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에서 놓여나라.
죄란 사실 실체적인 죄가 아니라
다만 실수였을 뿐이다.
아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또한 배움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선행을 통한 배움 뿐 아니라
악행을 통한 배움도
본질에서 본다면,
똑같이 필요한 삶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선행을 통해서뿐 아니라
악행을 통해서도 배워야 한다.
선행 뿐 아니라 악행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선악을 둘로 나누어 놓고,
그 가운데 선행만을 좋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악행은 나쁜 것이라 규정지은 뒤
죄의식을 뒤집어 쓸 필요는 없다.
잘못과 실수를 인정은 하되,
죄의식에 사로잡히지는 말라.
죄의식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져라.
죄의식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과 절망은
오히려 죄에 대한 의식을 더욱 강화해
동일한 죄를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할 뿐이다.
우리는 삶에서 선행만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악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어쩌면 그 또한 꼭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있어야 균형있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악행을 장려하는 것으로 곡해하지는 말라.
악행을 하는 것 보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그것이 더 큰 악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과거에 악행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죄란 실체가 없으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 속에서 부여잡고 있는
죄의식일 뿐이다.
부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고?
하느님이 나를 지옥에 보낼거라고?
그런 일은 없다.
내가 나를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면
부처님도 하느님도 나를 지옥으로 이끌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죄라는 것은 본래 자성이 없으니
다만 마음 따라 일어날 뿐이다.
마음에서 죄의식이 사라지면 죄 또한 사라진다’
고 하셨으며,
‘99년 7월 28일 교황께서는
‘영원한 천벌은 절대 신이 주도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사랑을 거부키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스스로 부과한 벌이다’
라고 하셨다.
내가 먼저 나를 용서해 주고,
내 안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죄가 없었음을 깨닫는다면
저절로 용서가 된다.
선악 양 쪽을 통해
다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우주법계가
그 선악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고자 한 목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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