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흔히 악업의 업보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또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생겼다고 해 보죠.

그 때 우리는 나를 괴롭힌 사람을 탓하고, 하기 싫어서 짜증을 내기도 하며, 피해가려고 애쓰거나, 화를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반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행복해 하며, 나아가 집착하고, 그런 일이 계속 더 일어나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났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기 때문에 또 다시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태풍이 불거나, 혹은 낮과 밤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변화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자연의 순환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비가 올 때가 되면 저절로 비가 내립니다.

밤이 올 때가 되면 저절로 낮은 물러갑니다.

이처럼 삶도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집착하는 일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그 일이 때가 다하면 싫어하는 일, 하기 싫은 일도 할 때가 생겨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괴롭다거나,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지만, 낮이 다하면 밤이 오듯,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좋은 일도 다하면 싫은 일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시절인연은 꼭 그 인연이 와야 했기 때문에 옵니다.

대지에 비가 필요하면 그저 비가 내리는 것 처럼, 나의 업에도 무언가 풀려나가고, 균형이 맞아져야 할 때가 되면 거기에 걸맞는 인연의 때가 오는 것이지요.

그러니 좋은 일이 생긴다고 그것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집착할 것도 없고, 싫은 일이 온다고 그것을 미워하고 화내며 거부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밤낮이 교대하는 것처럼, 인연의 때가 되어 교차하는 것일 뿐입니다.

거기에 시비를 걸 필요도 없고, 좋은 것을 집착하거나 싫다고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인연 따라 온 것은 오도록 허용해 주고, 갈 것은 가도록 허용해 주어 보세요.

취사간택하면서 힘들어하는 대신에, 전혀 힘쓸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의 수용을 선물해 주어 보세요.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둘 뿐, 내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지요.
바로 그 때,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고, 삶은 저절로 풀려나갑니다.
.....
#마음공부 #금강경 #불교

YouTube에서 '하나와 전체가 다르지 않아 - 금강경 강의 30강(30분 일합이상분)' 보기
https://youtu.be/HGsFWvT4-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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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는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매우 유명한 사구게가 있습니다.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성향미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씀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것을 십이처, 십팔계로 설명하면서, 이것을 통해 무아를 증명하곤 하였습니다.

눈이 색(모양, 대상)을 볼 때, 그 보이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여기고, 실체시하게 되면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본 것에 머물러 마음을 내게 됩니다. 

본 것을 옳다고 여기면서 '내가 보았으니 맞아'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을 아느냐고 물으면, 한 번 본 사람은 안다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보았으니까 아는 것일까요?

사실 본다고 할 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본 것이 아니라,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보고, 자기 판단대로 보았을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좋지 않은 느낌이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반하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어떤 한 사람을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고 여기거나, 내가 본 것에 대해, 보아서 안 견해에 대해 옳다고 여기거나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식으로 그려놓은 허상, 상을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을 본 것이 아니라 허상을 본 것이지요.

그 사람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면, 그 사람이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내가 빠져 있는 이 사랑의 감정을 실재라고 여기고 상대에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 상대방을 내가 좋게 해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 매력 있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결혼 하고 살다보면, 때로는 그 때 사랑스러웠던 부분들이 오히려 더 미워질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아는데 왜 훗날 보니 그것이 오류였음이 밝혀질까요?

실상을 본 것이 아니라, 허상을 본 것을 진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보았다고 다 믿지 말고, 보고 알았다고 그 생각을 100% 믿지는 마세요.

그것이 바로 불응주색생심, 즉 색에 머물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보죠.

빨간색깔 도화지를 보고, 우리는 누구나 빨간색이라고 여기고, 내가 보았기 때문에 빨간색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그것은 빨간색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나를 바보 취급한다면 너무 황당해서 기가 막히겠죠?

제가 초등학교 때 모든 면에서 똑똑한 모범생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반에서도 별로 똑똑하지 못하던 한 친구와 교실 한 쪽에서 논쟁이 붙었어요.

빨간색인가 어떤 색깔을 보고 모범생은 다른 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너무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분명하게 자기가 주장하는 색깔이라고 하니, 반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누가 옳은지 보자고 했지요.

반의 모든 친구들이 똑똑하지 못했던 그 친구가 본 색깔이 맞다고 했지요.

알고보니, 그 모범생 친구는 자기도 모르는 색약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식은 결정코 '무슨 색'이라고 믿었는데, 반의 친구들 모두가 전부 다른 색깔이라고 할 때의 그 친구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빨간색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색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빨간색이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지요.

자외선을 보는 곤충들은 가시광선만을 보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봅니다.

자외선 필름으로 꽃밭을 촬영하면 그 색감이 우리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적외선 촬영기술로 사진을 찍으면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사진을 얻게 되지요.

우리는 가시광선의 영역만을 볼 수 있는 것일 뿐, 적외선을 보는 뱀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뇌과학에서 말하듯, 우리의 뇌는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를 근거로 제한적으로만 인식한다고 합니다.

인식 자체에서 자기식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는 이렇게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보았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다고 집착해서는 안 되겠지요.

.....

* 10년 전 광주 관음사 시절
일요법회 설법을 공유합니다

YouTube에서 '[음성/행복입문1] 나를 괴롭히는 방어벽을 깨라, 고정관념을 깨면 자유롭다' 보기
https://youtu.be/P2jTdXAE1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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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우리는 '무슨 소리지?', '새소리인가?', '사람 목소리인가?' 하고 떠올립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곧장 그 말에 대해 '무슨 뜻이지?', '어떤 의도로 저 말을 했을까?' 하고 곧바로 생각으로 그 소리와 말을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리는 소리를 해석, 분별, 판단하기 이전에, 순수하게 들리는 소리 그 자체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들리는 소리 그 자체라는 생생한 진짜를 경험해 놓고는, 곧바로 그 소리를 해석하고 판단한 뒤에, 내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한 그 이미지, 그림자, 의식을 붙잡아서는 그 소리라고 여깁니다. 

이미 소리가 드러나고 사라졌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 그 소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는데도, 그 소리에 대한 내 머릿속 해석, 기억, 이미지, 그림자를 붙잡고서는 그 소리라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사과라는 말이나, 사과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기억은 진짜 생생한 '사과'가 아니듯이, 그렇게 소리가 일어나고 사라진 뒤에 남는 기억, 해석, 이미지, 그림자는 전혀 그 소리 자체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진짜라고 여겨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그 그림자, 이미지, 상, 분별심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내 단점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말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기억하고 붙잡아서, 내식대로 해석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욕했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정말 내가 그런 단점이 많은가 하면서 계속 그 단점에 마음이 얽매이게 되고, 화도 나고 속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지나간 그 말에 대해 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그림자, 상, 분별심, 해석을 붙잡아서 진짜라고 여기면서 내 스스로 얽매이고 걸려드는 것일 뿐입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로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두 번째 화살입니다.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것이지요. 

그 사람의 말은 이미 지나갔고, 진짜, 실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생멸법으로 이미 사라졌습니다. 

지나간 뒤에 남은 분별, 해석, 그림자, 상을 붙잡아서 스스로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인연따라 그것을 판단도 하고 해석도 하되, 그것은 왔다가 가버리는 생멸법이어서 실재가 아님을 알아 거기에 속지 않고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고,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입니다.

진짜만 상대하세요. 사실, 실재만 보세요. 이미 지나간 쓰레기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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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도, 일과의 만남도

소유물과의 만남도, 깨달음과의 만남도,

유형 무형의 일체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만나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

다만 아직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뿐

만나야 할 일도

만나야 할 깨달음도

인연이 성숙되면 만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성공은 오지 않고 실패만 자꾸 찾아온다면,

그렇더라도 아직 좌절하지는 말라.

아직 시절인연이 깃들지 않은 것일 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꾸준히 오르더라도

한동안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당신의 시절인연을 만날 것이다.

 

이렇듯 시절인연은 당장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안으로 안으로 전체적인 인연의 질서에 의해 여무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바로 그 때가 저절로 내 앞에 드러난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시절 인연이 되어 만남을 이룰 때

그 때 더 성숙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다만 자신을 가꾸어야 할 때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절인연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야 할 때

홀연히

문득

저절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그것의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진 눈부신 순간으로 돌아와

지금 여기를 가꾸는 것 뿐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바로 지금 이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과의 인연을 가꾸는 사람에게

비로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깃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우주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과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 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