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면 저절로 밥을 찾게 되고, 배가 부르면 저절로 화장실을 찾아가게 된다.

졸리면 자고, 에너지가 넘치면 무언가 할 거리를 찾는다.

밥을 먹고 나면 저절로 소화가 이루어지고, 그 무엇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숨과 날숨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너무 애써서 미래를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둘 필요는 없다.

언제는 어떻게 해야하고,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고, 나의 미래는 어떤 계획대로 되어야 하는 등의 그런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

스스로 결정하지 않더라도, 삶은 제 스스로 가장 정확한 시절인연의 때를 알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이루게 할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난다.

거기에 나를 개입시키지 말라.

언제쯤 이 일을 시작해야 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때가 되면, 고민할 여력도 없이 저절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출가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던 청년이 있었다.

할까 말까를 1년도 넘게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고민 중이라면 때가 안 된 것이니, 고민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살라고 했더니,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토록 나의 조언을 귀하게 여기던 그가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출가를 단행했다.

모든 일은 이와 같다.

아직 여기 저기에 묻고 있다면, 때가 아닌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저절로, 누구의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스스로 결정이 내려진다.

그것은 강력하다. 그 누가 반대를 해도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운 결정이 저절로 이루어지기 이전에 우리는 누구나 몇 년이고, 며칠이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라, 너무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곤 한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게 다 '내가 결정한다'는 아상을 믿기 때문이다.

인연이 무르익으면 '내'쪽에서가 아니라, 진리 쪽에서 저절로 시절인연을 꽃피운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모를 뿐.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연법, 연기법, 무아 등으로 설명한다.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 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지고 사라질 뿐이다. 나조차도.

그러니 미래를 걱정할 것 없이,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 너무 깊이 고민할 것 없이, 그저 주어진 삶, 지금 이 순간의 여기를 살면 그 뿐이다.

가볍게, 너무나도 가볍고 경쾌하게, 내맡기고 살아보라.

모든 일들을 내가 다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나를 압박한다.

이 결정이 잘 한 것인지 못 한 것인지 늘 걱정이다.

혹시 잘못한 결정이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수많은 생각을 먹고 더욱 커진다. 엄청난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심지어 죽음 이후에도 그 잘못된 결정의 결과로 지옥에 가게 될까봐 두렵다.

이런 허무맹랑한 망상을 내려놓아도 좋다.

그 결정에 '나'를 개입시키지 않아도 좋다.

당신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깨어서 살기만 하라.

가능하면 즐겁게 누리고 만끽하며. 단, 남들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모든 결정과 결정의 결과는 그저 하늘에, 진리에, 삶 자체에 내맡겨 보라. 그것이 진정한 나이기에.

그리고 당신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 펼쳐진 매 순간의 진실 속에서 삶을 만끽해도 좋다.

자유롭게. 가볍게. 그저 지금 이렇게.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 머릿속의 문제만 빼면.

모든 결정은 잘못될 수 없다. 잘못되었을지 모른다는 그 생각만 빼면.

당신은 지금 이대로 좋다. 완전하다. 분별만 내려놓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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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 강의 연기 공지]

* 대원불교문화대학 주관, BBS 불교방송 법당에서 할 예정이던 '법상스님 수심결 강의' 일정이 코로나19로 인해 6월~8월로 다시 연기되었습니다. 6월 1일(월) 개강 예정입니다.

* 금련사 불교아카데미는 질본과 종단에서 다시 종교행사를 시작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는 계속 연기될 예정이기에, 언제 시작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겠습니다. 언론에서 종교행사를 재개해도 좋다고 할 때 금련사도 법회와 강의를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할 때는 이 곳이나 밴드, 카페 등에도 공지하고, 불교아카데미 신청하신 분께는 별도 문자를 보내드립니다.

* 아울러, 서울 수심결 강의와 부산 금련사 불교아카데미가 연기되어, 부득이하게 수강신청을 취소하실 분들께서는 서울은 02-707-1072로, 부산 금련사 051-753-0006 으로 연락주시면 수강료를 반환 해 드립니다.
.....

YouTube에서 '(23) 내 주변 전체가 진리로 가득차 있다, 비밀스런 가피가 드러나 있다, 삶이 곧 진리다, 진공묘유, 공적영지, 사방찬, 도량찬[2020 천수경(23)]' 보기
https://youtu.be/EunbyfjFD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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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보여질 때도 있기는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원한다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죽고 싶지 않고, 늙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100%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1시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해,

1주일 뒤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

1년 뒤에 시험에서 합격해야해,

나는 건강하고 아프지 말아야 해,

아들은 내 뜻을 따라 주어야 해,

남편은 나를 이해해야 해,

윗집 사람들은 쿵쿵거리며 걸어다니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나에게 욕하지 말아야 해

나는 성공해야 해 등등

이 무수히 많은, 매 순간 올라오는 통제 욕구를 가만히 살펴보라.

너무나도 터무니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삶을 완벽히 내 뜻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 통제 아래에서 움직여주기를 바라지 않을 때, 그 때 삶과의 투쟁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렇지 않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 괴로움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다.

그 때마다 괴롭고, 화가 나고, 답답하고, 초조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길을 갈 거라고?

그런 길을 정녕코 갈 것인가?

그거야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그랬을 때, 어떤 결과가 오게 되는지는 삶에서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삶을 통제하기를 멈추고, 추구하고, 바라고, 욕망하기를 멈추고, 그 모든 통제 욕구와 싸우며 사는 대신, 평화롭게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준비된 괴로움이 없다.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삶은 늘 이러할 뿐이다.

내가 그저 이러한 삶에 대해 이렇커니 저렇커니 판단하지만 않으면, 삶은 있는 이대로 자연스럽다.

펼쳐지는 이대로, 벌어지는 이것이 곧 진리다.

더 이상 삶과 싸우지 않게 된다.

언제나 삶은 완전하다.

삶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이 거대한 삶과 다툰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삶을 삶 자체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허락해 주라.

현재가 곧 실재이며, 현실이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삶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가 바로 진정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삶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잘 되거나 안 되고,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나'라는 개체적인 존재는 없다. 무아(無我)!

당신은 그 '나' 보다 훨씬 큰 존재다.

삶 자체, 이 우주 자체가 그대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삶을 통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통제하고자 하는 그 주체인 '나'가 실체가 아닌 허망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주어진 현실, 그 속에 온전히 뛰어들어, 그것을 살아 주기를 선택해 보라.

아니,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삶이 그렇게 펼쳐지고 있다.

삶은 이미 수용되고 있다. 내가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 조차 없다.

다만 생각, 분별이라는 허망한 필터로 제 스스로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하려는 망상만 일으키지 않으면 될 뿐!

그러면, 그 어떤 다툼도 없다.

완전한 평화, 자유, 행복, 기쁨, 충만, 열반, 해탈, 지복, 극락, 천당,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을 이대로의 진실이 활짝 드러난다.

아니 이미, 언제나 삶은 그저 이러했음을 문득 확인하게 된다.

본래 아무 일이 없었음을.

전혀 통제할 필요가 없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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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 간단히 공지합니다. 
* 현재로서는 질병관리본부와 종단의 방침대로, 4월 5일까지의 모든 종교행사, 법회, 아카데미 강의는 취소가 되었습니다. 4월 2일 개강 예정이던 아카데미도 1주일 연기하여 4월 9일(목) 입재할 예정입니다만, 추후 일정은 질본과 종단 등의 지침에 따라 변동될 수 있어,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차후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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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결정의 연속이다.

언제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진한 애를 써야 한다.

애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내린 결정이야말로,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가장 옳은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고민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머리를 더 많이 굴리고, 연구하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한 뒤에 내린 결정이 언제나 가장 옳은 것일까?

더 많이 생각하면 더 옳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다.

'머리'가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거기에 의문을 던져 보라.

내가 애써서 결정은 내린다고 느끼지만, 삶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결정은 때가 되면 제 스스로 내려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저절로 결정은 내려진다.

내가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하게 된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사람이 차도로 뛰어드는 급한 순간이 되면, 머리가 개입될 순간도 없이 어딘가에서 곧장 결정은 내려지고 손이 핸들을 급히 돌리며, 발은 브레이크 패달을 밟는다.

저절로 이루어진다. 머리의 개입 없이도.

이런 일들이 사실은 삶의 전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우리의 생각이, 머리가, 분별과 판단이, 인연따라 저절로 내려지고 있는 결정을 가지고, '내가 했다'는 아상을 개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정을 내려야 할 가장 적절한 순간이 되면, 결정은 저절로 내려진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매 순간 평화롭게 행복하게 주어진 삶을 살면 된다.

마음 속에서, 미래의 어느 때에 있을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언제쯤 내려야 할지 하는 고민거리 없이 즐겁게 주어진 삶을 살면 된다.

그렇게 릴렉스 한 채, 삶을 누리다 보면, 저절로 시절인연의 때가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 삶이라는 전 과정을 신뢰해 보라.

온전히 내맡겨 보라.

그리고 나는 그저 아무 고민 없이,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삶을 누리며 살면 된다.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저 너머에서 내려진다.
.....

YouTube에서 '래퍼 김하온 어록, No pain No gain은 프레임일 뿐, 고된 노력 대신 즐겁고 가볍게 모든 것을 이룬다, 문제 있는 나를 사랑하기' 보기
https://youtu.be/U638fvQNW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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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에게 화를 내며 듣기 싫은 말, 험담을 하고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자꾸만 되뇌이며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맞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정말 그런 욕을 얻어 먹을 사람인가? 복수를 해 줄까?

온갖 생각이 올라오면서, 마음은 더욱 더 심란하고, 복잡하고, 화도 더욱 나고, 심지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매우 미워집니다.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 보죠.

정말 나에게 화를 낸 그 사람이 밉고 나쁜 사람일까요?

그 사람이 정말 나를 그토록 괴롭혔나요?

사실 그 사람이 한 거라고는 고작, 화가 난 말투로 험담을 하고 간 것이 전부입니다.

그 말은 그 때 한 번 일어났다가 곧장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험담의 말은 그 순간, 그것도 아주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진 하나의 소리였을 뿐입니다.

그것을 내 안에서 '욕'이라고, '험담'이라고, '듣기 싫은 말'이라고 해석한 채, 그 이미 지나간 소리파장 하나에 묶이고 사로잡혀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그 험담의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못일까요?

그 험담을 한 번 하고 떠나간 그 사람이 더 나를 괴롭혔나요?

아니면, 내 안에서 그 소리에 묶여 그 험담소리를 계속 재생하면서, 생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괴로워하는 내 마음이 더 나를 괴롭히나요?

그 사람은 한 번 욕하고 떠났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그 욕을 내면에서 재생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험담 소리는 이미 왔다가 갔고, 그것으로 끝난 에너지입니다.

그 소리가 왔다가 간 이후에 그 이미지를 붙잡고, 사로잡혀, 거기에 묶이기를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일 뿐이지요.

왔다가 간 것은 왔다가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거기에서 끝내세요.

여래여거, 올 때 오도록 갈 때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곧 여래입니다.

내가 괜히 그것을 붙잡아 내 안에 가둘 필요는 없습니다.

--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문자서비스 가입 안내 공지]

요즘 갑자기 많은 분들이 ‘BBS 불교방송 문자서비스’가 무엇인지, 어떻게 가입하는지 등을 문의해 오시는 분들이 많아 공지를 드립니다.

불교방송 영상포교를 위한 것이지만 유료서비스 이다 보니 부담을 느끼실까봐 그동안 별도 공지는 딱히 안 하고 있었는데요 이 기회에 자세히 말씀드리오니 부담없이 들으시고, 꼭 필요하신 분만 가입 신청하시면 되시겠습니다.

밴드와 유튜브, 카페 등에도 중요한 마음공부글과 공지 등은 함께 나누고 있으니 꼭 문자서비스 가입은 안하셔도 무방합니다.

저도 한동안 BBS 불교방송 녹화를 했었지만, BBS 불교방송이 의외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요,

2012년부터 BBS 불교방송의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무조건 후원만 하라고 하기 보다는 새로운 후원방법을 고민하다가 불교방송의 아이디어로 ‘BBS 불교방송 문자서비스’라는 영상포교 후원 유료메시지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또한 BBS 불교방송과의 오랜 인연으로 영상포교 후원을 위해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서 띄워드린 것이 벌써 8년이 넘고 있네요.

초기에는 그동안 써놓았던 글이나 책에서 발췌하여 문자를 띄워드렸다가, 몇 년이 지나면서 요즘은 거의 매일 새로운 글을 써서 띄워드리고 있습니다.

주로 마음공부와 생활수행 이야기들을 비롯해 법우님들과 오고간 고민상담이야기, 각종 공지들이며, 소소한 산사의 생활 이야기며 소식들까지, 문자서비스에는 그냥 친한 벗에게 편지를 띄우듯 그저 편하게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구독자 분들이 늘어나다 보니 자칫 어떤 글들은 초심자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거나, 곡해하실만한 글, 수행과 견성 관련 예민한 글, 사이비나 삿된 방편에 대한 비판 등은 가능하면 올리지 않고 있는데요,

8년 넘게 그것도 유료로 열혈 구독해 주신 ‘날마다 해피엔딩 문자서비스’ 구독자 분들께는 오래 함께 공부해 온 인연이라 무엇이든 받아주실 것 같고, 제 본뜻을 오해 없이 받아들여 주실 것 같은 따스함도 있고 하여 편안하게 매일 매일 글을 띄워드리고 있습니다.

보다 심도 깊은 마음공부를 함께 해 나가시고자 하시는 분들, 매일 아침 원하는 시간에 글을 받아보고자 하시는 분들께서 신청을 하신다면, BBS 불교방송의 영상포교를 후원도 할 수 있고 아울러 마음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금련사에 BBS 만공회와 BTN 붓다회에서 월 1만원 이상 방송포교 정기후원 홍보를 부탁한다는 요청이 있어서 법회 때 신도님들께 홍보를 하고 갔었는데요,

문자서비스는 월 4,400원의 보다 적은 금액으로 부담 없이 방송포교를 후원도 할 수 있고, 아울러 마음공부 좋은글도 받아보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로 좋은 것 같습니다.

받아보신 분들이 도반이나 가족, 자녀, 회사 직원들에게도 생일선물 등으로 선물 신청을 해 주시면서, 덕분에 매일 같은 글을 보고 도반처럼 마음공부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는 말씀을 해 주기도 하시더군요.

물론 본인만 신청해서 받으신 뒤에, 도반이나 가족들에게 매일 카톡 등으로 보내주셔도 좋겠습니다.

받아보기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로 신청하시거나, 전화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 BBS 불교방송의 영상포교를 후원하는 만공회 후원 문자메시지로서, 법상스님께서 매일 아침 써내려 가는 새로운 글, 법문과 수필 및 동영상 법문과 각종 공지 및 소식 등을 매일 아침 실시간으로 받아보실 수 있는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유료(월4,400원) 문자서비스 가입하기 및 선물하기 : http://s.bbsi.co.kr/mtbs
- 안내팜프렛: http://s.bbsi.co.kr/BBS_SP/Product/popProductInfo.asp?ProductIDX=18
- 전화로 문자서비스 가입하기/선물하기 : 185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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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2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별이가 창밖으로 길냥이를 만났을 때]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고 계시네요.

코로나는 이미 우리 삶 속에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와 있는 이것이 진실입니다.

진실은 때로는 우리를 웃음짓게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양 쪽 모두가 사실은 우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니 지금 이미 온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너무 집에만 있으니 우울하고 심심하고 두렵고 답답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우울, 답답, 두려움 속으로 뛰어들어 주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 지금 이대로의 현실을 거부하지만 않으면, 지금 이대로의 현실은 그저 이대로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바깥으로 나가고 싶고, 바깥으로 치닫던 의식을 내면으로 돌려보고, 고요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 바깥으로만 나가기 보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그 기회라고 여기면서, 법문도 듣고,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온전히 홀로 있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 그로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신 분들에게는 큰 힘든 시기가 될 듯 하여, 저 또한 안타깝습니다.

늘 마음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왜 코로나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하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 이미 찾아온 현실을 받아들여 준다면, 여기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 선물처럼 주어질 것입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되, 이 상황에 너무 많이 휘둘리지는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지나가는 동안에는 상처를 가장한 삶의 진실을 선물로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전히 이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판단하지 않고,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누군가를 혐오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이것이 우리를 더욱더 둘로 나누고, 분별하고, 차별하게 만들게 될까 하는 우려입니다.

모든 문제는 둘로 나누는 분별심에서 시작됩니다.

취하거나 버리려는 마음,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는 마음, 적과 아군을 나누는 마음,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마음, 이렇게 둘로 나누는 마음이 커지게 되면, 모든 문제, 괴로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둘로 나누게 되면, 문제는 커지고, 하나로 되돌리면 문제는 사라져 갑니다.

과도하게 두려워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대응하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중도의 실천은 침착하게 할 수 있는 대응은 하되,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이 사회를 확진자와 비확진자로 나누고,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대한 혐오와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둘로 나누는 분별로 치닫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마음 따뜻하게 하는 소식들,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화합시키고, 하나이기에 사랑하는 동체대비의 실천을 보여주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에 우리가 더욱 감사해하고 찬탄하고 감동하는 것이 곧 불이중도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임 간호장교들이 대구로 찾아가고, 전국 각지에서 의사분들이 자원하여 대구로 찾아들고, 그분들을 격려하기 위해 전국에서 후원금들이 쏟아지고, 사랑의 택배가 발송되는 등의 아름다운 하나임의 실천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깨어나게 합니다.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곧 둘이 아닌 불이법의 실천이고, 지혜의 실천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쁜 점을 지적하고, 특정집단을 혐오하고, 적과 아군을 나누는 분별심, 어리석음 보다는,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한마음으로 이겨내고, 서로를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잘 한 것은 칭찬해주고 찬탄해 줌으로써 '하나임', '불이중도'의 실천이 꽃피어나기를 발원해 봅니다.

물론 이 말이 모든 잘못을 눈감아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잘못은 가리고 결과는 책임지되,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마음은 이것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고 깨어나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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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문도 2020.03.08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별심을 버리고 증도로

  2. Favicon of https://totorich.club BlogIcon 토토리치 2020.03.16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로나19 모두가 함께 이겨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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