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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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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457

당신이 괴로운 이유

오늘 낮에 한 노보살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식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하시며 한풀이를 늘어 놓으셨다. 들어보니, 자식들이 매달 꼬박꼬박 찾아오지도 않고, 자주 전화연락도 하지 않고, 용돈도 남들에 비해 조금 밖에 안 주고, 이래저래 화만 난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또 다른 한 중년의 부부를 만났는데, 그분들은 자식이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곧잘 나왔는데, 막상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들이 나오게 된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보통 우리는 이런 괴로운 일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바깥을 탓하기 쉽다. 자식들 탓을 하거나, 며느리 탓을 하거나, 자식이 공부 안 한 탓을 하거나, 성적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외부..

극단적인 집착만 없으면, 지혜로운 삶이 저절로 펼쳐져

https://youtu.be/mIiV1dDxvtM?si=6wp8V7pYpjIP_E-h 보통 나이가 들게 되면 자신이 살아 오면서 익혀 온 습관이며, 고정관념, 편견들이 자리잡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고정된 관념들에 집착하기 쉽고, 그 생각을 결코 버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아 걸기 쉽다. ‘이것이 옳다’거나, ‘이 방식이 옳다’거나 하는 특정한 방식이나 틀이 있고 그것에 대해 고집하게 되면 그 이외의 것에는 결코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그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의 삶이 편협해지고, 축소되며, 괴로워진다는 사실은 잘 못 느낀다. 내가 얼마나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지, 혹은 지혜로운지를 살펴볼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한번 자신은 어떤가 스스로에..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싫은 상황을 해결하려면

https://youtu.be/Or-SJ8Cawpg?si=N3Fgrf7nxYvojLFJ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을 나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멀어집니다. 그들이 완전한 한 분의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을 그들답게, 그렇게, 그런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허용해 주세요. 내 식대로 그들을 짜맞추려고 애쓰거나, 그들을 내 식대로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삶의 방식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저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옳거나 그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불보살이 계시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의 수많은 모습과 수많은 다양한 삶의 방식이 바로 수많은 불보살님이..

화를 내는 거야? 화가 나는 거야?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 화를 잘 내는 것 때문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한다. 화를 내는 것을 잘 살펴보자. 그것은 정말 내가 화를 내고 싶어서, 너무나도 화를 내고 싶어서 내가 화를 낸 것일까? 사실, 화를 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만 화를 낼 만한 상황이 생겨나면, 거기에 반응하여 화를 내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가 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화의 주체를 '나'라고 여기고, '내가 일으킨 화'라고 함으로써 그 화를 자기화하고, 동일시한다. 그렇게 되면 화를 낸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스스로를 화를 내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게 된다. 인연이 화합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일 뿐이다. 화가 나..

미래가 없는 사람

사람들은 보통 지금 현실은 좀 힘들지만, 나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살아갈 힘이 있어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말합니다. 나는 미래가 없는 사람이야! 어느 쪽이 더 좋아 보이나요? 물론 전자가 더 좋아 보이겠지요. 그러나 저 같으면 미래가 없는 사람을 더욱 선호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미래가 없는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미래가 절망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래를 사는 대신에, 추구하며 사는 대신에, 바로 지금 여기를 온전하게 산다는 의미이지요. 미래가 없는 사람이 되세요. 과거나 미래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는 사람, 매 순간을 사는 사람! 미래는 내 뜻대로 되는 것..

업을 뛰어넘으려면

업(業)은 행위다. 신구의(身口意)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그대로 업이 되어 존재 속에 업력(業力)을 남긴다. 그 업력은 잠재적인 어떤 세력이며 에너지로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가 인연의 때를 만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이렇듯 한 번 지은 업은 반드시 받아야지만 소멸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업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중 동굴에도 사람이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라고 설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자신 스스로 받아야 끝이 난다.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불교에서는 분명 수행을 통해 업장이 소멸된다고 했는데 업장은 그것을 받기 전에는 소멸하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 가르침 사이에..

인생, 가볍게 살아가려면

집에 들어갔는데,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설겆이도 쌓여 있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양말들이 흩어져 있고, 심지어 강아지 똥까지 널려 있다면 어떨까요? 그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화가 올라옵니다. 혹은 이 많은 일들을 언제 다 하지 하는 한 숨부터 올라오겠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생각의 더미에 빠져버립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떠올리며 '이런 것도 안 하고 어디 간거야?', '좀 도와주면 안 되니?', '이런 일은 왜 나만 해야 하는 거야?', '한도 끝도 없는 이런 일에 치이며 사는 삶이 이젠 지긋지긋해', '내가 가족들 노예도 아니고 왜 나만 매일 이런 일을 해야 해?', '자녀들이 들어오면 한 소리 좀 크게 해 줘야겠다'... 한도 끝도 없이 올라오는 무수한 생각들로 인해 청소를 하면서도 더 화가 ..

삶이라는 연극, 놀이를 잘 할 뿐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모습, 그것이 나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나’, 내가 ‘이러이러하다’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내가 진짜 나일까? 그 모든 것은 다만 아상(我相), 에고의 감옥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선생님일수도 있고, 사장일수도 있으며, 스님일수도, 학생일수도, 공무원일수도, 혹은 부모이거나 자식일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회사에서는 사장일수도 있고, 과장일수도 있으며, 말단 사원일수도 있고, 집에 돌아오면 한 집의 가장 일수도, 자식일수도 있고, 또 주말에 있는 모임에 가면 회장일수도, 총무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의 아상, 우리의 에고, 우리의 위상은 달라진다. ..

삶을 사는 것이 곧 수행

나에게 특별한 지도를 해 주시는 최적화 된 일대일 과외 스승은 주어진 나의 인생입니다. 나를 찾아오는 괴로움과 행복한 일들을 해석, 분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고 허락해 주고 그것과 함께 살아 주는 것이 가장 큰 수행입니다. 힘든 삶 속에 뛰어 들어서 번뇌가 보리로서 왔으니 고스란히 느끼고 경험하고 살아주겠다, 부처와 함께 있어 주겠다고 하면 곧 즉견여래이며 이것이 완벽한 견성 시스템입니다. 노, 병, 사라는 괴로움이 적재적소에 등장하지만 법신부처님과 자성부처님이 최적화된 안밖의 스승으로서 나만을 위한 특별한 과외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곳에서 삶의 지헤를 수확하기만 하면 됩니다. 참된 불이법은 지금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 이대로가 바로 부처! 따로 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주말이나 저녁을 보내는 방법

주말이나 평일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평일 낮 시간에는 아이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가 바쁜 일과를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주말이나 평일 저녁이면 모두가 한 자리에 앉아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누고 TV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겠지요. 사실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때는 바로 이러한 휴식과 쉼의 순간입니다. 전날 밤 얼마나 달콤한 잠을 푹 잤느냐에 따라 그 다음날의 컨디션이 좌우되는 것처럼, 쉬는 날 얼마나 잘 쉬었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도 정신도 본래적인 복원력이 회복됩니다. 그런데 요즘에 가만히 살펴보면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고, 오히려 휴식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복잡한 망상만 피우는 것은 아닌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쉬는 날에 주로 누워서 빈둥거리거나,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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