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갔는데, 청소도 안 되어 있고, 설겆이도 쌓여 있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와 양말들이 흩어져 있고, 심지어 강아지 똥까지 널려 있다면 어떨까요?
그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화가 올라옵니다.
혹은 이 많은 일들을 언제 다 하지 하는 한 숨부터 올라오겠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생각의 더미에 빠져버립니다.
아내 혹은 남편을 떠올리며
'이런 것도 안 하고 어디 간거야?',
'좀 도와주면 안 되니?',
'이런 일은 왜 나만 해야 하는 거야?',
'한도 끝도 없는 이런 일에 치이며 사는 삶이 이젠 지긋지긋해',
'내가 가족들 노예도 아니고 왜 나만 매일 이런 일을 해야 해?',
'자녀들이 들어오면 한 소리 좀 크게 해 줘야겠다'...
한도 끝도 없이 올라오는 무수한 생각들로 인해 청소를 하면서도 더 화가 나고, 몇 배는 더 청소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 한 명의 마음공부하는 수행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죠.
이 사람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람은 그것들을 그저 바라봅니다.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면 발 아래의 일부터 하나 하나 그저 할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과 이야기들이 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켜 놓고, 혹은 설법을 들으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이렇게 나를 화나게 한 '그 놈들'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강아지는 그저 똥을 쌌을 뿐이고, 내가 그것을 보았으니 그저 내가 치울 뿐입니다.
강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워할 필요도 없고, 이 똥을 보고서도 안 치웠을 지 모를 상상 속의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옷을 벗어놓고 빨래통에 넣지 않는 지난 수 년 동안 늘 그래왔던 아이를 미워하는 생각을 믿는 대신, 그저 그 옷을 집어서 빨래통에 넣을 뿐입니다.
생각으로 현재를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그저 지금 이대로일 뿐입니다.
일이 있는 그대로 사실은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마음은 늘 평화롭습니다.
그저 인연 따라 해야 할 일이 생겨났고, 나는 그것을 할 뿐입니다.
그것이 인생 아닌가요?
그런 당연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공연히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해야 할 때 그저 하면 그 뿐입니다.
너무 가볍고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양말을 휴지통에 넣고, 강아지 똥을 치우는 일이 뭐 힘들게 있겠어요.
언제나 눈앞의 현실이 아닌, 현실에 덧붙여진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삶을 무겁게 할 뿐입니다.
생각의 더미, 속삭임을 믿지 마세요.
그저 주어진 삶을 가볍게 사세요.
눈 앞에 펼쳐진 인연에 반응하며 그저 할 일을 하는 즐거움!
그것이 내게 부여된 소소하지만 눈부신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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