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집안에 고립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공부인이라면, 일부러라도 스스로를 때때로 고립시키며, 홀로 있는 시간들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그런 시간을 만들기가 요즘 사회에서는 쉽지가 않죠.

옛날 같았으면, 한적하고 할 일 없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에는 이 공부가 저절로 자라나기 참 쉬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대신 그 때는 스승이 없었고, 경전이 없고, 요즘처럼 아무 때나 쉽게 법문을 접할 수도 없었을테니, 그 때보다야 지금이 훨씬 공부하기 좋은 때이기는 합니다.

다만 요즘 현대사회는 다 좋은데, 스스로를 고립시킬 시간이 없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부러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들여서, 따로 명상센터를 찾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프로그램을 찾아 나서기도 하지요.

우리의 바깥에는 늘 나를 유혹하는 화려한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들이 많으니, 늘 바깥으로 뛰어나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의 삶은, 직장생활을 빼고라도, 친구들과 식당이나 맛집을 찾아 다니고, 멋진 뷰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도심 근교의 아름다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하고, 무슨 무슨 축제를 찾아가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어쨌든 뭔가 재미있는 건수를 찾아 나섭니다.

이것이 곧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기를 거부한 채, 고요히 존재하기를 거부한 채, 무언가를 내 바깥에서 끌어와 나를 채우고자 하는 헛헛한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평생토록 그런 노력을 하느라, 가장 가까이에 이미 있었던 진정한 나 자신의 본래면목을 우리 스스로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바깥에 있는 많은 것들이 나를 충족시켜 줄거야, 무엇을 하면 행복할거야, 누구를 만나면 공허감이 사라질거야, 돈을 벌고 사랑을 하고 성공을 하면 나는 완전해질거야!'라는 환상에 빠져, 그것이 무언지도 모른채 무언가를 찾아 바깥으로 헤매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내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얻는 것을 통해 나의 결핍감이 완전히 만족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해 왔던 추구와 갈망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지금 완전해지지 않은 것일까요?

내가 찾던 무언지 모를 그 '답'은 어쩌면 우리 내면에 있거나, 이미 완전하게 나에게 구족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 스스로 바깥으로 추구하고 달려 나가기만 했다보니, 단 한 번도 진정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렇게 있어주고, 있는 이대로 사랑하며, 진정으로 받아들여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있는 그 '답'이 보이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명상이다, 요가다, 웰빙이다, 마음공부다 하며 그 답을 '바깥'에서 찾고자 하던 방향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바깥에는 우리의 그런 갈구와 욕망을 알고, 우리를 유혹하게 만들 무수히 많은 놀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완벽하게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밖에 없는 때가 저절로 만들어 졌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천우신조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침, 이런 조건이 만들어 졌지만, 우리 생각은 습관적으로, 답답해하고, 고립감과 고독을 느끼고,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욱더 이 홀로됨의 외로움이 나를 괴롭히는 듯 느껴집니다.

오랜 습관으로 인해 우리 생각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업습(業習)은 말하지요.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 어차피 이런 상황이 주어졌으니, 이 때가 시절인연이 내게 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때를 온전히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시절이 만들어준 이 기회를 계속해서 거부하면서, 벗어나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 때가 내면으로 들어가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고요히 나 자신과 함께 있어 줄 마음공부의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이지요.

어떤 스님들은 그런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조금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억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문관(無門關)이라고 들어보셨나요? 3년 동안 문을 바깥에서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만 좌선하며 지내기도 했지요.

우리들이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이처럼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문관 수행을 흉내라도 내 본다는 마음으로 현 시국을 받아들여 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그동안 계속 외롭다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발버둥치던 것들이 멈춰지고, 지금 이대로의 외로움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겨납니다.

마음 속에서 '나가야 해', '너무 답답해' 하던 속삭임은 그저 습관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 생각을 믿지 말고, 그 생각에 속지 말고, '아니야!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여주겠어. 잠시 나 자신과 함께 있어줄거야' 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신기하게도 나가고 싶던 마음이 금방 사라집니다.

무엇이든 거부하는 것은 지속되지만, 받아들이면 사라지거든요.

가능하면, 자꾸만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TV를 켜는 것도 의식적으로 조금 줄여보면서, 그냥 아무것에도 의지함이 없이, 이 심심하고 답답하고 평범한 이 순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너무 심심하면 때때로 법문을 듣고, 쉬고, 명상하고, 홀로 뒷 산을 산책하면서 모처럼 찾아온 홀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팁을 하나 드리면, 잠시라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금 그냥 이렇게 있는 이대로 그저 있어 주어 보세요.

이 몸의 감각도 있는 그대로 느껴보고, 들려오는 새소리도 판단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보고, 올라오는 생각들도 그 생각과 동일시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봐 보세요.

그저 TV와 스마트폰 없이 그냥 있어 보세요. 

오랜 액정중독, 소음중독, 생각중독, 욕망중독, 관계중독 등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것입니다.

모처럼 바깥의 관심을 끄고, 오로지 나 자신과 함께 있어주세요.

나 자신과 직면하여 함께 있어줄 때, 이렇게 존재하기를 선택할 때, 진정한 힘과 지혜의 중심과 연결됩니다.

사실은 여기에서 모든 것이 다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 늘 있는 이 자리에서 나도 세상도 우주도 다 왔다가 가고, 모든 일들도 생겼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의 중심, 우주법계의 중심, 그것은 내 바깥 어딘가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문득 돌이켜, 지금 여기로 돌아오기를 선택할 때,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할 때, 당신이라는 우주가 진리가 당신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집에 들어갔는데,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설겆이도 쌓여 있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양말들이 흩어져 있고, 심지어 강아지 똥까지 널려 있다면 어떨까요?

그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화가 올라옵니다.

혹은 이 많은 일들을 언제 다 하지 하는 한 숨부터 올라오겠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생각의 더미에 빠져버립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떠올리며

'이런 것도 안 하고 어디 간거야?',

'좀 도와주면 안 되니?',

'이런 일은 왜 나만 해야 하는 거야?',

'한도 끝도 없는 이런 일에 치이며 사는 삶이 이젠 지긋지긋해',

'내가 가족들 노예도 아니고 왜 나만 매일 이런 일을 해야 해?',

'자녀들이 들어오면 한 소리 좀 크게 해 줘야겠다'...

한도 끝도 없이 올라오는 무수한 생각들로 인해 청소를 하면서도 더 화가 나고, 몇 배는 더 청소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 한 명의 마음공부하는 수행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죠.

이 사람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람은 그것들을 그저 바라봅니다.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면 발 아래의 일부터 하나 하나 그저 할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과 이야기들이 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켜 놓고, 혹은 설법을 들으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나를 화나게 한 '그 놈들'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강아지는 그저 똥을 쌌을 뿐이고, 내가 그것을 보았으니 그저 내가 치울 뿐입니다.

강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워할 필요도 없고, 이 똥을 보고서도 안 치웠을 지 모를 상상 속의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옷을 벗어놓고 빨래통에 넣지 않는 지난 수 년 동안 늘 그래왔던 아이를 미워하는 생각을 믿는 대신, 그저 그 옷을 집어서 빨래통에 넣을 뿐입니다.

생각으로 현재를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지금 이대로일 뿐입니다.

일이 있는 그대로 사실은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마음은 늘 평화롭습니다.

그저 인연 따라 해야 할 일이 생겨났고, 나는 그것을 할 뿐입니다.

그것이 인생 아닌가요?

그런 당연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공연히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해야 할 때 그저 하면 그 뿐입니다.

너무 가볍고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양말을 휴지통에 넣고, 강아지 똥을 치우는 일이 뭐 힘들게 있겠어요.

언제나 눈앞의 현실이 아닌, 현실에 덧붙여진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삶을 무겁게 할 뿐입니다.

생각의 더미, 속삭임을 믿지 마세요.

그저 주어진 삶을 가볍게 사세요.

눈 앞에 펼쳐진 인연에 반응하며 그저 할 일을 하는 즐거움!

그것이 내게 부여된 소소하지만 눈부신 삶이 아닐까요?

.....

YouTube에서 '추구하면 안 되는 공부, 하되 하지 말라, 멍청하게 법문듣기, 머리로 이해하면 어긋나, 모르고 하는 공부, 늘 있는 이것! 본래면목, 견성과 보임의 가풍' 보기
https://youtu.be/-moUGVB_Q2Q

Posted by 법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