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은 불확실성이고, 혼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어하고, 정리하고 싶어 하고,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 놓은 계획이 100%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알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혼란의 한 가운데에 그저 있어 주면 어떨까요?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치의 앞도, 1시간 뒤의 미래도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모를 뿐'이 진실입니다. 

그러면, 그저 모르면 됩니다. 

알려고 애쓸 것도 없고, 안다고 말하면서 그 생각에 고집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삶이라는 미지의 무언가에 겸손하게 하심하는 마음으로 내맡겨 보는 것이지요. 

'안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100%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안다는 생각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것 아닐까요? 

삶은 단순합니다. 

그저 모르면 됩니다. 

모르니, 그저 주어진 삶에 내맡기고 사는 것이지요. 

내가 잘났다고 여겨,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아는 오만함을 버리게 됩니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실수, 실패로 인해 훗날 훨씬 큰 무언가를 더 크게 성공하게 될 수도 있지요.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안다고 오만함을 부리기 보다는, 그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모름의 진리에 온전히 내맡겨 보세요. 

삶이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진리다워질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

자녀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느냐 하는 점입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아! 눈에 하트가 그려져' 

이렇게 느끼는 정도가 된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는 그 어떤 역경이나 괴로운 일들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큰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사랑하기만 하면 버릇없이 큰다고 말하곤 하시는데요, 잘못했을 때조차 무조건 잘했다고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늘 그 큰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게 되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무한한 마음이 커가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으면, 착한 행동을 하면,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그 때 가서 그 결과로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그냥 하염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향한 자비심과 사랑이 내면에 중심을 잡게 됩니다.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그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인해 저절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무한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Posted by 법상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우리는 '무슨 소리지?', '새소리인가?', '사람 목소리인가?' 하고 떠올립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곧장 그 말에 대해 '무슨 뜻이지?', '어떤 의도로 저 말을 했을까?' 하고 곧바로 생각으로 그 소리와 말을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리는 소리를 해석, 분별, 판단하기 이전에, 순수하게 들리는 소리 그 자체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들리는 소리 그 자체라는 생생한 진짜를 경험해 놓고는, 곧바로 그 소리를 해석하고 판단한 뒤에, 내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한 그 이미지, 그림자, 의식을 붙잡아서는 그 소리라고 여깁니다. 

이미 소리가 드러나고 사라졌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 그 소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는데도, 그 소리에 대한 내 머릿속 해석, 기억, 이미지, 그림자를 붙잡고서는 그 소리라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사과라는 말이나, 사과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기억은 진짜 생생한 '사과'가 아니듯이, 그렇게 소리가 일어나고 사라진 뒤에 남는 기억, 해석, 이미지, 그림자는 전혀 그 소리 자체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진짜라고 여겨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그 그림자, 이미지, 상, 분별심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내 단점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말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기억하고 붙잡아서, 내식대로 해석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욕했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정말 내가 그런 단점이 많은가 하면서 계속 그 단점에 마음이 얽매이게 되고, 화도 나고 속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지나간 그 말에 대해 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그림자, 상, 분별심, 해석을 붙잡아서 진짜라고 여기면서 내 스스로 얽매이고 걸려드는 것일 뿐입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로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두 번째 화살입니다.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것이지요. 

그 사람의 말은 이미 지나갔고, 진짜, 실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생멸법으로 이미 사라졌습니다. 

지나간 뒤에 남은 분별, 해석, 그림자, 상을 붙잡아서 스스로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인연따라 그것을 판단도 하고 해석도 하되, 그것은 왔다가 가버리는 생멸법이어서 실재가 아님을 알아 거기에 속지 않고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고,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입니다.

진짜만 상대하세요. 사실, 실재만 보세요. 이미 지나간 쓰레기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Posted by 법상

 

 

사람과의 만남도, 일과의 만남도

소유물과의 만남도, 깨달음과의 만남도,

유형 무형의 일체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만나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

다만 아직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뿐

만나야 할 일도

만나야 할 깨달음도

인연이 성숙되면 만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성공은 오지 않고 실패만 자꾸 찾아온다면,

그렇더라도 아직 좌절하지는 말라.

아직 시절인연이 깃들지 않은 것일 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꾸준히 오르더라도

한동안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당신의 시절인연을 만날 것이다.

 

이렇듯 시절인연은 당장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안으로 안으로 전체적인 인연의 질서에 의해 여무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바로 그 때가 저절로 내 앞에 드러난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시절 인연이 되어 만남을 이룰 때

그 때 더 성숙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다만 자신을 가꾸어야 할 때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절인연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야 할 때

홀연히

문득

저절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그것의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진 눈부신 순간으로 돌아와

지금 여기를 가꾸는 것 뿐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바로 지금 이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과의 인연을 가꾸는 사람에게

비로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깃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우주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과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 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Posted by 법상

* [독경 명상법] 천수경 및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면서, 뜻은 신경쓰지 마시고, 그 독송하는 소리를 아무런 생각, 해석, 판단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관찰해 보세요.
- 경전을 독경할 때는 무릎을 꿇거나 가부좌를 하거나 장괘합장[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을 하시고, 경전을 눈높이까지 올려 들으시고 웅성 웅성, 웅얼 웅얼 거리며 읽지 마시고 또박 또박 독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박 또박 독경하시면서 내 독경 소리를 내 귀로 온전히 집중하여 들으시면서 독경 중에 일어나는 온갖 마음들을 잘 관(觀)하는 것이지요.
- 독송하면서 경전의 내용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구업진언…” 하면서 ‘이 소리를 이렇게 뱉어 내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소리가 나오는 출처가 어디냐?’, ‘어디서 이 소리가 나오고, 어디서 이 소리를 똑똑히 듣고 있느냐?’, ‘말 하는 놈이 누구고, 듣는 놈이 누구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죠. 관(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염불하는 놈이 누구냐?’, ‘경전 독송하는 놈이 누구냐?’ 하고 화두처럼 들고 독송을 하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선과 염불과 위빠사나와 기도와 수행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그것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독경하면서 독경하는 놈이 누구인가 하면 그것이 간화선이고, 화두가 되며, 선이 되고, 독경하는 놈이 누구인지를 머리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모를 뿐의 상태에서 그저 있는 그대로 분별없이 보기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위빠사나이며 관수행이고, 명상입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머리로 분별하거나 헤아리지 않는 것입니다. 헤아리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은 채로 ‘독경하는 자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저 궁금한 의문을 품은 채, 꽉 막히게 됩니다. 의식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아무런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분별의 관수행입니다. 위빠사나, 관이라는 것은 곧 분별하지 않고 보라는 것이거든요. 분별하지 않고 꽉 막힌 채 그저 볼 뿐, 더 이상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집니다. 손발이 꽉 묶여버리죠. 그것이 바로 은산철벽이고, 화두를 드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선의 공부, 마음공부입니다.
- 이것이 모든 기도 수행법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꼭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독경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진언, 다라니, 염불, 절, 명상, 선에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천 수 경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 도로 지미 사바하』
개경게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개법장진언 『옴 아라남 아라다』(3번)

천수천안관자재보살 광대원만무애 대비심대다라니 계청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진실어중선밀어 무위심내기비심
속령만족제희구 영사멸제제죄업
천룡중성동자호 백천삼매돈훈수
수지신시광명당 수지심시신통장
세척진로원제해 초증보리방편문
아금칭송서귀의 소원종심실원만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화탕 화탕자소멸
아약향지옥 지옥자고갈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나무 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 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 천수보살마하살 나무 여의륜보살마하살 나무 대륜보살마하살 나무 관자재보살마하살 나무 정취보살마하살 나무 만월보살마하살 나무 수월보살마하살 나무 군다리보살마하살 나무 십일면보살마하살 나무 제대보살마하살
나무 본사아미타불(3번)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미연제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라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라나야 마낙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네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니사시체다 가릿나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이바 사나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3번)

일쇄동방결도량 이쇄남방득청량
삼쇄서방구정토 사쇄북방영안강
도량청정무하예 삼보천룡강차지
아금지송묘진언 원사자비밀가호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나무참제업장보승장불
보광왕화렴조불
일체향화자재력왕불
백억항하사결정불
진위덕불
금강견강소복괴산불
보광월전묘음존왕불
환희장마니보적불
무진향승왕불
사자월불
환희장엄주왕불
제보당마니승광불

살생중죄금일참회 투도중죄금일참회
사음중죄금일참회 망어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 탐애중죄금일참회
진애중죄금일참회 치암중죄금일참회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준제공덕취 적정심상송 일체제대난 무능침시인
천상급인간 수복여불등 우차여의주 정획무등등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3번)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남』(3번)
호신진언(護身眞言) 『옴 치림』(3번)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메 훔』(3번)

준제진언(准提眞言)
나무사다남 삼먁 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3)

아금지송대준제 즉발보리광대원
원아정혜속원명 원아공덕개성취
원아승복변장엄 원공중생성불도

여래십대발원문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원아근수계정혜
원아항수제불학 원아불퇴보리심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
원아분신변진찰 원아광도제중생

발사홍서원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자성중생서원도 자성번뇌서원단
자성법문서원학 자성불도서원성

원이 발원이 귀명례삼보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3번)

Posted by 법상


[공지사항]
■ 5.6(월) 대원정사 불교아카데미 대체공휴일로 휴강합니다 13일 아카데미는 그대로 합니다!
■ 5.5(일)~12(일) 10:30 금련사 부처님오신날 8일기도
■ 5.12 10:30 금련사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5.12 19:00 제등행렬
.....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요? 하는 질문에, '어떻게'라고 하는 특정한 방법을 설해주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방편으로, 내려놓아라, 받아들여라, 집착을 버려라, 있는 그대로 지켜봐라, 부처님께 다 맡겨라 등 다양한 방법을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 같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애써서 말로 표현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지요.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억지로 집착을 버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으며, 관찰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사실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 이대로, 경험되어지는 그대로, 살아지고 있는 이대로, 작용되는 이대로, 그대로 내버려두고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도록 그저 두면 될 뿐이지요.

그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려던 모든 조작을 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가깝지요.

경험되는 지금 이대로가 곧 유일한 진실입니다.

현실이 곧 진실입니다.

거기에 나의 해석을 가하거나, 붙잡으려 하거나, 밀쳐내려 하는 등의 그 어떤 의도나 조작도 가하지 않은 채,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저 아무런 걸림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세요.

그냥 모든 것이 지금 있는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해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취사간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는 것입니다.

경험되어지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보세요.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지요.

이 아무 것도 아닌 실천 아닌 실천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것은 변화라고도 할 수 없는, 본래 있던 것을 있도록 해 주는,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게 해주는 놀라운 연금술입니다.
.....

YouTube에서 '금강경 11강(8분 의법출생분) - 이미 무한 복덕의 존재, 집착없이 사는 즐거움' 보기
https://youtu.be/lC77wYAe3CQ
Posted by 법상

 

깨달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금방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이든 바라는 것은 쉽게 해 낼 수 있는 힘과 신통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비로소 진짜 도인일 것이라고 여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랄 것도 없지만, 깨달은 이는 그저 지금 이대로 살 뿐이다.

무언가를 더 바라지도 않고, 추구하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이길 바라니, 그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진 채로, 완료형으로 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진짜 진실을 얻은 자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생각 속의 일이 아닌가?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이길 원하는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진실이다. 지금 이대로의 이것이 전부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과 당신의 삶이 그대로 진실이다.

진실을 살라.

.....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도인 같지 않고, 그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실망하며 말한다.

'저 사람이 어떻게 깨달은 사람이야', '저런 깨달음이라면 나는 안 얻어도 되겠다' 라고 하며, 깨달음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깨달음에 대한 오해다.

그의 내면은 깨닫기 이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가속패달을 밟던 차량도 패달에서 발을 떼었다고 해서 곧바로 멈춰서지는 않는다.

속도는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나 가속패달 위에 발을 얹어 놓고 계속해서 밟던 삶과 패달에서 발을 뗀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자내증(自內證)이라고 하여, 깨달음은 스스로의 내부에서 확인되는 것일 뿐, 외부에서 보여지는 것으로는 알 수 없음을 설하고 있다.

신통력과 신통자재함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깨달음은 완전히 물건너 가게 될 것이다.

Posted by 법상

[부산 기장의 한 카페]

내 바깥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나를 괴롭힐 수는 없다.

도인은 고통 중에서 '통'은 있으되, '고'는 없다고 하듯이, 외부에서 나에게 통증을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고를 주지는 않는다.

그럼데도 우리는 외부경계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바깥세계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것만 같다.

어떤 사람이 '일도 못하는 무능한 놈'이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사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소리가 일어났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분별 없는 텅빈 공의 자리, 진리의 자리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개념을 입히고, 얽매이고, 화를 내고, 온갖 생각을 가져다 붙임으로써 그깟 '소리' 하나에 걸려 괴로워한다.

'일도 못하는 무능한 놈'이라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나를 휘두를 수 있겠는가?

아이가 성적이 떨어져서 괴롭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적이 나를 괴롭힐 수 있다고? 과연 그럴까?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고 연연해 하는 내 마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 그 성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성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면, 성적이 나쁜 모든 아이와 그 부모는 다 괴로워야 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 괴롭다거나,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괴롭다거나, 몸이 아파 괴롭다거나 등등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사실은 이와 같다.

그 상황, 그 조건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힘을 실어 줌으로써 집착하는' 내 마음, 내 인식이 나를 괴롭힐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언제나 고요해질 수 있다.


Posted by 법상

공지사항 몇 가지 /
법우님이 보내주신 선암사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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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일에 묶여 괴로워할 때,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거짓으로 생각이 만들어낸 환영의 가상세계 속에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살지 않고, 생생한 진짜의 삶을 살면 됩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들으며, 느끼고 아는 '이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생각해서 아는 것, 소리를 듣자마자 헤아려서 아는 것은 분별이고 의식이며 알음알이이고, 이미지, 상일 뿐입니다. 

분별하기 이전에 보는 성품, 소리를 해석하기 이전에 듣는 성품, 그것은 전혀 대상에 오염되지 않고 언제나 매 순간 생생하게 작용합니다.

바로 눈앞의 당처인 바로 이것만이 참된 진실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해탈하게 해 주는 나침반입니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열쇄입니다.

매 순간 이 눈앞의 당처로 돌아오세요.

생각에 끌려갈 때, 곧바로 알아차린 뒤에, 그것은 허망한 생각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면, 곧바로 다시금 그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자리, 이 당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생각, 개념, 괴로움, 미움, 화 등 그 모든 감정적인 동요와 고통들이 '지금 이대로'라는 이 자리에서는 용광로처럼 녹아내립니다.

매 순간,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허상이고 가짜인 내용물과 모양, 이미지를 따라가지 말고, 목전에 생생한 바로 이 아는 성품, 보는 성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것이고, 이대로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지요.

이것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금강경의 말씀입니다.

상이 있는 바 모든 것은 허망하니 만약 상이 상이 아닌 줄 바로 보면 곧장 여래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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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매월 첫째주 수목금요일에 진행되는 참선법회는 내부 토의에 따라, 기존에 다라니기도를 원하는 분들의 요청과 수요일 불교아카데미 강의 등으로 인해 수요일은 기존대로 다라니기도를 하고 목금요일만 참선법회를 할 예정이오니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주 수요일 20:30 다라니기도
첫주 목,금요일 20:30 참선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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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화)~29(금) 주지스님 군승안거 참석으로 인해 3.27(수) 부산 금련사 불교아카데미 금강경 강의는 휴강합니다! 25일(월) 서울 대원정사 반야심경 강의는 똑같이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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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련사 삼사순례 안내
4월 9일(화) 06:00 출발
안동 유하사, 봉화 축서사, 영주 부석사
4만원, 051-753-0006
Posted by 법상


어제 어떤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기분 나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계속 기분이 나쁘고, 계속 생각나고, 생각만 하면 화가 불쑥 올라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죠.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어제 내게 화를 낸 '그 사람'인가요? 아니면, 어제 그 욕설을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는 내 의식일까요?

그 생각 때문에 계속 불쑥 불쑥 화가 올라오다가도, 다른 손님이 찾아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미래를 계획하거나, 일을 하거나, 다른 대상에 마음이 쏠려 있을 때는 그 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낸 것 때문에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이 확실하다면, 언제나 계속 나는 화는 상태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환영이고, 허망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내가 그것을 다시 떠올려 생각할 때만 올라오는 거짓된 마음일 뿐입니다. 진짜가 아니에요.

내가 떠올릴 때만 있는 것이라면, 문제의 핵심은, '내가 떠올리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끄집어내고 생각하고 화를 덮어씌우면서 계속 떠올리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즉, 문제는 내 바깥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 생각이 환상인 줄 알고, 그것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허망한 줄 알아서, 진실한 것이 아님을 자각할 때, 그것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내가 힘을 실어 주기 전에 그 생각은 저홀로 그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합니다.

사실 내 바깥에는 나를 괴롭히거나, 휘두를만한 힘을 지닌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지요.

문제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나 자신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세요.

바깥 경계, 사람들의 말, 평가, 이런 저런 대상에 매 순간 휘둘리며 살기 보다는, 언제나 이 당처에서 그 무엇도 붙잡지 않고, 머물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십시오.

https://youtu.be/xH-5CrUbTf0
불교아카데미 대원정사 강의 중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