것은 저것을 근거로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십이처가 접촉할 때, 만들어진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맞다고 여기고, 진짜로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자기만의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짜고 싱거운 것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처럼, 사실 대상이라는 것이 내 바깥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상을 접촉하는 인연으로 동시에 생겨납니다.

나와 대상은 동시생, 동시멸이지요.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보는 자, 보는 작용, 보이는 대상 이런 식으로 나누어 분별할 수는 있지만, 사실 이것들은 서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

보는 자가 곧 봄이고, 봄이 곧 보이는 대상이며, 보이는 것이 곧 보는 자입니다.

이 세 가지는 동시에 생겨나고 동시에 사라집니다.

나와 세상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유식불교에서는 보는 쪽을 견분, 보이는 대상을 상분이라고 해서, 하나의 의식을 중생들은 보는부분(견분)과 보이는 대상(상분, 보이는 모양)으로 둘인 것으로 착각을 한다고 설합니다.

나와 세상은 둘이 아닙니다.
내가 곧 세상이고, 보는 자가 곧 보는 것이며, 생각하는 자와 생각하는 것이 둘이 아닙니다.

꿈 속에서는 나와 세상이 따로 있는 것 처럼 느껴지지만, 꿈을 깨고 보면 꿈 속의 나와 세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전부 하나의 꿈이었을 뿐임과 같습니다.

이것이 곧 그것입니다.
내가 곧 세상입니다.
보는 자가 곧 보는 것입니다.

다만 생각이 착각을 일으켜, 나와 세계를 둘로 나누어 놓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불이중도입니다.
둘이 아닌 존재의 실상입니다.
.....
#목탁소리
#수행명상
#마음공부
YouTube에서 '[서울법회(11월)] 진리를 확인하려면? 견성의 체험? 선수행의 실재, 생활 속 참선' 보기
https://youtu.be/WCWG13TgBEw
https://youtu.be/WCWG13TgB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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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부처를, 참나를, 깨달음을 찾고 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당신이 저기 어딘가에 있는 진리를 찾는다는 바로 그것이 진리와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왜 그럴까?
당신은 당신을 찾는자, 구하는 자라고 여기면서 찾을 대상, 구할 것을 찾아 나서지만, 사실 당신은 찾는자가 아니라, 찾는 것이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듯이, 찾고 있는 당신이 바로 찾는 그것이기 때문에, 바깥으로 찾고 있는 동안은 결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진리를 찾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토록 진리를 갈망하고 있는가?
찾고 있는 대상을 찾아 바깥을 기웃거리지 말고, 찾고 있는 바로 그 놈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라.
회광반조.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바로 당신을 찾고 있다.
찾는다는 바로 그 사실이 당신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
YouTube에서 '[일요법회, 11.10] 지금까지 완전 착각하며 살았다면? 헛된 착각을 거두고 바른 지혜를 얻으려면, 반야심경 강의 종강' 보기
https://youtu.be/cQ3HTn_YP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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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agit.tistory.com BlogIcon 현정s 2019.11.25 0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입시기도 하는 첫 번째 부모님의 마음은
방하착의 마음이라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 대학에 대한 집착,
성적에 대한 집착을 부모님이 먼저 놓으셔야 합니다.

어느 대학을 가야한다거나,
어느 정도의 성적은 내야 한다거나,
옆집 누구보다는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등의
자기 고집을 비워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이 크면 클수록
자식에 대한 기대심리와 집착이 커지고,
자식이라는 경계에 크게 휘둘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입시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집착을 놓고 하라는 말입니다.
집착으로 하는 기도는 바라는 바가 크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우리 마음은 극락으로 지옥으로 오고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을 미리부터 준비하는 일 밖에 되지 못합니다.
진정 놓았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잡는 것이 아닌 놓는 사랑입니다.

새옹지마란 말을 새겨 보세요.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성공처럼 보일지라도 보다 넓은 안목으로 본다면
당장의 실패도 성공을 위한 실패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으시면
당장에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굳게 자성불을 믿고 넉넉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믿고 놓는다는 말은
어떤 결과도 모두 자성부처님의 뜻임을 굳게 믿겠다는 말입니다.

굳은 믿음이 있으면 잘 되고 안 되고가 없습니다.
오직 수행할 뿐입니다.
크게 믿고 크게 놓고 가시는 길이
가장 밝게 이루는 일임을 깨쳐보셔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입시기도를 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닦음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입시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힘겹고 괴로운 모든 일들을 경계로 보고
마음을 닦음으로 경계를 녹여가듯,
입시라는 삶의 경계를 마음공부의 재료로 삼아
거뜬히 내 안에서 녹여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입시며 공부, 성적 또한 내 안의 나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입시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면, 떨고 있다면, 초조해하고 있다면, 또 결과에 크게 낙담한다면, 그건 입시라는 경계에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안 휘둘릴 수는 없지만, 너무 과도한 집착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최선은 다하되 결과는 내맡긴다는 마음으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면 입시라는 경계를 수행자답게 잘 다스리고 있는 것이지요.

입시라는 괴로움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세 번째로 그렇기에 입시기도 때에는
기도문을 쓰기 보다는 발원을 세워야 합니다.

성적 몇 점 이상, 어느 대학 이상 합격을 비는 개인적인 기도 보다는
지금 원하는 바를 이룸으로써
크게 회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큰 마음으로 발원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자식 서울대 붙게 해 주세요’ 하기 보다는
‘자식 서울대 입학으로 원하는 공부 원만성취하여
사회에 널리 회향하길 발원합니다.’
하는 식의 이타적인 자비심으로 궁극의 회향을 삼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기복적인 기도가
목마른 사람에게 한 바가지의 물을 가져다 준다면,
이타적인 회향심이 담긴 발원은
마치 한량없는 물이 셈솟는 우물을 파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을 키우는 일입니다.
그릇을 키워야 법계(法界)의 법비를 한껏 받아
필요한 곳곳에 쓸 수 있는 노릇입니다.

모쪼록 수능시험을 위해 애쓴 수험생들을 응원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많은 가족들의 행복과 무집착과 참된 지혜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금련사에서는 매년 해오듯 수능 시간표에 맞춰 기도수행을 합니다. 꼭 수능이 아니신 분들도 시간되실 때 함께 동참하셔서 지금 여기에서 기도하며 깨어있는 마음공부를 함께 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YouTube에서 '[삶의 나침반] 도전을 두려워 마! 과거로 현재를 해석하지 마! 날마다 새롭게 깨어나라' 보기
https://youtu.be/gH4dZDbDs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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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서울법회 안내
일시 : 11월 16일(토)
          오후 4:00~6:00
장소 : 서울 용산 원광사
  (신용산역 1번출구에서 용산우체국 보고 좌측 골목 직진 후 위병소에서 우회전,네비:원광사)
* 혹시 공지가 없더라도 매월 3주차 토요일에는 항상 원광사에서 법회합니다
.....

즐거움과 괴로움,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순경과 역경이 교차하는 삶의 파동을 허용해 주라.

두 방식 모두를 감당함으로써 균형 있게 삶을 배우라.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괴로움과 역경을 이겨내 보는 삶의 경험 또한 소중하다. 

자식에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고, 대인관계도 좋고, 좋은 선생님만 만나고, 좋은 성적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여기지 말라. 

오히려 역경과 순경이라는 양 극단의 경험을 조화롭게 감당하게 해 줌으로써 균형 잡힌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라.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는 하나의 선물이다. 

괴로움을 감당하고 이겨내 보지 못한 아이는 언젠가 괴로운 상황이 올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없다. 

삶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역경과 순경,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두 방식 모두를 수용함으로써 그 양 쪽에서 균형 있게 삶을 배우라. 

한 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중도적으로 삶을 경험하라.

YouTube에서 '[10.22 법문] 견성의 체험, 깨달음은 어떻게 오는가? 깨달음에 대한 상을 깨라!' 보기
https://youtu.be/QWCN-Lons8s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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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토요일 10월 19일
오후 4시~6시까지
서울 용산 원광사에서
'법상스님 10월 서울법회'가 있습니다
(신용산역 1번출구에서 용산우체국 보고 좌측 골목 직진, 국방부 후문에서 우회전)

.....

삶은 이대로 완전합니다.

나도 세상도, 모든 것이 이대로 원만구족합니다.

완전한 세상을 완전하게 존재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도, 타인도, 모두가 자기대로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이지요.

지금 이렇게 경험되어지는 이대로 모든 것을 그대로 허용해 주세요.

그것이 있는 방식대로 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고, 내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조종하려 들거나, 애쓰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대로 경험되도록, 진리가 진리답게 살아나도록 약간의 노력을, 약간의 수행이란 것을 해 본다면, 이런 방식이 어떨까요?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는 것이 날것으로, 생생하게, 그저 일어나도록 경험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소리라도 상관이 없어요.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들어 봅니다. 그냥 듣기만 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그저 보기만 하고, 몸에 느껴지는 모든 감촉, 감각들을 그저 맨느낌으로 느껴주기만 합니다.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겠다고 느끼는 것은 곧 중생심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얻겠다거나 하는 추구심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살아 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그저 그렇게, 지금 이렇게 경험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바로 이, 아무 것도 아닌, 이 평범한 이대로의 삶이 그저 이대로 경험되도록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단순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지는 이대로 살지 못하고, 이대로가 아닌 다르게, 내 방식대로, 남보다 더 뛰어나게 살려고 하는 아상과 분별로 인해 이 아무 문제 없는 삶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삶과의 전쟁에서 내가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삶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지요.

삶에 항복하세요.

진정한 나 자신인 삶과 하나가 되어 삶을 타고 흐르세요.

.....

YouTube에서 '[삶의 나침반] 좌절의 순간이 올 때, 한 번은 꺾이는 것이 인생, 노후의 마음공부' 보기
https://youtu.be/W6N9_1npU88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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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 화를 잘 내는 것 때문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한다.
 
화를 내는 것을 잘 살펴보자.
 
그것은 정말 내가 화를 내고 싶어서, 너무나도 화를 내고 싶어서 내가 화를 낸 것일까?
 
사실, 화를 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만 화를 낼 만한 상황이 생겨나면, 거기에 반응하여 화를 내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가 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화의 주체를 '나'라고 여기고, '내가 일으킨 화'라고 함으로써 그 화를 자기화하고, 동일시한다.
 
그렇게 되면 화를 낸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스스로를 화를 내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게 된다.
 
인연이 화합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일 뿐이다.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겨나 화를 내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저 자연현상일 뿐.
 
화를 전혀 안 내는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 화를 낼 때 적당히 화를 내는 사람이 자연스러운 정상인이 아닐까?
 
화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화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면서 화를 낸 나를 단죄하려 들지 말라.
 
내가 화를 낸 것이 아니라, 그저 인연 따라 화는 자연스럽게 올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끝!
 
거기에서 끝내 버리라.
 
그 화를 붙잡고 내가 화를 냈다거나, 나는 나쁜 사람이라거나, 화를 내면 안 된다거나, 벌을 받을 것이라거나, 내가 화를 내서 저 사람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느냐거나, 다음에 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거나 하는 등의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더 이상 맞지는 말라.
 
부처님도 성인들도 화를 낸다. 다만 거기에 끝낸다. 화에 끌려가지 않을 뿐!
 
.....
* 부탄 해외연수 관계로 10.2과 10.9 금련사 불교아카데미는 휴강합니다 단 모든 법회, 백일기도, 다라니기도 등은 계획대로 도반스님께서 해 주십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 유튜브를 데이터 때문에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는 못 듣는다는 분이 계시고, 다운 받아서 아무 곳에서나 듣고 다니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일부를 올려 놓았으며, 앞으로도 종종 업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필요하신 분은 구독하여 다운 받아 활용하시면 되시겠습니다. 지난 9월 21일 서울법회 영상도 유튜브 예약 공개에 앞서 먼저 선공개 해 두었습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네이버 오디오클립 바로가기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556

YouTube에서 '[삶의 나침반] 완전한 삶을 완전하게 경험하기, 일진법계, 제법실상, 본래면목, 허공성' 보기
https://youtu.be/P0n74sQl4Hk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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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 견해, 가치관, 기억들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특정한 삶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생각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옳다라고 고정지어 놓은 뒤, 그 옳은 자기 생각에 집착하고, 고집합니다.
그 때문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모든 생각에 '이것이 100% 진실인가?' 하고 물어보세요.
놀랍게도 100% 옳은 생각이란 것은 없습니다.
특정한 상황, 특정한 인연에서만 상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을 뿐이지요.
연기법의 세계는 곧 이와 같은 상대적인 세계입니다.
100% 옳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고집하거나, 집착하느라, 너무 과도한 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즉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 생각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공간도 생겨나게 됩니다.
사실 절대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100%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렇다고 집착하는 것일 뿐이지요.
집착하면 할수록 바로 그 집착에 스스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자승자박, 무승자박이라고 하여, 포승줄도 없는데, 스스로가 만든 의식의 포승줄로 스스로를 묶은 뒤에, 괴로워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 자유로와 집니다.
생각이 100% 진실인지 아닌지 작은 예를 들어 볼까요?
남편이 술마시는 것 때문에 너무 괴로운 아내가 있다고 생각해 보죠.
아내는 평생을 남편 술로 인해 괴로워할 것입니다.
술을 끊도록 아무리 말을 하고, 화도 내고, 부탁도 해 보고 할 것은 다 해보더라도 남편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아내는 생각합니다.
'남편이 술 먹는 것은 안좋다라는 나의 생각은 100% 진실인데 왜 저 남편은 내 말을 안 따를까'
이런 생각,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내가 완전히 옳고, 남편의 행동은 그른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남편이 술을 마시면 나쁘다'는 생각은 100% 진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술을 평생 마시더라도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술을 마시더라도, 아내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 주는 아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그 사실 자체가 절대적인 괴로움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남편이 술 마시면 안 된다, 나쁘다'는 나의 생각이 나를 괴롭힐 뿐인 것은 아닐까요?
그 생각이 100% 진실이 아니라면, 그 생각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을 내려놓고 나면, 삶은 더 자유해 질 수 있습니다.
[사진:어제 서울법회,
매월 3주차 토요일 16:00~18:00]
* 어제 서울법회에서 많은 분들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먼 길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이신 분들 모습에서 천상의 신들이 있다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데요. 그 환한 미소와 웃음꽃 그대로가 극락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인 그대들 모두를.
다음달에 또 뵙겠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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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22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9.10.0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9.10.03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내일(9.21일.토) 오후 4시~6시까지
서울 용산 원광사에서
법상스님의 열린법회를
봉행합니다
누구나 동참하실 수 있으며,
신용산역 1번출구에서
용산우체국을 바라보며
왼쪽 골목 끝까지 올라와
위병소 옆으로 올라가면 원광사가 나옵니다
주차 가능하며 네비게이션에
원광사 혹은 국군중앙교회를
치고 오시면 됩니다
.....

즐거움과 괴로움,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순경과 역경이 교차하는 삶의 파동을 허용해 주라.

두 방식 모두를 감당함으로써 균형 있게 삶을 배우라.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괴로움과 역경을 이겨내 보는 삶의 경험 또한 소중하다. 

자식에게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고, 대인관계도 좋고, 좋은 선생님만 만나고, 좋은 성적만 받았으면 좋겠다고 여기지 말라. 

오히려 역경과 순경이라는 양 극단의 경험을 조화롭게 감당하게 해 줌으로써 균형 잡힌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라.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는 하나의 선물이다. 

괴로움을 감당하고 이겨내 보지 못한 아이는 언젠가 괴로운 상황이 올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없다. 

삶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역경과 순경,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두 방식 모두를 수용함으로써 그 양 쪽에서 균형 있게 삶을 배우라. 

한 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중도적으로 삶을 경험하라.
.....

YouTube에서 '윤회란 무엇인가? 윤회는 있을까 없을까? 윤회의 참된 의미' 보기
https://youtu.be/-AsgiPLcksQ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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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세계도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분별한 ‘마음이 만든 세계’를 인식할 뿐이다.

인간과 물고기, 꿀벌, 뱀이 보는 세계는 전혀 다르다.

마음에서 연기한 세계일 뿐.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본 것은 다 다르다. 

외부 세계가 사실은 또 다른 내면의 세계다. 

만약 내 밖에 고정된 실체로써의 세계가 진짜로 있는 것이라면 누가 보든 세계는 동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시광선을 보는 인간과 자외선을 보는 물고기나 꿀벌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또 뱀은 골레이세포를 통해 적외선을 감지한다고 하니 뱀이 보는 세상도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처럼 세상은 그 자체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보는 자에 의해 다르게 보여 질 뿐이다. 

세상은 오직 마음에서 연기한 것이다. 

세상을 안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해된 세상을 안 것일 뿐이다. 

삼계유심(三界唯心)이며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 

많이 안다고 여기지 말라. 

타인이 모른다고 여기지도 말라. 

그는 그의 세계를, 나는 나의 세계를 그저 살 뿐이다.

거기어 옳고 그르거나, 좋고 나쁜 삶은 없다.

자기다운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을 그저 나답게 살아갈 뿐!

놀이하듯 즐겁고 가볍게,

순수한 열정을 꽃피우되 집착없이,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난밤 꿈처럼,

혹은 설레는 여행처럼,

이것이 펼쳐내는 자유로운 삶의 여정을 그저 경험하고 누리고 구경해 주라.

이것이 바로 진리이니, 이 가까운 진리를 기꺼이 살아주라.

내가 이대로 부처이며, 이대로의 삶이 그대로 진리다.
......


YouTube에서 '[9.15 일요법회] 삶을 놀이처럼 즐기며 사는 나만의 비법, 피터지게 열심히만 살지는 마! 고민은 내맡기고 행복하게 즐겨!' 보기
https://youtu.be/GMgSqjh8d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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