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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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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나를 비춰준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인연이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먼 사람과의 관계도 바를 수 없다. 만약 가까운 사람과는 바르지 못한 관계를 가지면서 먼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여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과는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지면서 먼 사람과는 친하고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그만큼 겉과 속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의 거울이며, 바로 내 모습의 나툼이다. 내 업식만큼만, 내 그릇의 크기만큼만 이 세상은 내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던 딸이 아버지 같은 사람 정말 싫으니 남편감은 죽어도..

‘쨍!’하는 적연부동의 순간 – 안나푸르나 순례(5)

사우스와 히운추리의 일출 이른 새벽,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눈이 뜨인다.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란 사람처럼 앞마당으로 뛰어 나간다. 여전히 새벽별이 하늘을 수놓고 있지만 동녘하늘이 깨어남과 함께 별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어스름한 아침, 어둔 이불을 걷어치우는 촘롱 마을, 그 위로 우뚝 선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와 히운추리(Hiunchuli, 6441m)의 기상이 초연하다. 시간은 정지된 듯 정지된 듯 그러나 침묵의 새벽을 뚫고 쏜살같이 흐른다. 어느덧 창백하던 새벽빛이 황금빛으로 바뀌며 사우스와 히운추리 설봉의 저 위쪽부터 서치라이트를 비추듯 빛이 비쳐 내려오고 있다. 사우스와 히운추리가 금빛 옷을 차려입고 화려한 대자연의 공연을 벌이는 동안 마차푸차레(M..

히말라야의 밤 하늘, 별똥별 관찰 – 안나푸르나 순례(4)

촘롱의 밤하늘, 이것이 별빛이구나 촘롱의 초입 즈음에 한 두 채 작은 게스트 하우스가 보인다. 그런데 이 히말라야 산중 마을에, 그것도 지금까지 한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이곳에 익숙한 한글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내용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간다. 한국인이 많은 것인지,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주인이 사는 것인지, 한국 라면에 김치찌개 심지어 한국식 백숙까지 해 준다니! 촘롱은 지나 온 간드룽 보다도 더 크고 더 장대한 품으로 나를 이끈다. 산위 한 쪽 능사면 전체가 저 위 봉우리부터 저 아래 계곡까지 온통 게스트 하우스 천지다. 그 사이 사이로 중간 아래쪽 부터는 평범한 이 곳의 원주민인 구릉족들의 삶의 터전, 평범한 시골 농가가 펼쳐져 있다. 당연하다는 듯 제일 꼭대기의 게스트 하우스..

나의 전생은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 – 안나푸르나 순례(3)

2일차 산중 도시, 촘롱을 지나며 밤늦도록 빗줄기가 이어지더니 이른 새벽 빗물 머금은 산과 나무와 풀들과 논의 벼까지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고 생기어린 춤을 춘다. 밤새 비는 그쳤고 비 그친 산은 더없이 개운하고 청명하다. 간단히 베지누들수프(야채라면)와 직접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소에게서 짜 끓인 우유로 만든 찌아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떠난다. 오늘은 간드룽을 거쳐 촘롱(Chhomrong, 2170m)까지 갈 계획을 잡고 여유 있는 느린 걸음을 옮긴다. 한두 시간 산길을 오르니 간드룽을 만난다. 얕은 산 정상 즈음에 올망졸망 게스트 하우스들과 시골 농가가 모여 있는 우리나라 작은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그래도 산에서 처음 만나는 규모 있는 도시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비난과 험담에서 자유로와지려면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평가를 내린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아주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그 부정적인 말의 위력에 굴복당한 채 그런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 깨어있는 의식으로써 그 말이 그저 아무 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그의 단편적인 관점일 뿐이며, 그 말은 진실도 거짓도 없는 중립적인 에너지일 뿐이다. 그 말이 힘을 가질지 말지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별 의미 없이 쉽게 내뱉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언제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함로써 스스로를 그 말에 자신을..

꺼려지는 것들과 만나라

우리의 몸과 마음 가운데 내 스스로 마주하기를 꺼려하는 부분, 피하고 거부하려고 애쓰는 부분이야말로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만들며 나아가 질병을 일으키게하는 원인이 된다. 자신의 괴로운 과거 기억들과 만나고, 싫은 성격과 대면하며, 몸의 아프고 불편한 부분을 관찰하고 느껴보라. 내가 피하려고 애쓰는 부분으로 인해 내가 점점 고통받고 있다! 꺼려지는 부분과 만나라. 만나고 느껴보고 대화하며 관찰해 보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길 선택할 때 길은 열린다.

화엄성중, 관음보살은 진짜로 있나요?

화엄성중이 진짜로 있나요? 관음보살님께서 진짜로 중생을 구제해 주실까요?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극락 정토가 실제로 존재하나요? 영가천도는 진짜 가능한 것인지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사실 방편법을 말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입을 벌려 하는 모든 말들이 방편법입니다. 근본법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말도 꺼낼 수도 없고, 어떻게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함과 동시에 방편법이 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사실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방편법문입니다. 본질에 가까이 간 법문들도 있지만, 그 또한 엄밀히 말한다면 세속제(世俗諦)인 언어를 빌어 설명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극락세계도, 영가천도도, 화엄성중도, 불보살의 가피도..

초심을 유지하려면/짜증이 날 때는?

초심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성경 필사를 통해서 넘치는 감사의 마음을 경험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사의 마음은 줄어들고 의무적으로 필사를 하는 모습이 되어버린 후 마음이 너무나도 차가워져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중 불교와 절 수행, 스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 안에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다시 보았습니다. 첫 사랑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그 마음, 그 초심을 겨우 찾았는데, 이제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게요. 그 초심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마음이 잘 그렇지 못하죠. 계속 변하고 바뀌어요. 그런데 그런 변하는 마음 또한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변하는 마음에 대해 시비를 걸 필요도 없고, ..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우리의 인생에는 직접적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의지로써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괴로움 없는 삶을 바란다면,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가게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점만 잘 깨달으면 된다. 삶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써 행하고, 할 수 없는 것들은 애써 붙잡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별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할 수 없는 것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욕심내고 집착하면서 어떻게든 바꾸어 보려고 애쓰는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의지로써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또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 있..

타인에 대해 대화할 때

대화를 할 때는 가급적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말은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에 대해 칭찬하든 비난하든, 좋게 말하든 나쁘게 말하든 타인에 대한 화재를 될 수 있는 한 끌어들이지 말라. 누군가에 대한 판단, 비교, 평가를 대화의 주제로 삼지 말라. 누군가가 대화중에 상대를 비난할 때, 동조하기도 동조하지 않기도 어렵다. 어떻게 하든 양 쪽 다 대화 뒤에는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가장 좋은 대화는 제3자를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우린 타인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를 평가할 만큼 잘 알지도 못하며, 무엇보다도 판단 평가 해석 자체가 어리석은 분별심과 번뇌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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