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16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자세히보기

분류 전체보기 1283

수행자의 옷 - 법구경 9,10게송

9. 마음에 번뇌가 많아 청정하지 못하고 무모한 욕심으로 자기를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노란색 가사를 입으려는 자여, 그대는 수행자의 가사를 입을 자격이 없다. 10.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이 청정하고 계율을 지켜 절제됨이 있으며 감관을 잘 다스려 진실을 말하는 사람, 그대야말로 수행자의 노란색 가사가 어울리는 자다. 수행자의 옷, 가사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아주 매력적이고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앉아 있는 스님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마음 속에 존경과 혹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회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걸망 하나 메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의 뒷모습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찾는 이들의 대명사처럼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사람들은 ..

이와 같이 정진하라 - 법구경 7,8게송

7. 쾌락만을 추구하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으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없고 게을러 정진하지 않는다면 온갖 삿된 마장에 휘둘려 마침내 쓰러진다.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쓰러뜨리듯이. 8.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다섯 가지 감각의 욕망을 잘 다스리며 음식의 때와 양에 절제가 있고 굳은 믿음으로 힘써 정진하면 그 어떤 삿된 마장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큰 바위산을 바람이 휘두를 수 없듯이. 수행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 모든 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정진의 덕목이 있다. 먼저 이 게송이 나오게 된 연유를 살펴보자. 부처님 당시에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수행자다운 위의와 신념과 정진이 투철했지만 동생은 성실히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형을 속세로 환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뒤따라 출가를 했다..

적게 먹는 즐거움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더라도 제 양을 초과하여 먹어서는 안된다. 오직 기력을 도와 몸을 이롭게 하는 데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대아미타경] 수행자는 음식을 탐닉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여된 음식의 양과 수명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몫이 아닌 음식과 수명을 탐내서는 안된다. 탐한다고 해서 자기의 몫이 아닌 것이 더 오지는 않는다. [정법안장] 음식을 탐하면 수명이 짧아진다. 제 몫의 음식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탐심을 많이 내어 이번 생 자신의 식복을 넘어서면 현생에 더 먹을 복이 없어지기 때문에 수명이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식을 하면 복력 또한 소멸한다. 과식을 하는데도 오래산다면 그 사람은 삶이 불행해지기 쉽다. 식복은 없는데 많이 먹으니 다른 복력들이 식..

중도의 삶, 중도의 수행

[춘천 청평사 계곡에서] "스로나야, 너는 전에 거문고를 타 본 적이 있느냐?" "예, 부처님.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 봤습니다." "스로나야, 어떻더냐? 거문고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좋은 소리가 나더냐?" "아닙니다. 부처님." "그러면 거문고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좋은 소리가 나더냐?" "아닙니다. 부처님" "스로나야,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해야 좋은 소리가 나지 않더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바로 그것이다. 너무 부지런히 정진하면 들뜨고, 너무 적게 정진하면 게을러진다. 알맞게 정진하여 무리하지 않도록 해라." [사분율] 세상 모든 일의 실천에는 중도의 법칙이 있다. 그 어떤 일도 너무 과하거나 너무 못 미치면 좋지 않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

삶에 힘을 빼라

수행하는 사람은 마치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와 같다. 양쪽 기슭에 가 닿지도 않고, 누가 건져 가지도 않고, 소용돌이에 휩쓸리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다면, 이 나뭇가지는 마침내 저 드넓은 바다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들도 이와 같아서 탐욕에 빠지거나 잘못된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정진에 힘쓴다면 반드시 뜻을 이룰 것이다. [사십이장경]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를 잘 기억하라. 내 존재가 그저 저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나뭇가지가 되도록 하라. 나뭇가지는 억지로 물의 기슭 마른 땅으로 가려고 애쓰지 않고, 빨리 가려고 애쓰거나 늦게 가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물가의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양 갈래 길이 나오더라도 어느 한 길을 고집하지 않고, 다만..

천상과 지옥은 있는가?

[사진 : 지용스님] 선을 생각하면 선업이요 악을 생각하면 악업이니 한 생각에 천상이 생기고 지옥이 있게 된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선업이나 악업도 모두 없어져서 천상과 지옥이라는 분별도 자연히 없어진다. 천상이나 지옥의 본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집착하는 범부에게는 천상과 지옥이 있고 집착하지 않는 성인에게는 그 모두가 없다. [달마대사 오성론(悟性論)] 선을 생각하면 선한 말과 생각과 행동이 뒤따르고 그것은 곧 선업이 되어 천상세계의 결과를 가져온다. 악을 생각하면 악한 말과 생각과 행동이 뒤따르고 그것은 곧 악업이 되어 지옥에 떨어지는 과보를 가져온다. 이처럼 지옥도 천상도 모두 한 생각, 한 마음이 만들어 낸 흔적일 뿐 본래부터 지옥과 천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옥과 ..

월다잉, 죽는 순간의 마음가짐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도 생사의 분별에 집착하지 않으면 평생을 쌓아온 업장이라도 소멸할 수 있다. 일생을 수행했을지라도 임종에 이르러 생사에 집착하면 그 수행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마귀의 포로가 되고 만다. 지금이라도 본래 마음을 깨달으면 다시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 [달마대사 혈맥론(血脈論)] 하루 중에도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 중요하다. 시끄러운 TV 소음에 시달리다 잠에 들면 잠든 내내 소음이 꿈속까지 뒤따라 와 정신을 뒤흔들어 놓지만, 잠들기 직전 고요한 와선 속에서 잠에 들면 밤새 고요함이 지켜진다. 가만히 잠들기 직전 무슨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는지, 그리고 그 생각들과 꿈에는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라. 잠들기 직전의 생각이 온통 꿈속까지 휘젓고 다니며 단잠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자기한정과 무한능력의 주인공

본래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놓고 살아갑니다. '나의 능력은 이정도야' 라고 스스로 자기 한정의 관념의 선을 그어 놓기 마련입니다. 그리고는 그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덮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어느 선까지만 규정지어 놓고는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그 자기한정의 관념에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내 능력은 이 정도야' 라고 할 때 그 정도의 능력은 바로 스스로 짓고 있는 그 자기한정의 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를 얼마만큼 한정 지어 두느냐에 따라 정말 자신의 능력의 범위가 결정될 ..

고독,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우린 누구나 이따금씩 고독이나 허무, 허탈감을 느끼곤 합니다. 세상살이가 지독히 괴로워서도 아니고, 똑 부러지게 허무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린 이따금씩 알 수 없는 허무감과 고독에 빠져듭니다. 확연하게 붙잡을 만한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심연에 큰 설레임을 가져올 이벤트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살다보니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진부감에 사로잡혀 이따금씩 내가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딱히 잡히질 않는 경우에도 여지없이 그런 해답 없는 허무감은 우릴 덮치곤 합니다. 누구나 그런 고독감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그 어느 때에 지독한 허무감과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여야 할 때가 있나 봅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싸늘해지는 가을이면 더욱 마음을 휘젖고 다..

세상을 보는 눈, 무한관점

아미타 부처님은 시간적으로 한량없는 수명(壽命)과 공간적으로 한량없는 광명(光明)으로 우리 앞에 나투시기에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이름하기도 합니다. 무량수 무량광의 시공(時空)을 무량한 마음으로 무한히 나투시고 계십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억겁(億劫)의 시간, 삼천대천세계의 공간을 나투시며 어리석은 중생교화에 무량심(無量心)으로 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 부처님의 무한한 마음 나툼은 이미 내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네 중생들은 그 무량수 무량광으로 펼쳐진 무한법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무량법계를 무량심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시공의 어느 한 귀퉁이로 좁혀진 유한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그 속에서 괴로움, 답답함, 조급함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