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처럼, 수용과 용서의 호흡관도 들숨과 날숨이라는 '지금 여기'의 호흡에 맞춰 호흡이 들어 올 때는 '수용합니다' 라고 말하며, 호흡을 내쉴 때는 '용서합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호흡에 맞춰 수용과 용서라는 생활수행 최상의 진언을 외는 수행법이다. 수용과 용서를 생활수행 최상의 진언이라고 하였는데, 말 그대로 수용과 용서야말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데 있어, 최상의 '진리의 말' 진언이기 때문이다. 수용은 생활 속에 닥쳐오는 일체의 좋고 나쁜 경계를 분별하지 않고, 판단이나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명상수행과 불교의 핵심 실천법이다. 왜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내가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지가 지은 업에 대해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