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요약)]

스님, 저는 지난 10년 동안 층간소음으로 인한 괴로움이 극에 달하여,
심해질 때는 공황장애도 생기고, 홧병으로 죽을 것 같고,
살인충동, 자살충동까지 생겨서
결국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그나마 요즘 유튜브를 통해 스님 설법을 듣고 많이 좋아졌지만,
많은 것들이 편안해진 지금도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화를 내게 되구요..
윗층에 살고 있는 평범하고 화목한 한 가정을 인정해주고 그들답게 존재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기 위해,
제게 찾아온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주고 알아차리기...위해
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요.

[답변]

법우님께서
이렇게 말씀 해 주셨어요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라고 말이지요.
제 유튜브를 자주 보셨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라, 허용해 주라,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거에요.
윗층에서 소리가 날 때,
그동안은
그 소리가 마치 나에게 적과도 같아요.
그 소리는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고,
그 소리를 내 마음 속에서는 미워하고, 밀쳐내려하고, 화내고, 거부하고, 싫어해 왔습니다.
제가 한 말들 중에
'과도하게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지속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과도하게 거부하려고 애쓰고 싸우고 밀쳐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거부하려는 마음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 대상을 더욱 더 커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기울이는, 관심을 기울이는,
내가 마음을 많이 쓰는 대상은
더욱 더 내 안에서 실체적인 대상으로 강력한 실체감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 내가 만든 실체감이 하나의 공룡처럼 기형적으로 커져서
도리어 나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즉, 사실은 내가 만든 그 층간소음에 대한 공포감과 적대감,
밀쳐내려는 거부감이
도리어 그 층간소음을
내 마음 안에서 어마어마한
나를 공격하는 실체적인 공룡으로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층간소음이
나 자신에게는 엄청난
심지어 정신병원까지 다녀야 할 정도로 실체성을 지닌
거대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거부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그것을 더욱 끌어당긴 결과를 가져온 것이지요.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거부하면 할수록,
그 거부하려는 에너지가 오히려 그 대상에게 힘을 실어주고,
실체성을 강화시켜 주어서,
더욱더 거부하는 대상을 내 삶으로 끌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층간소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지금까지 법우님은 층간소음이 들릴 때마다
그것과 마음으로 싸우고, 화내고, 밀쳐내고, 거부해 왔는데요,
이제부터는
그러한 대응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거부'하던 것을
'수용'해 주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들릴 때,
화내던 것을 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피해 달아나려던 생각 대신에
그 소리와 함께 있어주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통이 생겨날 때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도리어 땅을 딛고 일어서라는 말도 있지요.
"소리가 나면 일단 심장이 겪하게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평생 저를 쫓아다닐 거 같다는 망상이 피어오르고 숨이 막혀 괴롭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소리가 날 때,
심장이 뛰고 마음이 불안하고 흐트러집니다.
바로 그 때
그 소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그 소리를 허용해 주세요.
그 소리를 피해 도망치려 하지말고, 직면해 주세요.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세요.
심장이 뛰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허용해 주세요.
그 심장이 뛸 때 그 뛰는 마음과 함께 있어 주세요.
심장에게 마음껏 뛰라고 얘기하세요.
불안해지는 마음에게 마음껏 불안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세요.
불안해지고 싶은 만큼 마음껏 불안해지기를 선택해 주세요.
숨이 막히고 괴로울 때
바로 그 숨막히는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세요.
정면으로 그 숨막히는 순간을 마주하세요.
번뇌즉보리라는 말이 있듯이,
번뇌, 망상, 두려움, 공포, 화가 있는 그곳에 동시에 깨달음도 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깨달음도 거부됩니다.
이것은 너무 별것 아닌 것 같은 처방처럼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똑같이 대응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108도 다른 방식의 대응입니다.
그 소리를 거부하다가, 밀쳐내다가,
이제 허락해주고, 허용해주고,
있는 그대로 놔둬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며,
그것이 곧 그 소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힘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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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빙의를 없애려고 온갖 곳을 다 다녀봐도 안돼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공포심 #빙의 #치유 #즉문즉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유튜브 채널에서 '커뮤니티'로 가시면, 매일 법상스님의 좋은글과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구독하기' 혹은 '구독중' 옆의 종모양을 클릭하여 알림 신청을 해두시면 커뮤니티 새 글과, 새로운 영상이 올라올 때 알림으로 빨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동영상을 보시고,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해당 영상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노출되기 때문에, 자연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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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고등학생이 이런 고민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나쁘고 몸도 안 좋고, 돈 벌기도 힘들고,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을 정도지만 제 학업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빚을 내어 개인과외를 받게 하시고, 무조건 제가 서울의 좋은 대학 가는 것 외에는 살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심각한 경제난에 어머님의 심한 교육열로 저는 죽을 지경이고 자신도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엄마도 저도 죽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리고 이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어머님의 성적에 대한 무게감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녀 입장에서는 그 무게감과 중요도를 대폭 완화시켜서 가볍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울면서 나쁜 성적에 대해 원망 할 때, ‘알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앞으로 잘 하겠노라고 말씀은 드리되, 마음에서 그 말씀의 비중을 너무 크게 키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님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머님의 그 집착을 내가 고스란히 다 받아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머님과 나 자신을 너무 동일시하여, 어머님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도 하고, 어머님의 마음이 또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 또한 학교생활을 계속 해 나가면서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괴로움이 남들보다 더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심각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으로써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 그 괴로움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바꿀 수는 있습니다.


어머님의 괴로움을 아들이 똑같이 짊어지는 것이 어머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그 무게감에서 조금 자유로와졌을 때, 사실은 성적도 더 잘 나올 수 있고, 나아가 어머님의 괴로움도 가벼워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아들의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도 어머님께서 계속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 또한 괴롭겠지요. 그것이 바로 어머님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만약에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래서 어머님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더라도, 사실 그 결과는 아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님께서 감당해야 할 부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으로 감당하도록 해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법계의 업보의 이치이며, 균형의 법칙입니다. 그 업의 불균형은 어머님 스스로 바로잡아야지, 아들이라고 해도 대신 균형 잡아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삶에 너무 깊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심지어 아들, 딸,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너무 깊이 개입하거나, 너무 심각하게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타인의 괴로움을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내 괴로움으로 붙잡아 묶어두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언뜻 보면 매정한 이야기 같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참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지혜의 길입니다.


참된 스승은 누군가가 괴로운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왔을 때, 공감해주고, 도움을 줄 지언정,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은 실체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을 알기에 그 오고 감을 허용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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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롭게 2015.10.26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의 엄마들..
    자식들이 지금 아파합니다..
    그 아픔이 보이지 않나요..비명이 들리지 않나요...
    그만하고 웃음을 찾아줍시다.

    • 제발 2019.07.03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 수능자살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대학이 최고인지
      그냥 인터넷에서 다 배우고 늦게 시작해서 배우면 안되나?
      지금 학생들이 대학 가서 취업준비 못하면 늦었다는 표현이 맞는가? 성공했다는 표현이 높은자리, 곧 돈 많이 버는 ♬♫♬♫ 세상. 돈 많아도 행복은 커녕 우울증 뭔데 개같은 정부. 외국가고 싶다

 

 

 

불교방송 문자서비스

법상스님과의 공감댓글에서 오고 간 질문인데요,

많은 분들의 궁금해 하고

함께 공감하는 질문일 듯 하여 함께 공유합니다.

 

[질문]

 

존경하는 법상스님께....
고2 아들녀석의 기말고사 성적을 보니 수학은 3등급이고 나머지 과목은 6,7,8등급으로 중간이하입니다..주요과목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는데 학원이나 과외숙제도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좀 있고, 수행점수도 보니 성실하게 임한것 같지 않아 낮습니다..어떻게 하면 성적을 향상시킬수있는지 대화를 해보자고 해도 아빠의 그저그런 잔소리라고 싫어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잘 못가르친다는 둥 남 탓을 하기도 합니다..이번기말고사때도 3일정도 시험 보는데 첫날 시험 끝나고 pc방에 들렀다 왔습니다. 공부도 여러권을 여러번 보는게 좋다하면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고, 시험을 잘보기위해 성실하게 시간계획을 잘 세워서 노력하진 앟는거 같습니다..수능과목이 아닌 과목은 왜 공부해야하는지 의문이고, 성적을 내기위한 열성도 없습니다..본인은 다른 아이들보다 잘해야 겠다는 경쟁심이 없는것 같다고하고..시험기간에도 11시면자고 더 노력하는 모습은 없습니다..고1 때는 시험전에 공부할때도 문제집을 풀고 답을 맞추어보지 않았구요..지금도 학교시험보고나면 답을 맞추어보지 않습니다..초등때는 수학에 재능이 있어서 각종경시대회에 다니기도 했었고 중학때는 교육청의 영재원에 다니긴 했었는데 공부에 열심이진 않았습니다..전 엄마가 어려서부터 너무 공부에 관여해서 자기주도학습 습관이 들지 않은 것도 같구요...아이가 머리는 좋고 책도 많이 읽었었는데 학교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거 같고 공부열정도 없는거 같고..어제 성적표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전 시골에서 어렵게자라 혼자 돈벌고 해서 대학졸업하고 이후 직장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았는데 안타깝습니다..전 쉰살입니다..이런일도 인연따라 생긴것이라 인정하고 부모의 훈육이 잘못되었었나 자책이 됩니다...모두 제 욕심이고 집착이라는 것을 알지만 좋은 말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참고로 사내아이며 아이가 학교는 잘다니고 심성도 고운데 어려서부터 너무 공부공부해서 무기력이나 자신감이 떨어진거 같기도하구요.부모의 막연한 큰 기대에 부담감을 갖고있는것도 같구요..아이와 저희 부부가 어떻게 이해하고 노력해야 할런지요..감사드립니다..

 

[답변]

 

아들이 시험공부를 통 안 하니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답답하고 화도 나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잔소리를 안 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을 듣는 아들은 계속되는 잔소리에 더욱 더 마음을 닫게 될 것이기에

더욱 더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그냥 아버님 마음을 보듬어 드리고,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위로해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런 말은 단편적으로 편안해지기는 할 뿐 근원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듣기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드릴 수 있는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아이 스스로 공부에 대한 취미도 없고, 관심도 없어진 마당에,

본인은 하기 싫은데 부모님이 계속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고 얘기를 하면

잔소리로 밖에 안 들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부모님의 말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아들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말 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말은 아들에게 와 닿지를 않게 되고,

부모를 향한 마음이 닫히게 될 것입니다.

즉, 공부하라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반발심과 하기 싫은 마음이 더 많이 연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래도 시켜야겠다 싶어서 강제로,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여서 공부를 시키게 된다면,

그건 더욱 더 아이를 망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다가 심지어 아이가 집을 나가거나, 정신이상까지 오는 경우도 보았거든요.

어쩌면, 법우님 말씀하신 것처럼

어릴적부터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고, 칭찬해주기 보다는,

일정부분 부모님의 욕심으로 인해,

혹은 이 세상이 그래야만 잘 살것 같고, 그것이 아이를 원하는 것 같다고 느낀 생각 때문에

아이 마음 속에서 조금씩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거부감을 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보면, 이 일은 아이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사실 탐진치 삼독 가운데 치심, 즉 어리석은 부모의 잘못이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법우님이 잘못했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다 보니 그것이 최선인 줄 알고 그러셨겠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는 거부감이 쌓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답은 하나 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선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받아주고, 그 마음과 하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집착이 없어야 하고, 성적에 대한 바람도 없어야 합니다.

그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참회하고, 미안하다고 얘기해 주고,

공부 잘 안해도 좋다고 진심으로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 마음도 진실로 공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밀어붙인 결과,

결국 유망한 대학을 갔다가 자살하는 아이들이나,

수능 시험보고 자살하는 아이들처럼 극단적일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우리 아이는 아직 이런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부를 못하더라도,

행복을 연습할 줄 알고, 하루 하루 스스로 행복할 줄 알고,

부모님과 행복하게 즐기며 대화할 줄 알고,

서로 마음 터놓고 지낼 줄 아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래야지만, 아이가 마음을 돌리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성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지만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려면 울화통이 치솟더라도,

게임하고 있고, 놀고 있는 아이 마음을 헤아려 주려고 노력해 보세요.

함께 게임도 즐겨주고, 성적 나쁘게 나와도 우리는 괜찮다고 말해 주세요.

 

우리는 네가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해 주세요.

그리고 공부 잘 한다고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니,

네가 정말 행복하게, 즐겁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가라고 이야기를 해 주세요.

 

스스로에게 맡겨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의식이 생기고,

내 삶을 부모님에게 의지하기 보다,

그래서 시켜서 하기 보다,

내 스스로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로 크게 됩니다.

 

그렇게 믿고 맡겨 주어야 합니다.

자꾸만 이래라 저래라 하면 고스란히 마이너스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지금 이 모든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내 스스로, 부모가 만들어낸 문제이지, 아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에요.

아이는 완전하게 아름답게 부모가 시키는대로 잘 커가고 있는 중입니다.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도 바뀔 수 있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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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군에 있다 보니, 남들은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만 너무 뒤쳐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TV에 나오는 젊은 연예인들을 보더라도, 저 사람들은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성공하고 앞서가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주변에 장병들 가운데에도 전역 이후에 할 일이 정해져 있거나, 미래의 꿈이 확실한 사람은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공부하거나,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없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날이 희뿌옇게 느껴지고 무언가 분명히 정해진 게 하나도 없어, 답답합니다.

 

[답변]

 

예, 그 마음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저 또한 대학 다닐 때 딱 그랬었거든요.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삶에서, 특히 젊은 시절에 뭐든지 다 정해져 있고, 길이 나 있어서 그 길로 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 누구라도 고민하고, 답답해하면서,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는 그런 순간들을 겪곤 합니다.

 

사실 그런 답답하고 정해진 것 없이 고민하는 그런 순간이야말로 젊음이 젊음일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특성 아닐까요? 바로 지금은 그렇듯 답답하고 정해져 있지 않아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그런 시기인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시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기간이야말로 삶의 숙성기간이며, 자신이 익어가는 시기라고 봅니다. 그런 혼돈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야말로 젊은 시기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시기를 전혀 보내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고, 확실하며, 그저 길을 따라 순탄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약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이고, 20후는 어떻게 될 거라고 다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면 그런 삶이야말로 아무런 감동도 없고, 성취도 느끼지 못하며, 생명력이 손실된 무기력한 삶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 삶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거부하면서, 힘들다고 비껴가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젊음에 대한 직무유기일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결정하고, 빨리 정해지고, 빨리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민하고 준비하며 불확실성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속도를 내는 시기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삶의 방향을 정할 때는 속도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이미 정해진 대로만 생각하게 된다면, 동서남북 어디로도 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한정되고 축소되고 말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동료를 보면서 부러워할 필요는 없지요. 그건 그 사람의 독자적인 삶의 방식일 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지요.

 

군생활은 어쩌면, 초중고등학생 때까지 공부에만 메달려 속도전을 방불케하던 삶의 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멈추어 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늦게 간다고 조바심 낼 것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다운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혼돈의 상황이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고, 그 속에서 잠시 머무는 것입니다. 그런 혼란과 고민과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고민과 혼란의 시기를 거부하지 말고, 허용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모든 마음의 상태를 인정하고 허용한 채 그저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에만 마음을 기울여 보세요. 앞으로 남은 인생 전체를 지금으로 가져와서 공연히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지금 눈 앞에 있는 군생활 그 자체에 에너지를 집중해 보세요. 그렇듯 그 혼란과 불확실성과 그런 현재의 삶을 허용할 때, 저절로 여러분 내면의 붓다, 내면의 지혜가 깨어나 어느 순간 스스로 가야할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신뢰하세요. 여러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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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자 친구를 만날수록 더 외로워지고 그럴수록 더욱더 의존하게 되고 혹시 곁에 없을 때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을거란 나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여자 친구가 멀어질까봐 겁도 나고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를 보고 웃으면 질투에 너무 화가 납니다. 이성친구가 바뀌어도 이런 잘못된 이성관 때문에 번번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법우님만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질투심은 있게 마련이니 그 사실에 대해 너무 자기 자신을 문제시 하지는 마세요. 그 부분에 대해 문제를 삼고, 결정적인 오점이라 생각하고, 이것 때문에 앞으로의 이성관계들도 위축이 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것은 그저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것을 잘못된 죄라고 생각해서 단죄하려 하면, 그것에서 놓여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질투하지 말아야지, 상처받지 말아야지,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 봐야, 그 마음은 오히려 지속됩니다. 그러니 거부하려 애쓰지 말고, 지금 현재의 그 마음들을 사랑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그 부분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세요. 다만 문제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법우님 자신에게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보고 문제라 생각하고, '나는 왜 이러지?' 하고 걱정하는 그 생각과 판단과 해석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아상, 아집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상은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아상은 '내 것'을 늘리는 일들만을 하는 것이 바로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내 여자' '내 사람' '내 소유'라는 관념, 그것이 바로 아상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상은 나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니 거기에 에너지를 실어 줄 필요는 없어요. 사람은 아상과 너무 붙어 있으면, 거기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즉 아상이 바로 나 자신인 줄로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착각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너무 '내 여자'라고 집착함으로써, 그 여인을 나와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자꾸만 그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너무 붙잡아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수행의 관점에서 말하면, 정확히 ''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질투심이 일어날 때, 그 여인을 볼 때, 여자가 다른 사람을 보고 웃을 때, 내 안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그 마음을 잘 지켜볼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랑은 놓아주는 것이고, 그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며, 그가 행복하도록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집착은 분명히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소유의 사랑을 하지 말고, 상대방을 진정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누가 누구의 소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자식도 부모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 모두는 다만 인연 따라 오고 갈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훗날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에게 똑같이 집착하게 됩니다. 아상이 하는 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보면, 아상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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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akruti.com/curl.aspx BlogIcon chanel outlet 2014.04.12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상이 하는 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보면, 아상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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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상이 하는 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보면, 아상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healthcarefoodservice.org/redirect.aspx BlogIcon replica belts 2014.04.12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법우님만은 아닐 것입니다.

2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밑바닥 인생 팔 년 째, 저는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에 너무 힘들고 속이 답답하면 점을 보러 가곤 합니다. 그런데 잘 맞추더군요. 정말 사람의 사주팔자라는 게 딱 맞아 떨어지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너무 절망적입니다. 한없이 눈물만 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법우님의 지금 현실을 분명히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사주팔자라는 것은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사주팔자란 결코 없습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하지 않고 인연 따라 변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아주 획기적으로 경이롭게 바뀌기도 합니다.

지금 법우님에게 주어진 괴로운 삶과 환경은 지난 과거생의 업에 대한, 물론 일부 탁한 악업에 대한 결과로써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악업도 있지만 선업 또한 있어요. 누구나 악업과 선업은 함께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특별한 상황을 맞음으로써 악업을 한꺼번에 받기도 합니다. 큰 괴로움은 큰 악업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대수용의 마음자세였을 때 그 업장소멸은 속도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행상담에 글까지 올렸을 정도라면 벌써 이 작은 행위가 아주 엄청난 인연과 희망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우님의 내밀한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세요. 세상을 향한 모든 원망을 내려놓습니다. 내 과거의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나의 삶은 내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무조건적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 나는 새로운 삶의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방법을 모릅니다. 부처님! 당신께서 나를 이끌어 주세요. 나의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깁니다.이 말들을 적어놓고 염불처럼 계속해서 반복해 읽으시기 바랍니다. 말과 기도는 이 우주를 진동시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다고요? 이 정도로 내 삶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는 아주 단순한 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고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세요.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단체나 기관도 찾아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만나보세요. 저질러야 합니다. 저지르지 않으면 변화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원을 세우고 저지르면 그 원력이 삶을 이끌어 갑니다. 그 전의 삶의 패턴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내 삶에 완전히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세요. 변화를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업이 완전히 변화되려면 살아오던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겨보세요. 이 우주 법계를 진동시켜 법우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뀌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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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몸이 많이 좋지 않고, 몸에 병이 많습니다. 왜 저는 이런 아픈 몸을 받고 태어나게 된 것일까요? 병은 왜 오는 것입니까? 제가 죄를 많이 지은걸까요? 이렇게 아플 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아플 때 하는 수행도 있는지요?

 

물론 병이라는 것 또한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오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병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병은 우리를 정화시켜 업을 녹여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자비로운 보살핌의 일환이자 우리를 성숙하게 하기 위한 지혜의 이끔입니다.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통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러니 그 병은 나의 적이 아니며, 싸워 이겨야 할 투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병도 내가 그 병을 이겨내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병과 싸워 이기는 방식이 아닌, 비폭력적이고도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방식으로의 승리를 원할 것입니다.

병과 나는 둘이 아니며, 나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내 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눈과 싸워서 눈을 없애버릴 수 없듯이 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병도 나에게서 나왔고,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나 방법도 사실은 내 안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본연의 치유적인 원리는 언제나 사랑과 자비와 비폭력, 그리고 알아차림의 지혜에 있습니다. 병을 적으로 보고 싸워 이겨내려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병이 나와 둘이 아님을 알아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지켜보아 주어야 합니다. 병을 적으로 보고 싸워 이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들은 병이 왔을 때, 어떻게든 그 병을 빨리 없애버리려고만 애쓰지 그 병과 충분히 함께 하고, 충분히 느껴보며, 충분히 그것 자체와 하나가 되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이 올 때 그 병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의미를 깨닫고, 그 병을 자연스럽게 치유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병을 빨리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그 병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빨리 없애려는 마음 보다는, 오히려 잠시 그것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그 병을 느껴보고, 살펴보며, 관찰하는 것이지요.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그런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병을 지켜봐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병과 대적하지 말고, 완전히 받아들여야 하지요. 병을 거부하면 오히려 병은 계속됩니다. 온전히 수용하고 함께 머물며, 병이 내게 주는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해 보세요. 그 관찰, 그 통찰이야말로 그 어떤 주사바늘보다, 그 어떤 약보다, 수술보다 더 깊고 강한 우주 법계의 치유의 손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을 놓아버리세요. ‘내게 병이 왔다는 생각도 놓으세요. 병에 대한 모든 생각과 판단과 해석을 놓아버리고, 완전히 내 안의 무한한 자연치유의 힘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의 자성부처님, 법신부처님을 굳게 믿고 모든 것을 내맡기세요. 이와 같은 실천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 , 좌선, 독경, 염불 등의 수행을 함께 해 나가는 것도 좋겠지요. 또한 법계라는 대자연의 불성에 기대기 위해 자연 속에서 걷기, 자연식, 소식 등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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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생의 업 때문에

그것을 풀기 위한 적합한 조건을 선택하여 태어났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저는 왜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일까요?

전생에 중죄를 저질러서입니까?

그렇다면 이 장애를 안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생의 업을 씻는 과정인 것인지,

아니면 이 장애를 극복해내어 뭔가 이뤄내야지만

선업을 쌓아 전생의 업보가 씻기는 것인지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사실은 나 자신이 선택한 내면의 깊은 선택이기에,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내 바깥에 이 장애로 태어나게 한 누군가에 대해,

심지어 신이나, 부처나, 진리 조차도

욕하거나,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받아들임 자체야말로 장애로 태어난 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요

장애를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장애라는 방식을 통해 내가 세상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장애로 태어난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은

장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정신적 성장의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반드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체가

장애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장애라는 그 사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애가 나에게 주는 긍정점

특히 장애를 통해 내가 이 생에서 배울 수 있는 점 등을 받아들이고,

장애를 통해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는

아주 아름답고도 특별한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대 긍정의 받아들임,

그 자체가 바로 장애의 극복이 될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중죄를 저질러야지만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장애를 통해 좀 더 성숙하고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배울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깊은 차원에서 그렇게 선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욱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용기 있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모든 고통스런 상황은 삶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더욱 고통스러울수록 더 많은 깨달음의 가능성,

더 깊은 지혜를 깨닫는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러 생 동안 작은 고통을 받고, 즐거움도 받아가면서

수많은 생을 깨달아야 할 지혜를,

용기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한 생 동안에 큰 고통의 과보(장애 등)를 한꺼번에 받음으로써

불과 한 생 만에 큰 지혜를 깨닫겠다고 용기 있게 결정하는 것이지요.

 

이는 장애 뿐 아니라,

모든 삶 속의 고통스런 일들로 괴로워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큰 병이 났거나, 재산을 탕진하였거나,

큰 손해를 입었거나,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하는

모든 상황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과거에 죄업이 많아서 장애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은 놓아버리세요.

그것은 오히려 죄의식을 강화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아서'

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

잠시 그 고통스런 상황과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 자체가

본래 부처였던 우리가

잠시 중생으로 착각하게 헤매던 삶을 청산하고,

다시금 부처로 되돌아가는

성스러운 '되돌아감', 귀의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고통'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그 '고통의 꿈'을 통해

본래의 나를 깨달아 가게 하기 위한

이 우주법계의 감사하고도 지혜로운

삶이라는 연극의 시나리오나 무대장치 같은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진짜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지요.

 

장애인이라는 것이 나의 진짜 실체인 듯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체가 아니에요.

아주 짧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이 생에서 장애인의 역할을 잠시 맡기로 하고

인생이라는 지혜와 자비를 배우는 수련의 장에

잠시 내려 와 있는 천사적인 존재,

불성이라고 표현되는 완전한 부처의 존재입니다.

 

이 생에서 보면 길고 긴 100여 년의 세월일지 모르지만,

천상세계에서 보면 한 10여 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인간계에 내려가서 잠시 고통을 받는 대신

큰 깨달음을 얻고 오겠노라고 용기 있게 결심한

지혜로운 존재인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계를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인간계란 '괴로움의 바다',

즉 괴로움을 통해 지혜와 자비를 배워가는 학교이며,

인생수업의 배움터인 것입니다.

 

그러니 장애라는 현실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장애라는 문제를 더이상 문제시하지 마세요.

그로인해 스스로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남들보다 못한 존재로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거지 하고 거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애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하나의 다른 점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꼭 장애가 아닐지라도

자신만이 가지는 남들과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특별한 점을

자기다움으로써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긍

정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그 특별한 점을

남들보다 못한 점이라고 비하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특별한 상황이 가져다 주는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내가 해석했던

그 부정적인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배움의 기회, 지혜를 얻는 기회, 

깨달음과 성숙의 기회로 해석하게 될 때

비로소 그 특별한 점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지혜를

우리는 마땅히 흡수하고 내면화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이름이 장애일 뿐입니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의 해석이 문제인 것이지요.

 

장애로 인해 괴로워하기 보다는,

장애로 인해 얻게 되는 

놀라운 깨달음과 

매 순간의 삶의 지혜를

충분히 깨달아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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