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평가를 내린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아주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그 부정적인 말의 위력에 굴복당한 채
그런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 깨어있는 의식으로써
그 말이 그저 아무 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그의 단편적인 관점일 뿐이며,
그 말은 진실도 거짓도 없는 중립적인 에너지일 뿐이다.
그 말이 힘을 가질지 말지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별 의미 없이 쉽게 내뱉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언제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함로써
스스로를 그 말에 자신을 구속시키기를 서슴지 않는다.
화가 나서 홧김에 내뱉은
"재수없게 생겼어"라는 학창시절 친구의 말 한마디를
40이 넘어서까지 붙잡고 실체화하며 구속당한 채
정말 자신을 재수없는 사람으로 믿어 왔던 분을 보고
구업이라는 업력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 적이 있다.
말의 힘이란 이와 같다.
자신이 그 말에 힘과 의미를 불어 넣는 순간
그 말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실체적 에너지로 바뀌고 만다.
그러나 자신이 그 어떤 말에도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최악의 험담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말 것이다.
사실 상대방이 나에게 그 어떤 험담을 해 올 때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내리는 험담 만큼만
상대의 험담을 받아들이게 된다.
즉 상대의 험담이지만,
사실은 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리는 자기 험담이며
자기 비난일 뿐인 것이다.
왜 상대방의 험담과 비난을
스스로 나서서 동의하고 동조하며
'맞아! 나는 저 정도의 험담을 받을 만 해'
라고 맞장구침으로써
그 험담에 힘을 부여하는가?
나는 그 어떤 외부의 판단이나 평가를 받지 않고도
자기답게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다.
좋거나 싫은, 옳거나 그른 그 어떤 평가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이런 휘둘림은
내 스스로
자신을 옳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상대에게 보여지고 싶은 관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평가나 판단의 희생양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좋게 평가받고 싶고,
좋은 대접을 받고 싶으며,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미 '좋고 나쁜' 상대적 분별심의
희생양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평가 받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좋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으며 살 수는 없을까?
험담 뿐 아니라 칭찬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칭찬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으며, 좋게 평가 받고 싶은 그 마음에서 놓여날 때
비로소 비난, 험담, 비판의 말에도
자유로와 질 수 있는 중심 잡힌 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모든 삶의 주도권이 내 안에 들어온다.
상대방의 그 어떤 말이나 평가에도
전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기 중심이 잡힌다.
나와 상대를 평가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좋은 평가를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의 나쁜 평가를 받아들이길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말의 주도권,
삶의 주도권을 굳건히 자기 안으로 가져 오는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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