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생활수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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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454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삶은 영원하다. 삶은 꿈이고, 죽음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일 뿐이다. 죽음이라고 해석된 관념이 있을 뿐, 근원에서 죽음은 없다. 죽음은 두려운 무엇이 아니라 장엄한 삶의 연장이다. 삶과 죽음은 실재가 아닌 나의 생각, 망상일 뿐이다. 나고 죽는다는 망상분별의 꿈에서 깨어나면 불생불멸한 진정한 삶 그 자체의 진실이 드러난다. 바로 그 때 삶은 이대로 완전하고 장엄하다. 삶을 앗아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삶은 무한히 살 기회를 주지만 우린 매 순간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생생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생각 속에서 산다. 생각으로 해석된 현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살라. 생각 속의 삶은 삶이 아니다. 삶을 죽이는 것일 뿐. 진짜 삶 속으로 뛰어들라. 생각으로..

당신이 바로 선지식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문수보살님께 ‘해탈의 문을 열어주시고,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 때 문수보살은 ‘보리심을 발하여, 선지식을 구하고, 보현행원을 갖추라’고 법문하신다. 또한 ‘모든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양하는 것이 완전한 지혜를 갖추게 되는 최초의 인연이다.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는 데 싫증내지 말라. 완전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선지식을 구함에 게으름이 없어야 하고, 선지식을 뵙고 싫증내지 않아야 하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며,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한다’ 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설한 선지식은 부처님 같은 분만 선지식이 아니라, 53명의 다양한 선지식이 나온다. 그 53명의 선지식 중에는 바라문, 의사, 외도, 장자, 왕, ..

온세상이 나를 돕고 있다면

분별없이 내 인생을 바라보자. 처음 태어날 때 인연따라 어떤 몸을 빌어 이 땅에 나왔다. 분별없이 보면, 그건 그저 인연이 화합하여 어떤 육체 하나가 그저 생겨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육체를 '나'라고 이름붙였고, 나도 사람들에게 이 육체가 '나'라고 교육받으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생각을 믿지 않으면 그저 한 존재가 생겨났을 뿐이다. 그것도 빈 몸으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알거지로, 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홀연히 이 땅에 태어났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상황이 펼쳐졌다. 이 몸을 '나'라고 믿게 만든 사람 중 한 사람, 그 여인이 자신이 나의 엄마라고 하면서 젖을 물리고, 죽을 만들어 주고, 똥오줌도 갈아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며 살려주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이 지구별이..

괴로움을 건너뛰지 않기

괴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빨리 해결하여, 건너뛰려 하지 마세요. 그것은 경험되기 위해 찾아온 저 너머로부터의 선물입니다. 그 너머가 바로 지금 이대로이고, 나 자신이고, 지금 이것이라는 하나의 진실입니다. 빨리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그저 그것을 경험해 주세요. 나를 찾아 온 모든 것들은 경험되기 위해, 진리로써 온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오는 것들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돕기 위해, 깨닫게 하기 위해 옵니다. 쌓여있던 해소되어야 할 것들이 발산됨으로서 해결되기위해 찾아옵니다. 그것을 해소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기에 지금 그것이 나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내면에 쌓이게 되면 지금보다 더 큰 폭발로 나를 괴롭힐 지 모릅니다. 그..

추구와 충족을 향한 갈구의 끝

우리의 내면에는 늘 어딘가 모를 공허감, 결핍감, 허무함, 부족함 같은 허한 느낌이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끊임없이 채워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바깥으로 찾아 나선다. 돈, 명예, 지위, 친구, 사랑 등 나를 충족시켜줄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 무엇도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시간과 공간, 그 어디에도 나를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또 미래를 향해 충족을 바란다.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충족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미래의 언젠가에 나는 반드시 깨달을 수 있으리라. 과연 그럴까? 그런 모든 추구와 충족을 향한 갈구는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본질적인 공간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 모든..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것일까?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해'라고 믿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건 둘째 치고, 먼저 그 '올바르다'는 것은 무엇이죠?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그 생각을 믿음과 동시에 우리는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내 식대로의 '올바름'을 내세우고 그것을 믿게 됩니다. 내가 만든 '올바름'이라는 잣대, 색안경에 사람들의 행동을 저울질해 본 뒤에,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여기며 비난하거나, 그런 사람을 보기 역겨워하곤 합니다. TV에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이 나오면 인상을 찡그리며, 인터넷을 찾아 악플을 달 수도 있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패배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생각의 잣대, 옳고 그..

생각이 당신을 괴롭힐 때

생각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특정한 믿음이 없을 때, 어떤 견해가 없을 때, 우리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저 이대로 평화롭습니다. 평화로운 오후 아무 일 없이 완전히 고요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야, 무언가를 해야만 해,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거야 라는 생각, 믿음, 견해가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죠. 그 순간 갑자기 모든 평화는 깨지고, 나는 일순간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이토록 간단하게 당신은 고요한 적멸의 평화를 누리는 자에서 갑작스럽게 무능한 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천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는 이토록 간단합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이렇게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각은 그저..

내 인생이 괴로운 이유

세상은 언제나 그것이 있어야 하는 있는 그대로 있습니다. 어떻게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일까요? 지금 이렇게, 지금 이대로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고, 조금도 남을 것도 없이, 지금 이대로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이렇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전부 우리의 생각이며, 이 세상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현실에서 더 해야할 무언가는 없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지금 이대로이어야 합니다. 현실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며, 망상이고, 판단일 뿐입니다. 세상은, 현실은, 진리는 늘 있어야 하는 온전한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늘 있습니다. 누구도 거기에 해서 판단하거나, 해석하거나, 규정을 내릴 수 ..

괴로운 일들이 생기는 이유

내 인생에 일어나는 좋고 나쁜 다양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업(業) 때문이다. 업이란 과거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3업의 행위를 말하고, 그런 행위는 결과를 끌어온다. 그 행위의 결과가 업보(業報)다. 사실 과거의 행위는 이미 지나갔다. 대부분의 행위는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즉 무위행은 행위를 했지만, 그 행위가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행이다. 그래서 하되 함이 없는 행이라고 한다. 무위행에는 업보가 없다. 아픔, 상처, 괴로움 같은 기억이나 원한, 화 같은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특정한 업은 업보를 불러온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화와 증오, 원한 같은 것을 남긴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했거나, 무시했거나, 빼앗아 가는 행위를 했을 때 당한 사람 마음..

둘이 아니게 있는 그대로 보기

글카드 그리 및 제작 : 김형준 ..... 이 몸이 나라는 '생각'만 없으면, 이 몸과 눈앞의 컵이 둘이 아닙니다. 이 몸은 '나'이고, 눈앞의 컵은 내가 아닌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 생각, 아상, 에고, 아견이 없다면 어떨까요? 느껴지는 어떤 것에 '나'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 몸이라고 이름 붙인 이것에 '내 몸'이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저 있는 그대로가 경험될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을 스치웁니다. 바람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경험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코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들숨과 날숨이라고 이름 붙인 바람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말은 전부 다 생각이고, 해석이고, 언어여서 참된 진실이 아닙니다. 말에 사로잡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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