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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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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들으라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렇듯 세상을 창조해 내는 생각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혜롭고 본질적인 삶은 생각과는 무관하다. 생각이나 관념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로 '나'와 관련된 것들이다. 아상, 아만, 아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를 궁구한다. 그렇다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말란 말인가? 말로 표현하기 부족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깊은 단어를 찾아본다면 직관 혹은 영감이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직관은 생각보다 더 깊다. 가슴이 머리보다 더 깊다. 그것은 때때로 내 안에 있는 붓다의 메시지를 품고 온다. 생각과, 번뇌, 욕심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

생각을 놓아버리는 연습

내면에서 올라오는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문득 바라보고는 어이없이 헛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정말이지 끈질기고 지치지 않으며 하염없는 솟아오른다. 우리 안에서는 하루에 수천에서 많게는 2~3만 개 정도의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생각의 홍수 속에 파묻혀 길을 잃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많으면 안되니까 생각을 없애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하면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 쉽고, 생각을 없애려고 하면 생각을 대상으로 한바탕 싸움을 치러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생각을 잘 다루는 방법이라 보기 어렵다. 지눌스님의 말씀처럼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그 망상을 관찰’하는데 그 ..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연기법은 일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이다.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곧 너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상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외적으로 투영되어 나올 수가 없다. 내가 목격하는 모든 문제는, 그것이 제3자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와 관계된 문제이며, 나아가 바로 ‘내 문제’라는 것이다. 그 모든 세상의 문제가 나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는 어떤 사람이 문제나 고민을 가지고 올 때 그 고민을 들어 주고 답을 내려 주지만, 우리 마음에는 그것이 ‘네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것은 ‘너의 문제..

마음을 열면 진리가 초대된다

삶은 언제나 행복이며, 부, 지혜, 심지어 깨달음 조차 매 순간 우리에게 보내주고 있다. 아니 삶은 항상 진리 그 자체이며, 행복, 지혜, 평화, 깨달음 그 자체로써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나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문 앞에 서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초대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지 그것이다. 닫아걸고 틀어막지만 않으면 문 앞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던 행복도, 평화도, 사랑도, 깨달음도 그 모든 진리의 요소들이 줄지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언제나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에 방어벽을 치고 진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다. 물론 문을 열기도 한다. ..

승자와 패자가 모두 이기려면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고 그 마음을 거두고 성냄을 버려라. 도의 길을 가는 데에는 인욕이 가장 으뜸이니라. [법구경] 서로 싸우지 말라. 말로써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하면 평생을 싸워도 끝이 없다. 오직 침묵으로 참고 용서하는 것만이 모든 다툼을 끝내나니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존귀하고 존귀하다. [중아함경] 언쟁하지 말고, 서로 다투지 말라. 옳고 그름을 가려 승부를 내려고 하려면 평생을 싸워도 끝이 없다. 옳고 그르다는 것은 고정되게 정해진 바가 아니어서 고정된 실체가 없다. 자신에게는 옳은 것도 상대에게는 그를 수 있고, 이 상황에서는 옳은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그를 수도 있으며, 똑같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인연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할진데 내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고집하면..

화가 천상을 불태운다

누가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이 불끈 치솟아 오를 때 온갖 장애가 일어난다. 번뇌가 끝이 없지만 성내는 것은 그보다 더하다. [선가귀감] 치열한 번뇌에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성냄의 번뇌가 가장 심하니 그 불은 욕계로부터 첫째 선정의 하늘까지 태운다. [출요경] 사람의 번뇌에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번뇌는 성냄이니, 이는 내 마음의 온갖 선한 종자들을 다 태우고, 내 안의 모든 공덕이며, 내 안의 수행력, 복력까지 다 태우고 만다. 아무리 수행을 잘 하고, 복을 많이 베풀더라도 한 생각 크게 화를 내어 상대의 마음에 두려움을 품게 했다면 그 공덕은 일시에 소멸된다. 보시 가운데 가장..

비난 받는 즐거움

나에게 비판해 주는 사람 보기를 보물 지도와 같이 하라. 근처에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나의 상황은 더욱 나아진다. 그는 나를 가르치고 나의 잘못된 행동을 말려준다. 훌륭한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를 싫어하고 멀리하게 된다. [법구경] 사람들은 비판을 싫어하고 칭찬을 좋아한다. 비판하는 자를 미워하고, 칭찬하는 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비판처럼 감사하고 좋은 일이 없다. 비판을 듣게 되면 그만큼 나의 단점과 잘못된 점을 바로 보게 되는 길이 열린다. 내가 나를 보기는 어려워도 상대가 나를 보기는 쉽다. 상대는 비판을 하지만 나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그 비판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내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나에 ..

흠과 단점을 들추지 말라

남을 해칠 마음을 갖지 말고 원한을 품지 말고 성내는 마음을 두지 말라. 남의 흠을 애써 찾지도 말고, 약점이나 단점을 들추지도 말고, 항상 자기 자신을 잘 단속하여 정의로써 자신을 살펴 나가라. [잡아함경] 상대를 해칠 마음도 갖지 말고, 원한의 마음도 갖지 말고, 약점이나 단점을 들추지도 말라. 오직 나 자신을 보라. 내 마음의 중심을 내 안에 두라. 상대가 얼마나 잘 사는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지, 그런 데에 관심을 두지 말라. 다만 나 자신을 보고 나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상대와 나와의 모든 비교를 놓아버리라. 나는 나로써 온전한 몫이 있다. 참된 진리가 나라는 존재로써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이 땅에 화현한 것이다. 나를 상대와 비교하고 분별하고 나누게..

증오는 증오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모욕하고, 때리고, 나의 것을 훔쳤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미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는 나를 모욕하고, 때리고, 나의 것을 훔쳤다.' 이런 생각을 놓아 버려야 당신의 미움은 끝이 난다. 증오는 증오로 무너뜨릴 수 없다. 증오는 사랑에 의해 무너진다. 이것은 변치않는 영원한 진리이다. [법구경] 증오의 마음을 가라앉히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진다. 증오와 성냄은 독의 근본. 그래서 증오를 없애고 인욕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성인이 칭찬한다. [잡아함경] 증오는 증오로 무너뜨릴 수 없고, 다툼은 다툼으로 끝맺을 수 없으며, 원망은 원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증오와 다툼과 원망이라는 그 한 생각을 놓아버렸을 때 나의 증오도 원망도 다툼도 온전한 결말을 맺게 된다. 인류의 역..

벌레가 무서워요

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라고 합니다.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 해탈을 하는지요?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가 '자신이 깨달았다'는 상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아가 남아 있고, 아상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깨달은 자'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자라는 육신이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에 갇힌 생각이 없다는 말이고, 무아와 무상을 완전히 자각한 채 고정적인 실체관념을 비워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는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연기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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