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가족이 아플 때, 문제가 생겨 힘들 때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 순간 그대로 완전한 것일까요?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마음공부를 하고 삶을 받아들이면 객관적인 상황도 조금은 나아질까요? 


[답변]

현실의 상황은 나이질지 나아지지 않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수행의 목적은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지, 현실의 상황을 바꾸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인연 따라 펼쳐질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펼쳐지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나의 해석, 생각, 판단입니다.

가족에게 병이 있다면, 그 현실이 곧 진실입니다.

지금 가족에게 병이 있습니다.

그럴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병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가을이 오면 반드시 낙엽은 떨어지거든요. 거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입니다.

그것이 곧 진실입니다.

현재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안 돼,

병이 있으면 안 돼,

내가 원하는 일들이 벌어져야 해,

이런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하는 나의 바람, 생각, 추구심 그것이 현재를 문제로 만들 뿐입니다.

가족의 병, 그것을 받아들여 주세요.

그것을 함께 살아주세요.

그것이 현재의 진실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진실을 살아주는 일입니다.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허용해주고, 사랑해준다면,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삶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진리로써 내게 왔습니다.

현실이 진실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병이 온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치료를 할 필요도 없고, 아프다가 죽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이 아닌 내 마음의 받아들임을 말 하는 것일 뿐, 현실에서는 병원도 가고 치료도 하고 좋다는 노력은 다 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왜 이런 병이 내게만 온거야' 라고 화를 내면서 병원을 다니는 것 보다,

지금 병이 온 상황을 받아들이고 허용하고 사랑하면서 병원도 다니고 치료한다면 후자가 훨신 치유도 빠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자연치유'라는 책에서도 똑같이 치료해도 마음의 자세가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훨신 빠른 치유가 일어나더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실, 병, 늙음, 죽음 그 자체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합니다.

병, 늙음,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두렵고 암담할 것임을 암시하는 허망한 생각일 뿐입니다.

사실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의 분별일 뿐이지요.

젊음이 아름답듯 늙음도 아름답습니다.

봄이 아름답듯 가을도 아름답습니다.

건강이 아름답듯 질병도 아름답습니다.

살아 있음이 진리이듯 죽음도 있는 그대로의 진리입니다.

낮은 밤이 있어 낮이고, 젊음은 늙음이 있어 젊음입니다.

어느 한쪽이 없다면 다른 한 쪽도 없습니다.

그 둘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의 진실입니다.

건강과 질병은 둘이 아닙니다.

살아있음과 죽음은 좋고 싫은 무엇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일어나는 그대로를 분별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는 둘이 아닌 진리와 하나가 됩니다.

지금 이대로이길 허용할 때,

벌어지는 삶이라는 현실을 수용할 때,

온전히 지금 이 순간과 하나되어 살 때,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고집 부리며 삶과 다투지 않을 때,

그 때 당신은 진리의 품 속에서 진리로 사는 존귀한 신성의 하느님으로, 장엄한 부처로 살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것도 말일 뿐, 그 때 그럴 내가 사라지고, 오직 있는 이대로의 아름다움만이 온전하게 펼쳐지는 불국토요 천국이 바로 여기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그림과 글카드]




[질문(요약)]

스님, 저는 지난 10년 동안 층간소음으로 인한 괴로움이 극에 달하여,
심해질 때는 공황장애도 생기고, 홧병으로 죽을 것 같고,
살인충동, 자살충동까지 생겨서
결국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그나마 요즘 유튜브를 통해 스님 설법을 듣고 많이 좋아졌지만,
많은 것들이 편안해진 지금도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화를 내게 되구요..
윗층에 살고 있는 평범하고 화목한 한 가정을 인정해주고 그들답게 존재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제게 찾아온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고 알아차리기...위해
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요.

[답변]

법우님께서
이렇게 말씀 해 주셨어요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라고 말이지요.
제 유튜브를 자주 보셨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 허용해 주라,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거에요.
윗층에서 소리가 날 때,
그동안은
그 소리가 마치 나에게 적과도 같아요.
그 소리는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고,
그 소리를 내 마음 속에서는 미워하고, 밀쳐내려하고, 화내고, 거부하고, 싫어해 왔습니다.
제가 한 말들 중에
'과도하게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지속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과도하게 거부하려고 애쓰고 싸우고 밀쳐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거부하려는 마음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 대상을 더욱 더 커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기울이는, 관심을 기울이는,
내가 마음을 많이 쓰는 대상은
더욱 더 내 안에서 실체적인 대상으로 강력한 실체감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 내가 만든 실체감이 하나의 공룡처럼 기형적으로 커져서
도리어 나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즉, 사실은 내가 만든 그 층간소음에 대한 공포감과 적대감,
밀쳐내려는 거부감이
도리어 그 층간소음을
내 마음 안에서 어마어마한
나를 공격하는 실체적인 공룡으로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층간소음이
나 자신에게는 엄청난
심지어 정신병원까지 다녀야 할 정도로 실체성을 지닌
거대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거부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그것을 더욱 끌어당긴 결과를 가져온 것이지요.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거부하면 할수록,
그 거부하려는 에너지가 오히려 그 대상에게 힘을 실어주고,
실체성을 강화시켜 주어서,
더욱더 거부하는 대상을 내 삶으로 끌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층간소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지금까지 법우님은 층간소음이 들릴 때마다
그것과 마음으로 싸우고, 화내고, 밀쳐내고, 거부해 왔는데요,
이제부터는
그러한 대응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거부'하던 것을
'수용'해 주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들릴 때,
화내던 것을 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피해 달아나려던 생각 대신에
그 소리와 함께 있어주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생겨날 때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도리어 땅을 딛고 일어서라는 말도 있지요.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소리가 날 때,
심장이 뛰고 마음이 불안하고 흐트러집니다.
바로 그 때
그 소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그 소리를 허용해 주세요.
그 소리를 피해 도망치려 하지말고, 직면해 주세요.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세요.
심장이 뛰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허용해 주세요.
그 심장이 뛸 때 그 뛰는 마음과 함께 있어 주세요.
심장에게 마음껏 뛰라고 얘기하세요.
불안해지는 마음에게 마음껏 불안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세요.
불안해지고 싶은 만큼 마음껏 불안해지기를 선택해 주세요.
숨이 막히고 괴로울 때
바로 그 숨막히는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세요.
정면으로 그 숨막히는 순간을 마주하세요.
번뇌즉보리라는 말이 있듯이,
번뇌, 망상, 두려움, 공포, 화가 있는 그곳에 동시에 깨달음도 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깨달음도 거부됩니다.
이것은 너무 별것 아닌 것 같은 처방처럼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똑같이 대응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108도 다른 방식의 대응입니다.
그 소리를 거부하다가, 밀쳐내다가,
이제 허락해주고, 허용해주고,
있는 그대로 놔둬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며,
그것이 곧 그 소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힘 내십시오.







 

 

 

 

언젠가 한 고등학생이 이런 고민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나쁘고 몸도 안 좋고, 돈 벌기도 힘들고,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을 정도지만 제 학업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빚을 내어 개인과외를 받게 하시고, 무조건 제가 서울의 좋은 대학 가는 것 외에는 살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심각한 경제난에 어머님의 심한 교육열로 저는 죽을 지경이고 자신도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엄마도 저도 죽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리고 이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어머님의 성적에 대한 무게감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녀 입장에서는 그 무게감과 중요도를 대폭 완화시켜서 가볍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울면서 나쁜 성적에 대해 원망 할 때, ‘알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앞으로 잘 하겠노라고 말씀은 드리되, 마음에서 그 말씀의 비중을 너무 크게 키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님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머님의 그 집착을 내가 고스란히 다 받아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머님과 나 자신을 너무 동일시하여, 어머님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도 하고, 어머님의 마음이 또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 또한 학교생활을 계속 해 나가면서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괴로움이 남들보다 더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심각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으로써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 그 괴로움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바꿀 수는 있습니다.


어머님의 괴로움을 아들이 똑같이 짊어지는 것이 어머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그 무게감에서 조금 자유로와졌을 때, 사실은 성적도 더 잘 나올 수 있고, 나아가 어머님의 괴로움도 가벼워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아들의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도 어머님께서 계속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 또한 괴롭겠지요. 그것이 바로 어머님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만약에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래서 어머님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더라도, 사실 그 결과는 아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님께서 감당해야 할 부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으로 감당하도록 해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법계의 업보의 이치이며, 균형의 법칙입니다. 그 업의 불균형은 어머님 스스로 바로잡아야지, 아들이라고 해도 대신 균형 잡아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삶에 너무 깊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심지어 아들, 딸,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너무 깊이 개입하거나, 너무 심각하게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타인의 괴로움을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내 괴로움으로 붙잡아 묶어두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언뜻 보면 매정한 이야기 같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참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지혜의 길입니다.


참된 스승은 누군가가 괴로운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왔을 때, 공감해주고, 도움을 줄 지언정,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은 실체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을 알기에 그 오고 감을 허용해 줍니다.

 

 

 

불교방송 문자서비스

법상스님과의 공감댓글에서 오고 간 질문인데요,

많은 분들의 궁금해 하고

함께 공감하는 질문일 듯 하여 함께 공유합니다.

 

[질문]

 

존경하는 법상스님께....
고2 아들녀석의 기말고사 성적을 보니 수학은 3등급이고 나머지 과목은 6,7,8등급으로 중간이하입니다..주요과목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는데 학원이나 과외숙제도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좀 있고, 수행점수도 보니 성실하게 임한것 같지 않아 낮습니다..어떻게 하면 성적을 향상시킬수있는지 대화를 해보자고 해도 아빠의 그저그런 잔소리라고 싫어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잘 못가르친다는 둥 남 탓을 하기도 합니다..이번기말고사때도 3일정도 시험 보는데 첫날 시험 끝나고 pc방에 들렀다 왔습니다. 공부도 여러권을 여러번 보는게 좋다하면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고, 시험을 잘보기위해 성실하게 시간계획을 잘 세워서 노력하진 앟는거 같습니다..수능과목이 아닌 과목은 왜 공부해야하는지 의문이고, 성적을 내기위한 열성도 없습니다..본인은 다른 아이들보다 잘해야 겠다는 경쟁심이 없는것 같다고하고..시험기간에도 11시면자고 더 노력하는 모습은 없습니다..고1 때는 시험전에 공부할때도 문제집을 풀고 답을 맞추어보지 않았구요..지금도 학교시험보고나면 답을 맞추어보지 않습니다..초등때는 수학에 재능이 있어서 각종경시대회에 다니기도 했었고 중학때는 교육청의 영재원에 다니긴 했었는데 공부에 열심이진 않았습니다..전 엄마가 어려서부터 너무 공부에 관여해서 자기주도학습 습관이 들지 않은 것도 같구요...아이가 머리는 좋고 책도 많이 읽었었는데 학교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거 같고 공부열정도 없는거 같고..어제 성적표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전 시골에서 어렵게자라 혼자 돈벌고 해서 대학졸업하고 이후 직장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았는데 안타깝습니다..전 쉰살입니다..이런일도 인연따라 생긴것이라 인정하고 부모의 훈육이 잘못되었었나 자책이 됩니다...모두 제 욕심이고 집착이라는 것을 알지만 좋은 말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참고로 사내아이며 아이가 학교는 잘다니고 심성도 고운데 어려서부터 너무 공부공부해서 무기력이나 자신감이 떨어진거 같기도하구요.부모의 막연한 큰 기대에 부담감을 갖고있는것도 같구요..아이와 저희 부부가 어떻게 이해하고 노력해야 할런지요..감사드립니다..

 

[답변]

 

아들이 시험공부를 통 안 하니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답답하고 화도 나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잔소리를 안 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을 듣는 아들은 계속되는 잔소리에 더욱 더 마음을 닫게 될 것이기에

더욱 더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그냥 아버님 마음을 보듬어 드리고,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위로해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런 말은 단편적으로 편안해지기는 할 뿐 근원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듣기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드릴 수 있는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아이 스스로 공부에 대한 취미도 없고, 관심도 없어진 마당에,

본인은 하기 싫은데 부모님이 계속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고 얘기를 하면

잔소리로 밖에 안 들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님의 말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아들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말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말은 아들에게 와 닿지를 않게 되고,

부모를 향한 마음이 닫히게 될 것입니다.

즉, 공부하라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반발심과 하기 싫은 마음이 더 많이 연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래도 시켜야겠다 싶어서 강제로,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여서 공부를 시키게 된다면,

그건 더욱 더 아이를 망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다가 심지어 아이가 집을 나가거나, 정신이상까지 오는 경우도 보았거든요.

어쩌면, 법우님 말씀하신 것처럼

어릴적부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고, 칭찬해주기 보다는,

일정부분 부모님의 욕심으로 인해,

혹은 이 세상이 그래야만 잘 살것 같고, 그것이 아이를 원하는 것 같다고 느낀 생각 때문에

아이 마음 속에서 조금씩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거부감을 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보면, 이 일은 아이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사실 탐진치 삼독 가운데 치심, 즉 어리석은 부모의 잘못이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법우님이 잘못했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다 보니 그것이 최선인 줄 알고 그러셨겠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는 거부감이 쌓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답은 하나 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선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받아주고, 그 마음과 하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집착이 없어야 하고, 성적에 대한 바람도 없어야 합니다.

그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참회하고, 미안하다고 얘기해 주고,

공부 잘 안해도 좋다고 진심으로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도 진실로 공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밀어붙인 결과,

결국 유망한 대학을 갔다가 자살하는 아이들이나,

수능 시험보고 자살하는 아이들처럼 극단적일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우리 아이는 아직 이런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부를 못하더라도,

행복을 연습할 줄 알고, 하루 하루 스스로 행복할 줄 알고,

부모님과 행복하게 즐기며 대화할 줄 알고,

서로 마음 터놓고 지낼 줄 아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래야지만, 아이가 마음을 돌리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성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지만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려면 울화통이 치솟더라도,

게임하고 있고, 놀고 있는 아이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노력해 보세요.

함께 게임도 즐겨주고, 성적 나쁘게 나와도 우리는 괜찮다고 말해 주세요.

 

우리는 네가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해 주세요.

그리고 공부 잘 한다고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니,

네가 정말 행복하게, 즐겁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가라고 이야기를 해 주세요.

 

스스로에게 맡겨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의식이 생기고,

내 삶을 부모님에게 의지하기 보다,

그래서 시켜서 하기 보다,

내 스스로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로 크게 됩니다.

 

그렇게 믿고 맡겨 주어야 합니다.

자꾸만 이래라 저래라 하면 고스란히 마이너스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이 모든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내 스스로, 부모가 만들어낸 문제이지, 아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에요.

아이는 완전하게 아름답게 부모가 시키는대로 잘 커가고 있는 중입니다.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도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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