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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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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있는데 왜 무아지? - 삼법인 강의(7)

‘내가 있다’는 아상의 타파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며, 먹고 자고 마시며 움직이고 일을 하는 내가 있다. 불교에서는 이런 나까지를 다 부정하며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라는 존재 또한 인연 따라 잠시 만들어진 가합의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왜 무아인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보통 우리가 ‘나다’라고 하는데는 먼저 ‘내 몸’, 즉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 ‘내것이다’고 하는 내 소유물에 대해 나라고 생각하고, 또한 ‘내가 옳다’고 하는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견해나 사상 등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내 느낌’‘내 감..

제법무아의 의미 - 삼법인 강의(6)

제법무아의 의미 앞에서 제행무상의 ‘제행’이 ‘모든 존재’, ‘모든 행’을 말한다고 했는데, 제법무아의 제법 또한 ‘모든 존재’라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 제법(諸法)에서 법(法, dharma)은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이라고 하면 ‘진리’‘진리의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에서 ‘법’이라는 용어는 이외에도 ‘존재’‘일체 모든 존재’라는 의미로도 쓰여 진다. 예를 들어 삼법인에서 ‘법’은 ‘진리’를 의미하며, 제법무아에서 ‘법’은 ‘존재’를 의미한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나라는 개인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넘어서 일체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정된 실체로써의 본질적인 나라는 것도..

변화를 받아들이라 - 삼법인 강의(5)

변화를 받아들이라 – 제행무상의 생활실천 이처럼 연기법의 핵심,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제행무상의 진리야말로 진리의 도장, 즉 법인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항상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또한 모든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모든 행위나 사건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며, 사람의 행위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무상의 과학적 증명 - 삼법인 강의(4)

제행무상 강의(3) 현대과학과 무상 앞서 살폈듯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는 것이 첫 번째 진리의 법인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는 과연 이 무상의 이치를 어떻게 볼까. 미시와 거시의 현대 물리학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불교의 제행무상의 이치를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이 무상하다는 이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세상을 쪼개고 쪼개서 가장 작게 쪼개어질 수 있는 물질의 최소 단위에 대해 무상을 입증해 보이는 것과 이 세상을 넓히고 넓혀서 가장 넓게 확장했을 때의 전 우주가 무상하다는 이치를 입증해 보이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을 만드는 물질의 최소 단위가 모두 무상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확장하여 온 우주 전체가 무상하게 되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존재 또한 무상할..

업도 운명도 변한다 - 삼법인 강의(3)

무상은 허무주의가 아니다 이처럼 제행무상의 이치는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인생무상’이라는 표현에서 보는 허무주의적이고 공허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무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무상은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히 공평무사한 통찰일 뿐이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무상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무상은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본질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삶은 무상하기 때문에 그 어떤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는 변화무쌍한 삶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나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열등감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일 뿐이지,..

제행무상의 의미 - 삼법인 강의(2)

제행무상의 의미 제행의 제(諸, sarva)는 ‘일체’‘모든’의 뜻이고, 행(行, samskara)은 sam이라는 ‘함께’, ‘~모여서’라는 말과 kara라는 ‘만든다’‘행한다’는 의미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것’‘지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들이 모여 어떤 존재를 만들고 어떤 일을 행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무 원인과 조건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행이나, 존재가 아니라 어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나 어떤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위(有爲)’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유위행(有爲行)과 유위법(有爲法)을 아울러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위법이라고 할 때 ‘법’은 ‘존재’를 나타낸다. 좀 ..

삼법인의 의미 - 삼법인 강의(1)

삼법인의 의미 - 삼법인 강의(1) 이상에서 언급한 연기법에 따르면 이 세상 우주는 아무렇게나 아무 법칙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라는 진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법계(法界)임이 드러난다.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 진리의 세계 즉 법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기의 진리에 의해 운행되는 우주법계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체 모든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며,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한 것, 그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다. 삼법인은 연기법의 또 다른 이름이요,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연기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삼법인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연기된 모든 것은 세 가지 공통된 일반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러면 ..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 - 연기법의 생활실천(6)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 연기법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들이 화합함으로써 연하여 일어난다는 이 세상의 법칙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법계의 장엄한 동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쌀 한 톨 조차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유정 무정의 일체 모든 존재들이 도왔고 참여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가? 그 또한 조금 깊이 연기적으로 사유해보면 일체 모든 사람들과 하늘 바람 구름 햇살을 비롯한 이 우주법계 전체가 어머님의 품처럼 나를 돌보며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가. 우리는 과연 그러한 법계의 도움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는가? 연기법을 이해하는..

종교를 보는 또 다른 열린 관점

나의 신앙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불교신자다. 불교 수행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기독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이슬람교며 힌두교의 신자도 될 수 있다. 내가 불교 수행자라는 이유가 나를 기독교 신지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렇다고 나의 이러한 종교적 생각이 나의 불교적인 신앙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참된 불교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렇게 활짝 열려있으며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삶이고, 지혜로운 삶이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에 고집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다만 이름붙인 것일 뿐이다. 진리를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일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 이름이나 틀 속에 스스로 갇히길 좋아하고, 그러한..

차별없이 받아들일 때, 무한 가능성이 드러난다

자기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이 아상(我相)이다.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상이다. 아상은 언제나 자기 기준을 정해놓고 좋아하는 것은 삼키고, 싫어하는 것은 뱉어버리는 일만을 할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아상의 놀이에 놀아난다. 백전백패, 아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만다. 아상은 언제나 나를 위하는 척, 나를 돕는 척하면서 나타나 나를 집어 삼키는 뛰어난 재주꾼이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되돌아 보라. 매 순간의 삶을 살펴보라. 언제나 삶이란 아상에 놀아나고 휘둘리는, 아상의 노예와도 같은 곳일 뿐이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보고 싶은 것과 보기 싫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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