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 탐욕을 이기라 - 법구경 13,14게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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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과 마음공부

수행으로 탐욕을 이기라 - 법구경 13,14게송

목탁 소리 2009. 7. 2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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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붕이 허술하면
비가 새듯이
수행하지 않는 마음에
탐욕이 스며든다.

14.
지붕이 튼튼하면
비가 새지 않듯이
수행이 잘 된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탐욕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달콤하며 동시에 가장 두려운 경계다. 탐욕이 올라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누구든 탐욕을 먹고 자란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탐욕을 끊임없이 채워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 삶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우리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탐욕을 만들어내고 그 탐욕을 채워나가고, 탐욕을 채우지 못해 좌절하거나, 탐욕을 채움으로써 행복해 하거나, 채우고 난 탐욕 뒤에 더 큰 탐욕을 만들어내는 이 끊임없는 탐욕의 연장이다. 그런데 이 탐욕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또 다른 탐욕을 먹고 자란다. 탐욕한 것을 얻고 나면 이제 그 이상의 또 다른 탐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탐욕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설사 이 세상을 전부 준다고 해도 그의 탐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탐욕은 탐욕하는 바로 그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으로만 끝낼 수 있다. 탐욕을 줄이고 만족과 소욕을 통해서만 탐욕의 끝도 없는 식욕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탐욕을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누구에게나 끊임없이 올라오는 이 탐욕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불교의 사성제의 방법을 대입해 본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다.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소멸하면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면 탐욕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탐욕은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것일까. 그 원인은 바로 아상(我相)이다. ‘나다’ ‘내것이다’하는 아상으로 인해 내 것을 더 많이 늘려가고 싶은 탐욕이 생겨난다. 내가 있다는 생각이 있으니, 내 것을 더 많이 늘려가고 싶은 탐욕이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상이 있는 이상 탐욕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근본원인을 닦으려고 하지 않고 현실적인 것만 탓하려고 한다. 아상을 없애려 하지 않고 탐욕만을 문제삼는다. 즉, 탐욕이 많은 사람을 욕하고, 내가 왜 이렇게 탐욕이 많은가 하며 한탄하면서, 탐욕을 줄이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자족, 만족의 게송을 읽으며, 탐욕을 줄이기 위해 보시하고, 나누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어느 순간 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어김없이 탐욕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이유는 탐욕의 근본 원인인 아상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탐욕을 소멸시키기 위해 소욕하라, 지족하라, 혹은 보시하라, 나누라는 방편을 설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근본에서는 항상 ‘수행하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금 당황할 지도 모른다. 탐욕이 많아서 문제라면 마땅히 소욕하라, 만족하라는 가르침이 더 쉽고 직접적이지만, 불가에서는 끊임없이 ‘수행하라’ ‘정진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불교는 겉에 드러난 현상만을 치유하고자 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 근원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바로 보고 그 본질의 치유에 힘쓰는 종교다. 그렇기에 종종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때로는 동문서답을 하는 것처럼도 보이고, 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탐욕을 놓아버리기를 원한다면 본직적인 길은 수행에 있다. 지붕이 허술하면 비가 새듯이 수행하지 않는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그러나 지붕이 튼튼하면 비가 새지 않듯이 수행이 잘 된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수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는 아상을 바로 보게 되고, 아상의 실체가 없음을 알게 되며, 무아(無我)를 깨닫게 된다. 무아상(無我相)의 깨달음에 탐욕은 발붙일 틈이 없다. 내가 없다면 나의 탐욕도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난다는 예쁜 아내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와의 사랑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 그 설레는 마음을 접고 출가를 한 인물이다. 부처님께서 난다에게 출가를 권유할 것을 직감한 난다는 절대 출가하지 않겠노라고 단호히 답변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부처님께서 출가 권유가 있었을 때 난다는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에 의해 출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출가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랑하는 예쁜 아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출가 초기에 늘 불평불만이 많았고, 정진에도 게을렀으며, 늘 대중에서 겉돌고 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신통을 보여 방편으로 난다를 천상세계로 데려간다. 천상에 다다랐을 때는 아내보다 몇 배는 아름답고 예쁜 천상 선녀들이 황홀하게 난다를 사로잡고 만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만약 열심히 수행 정진한다면 이 천상의 오백 명의 선녀들이 너를 모시게 될 것을 여래가 보증한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에 난다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끊임없이 정진 수행한 끝에 아라한과에 이른다. 그러나 드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난다는 부처님을 찾아 뵙고 부처님께서 하셨던 천상선내에 대한 보증을 철회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깨달음을 통해 모든 집착과 애욕에서 벗어난 아라한에게 더 이상 천상의 선녀는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방편을 통해 난다를 깨달음으로 이끌면서 모든 제자들에게 게송을 설하신다. ‘지붕이 허술하면 비가 새듯이 수행하지 않는 마음에 탐욕이 스며든다. 지붕이 튼튼하면 비가 새지 않듯이 수행이 잘 된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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