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군법당 화랑 호국사서 일반인 대상 금강경 강좌 ·명상수행

최호승 기자  |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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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5  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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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상 스님
육군사관학교 화랑 호국사에서 금강경 강의와 명상수행 실참을 함께하는 강좌가 열린다. 특히 군법당에서 군장병이 아니라 금강경과 명상수행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라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목탁소리 불교아카데미서
지도법사 법상 스님이 직강
3월7일~7월4일 금요일마다


사이버 수행공간 목탁소리는 3월7일~7월4일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화랑 호국사에서 ‘금강경과 명상수행’ 불교아카데미를 개강한다. 강좌는 오전 10시부터 30분간 명상수행을 실참하고 이후 1시간30분간 금강경 강의를 실시한다.

이번 불교아카데미는 목탁소리 지도법사인 법상 스님이 직강한다. 법상 스님은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은사이기도 한 조계종 원로의원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현재 목탁소리(www.moktaksori.kr) 지도법사로 불교아카데미 학장이며, 군법사로서 화랑 호국사 주지이기도 하다. ‘생활수행이야기’, ‘날마다 해피엔딩’, ‘금강경과 마음공부’, ‘붓다수업’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법상 스님 강좌는 목탁소리 회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온몸으로 들었다. 2시간을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집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동으로 가득 찬 걸 보면 온몸의 세포들이 기억하는 게 틀림없다(아이디 무애안).” “강의를 들으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이다(아이디 jikeunhye).” “가르침에 날이 갈수록 부처님의 깨달음에 귀의 하고픈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살아오면서 이 정도로 제 마음의 강한 울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아이디 권효임).”

“아카데미 횟수를 더 할수록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행복의 확신이 든다(아이디 뭉게구름).” “환희심 솟고 막연하던 가르침이 와 닿는다(아이디 죄많은 중생).”

법상 스님은 하루하루 느는 나이만큼 영적인 성숙과 깨달음이 깊어져 행복한 나날을 만들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것을 청했다. 그런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 이번 강좌를 권했다.

법상 스님은 “내적인 깨어남과 지혜의 완성 그리고 실질적인 생활 속 명상수행과 대승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금강경을 배우며 삶을 돌아보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마음공부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메일(buda1109@daum.net)로도 강좌 접수를 받는다. 02)972-7747

법보신문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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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사람의 나눔과 절약이
과연 이 지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 혼자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직접적으로 돕는 힘은 작을지라도
그것이 다는 아니다.

한 사람을 돕는 순간
우주는 그 따뜻한 사랑의 정신을 기억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
지구의 여신이 맑은 호흡을 내쉰다.
물 한방울을 아낄 때
그 절약정신은 우주 끝까지 전달된다.

그 단 한 사람에게 행하는
따뜻한 나눔과 사랑의 정신은
우주와 함께 공명하여
그 파장을 인류가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나부터,
작은것부터
먼저 시작해야하는 이유다.


실천하지 못하는 타인을, 세상을 탓하지 말고
그저 내가 먼저 하라.
내가 정화되는 것이 곳 세상의 정화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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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좋지 않다는 생각,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
바로 그 생각이 건강을 망치는 가장 큰 주범이다.

우리의 건강은 언제나 완전하다.
물론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바람일 뿐,
근원에서는 충분히 건강하다.

술을 매일 마시면서
'이 술 때문에 내 몸은 망가지고 말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술' 때문에 몸이 조금 망가지고,
연이어 그 '생각' 때문에
더 많이 몸이 망가지게 될 것이다.

그 영향력은 언제나 술 그 자체보다
'술에 대한 생각'이 더 크다.

평생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한 사람도 분명히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술을 마셔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어쩔수 없이 마시더라도 가볍게 마셔야지,
술에 대한 온갖 좋지 않은
무거운 생각에 빠져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몸을 신뢰하라.
당신은 완벽히 아름답고 건강하다.
공연한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두 번 죽이지 말라.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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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많은 민족지 조사 연구 결과
고대사회, 원시사회는 최초의 풍요사회였다.

그들 원시인들은 하루에 서너시간만 일하고도 먹고 남는,
연간 필요소비량 이상의 잉여를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발달시켰다.

원시사회는 생계경제가 아니라
풍요의 잉여경제였다.

그것도 잉여를 끔찍한 대규모 전쟁이나 쓰레기로 낭비하는
현대 산업문명과는 달리
잉여를 이웃 공동체와 서로 나누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최적의 생계순환형 경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초기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과 농민들,
전세계 대다수 인민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침략 아래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다.

[왜 자립경제인가]박승옥 중에서...

 

오늘날 TV며 언론 어디에서도
부자되기 열풍을 좀 자제하자는 논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골 골짜기에도
요 몇 년 사이에 땅값이 오른다고
부동산이 몇 배가 많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어디를 가든
얼마를 어디에 투자를 하면
몇 년 뒤에는 얼마로 부풀려 진다는 내용의 유혹들이 쏟아진다.

아마도 인류 역사 이래로
요즘처럼 이렇게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밤 늦도록 아니 주말까지 반납해 가면서까지
일, 일, 일에 중독되며 살던 사회가 없지 싶다.

사회는 점점 더 발달되고,
컴퓨터도 날로 발전되며,
일을 도와주는 온갖 기계들도 넘쳐나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운송수단도 날로 발전되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의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더욱 바빠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하루 일 할 것을
요즘에는 10분도 안 되어 다 끝낼 수 있는 기계가 나왔다면
나머지 하루의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 더 휴식하고 명상하며 여유를 즐겨야 하지 않겠나.

계산으로 따진다면 그게 맞는 말이겠지만,
오히려 요즘의 세상은
사람의 일을 훨씬 빠르게 단축시켜주는 기계가 나오면 나올수록
사람들은 훨씬 더 바빠지고, 일도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기형적인 경제구조다.

옛날에는
하루에 서너시간만 일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고,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여가활동, 문화생활, 정신적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차도 없고, 기계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는데,
그래서 오직 사람의 힘으로 밭도 갈고, 땅도 파고,
물도 나르고, 씨앗도 뿌리고, 거두고
이 모든 것을 사람의 두 손, 두 발로 다 해야 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서너시간 일 함으로써 충분히 자급할 수 있었다는 말이
언뜻 보아서는 억지같고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욕심이 많지도 않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지금처럼 산더미 처럼 쌓여 있지도 않았다.

지금 대도시 괴물같은 도시를 움직이는
수많은 온갖 종류의 직업들이
그 때는 있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누리고 있지만,
그 소유를 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많이 정신을 놓고 살아야 하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 생겨났다.

생존을 위한 거의 전쟁과도 같은 수준의
복잡 다단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핸리 데이빗 소로우는 말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부(富)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 전에 소유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부와 비교할 때 나의 부란 기껏해야
아직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부자가 되면 될 수록
불가피하게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생계 습관을 지니게 되어,
몇몇 필수품과 편리한 생활도구 장만에 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돈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서,
우리 집에는 그 돈으로 사 나른
온갖 생활용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부유함을 얻게 된다면
우리에게 달라지는 것은
더 많은 비싼 생필품과 생활도구를 사 들이는 것일 것이며,
더 비싼 옷을 사고, 더 좋은 메이커의 구두를 사고,
더 좋은 식당에서 더 많이 가공된 비싼 음식을 먹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면서 생활수준이 더 높아졌다고 행복해하겠지.

어쩌면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더 좋은 차를 사서 몰고 다닐 수도 있겠고,
노후를 위한 자금을 많이 만들어 놓거나,
땅을 사고, 아파트 몇 채를 사 놓을 수도 있겠고,
또 사업을 더욱 확장하여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댈 수도 있을 것이다.

와~ 그러면 얼만 행복하겠나.
그렇게 부자가 되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그런게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그렇게 행복한가.

조금 가난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비싼 신발, 비싼 옷은 못 입겠지만,
때때로 시장에 나가 돈 만원 하는 신발과 옷가지들을
사 입을 수도 있고,
그걸 빨아서 입고, 기워서 입고, 고쳐서 입으면서
그 옷이 가져다 주는 고마움도 알 수 있고,
또 필요하다고 다 사지 않고 아끼고 아껴서
정말 필요하다 싶을 때 어렵게 구입 해 입었을 때 오는
그 짠한 행복감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부자들에게 옷을 사 입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지 모르겠지만,
가난한이에게 옷을 사 입는 일은
아주 행복한 일이고,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부자들은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마다
외식도 자주 하고, 배달 시켜 먹기도 쉽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경치 좋은 식당이나 카페가 있으면
돈 걱정 없이 사 먹기도 쉬울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부자들이 그러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은
재래시장에 나아가 백원 이백원 주고
파도 사고, 양파도 사고, 감자도 몇 개 사고,
돈 만원만 가지고도 비닐봉지 한 보따리 장을 봐 와 가지고는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로 따뜻한 마음까지 음식에 담아
소박하지만 맛깔스런 음식을
아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차려 줄 것이다.

때때로 외식도 하겠지만,
돈 때문이라도 잦은 외식은 할 수 없겠지.
어쩌다가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 때 그 때 휙 사 주는 것이 아니라,
아빠 월급날 되면 그 때 함께 기념으로 외식을 하거나,
또 조금 더 유머와 지혜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좋은 책을 한 권 도서관에서 빌려주고는
이 책을 다 읽고 함께 느낌을 나누고 나면
그 기념으로 외식을 시켜주겠노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전자의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에 더욱 음식에도 정성이 더하고,
몸 건강에도 훨씬 좋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지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더욱
삶을 진지하고 독립적이며 직접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차가 꼭 필요하면 차를 사면 되는데,
굳이 몇 천 cc 이상 가는 몇 천만원 이상 가는
기름도 많이 먹고 고장나면 부품값도 비싸고
외양만 크고 번드르르한 그런 차가 왜 필요한걸까.

가만 마음을 지켜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우리안의 '욕망'이 하는 일이다.
부자가 되기 보다는
조금 더 가난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자유로와질 수 있다.

소로우의 말처럼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더욱 곤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부자가 될수록
불가피하게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생활습관을 가지게 되기 쉽고,
그랬을 때 우리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만다.

인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가난의 정신이며,
일이 아니라
마음의 휴식이다.

돈을 벌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그 생각이야말로 우리를 얼마나 얽어매고 있는가.

물론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러하다 보니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완전히 일도 버리고, 돈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도
우리 마음 속에서는
언제든 가난하게 내적으로 휴식하면서
소박하고 진지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그런 용기와 지혜가 있기만 하다면
지금 이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집착하거나
중독되거나, 그 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집착이 없어야 하고,
가난과 청빈의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옛날 원시시대 사람들이 누려왔던
그런 풍요사회, 잉여경제의  삶을 왜 살지 못하겠는가.

본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풍요롭고 행복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더 얻고자 하니까,
더 벌어야 하고, 더 집착하고자 하니까 괴로워 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벌려고, 더 소유하려고,
더 집착하고, 더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가.

지혜가 부족해서다.
만족과 나눔과 가난과 비움의 정신이 부족해서다.

삶에 대한 지혜가 생겨나면
저절로 실천과 용기는 뒤따를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혜가 참된 지혜가 아직은 못 되기 때문에,
참된 앎이 못 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에 머무니까
아직은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는 것일 뿐이다.

일단 버리고 나면
자유롭다.

마음에서는 버리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버리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마음 내는 도리이니까.

옛날에 아무것도 없었던 원시인들도
저 깊은 행복과 평화를 느끼고 살았는데,
이토록 많은 것을 소유한 우리들이
여전히 부족하고 괴로울 이유가 무엇인가.

비우면
행복하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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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네요.


하늘은 더없이 푸르르고
들녘의 벼는 노오랗게 익어가는 달콤한 오후입니다.


아직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로 들어오면 시원한 가을 바람이
온몸을 씻어주는 듯 합니다.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누런 논과 파아란 하늘 그리고 멀리 바다색까지
너무나 감격스러운 풍경에 흠뻑 빠져들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더 무엇이 필요하겠어요.
그저 행복하고 자유할 뿐!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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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푸른 자연, 깨끗한 물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히말라야의 감동스런 풍경과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자연의 천진함과

무한함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지켜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이 엄청난 파괴의 일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 모든 모순을 깨고 나부터 이 지구 행성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지라도 그 작은 것이 우주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윽하고도 강력한 공명의 힘을 가지고 주위로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히려 불편함이 주는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는 차원으로까지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면 차로 갈 것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나 부채를 들 수도 있으며,

물론 더 작게는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데서 출발해도 좋다.

온풍기나 보일러를 줄이는 대신 내복을 끼어 입을 수도 있고,

빨래를 너무 자주하지 않고, 비누 없이 세수를 해 볼 수도 있으며,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을 수도 있다.

이런 작은 '불편의 즐거움' 속에 지구를 살리는

엄첨난 계획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나만 환경을 살린다고 되겠느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할 때 그 겉모습은 작고 소박할지언정

그 힘은 무한한 공명과 울림을 싣고 전 우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순수 지혜의 실천의 힘은

곧 우주 전체의 힘과 연결되고, 전파되며,

강력한 동력의 단초가 된다.

내가 시작하는 것이 곧 우주가 시작하는 것이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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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기상이변들이 전 세계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이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가히 재앙적 수준이다. 그리고 이런 이변과 재앙은 앞으로도 더욱 빠른 속도로 더욱 거대한 크기로 계속해서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어쩌면 이 지구라는 별이 지금까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 엄청난 경고를 그다지 깊이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개발과 발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자연을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시키며 그 대신 돈과 욕심을 채우는 쪽에 완전히 인생을 걸었다. 어떤 사람은 그렇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살고 싶어 하며, 또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살도록 교육받고 있다. 

  가히 세상이 완전히 미쳐가고 있다는 말이 맞지 싶다.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지도자로 있을 때 보다 완전히 또 폭넓게 자연을 훼손시켜 개발시킬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고, 또 국민들 또한 얼마나 많이 개발시키고 발전시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경제인들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자연을 파괴시켜 자연 속에서 인간이 필요한 것만을 쏙쏙 뽑아냄으로써 얼마나 많은 돈을 벌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제3세계 국가들은 조금씩 조금씩 개발과 발전으로 인해 국토가 파괴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이제 비로소 서구사회를 조금씩이나마 따라가고 있다고 행복해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자연은 가만히 놔두고 저 못 사는 나라 자연과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시킬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불과 2~30년 만에 자동차 왕국으로 바뀌었는데, 13억 중국인과 11억 인도인들이 앞으로 2~30년 후에 너도나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그 큰 땅에 산과 숲을 밀어버리고 빌딩숲으로 주차장으로 만든다고 상상해보라. 어디 인도, 중국 뿐인가. 전 세계가 그나마 숲이 남아있고, 생명의 정신이 남아있는 수많은 나라들 덕분에 살고 있는데 그마저도 몇 십년 안에 다 파괴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 

  우리나라만 해도 벌써 소나무 제선충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라, 이 한반도에 백두대간에 소나무 한 그루 남아있지 않다면 그건 더 이상 우리가 살 터전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려 할 것이고, 지구가 아닌 달나라에도 개발과 오염, 공해라는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산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눈물을 흘릴 것이며, 모든 숲들은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다. 물론 뒤늦게 그 눈물과 시름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전파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때, 다 멸망하고 지구의 아름다움이 남아있지 않은 그 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방관자로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 여전히 나서서 자연을 파괴하고, 이 어머니 대지를 죽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인가. 이제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때다. 대자연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라는 가르침을 입으로만 떠들어 댈 때가 아니다. 이 아름다운 땅 지구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사사로운 욕심 충족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지구에 풀과 나무와 숲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생명의 끈도 끊어지고 만다.

  나 한 사람이 자각하고 생명 살림을 시작한다고 세계를 살려낼 수 있겠는가 하고 미리부터 포기할 것인가. 나 한 사람의 깨어남은 이 우주의 깨어남이고, 나 한 사람의 시작은 곧 법계를 감동시킬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내 앞의 작은 생명 하나를 살릴 때 이 지구는 다시 꽃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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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벼 베기가 한창일 무렵 경기도 가평의 한 공동체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은 두고 두고 내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마을이라고 해 봐야 한 2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모여 살면서 함께 농사를 짓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먹을거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아직은 거의 초보 단계의 공동체마을이다.

 

마을의 주민 대부분이 주로 20, 30대의 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 다른 여느 마을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은 농사일도 많이 서툴고 농사로 밥벌이를 하고 자급자족을 이어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점이 있다. 그래도 이 마을 젊은이들은 완전한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다. 스스로 자식들 교육까지도 시키려고 대안학교도 준비하고 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활기찬 꿈과 희망으로 이 마을은 얼마나 생기가 넘쳐흐르는지 모른다.

 

물론 어려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해 보지 않던 농사를 짓고 또 그 농사일로 버는 돈이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수단의 전부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또 사실 아직은 경제적으로 조금 힘에 겹다.

 

그러나 이들은 힘주어 말한다. 경제적으로 예전 보다 많이 어려워 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들의 자연과 함께 하고 농사와 함께하는 그 여유와 즐거움을 빼앗을 만큼은 아니라고,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욕심을 줄이면 되는 문제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밥 세 끼 먹고, 밭에 나가 일하고, 막걸리 한 잔 하며, 함께 모여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더 이상 욕심 부릴 게 뭐가 있겠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예전에 서울에서 직장 다니면서 매일 스트레스 받고, 자동차 공해며 매연에 시달리고,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고생하고, 온갖 소음과 과로에 시달리던 것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기있게 말한다.

 

 

이런 이 마을에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한다. 마을의 가장 큰 부자가 한 분 있는데 그 분은 부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스스로 종종 술도 사고, 밥도 사고, 필요하면 돈도 빌려주고 그런다고 한다.

 

어느 정도 부자인고 하니, 사무국장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 분인데 물론 그 일은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지만 그 일을 맡아 할 때는 한 달에 50만원씩 월급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돈 때문에 이 마을 제일가는 부자가 된 것이다.

 

그 50만원이면 이 마을에서는 정말이지 부유한 생활, 아니 조금은 사치한 생활까지 영위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즈음 같은 이러한 삭막한 세상에 월 50만원의 월급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이 마을 사람들은 참 행복이 어떤 것인지 소욕지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듯 보인다. 작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월급 100만원, 200만원, 아니 그 이상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경제적인 생활고에 찌들어 살고 있는가. 또한 이웃과 비교하면서 우리집은 가난하다고 열등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가. 문제는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만족하고 사느냐에 있다. 내 행복의 지수는 그대로 내 만족의 지수이지 소유의 지수가 아니다. 소유를 줄이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더없는 행복의 비결이다.

 

어떤가. 아직도 삶이 가난한가. 최소한의 의식주를 갖추었는데도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낀다면 그 가난은 물질의 가난이 아닌 마음의 가난이다. 마음이 부유하다면 설사 땅바닥에 누워 자더라도 풍족하지만 마음이 가난하면 온 천하를 손 안에 넣었더라도 궁핍을 면치 못한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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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밝은도량에는
온갖 나무와 야생화들
그리고 산나물과 약초들
하늘거리는 바람소리
바람에 낙엽 서걱이는 소리까지
가만히 앉아 느껴보면
온갖 대자연의 소리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새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게 들리는지 몰라요.
내가 가만히 들어 본 새소리만 해도
한 10가지는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그 울음소리들도 얼마나 신기하고 독특한지...

또 작년 가을까지 도량 주위에서 놀던
꿩 가족들도 겨우내 자취를 감추었는데
여름이 되면서 다시 도량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어디로 다녀 온 건지,
아니면 겨울잠을 자고 온 건지는 몰라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좀 야속한 건
이녀석들이 예뻐서 다가가는데
조금만 인기척이 들리면 냅다 꼬리를 빼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몹시 서운해요.

요즘에는
이제 본격적인 여름꽃들 나물들 산야초들이
한창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메꽃,
망초꽃, 고들빼기꽃, 원추리꽃, 괭이밥꽃, 씀바귀꽃,
수영, 소리쟁이, 별꽃, 돌나물꽃, 뱀딸기열매,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고
이렇게 내가 알 수 있는 것들 외에도
아직까지 그 이름도 쓰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관심을 가지고 산야초들
산나물이며 약초 꽃들을 바라보고 공부하다 보면
정말 한도 끝도 없기도 하고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한참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고 있는데
법당에서 지은 농사는
거의 수확이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산 중턱인데다
낙엽 떨어져 썩은 부엽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그냥 조금 개간해 씨만 뿌렸더니
이 녀석들이 처음에 조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기운이 달리는지 영 올라오지를 못하데요.

정말이지 혹독하게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 아래 마을 내려가면
누가 지은 농사고 할 거 없이
모두 다 잘 크고 싱싱한 채소들이 푸르른데
법당만 영 기척조차 없으니
신도님들께서 비료 조금만 뿌리자는 말이
왜 그리 혹하게 만들던지요.

내가 농사지어 팔아먹을 거였다면
아마도 당연히 비료를 주고 말았을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인근 나무아래에서 부엽토를 긁어다가
한 몇 일 깔아주고,

인근 마을에 인심좋은 모종파는 할머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했더니
좋은 거름을 한 포대 주셔서
그놈을 조금 섞어 뿌려주고는
씨앗을 다시 뿌려 보았습니다.

좀 늦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힘을 쓰고 올라오는 듯도 해요.

또 감자 심은 것들도
나무들 사이에 햇빛 조금씩 비치는 곳에 심었다보니
이녀석들이 햇빛 서로 받으려고 위로만 자꾸 크다가 넘어져요.
아무리 북주기를 해 줘도 고개를 떨구데요.

게다가 거름도 얼마 없다보니
줄기가 굵지는 못하고 위로만 크니
감자 농사도 영 시원치 못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조금씩 큰 것들도 있거든요.
저 아래 땅콩도 몇 개 안 되지만 잘 살고 있고,
상추도 거름 하나 없어서 하나도 안 크나보다 했더니
아래 모종한 상추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서 요즘 먹고 있습니다.

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이모님댁 모종을 몇 개 얻어 온
배추도 처음에는 영 안 클것 같더니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있습니다.

콩 심은 곳은
법당 있는 쪽에서 조금 먼 곳이라
아예 물도 주지 않고 심기만 했었어요.
물론 처음 심을 때는 그 날 저녁 비 오는 날을 택했지요.

그래도 올해에는 꼬박꼬박
비가 제 때 내려 주어서
아직까지는 콩도 제법 올라오고 있습니다.
물론 콩이 아직 달리지는 않았으니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요.

또 법당에서 한 100미터 떨어진 곳에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외, 호박
심어 둔 곳에도 거름이 덜 하다 보니
그리 크고 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더디게 크고는 있어요.

물론 모종 두세개가 이유없이 죽기는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죽은 곳 주변에 개미가 많은 곳도 있고,
칡뿌리가 방해하는 곳도 있어서
그런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내 농사는
모든 면에서 너무 게으르고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이 성격이 좋아 말씀은 안 하셔도
속으로는 안타까운 마음 한창일겁니다.

아직 많이 모르지만
그래도 전 좀 더 연구해 볼까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힘으로
농사도 자연이 지어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연과 하나되는 농사법.

내가 뿌린 채소씨가 잘 안 크잖아요.
그런데 그 곁에서 잡초들은 정말 잘 자라고 있거든요.
잡초들은 거름 없어도 잘 자라고
비료 뿌려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름이 없어서가 아니고,
비료를 뿌리지 않아서가 아닌것 같습니다.
씨앗에 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 생각해 봅니다.

씨앗을 그동안 너무 약하게 키웠던 거지요.
사람의 힘으로 돌보고 비료도 주고, 잡초도 뿌려주고 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클 수 있는 야생의, 자생의 힘을
사람들이 없애버리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요즘 나오는 무슨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들이
거의 그렇게 너무 약합니다.

자연의 것들은
따로 물 주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만 가지고도 잘 자라고,
거름이나 비료 주지 않아도
흙에 있는 것 만으로도 잘 자라고,
제초제나 농약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커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만 안 그렇다면
그 이유는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이 너무 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야생스럽지 않은
온실에서 조심스레 큰 여리디 여린 씨앗을
제 마음이나 신념만 가지고
야생의 잡초들과 경쟁을 시키다 보니
당연히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요즘 또 하나의 관찰이
어느정도 경쟁에서 지고 또 어느정도 이기는가
그것도 주 관심사 중에 하납니다.

아래 모종 심은 상추나 배추도
처음에는 시들시들하여 다 죽은 듯도 하고
영 거름이 없어 죽어가는 듯 하더니
그래도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식 다시 되살아납니다.

상추는 힘없이 그래도
다른 야생초들과 어렵게 겨루고 있어서 대견합니다.

상추 심은 곳에 피어났던
민들레 두 송이를 그대로 놓아두었었습니다.
민들레 잎이 크게 자라면 상추잎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그 영양가도 못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상추보다
그 곁에서 더 힘있게 자라나는 민들레 잎을
뜯어다가 상추처럼 쌈 싸 먹고 있어요.
그런데 이 두 녀석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상추는 힘겹게 커가고 있고
그 속도도 한참을 더디게 크는 반면에,
민들레는 그야말로 쑥쑥 커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조건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요.

요즘 같아서는
정말이지 농사지으려고 씨 뿌릴 것 없겠다 싶어요.
이렇게 민들레처럼 그냥 야생의 것들을
따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아니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따 먹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돕니다.

앞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요즘 밥상에 오르는 것들만 해도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토끼풀,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등이 있어요.
여린 것은 먹을 수 있고
조금 크거나 꽃이 피면 못 먹는다는 것도
알고보면 못 먹는다는 게 아니고
좀 억새서 먹기 힘들다는 말이거든요.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좀 게으르게 하고,
내 노력 좀 덜 들이면서
자연의 노력을 흠뻑 받을 수 있도록
대자연의 온전한 흐름에
턱 내맡기면서 자랄 수 있도록
참된 부처님의 농사가 꼭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농사를
발견했으면 하고
모든 이들이
그런 대자연의 부처님 농법으로
농사 지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완전 초보 농사꾼이
너무 말만 앞서는거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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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리]

요즈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밝은도량 주위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도량에
또다른 사랑이
마음 속에서 싹튼다.

봄이 오고
산에 도량에 꽃이 피니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이래서 봄이란
사람들 마음을 생기롭게 움트게 하는 계절.

연한 초록의 산빛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냥... 어찌 할 수 없게 만든다.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핀다는 말도 그냥 가슴에 팍팍 와 닿는다.

수많은 야생화들하고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새순이며 약초들 봄나물들이
얼마나 화알짝 신명나게 피어있는지
하루 종일 거닐며 바라만 보아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더구나
봄이 되고 보니
더욱 이 산의 멋스러움과 소중함이 더하다.

얼핏 보면
그냥 얕은 산이고
멋 없는 산일지 모르지만
이 산엔 그야말로 없는 것 없이 다 있다고 하면
조금 과정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불러주고 싶을 정도.

온갖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가
군락을 지어 피어오른 곳이 곳곳이고,
-이름을 명확하게 다 모르는 것이 너무 애석-

또한 작고 앙증맞은
우리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꽃들로
주름잎, 꽃마리, 냉이꽃, 꽃다지, 민들레,
제비꽃, 하얀 각시제비꽃, 양지꽃,
뱀딸기꽃, 별꽃, 산괴불주머니...
등이 피어있고,

나무도 주로
참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오동나무 정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곳곳에 예쁜 꽃들을 피워내는
이름모를 나무들이 봄 연출에 한창이고,

봄 밥상을 풍성하게 해 주는
두릅나무 새순도 막 올라와 있고,
고사리도 막 올라오고 있으며,
참나물 원추리 돋나물 민들레 제비꽃 꼭두서니 쑥 고들빼기도
봄나물로 무쳐 먹으니 입맛이 돈다.

민들레나 고들빼기는
쓴 봄나물의 명성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야생의 그것이라 그런지
시장에서 파는 재배된 봄나물에 비해
써도 너무 쓰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란 계절에
너무 더워 수분이 많은
수박이나 참외 같은 것이 많이 나오듯,
봄에는
춘곤증 같은데 좋은
쓴 나물 들이 많이 나온다고,
봄에 쓴 나물들은
법계에서 내려 준 선물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요즘 재배되는 나물이며 채소들은
그야말로 온실에서 고이 자라다 보니
모든 채소들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맛이고,
거의가 연하고 질기지를 못하며,
저마다 특유의 쓴맛이라던가 특유의 향들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

똑같은 비료주고, 똑같은 거름주고
늘 똑같은 땅에서 키워지니
맛도 다 똑같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온실이나 검은비닐 같은 것으로
경쟁할 수 있는 다른 풀들이 아주 자라지 못하게 막아 놓고,
심지어 재초제로 채소외의 다른 것들은 다 죽게 해 버리니
경쟁할 수 없어 생명력이 약화되고
연하고 당장 입에는 질기지 않고 달지 모르겠지만
그 내적인 생명력은 그냥 작살이 나고 마는 것이다.

사람도 저마다 특유의 삶이 있고, 향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이 가지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그는 그 자신의 모습으로써
부처님의 성품을 확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특이하게 보일 것은 없겠으나,
요즘같이 교육도 똑같이 시키고
똑같은 것들만 똑같이 머릿속에 주입을 시키고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먹을거리에, 똑같은 주거환경이며
똑같은 TV를 보고, 책을 읽으며, 삶의 학습을 받아오고,
돈, 명예, 권력, 학벌, 등 똑같은 삶의 욕망을 삶의 제일가치로 알고
똑같은 삶의 방식을 따르다 보니
저마다의 색깔이 없어지고
'자기자신'의 모습으로 나툰
자신만의 화신불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나답게 살 때
그것이 가장 진리답게 사는 것이고,
부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자연도 그러하지만
애석하게도 요즘의 대자연은 인위적인 힘으로 인해
자기자신의 삶의 모습을 훼손당하고 있어 안타깝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도량 주위에 돋아난 봄나물들만 캐어 먹어도
어지간한 채소는 농사지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천으로 먹을 것이 널려있으니 말이다.

모를 때는 그냥 다 잡초라고 치부해 버리고 지나치지만
조금만 알고 나면 봄들녁의 새싹들은
그야말로 다 먹을거리가 된다는 것이 신비로울 정도다.
무슨 무슨 대형 마트에 가서 에어콘 바람 쐬가며 쇼핑도 하고
카트를 끌고다니며 채소를 고르는 것 보다
조금 덥더라도 차라리 산으로 들로 호미 하나 들고 뛰어들어
자기 자신의 무한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은 어떨지.

사실 올바른 농사란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의 노력을 들여
심고 물주고 뿌리고 가꾸고
나아가 농약주고 풀 뽑아주고 비료에 재초까지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을 생각했을 때,
또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인 현재의 농사법을 생각했을 때,

그저 대자연에서
제 스스로 씨앗 뿌리고 가꾸고 만들어 내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먹거리일 것이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것을 필요한 만큼 가져다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온전하고 깨어있는 농사고 농부의 일이 아닐까.

그랬을 때
인간의 노력과 욕심, 또 반환경적인 어리석음을 투여해서 일구어낸 먹거리 보다
더 생명력이 강할 것이고,
더 온전한 영양이 깃든 먹거리가 될 것이며
온전한 삶과 건강의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법계에서 내려 준 선물이고,
부처님의 음식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산은,
대자연은
가만히 두어도
날마다 비옥해 지지 않나.

물주고 가꾸고 비료주고
농약이며 재초재 비료 뿌려주고
갈아주고 잡초 뽑아주고 북주고
그러기 위해 온갖 것들을 돈들여 사야하고
노동력을 탕진해야 하며
많이 수확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뭐 그런 것 하나도 하지 않더라도
산은 항상 비옥하며
항상 그 자리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숲을 가꾸고
모든 생명들을 품어내고 있다.

그것이
참된 법계의 모습이고, 진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우리 사람들도 자연을 가까이 할수록
진리와 가까워지고
행복해지며
평화로움이 내면에 깃드는 것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법신 부처님을 닮아가는 것.

봄 따스한 햇살에
앞다투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봄의 생명을 보며
내 안의 생명도 한없이 피어남을 느낀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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