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5mbUiCQxGI

 

유도명상 수면 명상

 

몸을 편안한 자세로 누운 채로 온 몸에 힘을 빼세요.

몸을 이완하고, 편안히 쉰다는 마음이면 됩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이대로 이렇게 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이대로 있으세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조작도 없이, 자연스럽게 있는 이대로 그저 있어 보십시오.

 

억지로 자야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잠이 오면 오는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그저 자연스러움에 몸을 맡깁니다.

물론 수면명상 중에 잠이 든다면 그대로 주무셔도 좋습니다.

다만,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아 주세요.

 

사실은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우리를 더욱 잠 못 들게 합니다.

이제 잠을 자야만 해라는 생각을 붙잡지 말고 내려놓아 주세요.

지금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실입니다.

삶의 놀라운 진실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지금 현실이 곧 진실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잠이 오지 않는다면, 지금은 잠이 오지 않는 그 진실과 함께 있어 줄 시간입니다.

그것이 곧 진리와 하나되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곧 참된 근원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자야만 해라는 것은 지금 있는 이대로의 현실과 싸우는 생각입니다.

지금이라는 현실과 싸우면 진리와 싸우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더 잠 안 오는 현실을 적으로 만들게 되지요.

잠이 안 오는 것은 싸워 이겨야 할 상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진실입니다.

 

아마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은 지금까지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을까?’, ‘잘 자야만 해’, ‘잘 자고 싶어

라는 생각이 현실로 벌어지기를 기대하고 추구해 왔을 것입니다.

 

바로 그 추구심이 나를 잠 못 들게 한 주범이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완전히 잠 안 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잠을 안 자 줄 때 그 때 오히려 잠은 옵니다.

다만 잠을 받아들이면 잠이 오겠지하는 생각은

교묘하게도 잠이 안 오기를 추구하는 또 다른 교묘한 술수입니다.

 

만약 잠이 안 온다면 그냥 이대로의 현실을 허용해 주세요.

있는 그대로의 잠 안 오는 나를 사랑해 주세요.

그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머릿속에서는 잠을 못 자면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길거라고

온갖 생각 속에서 문제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두 번째 화살이라고 하고, ‘망상 덩어리라고 부릅니다.

실제 잠 안 오는 현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 망상덩어리가 더 나를 괴롭힙니다.

 

잠 안 오면 벌어지게 될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잠이 와야 해 라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을 때,

당신은 문제와 싸우는 중입니다. 자기 생각과 싸우지요.

내 스스로 만든 내면의 문제와 싸우느라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잠이 안 오면 벌어지게 될 걱정들이 없다면 당신의 지금은 어떨까요?

잠이 와야 해라는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무엇일까요?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잠이 안 오는 이대로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평화입니다.

 

그냥 누워서 생각만 없이 편안히 이완한 채 깨어있는 것은

사실 잠을 자는 것 못지않은 영혼의 쉼을 선물해 줍니다.

잠들지 못하더라도 근심 걱정 생각 없이 그저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어 보세요.

명상과 이완, 생각 없는 쉼은 잠 보다 더 큰 휴식을 가져다 줍니다.

 

잠이 들지 않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지금의 진리임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이대로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그 생각만 없다면 나는 이대로 자유합니다.

 

이렇게 고요히 내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누워 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와선이라고 부릅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나는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깊은 와선에 들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몸을 관찰하고, 호흡을 관찰하고, 누워있는 이 현존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힘들게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과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잠만 오지 않는다면, 누워 있더라도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누워서 명상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명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우면 바로 잠이 들기 때문에 와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감사하게도 한 밤 중에 오랜 시간 누워 있어도 전혀 잠을 자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와선에 매우 적합한 사람입니다.

밤새 와선을 하거나, 혹은 와선 중에 얕은 잠에 빠지더라도 이렇게 몸과 마음을 이완한 채 밤을 지샌다면, 잠을 잔 것 못지않은 깊은 휴식과 개운함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자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편안하게 내려놓아 주세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보겠습니다.

혹시 몸 가운데 힘이 들어가 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힘을 빼세요.

 

잠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 말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스캔하듯 바라보며 온 몸에 힘을 빼 보겠습니다.

 

머리에 힘을 뺍니다.

얼굴 전체에 힘을 빼고, 눈코입이 거기에 있음을 느껴봅니다.

 

눈을 알아차려 봅니다. 눈에 힘을 빼고요.

코를 알아차려 봅니다. 입과 입 안의 느낌, 혀의 느낌을 알아차려 봅니다.

 

안면 얼굴 전체를 해석하거나 이름 붙이지 않고 관찰해 봅니다.

머리를 관찰합니다. 머리 뒤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머리를 관찰합니다.

머리와 배개가 접촉되는 부분의 느낌은 어떤지 있는 그대로 느껴봅니다.

 

목에 힘을 빼고, 어깨에 힘을 뺍니다.

뒷 목과 뒤쪽 어깨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를 관찰하고, 힘을 뺍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뒷목과 어깨가 긴장되고 묵직하게 뭉쳐집니다.

 

가슴에서부터 배로, 배에서 아랫배로 내려가며 천천히 관찰해 봅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갈 때 아랫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뒤쪽 어깨에서부터 등으로, 등에서 척추를 따라 엉덩이 부분까지 관찰합니다.

등과 엉덩이 부분이 요와 접촉되는 부분의 압력감을 느껴보고 힘을 뺍니다.

 

왼쪽 팔을 팔뚝에서 팔꿈치로, 다시 천천히 손목으로,

손과 손가락으로 옮겨가며 힘을 빼고 관찰합니다.

오른쪽 팔을 팔뚝에서 팔꿈치로, 다시 손목과 손, 손가락으로 옮겨가며 관찰합니다.

 

엉덩이가 방석과 맞닿은 부분의 느낌, 압력감, 온도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로 갑니다.

왼쪽 다리 허벅지를 관찰하고 천천히 무릎으로, 종아리로, 다시 발목과 발,

발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그 부분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봅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입니다.

오른 다리의 허벅지와 무릎, 종아리, 발목, , 발바닥, 발가락을 천천히 관찰합니다.

이제는 다시 온 몸 전체를 하나로 관찰합니다. 온 몸에 힘을 뺍니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있어 봅니다...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호흡입니다.

 

호흡을 애써 통제하려 하지 말고, 저절로 일어나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호흡이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놔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코끝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한 지점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바로 그 지점에 의식을 모아 바라봅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코끝을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잠시 그렇게 알아차리며 시간을 보내보겠습니다.

 

 

다시 온 몸에 힘을 빼세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 생각이고, ‘누워 있다는 것도 생각일 뿐입니다.

그 생각, 그 개념을 다 빼고 그저 있어보세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인 것처럼,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천진한 텅 빔으로 그저 있어보세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습니다.

지금 이 낯선 경험이 무엇인지를 이름 붙여 해석하지 마세요.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그저 있는 그대로 관찰해 봅니다.

사실 갓 태어난 이 몸의 감각을 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습니다.

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저 이 감각을 그저 느껴보세요.

누워있다는 이름도 빼고, 누워있는 이것을 라고 하는 것도 빼고 그저 이렇게 있기만 하십시오.

 

몸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머리 하나, 팔 두 개,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대한 생각, 기억, 이미지, 모양을 다 빼고 실제 경험만을 직접 살펴보세요.

 

갓난 아기는 과거가 없기에, 지금 일어나는 경험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참고하지 말고, 기억을 배제하고, 그저 지금 느껴지고 있는 감각을 그저 경험해 주십시오.

 

여기 이 경험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습니다.

누워있다는 형태는 과거의 기억에서 온 이미지이고, 모양일 뿐이지요.

실제의 경험만을 바라보면, ‘내가 누워있다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자각되고 감각될 뿐입니다.

모양은 없지만, 어떤 따끔거리거나, 간질거리거나, 움직이거나, 묵직하거나 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을 경험할 뿐입니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각도 기억도 없고,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모든 것이 난생 처음 만나는 것뿐입니다.

 

무엇이 알아차려지나요?

지금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코끝으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그러나 여기에 코끝이니 호흡이니 하는 이름도 뺍니다.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언가가 감지됩니다.

거기에 이름을 붙이지는 마세요. 그저 이러할 뿐입니다.

내가 코로 숨을 들이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이것이 저절로 알아차려질 뿐입니다.

지금 여기에 그저 있어보세요. 또 무엇이 알아차려지나요?

지금 이 순간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지도록 허용해 주어 보세요.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모든 것들이

저절로 알아차려지도록 허용한 채

잠시 이 텅 빈 알아차림의 장에서 있어 보겠습니다.

생각 없이 그저 이렇게 있을 때, 그것은 잠을 자는 것 보다 더 깊은 휴식입니다.

잠을 자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밤 새도록 이렇게 있어도 좋습니다.

이 고요한, 텅 빈, 깨어있는 알아차림의 장에 고요히 그저 있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엄청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매 순간 쉬지 않고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간다.

자칫 나태해지다가는 순식간에 나보다 더 쎄고 더 많이 알고 더 노력한 포식자에게 잡아먹힐까봐 늘 두렵다.

이런 마음은 늘 노심초사하고, 늘 불안해서 노력하고, 남을 의식하며, 지기 싫고, 이기기 위한 온갖 무기, 재능, 지식, 자격증, 커리어 등에 중독되게 만든다.

물론 노력은 하되, 이런 식의 경쟁과 두려움 같은 마음만 없다면 노력을 하기는 하면서도 마음은 훨씬 가벼울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이 세상은, 삶은,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괴롭힐 수 없다.

왜 그럴까?

이 세상, 삶, 타인 그것 전체가 바로 진정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둘로 나뉠 수 없는 불이법의 진실만이 실상이다.

내가 바로 삶인데, 삶과 싸워 이기려고 하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혼자서 적을 만들어 그 의식이 창조해 낸 적과 내 스스로 싸우다 지치는 격이다.

이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과 세상과 맞서 싸워 이겨기 위한 자원들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깨뜨려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내버려 둔 채 깨뜨리는 것이다.

삶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품고 안으며 함께 누려야 할 가족이고, 나 자신이다.

삶은 나를 깨뜨릴 수 없다.

세상은 나에게 상처줄 수 없다.

그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만 있다면...
.....

오늘 1월 4일(화) 오후 1:30 법상스님 줌법회 있습니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 조금 일찍 시작하고, 총 3편을 연이어 촬영하게 됩니다.

오늘 3회 줌법회와 다다음주 1회만 더촬영하면 'BTN 오늘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는 막을 내리고, 연이어 줌형식이 아닌 방청객 6명을 모시고 '반야심경 강의'로 찾아뵙게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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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nesty45 BlogIcon 정직 2022.01.31 14:53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2가지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이대로라는 현실'이고,

그에 맞서는 상대는 '지금 이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추구심입니다.

첫째는 실상이고 연기법이 드러난 진실입니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상대는 나의 추구심이며, 내 생각이고, 내가 원하는 것, 즉 내 생각망상입니다.

우리는 끝끝내 지금 이대로라는 현실은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현실이 이대로가 아닌 다르게 바뀌었으면 좋겠어'라는 자기 생각 속의 플랜을 세워놓고는 그것대로 안 된다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 속에서 만들어 놓은 추구심, 원하는 것들은 물론 될 수도 있지만,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내 인생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삶이란 무수히 많은 중중무진의 인연들이 얽히고 섥혀 연기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질 뿐입니다.

'연기즉무아'라는 말이 있는데요, 연기법의 세계란 곧 '내가 없다'라는 말의 다른 말입니다.

연기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에 '나'는 없습니다.

내가 잘나서 내 인생을 이만큼 만들어왔고,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이 우주 전체가 무한한 연기적인 중중무진의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조차, 사실은 이 무수한 연기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사실 여기에 '나'라는 것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몸과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인 오온일 뿐이지만, 그것은 오온개공이란 말처럼 허망한 것일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인생이 펼쳐져야 해'하는 나의 추구심이 분별망상인 이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자'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삶은 내가 원하는대로 펼쳐져 주지 않거든요.

그대신 '삶이 원하는대로',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연기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대로' 살게 되면 어떨까요?

완전히 '지금 이대로'라는 진리에 내맡긴 삶이지요.

여기에는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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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삶'은 둘이 아니다.

내가 바로 삶이고, 삶이 바로 나다.

보는 것만 나가 아니라 보이는 것 또한 나다.

보는 것은 보이는 것에 기대어 있고, 보이는 것은 보는 것에 기대어 연기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불이법!

둘이 아닌 삶의 진실을 잊으면서부터 괴로움, 두려움은 시작되었다.

내가 곧 삶이기에, 삶에서 등장하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릴 필요가 없다.

취사간택하고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갖고 싫은 것은 버리려는 마음 자체가, 그 대상과 나를 둘로 나누려는 분별심일 뿐이다.

나는 곧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이다.

주객은 둘이 아니다.

그러니 받아들이긴 뭘 받아들여?

그저 이대로, 저절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하나가 하나를 경험하고, 하나가 하나에 용납되고, 포섭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생각으로, 분별심으로 나와 세계를 둘로 나누고, 또 세계와 세계를 차별함으로써, 취사간택하는 습관이 있다보니, 바로 그 정신적인 분별의 습관이 원인이 되어 괴로움이라는 환상이 생겨난 것일 뿐이다.

우리는 내 바깥의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싸워 이기려 하거나, 도망칠 필요가 없다.

그 경계가 그대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몸이 내가 아니라, 삶 전체가 바로 나다.

하던 분별만 하지 말고, 그저 있어 보라.

물론 분별을 하되, 그 분별을 실체화하지 않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인연따라 자유롭게 쓰되,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모든 것은 받아들여진다.

받아들여진다는 말 자체도 이분법적인 말이다.

받아들이는 내가 있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는 것은 진정한 받아들임이 아니다.

그저 하나가 하나를 체험하며, 그 하나로 있을 뿐이다.

분별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그대로 받아들임이다.

본래대로 있는 것, 그것을 억지로 표현해서 받아들여라, 분별하지 말라, 방하착하라, 있는 그대로 보라 등의 다양한 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하던 것, 분별만을 하지 않으면 될 뿐.

그러면 나인 삶 자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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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gTRrIfUOCE


[사진:11.7 일요법회 설법한 내용 ]

내 인생은 이래야 돼, 저래야 돼.

아직도 부족해.

더 많이 벌어야 돼, 더 많이 가져야 돼.

내가 뜻하는 바대로 내 인생은 펼쳐져야 돼

하는 생각만 없으면,

지금 나에게 오는 것은, 그것이
가장 완전한 것으로써 옵니다.

지금 내가 아무리 집착하고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그게 지금 따나 가고 있다면 그건

완벽한 타이밍이 나에게서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걸 결코 잡을 수가 없어요.

그걸 허용해줘야 됩니다.

왜?

그건 저마다 시절 인연 따라
제가 알아서 왔다 알아서 가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래여거'
여여하게 오고 여여하게 가도록
내버려 둬야 된다는 거지요.

내 생각으로 그것들이 오고 갈 시간이나 양을 정하지 마세요.

오고 가는 것이 진리이니, 진리를 진리대로 내버려 두세요.

그럴 때, 비로소 삶과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벗어나 푹 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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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나에게 상처 준 사람도 좋고, 나를 미워한 사람, 배신한 사람도 좋습니다.

사실 그는 가해자, 괴롭힌 자라는 역할을 맡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나와 남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둘이 아닌 한 존재이며, 그들은 또 다른 나 자신입니다.

그를 미워할 때, 그 미워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기에,
그가 다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다치게 할 뿐입니다.

그가 나를 괴롭혔지만, 그것을 계속 떠올리며 괴로워하느라
우리 마음은 더 많이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 내가 나를 더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를 미워하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상처주는 것입니다.

그를 미워할 때, 내 안에 증오의 씨앗이 커갑니다.

그 증오와 미움은 나를 점점 더 시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를 용서하는 것은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를 용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그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되지 못한 죄의식과 증오, 미움은 트라우마가 되어
비슷한 파장의 괴로운 삶을 내 삶으로 자꾸 끌어오게 될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 미움과 증오가 없다면,
나의 세상에서도 미움과 증오가 사라져 갈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그와 내가 만든 상처를 끝낼 수 있습니다.

합장하고 한 구절씩 따라해 주세요.

‘당신이 밉지만, 이제 이 미운 마음을 놓아보냅니다.
증오와 원망을 내려놓습니다.

더 이상 미워하는 마음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을 의지해, 나를 괴롭힌 당신을 용서합니다.

나를 힘들게 한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도 나처럼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다만 지혜롭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그 어리석음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그 무지함에 연민을 보냅니다.

더 이상 당신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겠습니다.

미움의 마음을 떠나보냅니다.

또한 나를 괴롭게 한, 모든 이들을 용서합니다.

내 안에 미움과 증오를, 훌훌 털어버립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미움이 없습니다.

증오도 원망도 죄의식도, 모두 다 떠나보냅니다.

마음은 가볍고, 맑게 텅 비었습니다.’
....

오늘 10월 26일(화) 오후 4:30 법상스님 줌법회 있습니다.

줌법회에 얼굴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화면을 인형 등에 비추면서 동참하셔도 됩니다.

회의 ID: 768 025 0135
암호: btn3270

Zoom 회의 참가 링크
https://zoom.us/j/7680250135?pwd=dXZhK0xRWmtyRVlvYytsazN2M01tUT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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