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17:15 벽소령에 다시 해가 뜨고...
엊저녁 처럼 오늘 새벽
난 여전히 이렇게 산장에서 조금 떨어진
한 켠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제 지던 해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산위로 떠오르는 해를 가만히 앉아 마주하려니
그 감흥이 가슴 깊은 곳을 퍽퍽 쳐 댄다.
왼쪽 산봉우리에서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오른쪽 산장에선 길떠날 사람들로 분주하다.
계속 그래왔지만 오늘은 특히나 여유가 넉넉한 날이다.
벽소령에서 장터목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4시간,
쉬엄 쉬엄 걷고 쉬고 해도 5-6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라고 한다.
덕분에 이 언덕위에서 차분히 아침 시간 좀 보내고
사람들의 출발 행렬이 끊어질 무렵
느즈막이 아침밥을 해 먹고 떠날 생각에 있다.
이렇게 앉아 산 사람들 움직임을 보면 또다른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절 떠난 지 5일째를 맞고 있다.
이처럼 산에서 하루를 맞고 산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산 친구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며
변해가는 산 모습에 내 몸 또한 비추고 살면 참 행복할 것이다.
세상 많은 인연들 그 얽매임도 다 놓아주고
오직 자연과 벗하며 나 자신을 찾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배 고프면 밥 해 먹고, 찬이야 많을 것도 없고
이따금 가까운 장에 나가 주섬 주섬 챙겨오면 넉넉할 것이다.
나 자신과 매일 매일 대화를 하고
또 산에 사는 산벗들과 함께 어우러져 가족을 이루겠지.
봄이 오면 생명 돋아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여름날 산벗들 그늘 삼아 우거진 산 속에서 눈과 마음을 씻고,
가을에는 단풍잎,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씻으며 살 것이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떨어져 내 삶을 소중히 가꿀 수 있고,
또 그렇듯 나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도 세상과 어우러 질 수 있으며
세상에 피해 안 주고, 할 수 있는 한 작은 베품을 실천했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은 저쪽 산기슭에 터프한 목소리를 가진 새들이
개짓는 소리처럼 산사람들의 새벽잠을 깨우고 있다.
그 소리에 압도당한 것인지
어제 저녁 주위에서 까~악 대던 까마귀들은 소리를 감추고
휘휘 내 주위를, 산장 주위를 날기만 한다.
벌써 해가 산봉우리로 한 뼘은 올라와 있다.
천천히 아침 밥 지어먹고 또 새로운 걸음을 맞이해야겠다.
정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다음 발을 향해 걷고,
매 순간 순간을 향해 차근한 발걸음을 내디뎌야지.
처음 산에 오르겠다고 마음 내었을 때부터
준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부터
우리 안의 충만한 생명력은 충분히 발현되고 있는 중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저멀리 산 그림자들이
이산 저산 층층이 포개어져 그윽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셋째날, 11:12 망바위 위에서...
이렇게 보니 바로 코앞으로 저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인다.
천왕봉 바로 아래 민둥산처럼 제석봉이 있고
그 아래로 오늘의 여장을 풀 장터목 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하고 보니 조금 먼가...!
조금 멀리 보이긴 해도 저기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이고,
그 왼쪽 바로 아래 민둥민둥해 보이는 봉우리가 제석봉,
그 오른편 아래로 아주 작게 보이는 산장이 장터목 산장이다.
또... 제석봉과 비슷한 높이로 천왕봉 오른쪽의 봉우리가 연화봉...
어제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더니,
오늘은 작은 구름들이 너풀 너풀 피어올라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청청한 가을하늘. 이 안에서 지리산을 느낀다.
저 하늘을 벗삼아 나홀로 피어오른 우뚝 선 고목처럼...
오늘은 어제보다도 한적하고 여유있게 일정을 시작해서 그런지
먼저 다들 가버리고 어제처럼 앞뒤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고요하며 적적하다.
이제 내일이면 벌써 이 산을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니
서운한 마음에 발길을 한 걸음 내딛는 것 조차 아쉽게 느껴진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 가겠지.
일상. 일상이라... 나의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의 삶을 살지 말자.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보다는 날마다 살아가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의 일상으로
돌아감도 없이 돌아가자.
그리하면 나는 언제까지나 지리산을 걷고 있을 것이다.
오르고 내린다는 것 조차도, 일상도 여행도 없이
언제나 새로운 만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셋째날, 13:45 세석평전 촛대봉 위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또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 섰다.
세석평전...
아. 지리산이란...
한발 한발 걸을수록 그 아름다움에 목이 메여온다.
첫째날부터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고
가슴 탁 트이는 지리산의 당당한 우뚝 섬을 바라보고는
설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지리산이란 녀석은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그 아름다움과 웅대함이란 점차적으로 끝도 없는 최고조를 향해 내달린다.
꿈결 속에서나 보았음직한,
아니면 행여 영화 속에서나 보았음직한 푸른 초원...
아름다운 산... 산... 도무지 발걸음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냥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그냥 꽉 막히고
내 속 뜰과 이 풍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직접 대화를 하고 있는 듯.
이럴 때가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풍경을 보고 나면 이렇다, 저렇다 하고 판단을 한다.
아름답다, 웅장하다, 그저 그렇다, 전에 본 산보다 못하다느니 하는 등...
그럴 때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의 산을 볼 수 없다.
과거의 판단에 갇혀 지금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풍경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 오직 한번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게 다가 온 온전한 아름다움일 뿐이다.
다음 어느 때에 내가 지리산을 다시 찾을 것이지만
그 때의 모습은 또다시 전혀 새로운 순간일 뿐. 지금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촛대봉 돼지바위 위에 홀로 앉아
이 아름다운 자연과 내 속 뜰의 본래 향기가
내 생각이나 판단, 기억, 이미지, 과거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순간, 우리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어떤 과거의 기억을 애써 불러들여 비교하지 않아도 좋고,
어찌 어찌한 아름다움이라고 멋들어진 수식어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때 우린 아무런 사량 분별도 없게 되고 온전히 사물을 대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바위 저쪽 멀지 않은 아래에서는
어느 산악회에서 오신 듯 보이시는 분들이 조를 이뤄 앉아 계시고,
그 가운데로 한 분께서 툭 터진 목소리로 판소리를 한 가락 읊고 계신다.
그 소리꾼의 소리가 조용한 지리산을 쩌렁 쩌렁 울리며
한 폭의 고전처럼 내 안에 맑은 샘을 고이게 한다.
이제 어느 정도 쉬었고, 앉아 있었으니
다시 장터목을 향해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으니...
이런 자연 속에 혼자 살면 내 안에 맑은 샘이 흐를 것 같다.
그저 혼자있음, 그 하나 만으로도,
우리 안의 영혼은 맑고 향기롭게 빛을 놓아줄 것이다.
다만 혼자있음의 외로움에 발버둥치며
이리 저리 휩쓸리지만 말고 다만 지켜볼 수 있기만 하다면...
몇 달 전,
실상사에 갔을 적에 도법스님께서
지리산에 대해 왜 그렇게 끓어오르는 속 내를 토해 내셨는지,
지리산 지리산 하시며 왜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지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다시한번 만나 뵙고 다시금 지리산 이야기를 경청해 봐야겠다.
이 곳 세석평전은 여느 산들과는 달리
크고 높은 나무들 대신에 얕으막하지만 아기자기한 나무들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그런 곳.
이런 곳 한 켠에 오두막 하나 짓고 살면 참 좋겠다...
또한 이 곳은 세석 산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한동안 앉았다가 떠나려는데 세석산장위로 유일한 교통수단인 헬기가...
말로써 토해낼 수 없는 이 아름다움. 이 간절함.
내 안에 맑은 숨결로써, 웅대한 삶으로써 춤출 수 있길...
이 곳에 앉아 있으니 전보다 더 가깝고 선명하게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 활짝 펼쳐진다.
이제 다시 출발... 연하봉으로...
셋째날, 16:32 제석봉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제석봉 자락 드넓은 고목숲이 꿈처럼 펼쳐진다.
얕은 풀들 사이로 드문 드문 솟아오른 고목들이 서글픈 장관을 이룬다.
고목...
살아서 백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제석봉 우뚝 선 고목들 사이로 하루 해가 지고 있다.
저 멀리, 저기 저 편 반야봉 나란히 우뚝 선 두 봉우리 위로
해가, 붉은 해가, 오늘 하루 지리골 곳곳을 우려내어
여행자들에게 향기를 밝혀 준 하루 해가 이렇게 지고 있다.
해는 조금씩 떨어지고 어두워질새라 길을 걷는 산사람들도
모두들 급히 발걸음을 산장 쪽으로 내딛고 있다.
그 와중에 제석봉 곳곳에 나처럼 반야봉 일몰을 보겠다고 올라와
저홀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드문 드문 보인다.
드디어...
어둠이 깔린다.
제석봉 머리 위로...
이런 광경을 마주하고 앉아있노라면
누구나 그렇듯 마음은 감상적이 되고 이성은 사라져 버린다.
이래 앉아 멍 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참 감동을 잘 한다 싶다.
남들은 시답잖다고 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이 흘러 내려
어설픈 비웃음을 샀던 일들이 종종 있어온 터.
햇님이 마저 떨어지고
제석봉에는 어둠이 낮게 깔린다.
토닥토닥 돌계단을 내려오니 장터목 산장에는
사람들로 가득 붐비고 여기 저기에서 저녁을 해 먹느라 분주하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느즈막이 잠에 든다.
넷째날, 07:30 천왕봉 일출을 뒤로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해돋이를 보겠다고
새벽 4시부터 산장안은 시장터처럼 부산하다.
조금 더 눈을 붙이려 해도 도무지 잘 수 없을 지경.
하기야 내 마음도 자는 마음이 아니라 깨어나는 마음이다.
아침 해를 보겠다고 이렇게 설레였던 적이 있던가.
충청도 촌놈이 처음 바닷가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겠다고
나홀로 찾아 간 고3 되던 해 새해 첫 날 아침.
강릉의 경포대에서 마주했던 일출도 이보다 더 설레이지는 않았을 터.
그러고 보면 이놈의 지리산이란 곳은
나를 첫째날부터 꼼짝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두터운 옷 안에 끼어 입고 짐은 산장에 놔두고
간단한 복장으로 일어선다.
장터목 우측 산길로 발길을 내딛는다.
산장 안에서는 그렇게 부산을 떨던 사람들이
왜 한 명도 보이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어둡고 차분한 밤길을 별들 벗삼에 걷는 운치가 여간 즐거운게 아니다.
바람은 조금 차지만 이 정도 추위야 몇 시간인 들 맞아주지 못하겠는가.
걸으면서 계속 내 마음 벗, 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을 바라보게 된다.
어제도 그제도 또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의 별들은 총총하다.
아마도 서울 사람들은 이런 하늘 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어제밤엔 서울에서 왔다는 두 길벗과 별빛아래 작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별들을 보며 산을 보며 즐거워 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이런 작은 아름다움,
매냥 있어 온 우리 곁의 이런 작은 행복을
그동안 우린 너무 많이 놓치고 산 것은 아닌가.
별빛을, 저 산이며, 사소한 풀들, 그 속의 풀벌레 소리,
가을 낙옆 떨어지는 소리, 이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되는 선택받은 사람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행복들 중에 으뜸은
‘나’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이다.
돈, 명예, 권력, 지위, 학벌, 지식, 이성...
뭐 이런 것들에서 오는 ‘나의 행복’들이 아니라,
별, 하늘, 달, 나무, 산, 풀벌레, 낙엽...
뭐 이런 항상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충만하게 있는,
없어질 수도 없고, 애써 만들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또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또 살 필요도 없는,
이런 데서 오는 ‘우리 모두의 행복’이야말로 참행복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말 행복한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고,
아주 사사롭고 척박한 가짜 행복에만 다들 목을 메고 사니 말이다.
이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세상에 몇 안되는 선택받은 사람들일 것 같다.
그 선택은 누가 하는가. 바로 내가 하는 것.
첫째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종주를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있다.
노고단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치락 뒤치락 하면서
눈인사도 주고 받고, 짧지만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눈 사람들.
이렇듯 스쳐가는 숯한 사람들...
이 모두가 산에선 허물없는 친구이자 길벗이다.
유유상종이라고...
마음의 파장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알 듯 모를 듯 느껴지는 짠한 인연들이 있다.
이렇게 산에서 몇 일을 함께 한 분들도 그런 인연일 수 있다.
한 시간 남짓 처음 찾는 밤길을 터벅 터벅 걸어 오르자니
가파른 바위 위를 걷고 있음을 알았다.
바람도 점차 세어지고, 분위기도 재법 스산하다.
천황봉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가장 높은 봉우리 쪽으로 올랐다.
마지막 한 발을 딱 내딛는데 우뚝 솟은 무언가가 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잠시 알 수 없는 찡한 감동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온몸을 휩싸고 지나간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저 쪽 봉우리 쪽에 한 두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을 뿐.
아침 해를 보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이 높은 곳에 이렇게 우뚝 서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아련한 설렘을 가져다 주고 있다.
아직 사람들의 인기척은 없다.
저 멀리 걸어 온 뒤를 돌아보니
장터목에서부터 이 곳에까지 일열로 늘어선 불빛들이 장관을 이룬다.
저들 모두가 이 새벽 첫 시작을 함께 맞이하려는 좋은 벗들이다.
1시간여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천왕봉은 인파로 가득하다.
모두들 추워 떨면서도 꾸준히 지켜 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이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이렇게 함께 서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도반의 향기라는 것도 이러한 것이겠지...
물론 홀로 우뚝 선다는 것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흥겨운 일인가.
내가 오르려고 하는 속 뜰의 정상에서 또한
향기로운 도반들과 어께동무하고 우뚝 설 수 있기를 빌어본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붉은 기상이 떠오른다.
일출...
이런 장관을 내 생에 또 어느 곳에서 보았단 말인가.
어느새 지리산은 내 안에 새로운 귀의처로 자리잡고 있다.
어떤 사람이야 이 정도를 가지고 무슨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일출은
매냥 있어 온 편히 자고 일어난 뒤 느끼는 평범한 일상 속의 일출이 아닌
4일 간의 모든 경험과 느낌들을 머금고 있는 일출인 것이다.
저기 멀리 반야봉, 그리고 노고단이 보일 듯 말 듯,
저 길을, 저 머언 길을 걸었으리라...
저기 보일 듯 말 듯 머얼리 보이는 희뿌연 높은 봉우리가 반야봉,
그 왼쪽으로 뾰족 솟아오른 봉우리가 노고단.
저기에서부터 이 자리까지 4일이 걸린 것이다.
이젠... 내려갈 일이 남아 있는데 그냥 내려갈 수가 없다.
도무지 이 아련함을 쉽게 떨치고 발길을 내딛기 어려울 지경인 것이다.
내 작은 마음이야 이렇듯 아쉬움이겠지만서도
이 산, 지리산은 그냥 이렇게 당당히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어떤 한 여행자가
4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를 한참이나 생각했었노라고 했던
그 녹록하고 아련한 여흥을 이제사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언제까지고 이 산은 그냥 여기에 이렇게 있을 것이다.
내가 내려가더라도 지리산 이 백두 대간 우뚝 선 산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딱 버티며 섯을 것이다.
내 안의 지리산도
늘 그 자리에서 당당히 버티고 서 있을 터.
내 안의 우뚝 선 산...
이제 내려가자. 일상으로...
아니 또다른 내 안의 지리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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