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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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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완수하는 법

삶의 목적은 매 순간의 삶을 충분히 경험하는데 있다.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다. 주어진 삶은 경험되어지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주어진 순간순간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내는것이 전부다. 좋다고 집착하지도 싫다고 미워하지도 않은 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어떤 판단도 가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충분히 경험되어지도록 하라. 판단, 두려움, 거부, 욕망, 화, 생각,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온전히 경험되고 느껴질 때 바로 그 순간의 목적은 완수되고 삶은 눈부시게 빛난다. 매 순간의 삶을 고스란히 느끼고 경험할 때 존재는 끊임없는 새로움으로 깨어난다.

마음껏 삶을 경험하고 배우라 - 내가 확장되는 즐거움

금강경에서는 아상을 타파하라고 말한다. 아함경의 가르침에서는 무아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설하고 있다. 아상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집착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의 이른 아상타파의 가르침을 일부 왜곡되게 해석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아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하고,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며, 무아, 무심, 무상, 무집착, 무소유를 말하는 불교의 공사상, 무아사상을 허무주의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실제 불자들 사이에서도 불교를 공부하면 집착도 다 버려야 할 것 같고, 성공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공에 치우친 것이다. 그래서 중도의..

원하는 것을 이루는 4가지 방법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하여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여기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을 도울 수 있는 4가지 방법, 그리고 왜 그동안 그 원리가 내 삶에는 적용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원인이 있다. 만약 마음먹은 대로 삶을 창조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다음의 네 가지 중에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우선 첫째로, 우주법계는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동체대비라는 진리의 장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남들에게 행하는 것이 고스란히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써 나의 창조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남들에게 ‘너 좀 망해 봐라’ ..

남편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요

현실적으로 남편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부처님 앞에 일 잘되게 해달라고 하기가 죄송스럽지만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들 얼굴을 보면 부처님께 내 욕심을 담은 기도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바라는 기도, 기복적인 기도를 해도 될까요?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세속적인 빌 것이 있다는 말인데, 사실은 빌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다면 사실 마음의 이면에 무엇이 연습되고 있는지를 보세요. 그 이면에는 '지금 남편 하는 일이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미래에는 더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즉 잘 되게 해 달라는 말 이면에 우리는 사실 '남편 일이 잘 안 된다'는 말을 법계를 향해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상과 무아면 누가 깨닫나요?

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라고 합니다.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 해탈을 하는지요?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가 '자신이 깨달았다'는 상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아가 남아 있고, 아상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깨달은 자'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자라는 육신이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에 갇힌 생각이 없다는 말이고, 무아와 무상을 완전히 자각한 채 고정적인 실체관념을 비워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는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연기한다'는 ..

공하다면, 참회도 용서도 필요 없나?

내가 없는 것이라면 참회해야 할 나도 없는 것 아닌지요? 모든 것이 공하다면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또 내가 없는 것이라면 무엇에 감사할 대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업도 없는 것인지요? 만약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결정짓고 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무기공에 떨어지는 거예요. 무애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참회도 안 하고, 감사도 안 하고, 악업도 마구 지으면서 업을 받을 나도 없다고 한단 말입니다. 주로 그런 경우는 무아, 공, 연기, 중도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머리로만 이해해도 그렇습니다. 무아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가 없다'라고 하는게 아니예요. 이렇게 내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없다고 했느냐? 그건 이런 내가 없어서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집니다

어디에서 보니 '남에게서 보는 것은 내안에도 있다'는 말이 있데요. 모든 경계가 나의 과보로서 온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업의 나툼'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경계를 내안에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바깥 경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비춰져서 내 안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우리는 인식하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비춰진 경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지만 우린 그 경계를 가지고 좋다고 나쁘다고 분별하잖아요. 그 자체가 바깥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내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외부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

안주할 곳은 없다 끊임없이 변하라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 흐름을 벗어나려 하지 말라. 변화는 진리이다. 그러니 변화를 붙잡으려하지 말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변화한다는 사실이야 말로 온전한 진리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말라.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며, 감정도 변하고, 사랑도 미움도 변한다. 사상이나 견해도 끊임없이 변하고,욕구나 욕심도 변한다. 명예나 권력, 지위도 언젠가는 변한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운..

삶은 그 자체로 우주적 이치, 크게 긍정하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것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분명하게 짜인 인과의 연극, 법계의 연극 각본에 따라 꼭 그때, 그 장소에 그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모든 사건은, 그것이 너무 아프고 괴로운 일일지라고 그것이 그 순간의 최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괴로운 일일지라고 우리를 돕기 위한 우주 법계의 배려다. 즉 지금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다음에 더 큰 일로 우리를 괴롭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은 진리의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는 늘 어머니의 품처럼 한없는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돕고 있다. 다만 나쁜 일, 괴로운 일, 아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 뿐이다. 사실 어떤 괴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건 괴로운 일이 아니라 다만 그냥 ..

상대방과의 갈등 해결법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남편, 아내, 자녀, 친구... 누가 되었든 주위의 누군가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통해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욕심이고 어리석음일 뿐. 모든 타인은 행복이 아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내 곁에 온 것이다! 모든 좋고 나쁜 관계 속에서, 매 순간의 마주침 속에서 마땅히 삶을 깨달을지언정, 행복을 구하지는 말라. 그랬을 때 비로소 모든 인간관계는 곧 갈등과 구속을 너머 깨달음으로 피어난다. 모든 관계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음을 잊지말라. 만약 당신의 남편, 아내, 동료, 자녀가 지혜롭지 않고 멋대로라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배우자가 빨리 깨닫기를, 변화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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