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군법당 화랑 호국사서 일반인 대상 금강경 강좌 ·명상수행

최호승 기자  |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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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5  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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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상 스님
육군사관학교 화랑 호국사에서 금강경 강의와 명상수행 실참을 함께하는 강좌가 열린다. 특히 군법당에서 군장병이 아니라 금강경과 명상수행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라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목탁소리 불교아카데미서
지도법사 법상 스님이 직강
3월7일~7월4일 금요일마다


사이버 수행공간 목탁소리는 3월7일~7월4일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화랑 호국사에서 ‘금강경과 명상수행’ 불교아카데미를 개강한다. 강좌는 오전 10시부터 30분간 명상수행을 실참하고 이후 1시간30분간 금강경 강의를 실시한다.

이번 불교아카데미는 목탁소리 지도법사인 법상 스님이 직강한다. 법상 스님은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은사이기도 한 조계종 원로의원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현재 목탁소리(www.moktaksori.kr) 지도법사로 불교아카데미 학장이며, 군법사로서 화랑 호국사 주지이기도 하다. ‘생활수행이야기’, ‘날마다 해피엔딩’, ‘금강경과 마음공부’, ‘붓다수업’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법상 스님 강좌는 목탁소리 회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온몸으로 들었다. 2시간을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집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동으로 가득 찬 걸 보면 온몸의 세포들이 기억하는 게 틀림없다(아이디 무애안).” “강의를 들으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이다(아이디 jikeunhye).” “가르침에 날이 갈수록 부처님의 깨달음에 귀의 하고픈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살아오면서 이 정도로 제 마음의 강한 울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아이디 권효임).”

“아카데미 횟수를 더 할수록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행복의 확신이 든다(아이디 뭉게구름).” “환희심 솟고 막연하던 가르침이 와 닿는다(아이디 죄많은 중생).”

법상 스님은 하루하루 느는 나이만큼 영적인 성숙과 깨달음이 깊어져 행복한 나날을 만들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것을 청했다. 그런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 이번 강좌를 권했다.

법상 스님은 “내적인 깨어남과 지혜의 완성 그리고 실질적인 생활 속 명상수행과 대승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금강경을 배우며 삶을 돌아보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마음공부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메일(buda1109@daum.net)로도 강좌 접수를 받는다. 02)972-7747

법보신문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나 한 사람의 나눔과 절약이
과연 이 지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 혼자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직접적으로 돕는 힘은 작을지라도
그것이 다는 아니다.

한 사람을 돕는 순간
우주는 그 따뜻한 사랑의 정신을 기억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
지구의 여신이 맑은 호흡을 내쉰다.
물 한방울을 아낄 때
그 절약정신은 우주 끝까지 전달된다.

그 단 한 사람에게 행하는
따뜻한 나눔과 사랑의 정신은
우주와 함께 공명하여
그 파장을 인류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나부터,
작은것부터
먼저 시작해야하는 이유다.


실천하지 못하는 타인을, 세상을 탓하지 말고
그저 내가 먼저 하라.
내가 정화되는 것이 곳 세상의 정화다.



몸이 좋지 않다는 생각,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
바로 그 생각이 건강을 망치는 가장 큰 주범이다.

우리의 건강은 언제나 완전하다.
물론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바람일 뿐,
근원에서는 충분히 건강하다.

술을 매일 마시면서
'이 술 때문에 내 몸은 망가지고 말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술' 때문에 몸이 조금 망가지고,
연이어 그 '생각' 때문에
더 많이 몸이 망가지게 될 것이다.

그 영향력은 언제나 술 그 자체보다
'술에 대한 생각'이 더 크다.

평생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한 사람도 분명히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술을 마셔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어쩔수 없이 마시더라도 가볍게 마셔야지,
술에 대한 온갖 좋지 않은
무거운 생각에 빠져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몸을 신뢰하라.
당신은 완벽히 아름답고 건강하다.
공연한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두 번 죽이지 말라.

p20060209-184910

 

실제 수많은 민족지 조사 연구 결과
고대사회, 원시사회는 최초의 풍요사회였다.

그들 원시인들은 하루에 서너시간만 일하고도 먹고 남는,
연간 필요소비량 이상의 잉여를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발달시켰다.

원시사회는 생계경제가 아니라
풍요의 잉여경제였다.

그것도 잉여를 끔찍한 대규모 전쟁이나 쓰레기로 낭비하는
현대 산업문명과는 달리
잉여를 이웃 공동체와 서로 나누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최적의 생계순환형 경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초기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과 농민들,
전세계 대다수 인민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침략 아래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다.

[왜 자립경제인가]박승옥 중에서...

 

오늘날 TV며 언론 어디에서도
부자되기 열풍을 좀 자제하자는 논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골 골짜기에도
요 몇 년 사이에 땅값이 오른다고
부동산이 몇 배가 많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어디를 가든
얼마를 어디에 투자를 하면
몇 년 뒤에는 얼마로 부풀려 진다는 내용의 유혹들이 쏟아진다.

아마도 인류 역사 이래로
요즘처럼 이렇게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밤 늦도록 아니 주말까지 반납해 가면서까지
일, 일, 일에 중독되며 살던 사회가 없지 싶다.

사회는 점점 더 발달되고,
컴퓨터도 날로 발전되며,
일을 도와주는 온갖 기계들도 넘쳐나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운송수단도 날로 발전되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의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더욱 바빠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하루 일 할 것을
요즘에는 10분도 안 되어 다 끝낼 수 있는 기계가 나왔다면
나머지 하루의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 더 휴식하고 명상하며 여유를 즐겨야 하지 않겠나.

계산으로 따진다면 그게 맞는 말이겠지만,
오히려 요즘의 세상은
사람의 일을 훨씬 빠르게 단축시켜주는 기계가 나오면 나올수록
사람들은 훨씬 더 바빠지고, 일도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기형적인 경제구조다.

옛날에는
하루에 서너시간만 일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고,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여가활동, 문화생활, 정신적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차도 없고, 기계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는데,
그래서 오직 사람의 힘으로 밭도 갈고, 땅도 파고,
물도 나르고, 씨앗도 뿌리고, 거두고
이 모든 것을 사람의 두 손, 두 발로 다 해야 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서너시간 일 함으로써 충분히 자급할 수 있었다는 말이
언뜻 보아서는 억지같고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욕심이 많지도 않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지금처럼 산더미 처럼 쌓여 있지도 않았다.

지금 대도시 괴물같은 도시를 움직이는
수많은 온갖 종류의 직업들이
그 때는 있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누리고 있지만,
그 소유를 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많이 정신을 놓고 살아야 하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 생겨났다.

생존을 위한 거의 전쟁과도 같은 수준의
복잡 다단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핸리 데이빗 소로우는 말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부(富)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 전에 소유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부와 비교할 때 나의 부란 기껏해야
아직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부자가 되면 될 수록
불가피하게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생계 습관을 지니게 되어,
몇몇 필수품과 편리한 생활도구 장만에 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돈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서,
우리 집에는 그 돈으로 사 나른
온갖 생활용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부유함을 얻게 된다면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더 많은 비싼 생필품과 생활도구를 사 들이는 것일 것이며,
더 비싼 옷을 사고, 더 좋은 메이커의 구두를 사고,
더 좋은 식당에서 더 많이 가공된 비싼 음식을 먹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면서 생활수준이 더 높아졌다고 행복해하겠지.

어쩌면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더 좋은 차를 사서 몰고 다닐 수도 있겠고,
노후를 위한 자금을 많이 만들어 놓거나,
땅을 사고, 아파트 몇 채를 사 놓을 수도 있겠고,
또 사업을 더욱 확장하여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댈 수도 있을 것이다.

와~ 그러면 얼만 행복하겠나.
그렇게 부자가 되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그런게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그렇게 행복한가.

조금 가난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비싼 신발, 비싼 옷은 못 입겠지만,
때때로 시장에 나가 돈 만원 하는 신발과 옷가지들을
사 입을 수도 있고,
그걸 빨아서 입고, 기워서 입고, 고쳐서 입으면서
그 옷이 가져다 주는 고마움도 알 수 있고,
또 필요하다고 다 사지 않고 아끼고 아껴서
정말 필요하다 싶을 때 어렵게 구입 해 입었을 때 오는
그 짠한 행복감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부자들에게 옷을 사 입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지 모르겠지만,
가난한이에게 옷을 사 입는 일은
아주 행복한 일이고,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부자들은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마다
외식도 자주 하고, 배달 시켜 먹기도 쉽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경치 좋은 식당이나 카페가 있으면
돈 걱정 없이 사 먹기도 쉬울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부자들이 그러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은
재래시장에 나아가 백원 이백원 주고
파도 사고, 양파도 사고, 감자도 몇 개 사고,
돈 만원만 가지고도 비닐봉지 한 보따리 장을 봐 와 가지고는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로 따뜻한 마음까지 음식에 담아
소박하지만 맛깔스런 음식을
아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차려 줄 것이다.

때때로 외식도 하겠지만,
돈 때문이라도 잦은 외식은 할 수 없겠지.
어쩌다가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 때 그 때 휙 사 주는 것이 아니라,
아빠 월급날 되면 그 때 함께 기념으로 외식을 하거나,
또 조금 더 유머와 지혜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좋은 책을 한 권 도서관에서 빌려주고는
이 책을 다 읽고 함께 느낌을 나누고 나면
그 기념으로 외식을 시켜주겠노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전자의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에 더욱 음식에도 정성이 더하고,
몸 건강에도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지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더욱
삶을 진지하고 독립적이며 직접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차가 꼭 필요하면 차를 사면 되는데,
굳이 몇 천 cc 이상 가는 몇 천만원 이상 가는
기름도 많이 먹고 고장나면 부품값도 비싸고
외양만 크고 번드르르한 그런 차가 왜 필요한걸까.

가만 마음을 지켜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우리안의 '욕망'이 하는 일이다.
부자가 되기 보다는
조금 더 가난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자유로와질 수 있다.

소로우의 말처럼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더욱 곤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부자가 될수록
불가피하게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생활습관을 가지게 되기 쉽고,
그랬을 때 우리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만다.

인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가난의 정신이며,
일이 아니라
마음의 휴식이다.

돈을 벌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얼마나 얽어매고 있는가.

물론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러하다 보니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완전히 일도 버리고, 돈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도
우리 마음 속에서는
언제든 가난하게 내적으로 휴식하면서
소박하고 진지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그런 용기와 지혜가 있기만 하다면
지금 이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집착하거나
중독되거나, 그 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집착이 없어야 하고,
가난과 청빈의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옛날 원시시대 사람들이 누려왔던
그런 풍요사회, 잉여경제의  삶을 왜 살지 못하겠는가.

본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풍요롭고 행복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더 얻고자 하니까,
더 벌어야 하고, 더 집착하고자 하니까 괴로워 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벌려고, 더 소유하려고,
더 집착하고, 더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가.

지혜가 부족해서다.
만족과 나눔과 가난과 비움의 정신이 부족해서다.

삶에 대한 지혜가 생겨나면
저절로 실천과 용기는 뒤따를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혜가 참된 지혜가 아직은 못 되기 때문에,
참된 앎이 못 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에 머무니까
아직은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는 것일 뿐이다.

일단 버리고 나면
자유롭다.

마음에서는 버리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버리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마음 내는 도리이니까.

옛날에 아무것도 없었던 원시인들도
저 깊은 행복과 평화를 느끼고 살았는데,
이토록 많은 것을 소유한 우리들이
여전히 부족하고 괴로울 이유가 무엇인가.

비우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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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네요.


하늘은 더없이 푸르르고
들녘의 벼는 노오랗게 익어가는 달콤한 오후입니다.


아직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로 들어오면 시원한 가을 바람이
온몸을 씻어주는 듯 합니다.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누런 논과 파아란 하늘 그리고 멀리 바다색까지
너무나 감격스러운 풍경에 흠뻑 빠져들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더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그저 행복하고 자유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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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푸른 자연, 깨끗한 물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히말라야의 감동스런 풍경과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자연의 천진함과

무한함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지켜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이 엄청난 파괴의 일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 모든 모순을 깨고 나부터 이 지구 행성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지라도 그 작은 것이 우주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윽하고도 강력한 공명의 힘을 가지고 주위로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히려 불편함이 주는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는 차원으로까지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면 차로 갈 것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나 부채를 들 수도 있으며,

물론 더 작게는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데서 출발해도 좋다.

온풍기나 보일러를 줄이는 대신 내복을 끼어 입을 수도 있고,

빨래를 너무 자주하지 않고, 비누 없이 세수를 해 볼 수도 있으며,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을 수도 있다.

이런 작은 '불편의 즐거움' 속에 지구를 살리는

엄첨난 계획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나만 환경을 살린다고 되겠느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할 때 그 겉모습은 작고 소박할지언정

그 힘은 무한한 공명과 울림을 싣고 전 우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순수 지혜의 실천의 힘은

곧 우주 전체의 힘과 연결되고, 전파되며,

강력한 동력의 단초가 된다.

내가 시작하는 것이 곧 우주가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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