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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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깨고 삶에서 깨어나는 명상

방어벽을 허물고 삶을 받아들이라           - 벽을 깨고 삶에서 깨어나는 명상                                      - 목탁소리     삶은 고(苦)가 아니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삶을 힘겹게 살아가면서 ‘아!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구나’라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들에게 삶은 힘들고 고된 괴로움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불교에서도 일체개고라고 하여 ‘삶은 괴로움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원래 이렇게 힘든 곳이구나’ ‘누구나 이렇게 힘든 삶을 근근히 버텨내고 있는 것이겠지’ 하며 힘들고 괴롭게 살아가는데 아주 익숙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고 착각을 하..

나에 대한 의미있는 명상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나'란 존재에 대해 명상을 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우린 모두 '나'란 틀에 갖혀 그 울타리 안에 있는 것만을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참으로 '나'를 그르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에 대한 명상을 해 보기로 합니다. 물론 이것은 '너'에 대한 명상일수도 있으며 이 우주 전체에 대한 명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일체모든 만유는 시간, 공간적으로 모든 것(一切)에 서로 서로 의지해 있다는 의미심장한 결론을 먼저 내려 두기로 합시다. 그리고 시간적인 면에서 바라본 '나'의 실상과 공간적인 면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시간적인 '나'의 생명을 명상 해 봅시다. 나를 낳게 해주신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할..

외롭게 사는 즐거움

때때로 홀로 존재하고 싶은 깊은 속 뜰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언젠가 나 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 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한 그루의 소나무가 지독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한 며칠 일도 다 때려 치고 내 행동 범위도 최소한의 것으로 한정시킨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핸드폰, 전화 벨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행여 TV를 켜거나 신문 보는 것조차 번거로워 잠시 접어 둔다. 될 수 있다면 먹는 음식도 소박하면 좋겠고, 군것질도 끊고 나면 속이 비어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야말로 입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는 일이 적고, 뱃속에는 밥이 적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배려한다. 그럴 때면 이른 새벽 뒷산 깊숙이까지 ..

일상에서의 명상수행

[보물 제833호 기림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입니다. 이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신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으며 삼존부처님은 현재 보물 제95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수인은 지권인으로 부처와 중생 무명과 지혜가 둘이 아닌 세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온 우주법계 일체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님 참생명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부처님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바로 '이 순간' 나의 삶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참생명 부처님 생명이 성성히 깨어 있는 깨침의 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다시금 이곳 현실까지 불러들여 집착하고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괴로움으로 지금 ..

문제는 나에게 있다

모든 존재는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저 피상적으로 조금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적이고도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연기법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너와 내가 서로 통해 있다는 것이고, 너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것이며, 세상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하나의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 일은 결코 작지 않다. 그 하나의 사건에는 무수히 많은 존재가, 나아가 이 우주법계가 크고 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일체 모든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에도 내가 만나는 존재, 나와 마주하는 존재는 특별한 어떤 인연의 힘을 가지고 나와 특별한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특별한 ..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으라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과거나 미래로 흘려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온갖 망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있음을 자주 명상하곤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슬퍼하거나 후회를 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헛된 상상을 함으로써 그 생각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거나 미래로 흐르는 온갖 망상들을 다시 되돌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첫 걸음이란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듯 합니다. 물론 현재의 마음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관찰하고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의 가르침 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고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흐를 뿐입니다. 흐르는..

외로움,우울,고독을 극복하려면

[사진 : 밀양 표충사] [질문] 저는 초보불자입니다 우연히 절과인연을 맺고 일주일 4일정도는 절에 들러 기도를 합니다 매일 하시는 어느 보살님 따라 천수경을 외고 108배를 합니다 평소 우울증이 조금 있었는데 목탁소리 에서 법문도 읽고 기도하면서 우울하던 감정들도 많이 좋아 졌습니다 요즘은 동떨어진 곳에 이사와서 이웃도 없고 학교간 아이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를 가장 많이 지배하는 감정이 외로움인것 같습니다 다른분 상담글도 읽어보면서 .. 감정이 가짜고 허상이고 내가아니고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막상 감정이 올라올때면 힘이 듭니다 제게도 한말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우울증이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말씀하셨듯이, 생각으로는 외롭다는 느낌이 다 허..

열린 종교를 말하다

나의 신앙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불교신자다. 불교 수행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기독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이슬람교며 힌두교의 신자도 될 수 있다. 내가 불교 수행자라는 이유가 나를 기독교 신지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렇다고 나의 이러한 종교적 생각이 나의 불교적인 신앙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참된 불교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렇게 활짝 열려있으며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삶이고, 지혜로운 삶이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에 고집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다만 이름붙인 것일 뿐이다. 진리를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일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 이름이나 틀 속에 스스로 갇히길 좋아하고, 그러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들녘엔 새봄을 맞이하는 꽃들이며 봄나물이 한창이다. 이렇게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내 속 뜰의 공부는 얼마만큼 그 흐름에 부응하며 보내왔는지… 하루 이틀, 한 시간, 일분, 일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너무 쉽게 소모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날이 갈수록 단순한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뻐근한 가슴앓이로 다가온다. 이 소중한 기회 이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음 순간이란 그다지 소중하지 못하다. 이 순간, 내게 주어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이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백일 천일 공부할 것도 없고, 전생 공부 인연 논할 것도 없으며, 다음 생에도 이 공부인연 이어지기를 구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

홀로 있는 즐거움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나 고독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느낌이 우리의 속 뜰을 더 생생하게 비춰 주고 우리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혼자 있다는 것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충만한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면 헛헛하고 외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텅 빈 가운데 성성하게 깨어있는 속 뜰은 마구잡이로 채워 넣는 소유의 정신에 비할 바가 아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함께 할 수 있고, 작은 나의 허울을 벗고 전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몸뚱이만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혼자 있으려면 번거로운 우리의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잔뜩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으면..

묵은 짐 정리하기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 씩 하나 씩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정리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 오다 이제서야 묵은 일을 시작해 본다.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은 정말로 꼭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 속에 들기가 어렵다. 물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놈이 욕망의 소산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필요'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인가가 보인다. '최소한의 필요'가 아닌 것들은 대개 욕망이 개입된 것들이기 쉽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모든 물질마다 제각기 독톡한 분별이 따르게 마련인데, 대부분 그 분별로 인해 첫 생각 정리 대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소유'의 범주로 슬그머니 들어오기 쉽다. 그래서 정리할 때는 마음을 잘 비추어 보아야 그 분별에 속지 않을..

나 자신을 사랑하라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 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 집착하라거나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 다. 온전히 나 자신의 모습을 내 능력이며 외모 성격 재능 학 력... 이 모든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그밖의 모든 조건이며 인연들에 대해서 어느 하나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다른 사람의 것들과 비교하여 열등하다고 느낄 것도 없 습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끌어 안을 수 있어야 하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 다. 보통 사람들은 이대로의 나 가운데서 좋고 싫은 부분을 나누어 놓고서는 좋은 부분에 대해서는 나 잘난줄 아는 우월의식으로 키 워가고, 싫은 부분에 대해서는 못났다는 열등의식으로..

도반의 즐거움

오늘 늘 보아왔던 분이었고, 또 마음 속에서 감사한 도반으로 또 스승으로 그렇게 바라보며 이따금씩 마음 나누며 지내던 분에게서 또다른 면모를 나와 참 많이 닮은 면모를 보았다. 나는 그동안 그 분의 수행이나 삶에 대해 조금은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이런 분이 같은 일을 하며 함께 살고 계신다는 것이 늘 감사하고 고맙고 그랬었다. 그런데 오늘 조금 깊이 대화를 나누어 보았더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들이 많이 닮아있고, 또 내 가슴에 담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담고 계시는 것을 보고 참 행복했었다. 참 좋은 도반을 만난 것 처럼, 오랜 도반을 찾은 것 처럼. 자연에 대한 생각들도 그러하고, 수행에 대한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 농사, 대자연, 산, 바람, 구름, 그런 관심사에 대한 견해에서부터, 읽..

살다가 외로울 때, 고독할 때

살다보면 이따금씩 제가 짊어지고 온 삶의 그림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로 한참을 주춤거리며 내 삶의 시계가 딱 멈춰 섰을 때가 있 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대로 멈춰진 채 중심없이 외로이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 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예전엔 생각만 해도 설레이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어떤 사람들이 곁에 다가와도 그 어떤 흥겨운 일을 벌이더라도 한참을 짙누르는 외로운 흔적을 떨쳐 버리지 못할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집에 들어 앉아 있어도 언젠가 나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지독..

이른 새벽, 생명 관찰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오늘은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다름 아닌 거미. 거미야 매일 보는 것이지마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음부터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줄기차게 지켜본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참 신기하데요. 그 작은 몸집에서 어떻게 이렇게 긴 거미줄이 나왔는지도 그렇거니와 저 능수능란한 솜씨는 가만히 곁에서 지켜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한 10분이 조금 넘었을까 몇 바퀴를 한가닥 줄을 뿜어내며 돌고 돌면서 거미줄을 만들더니만 금새 뚝딱 지어 놓고 함숨 돌리려는지, 단잠을 자려는지 아니, 먹이를 기다리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한참을 저러고 꼼짝 않고 앉아 있습니다. 이러다가 어떻게 먹이를 잡아먹는지 잡아먹히는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참에 한번 관찰해 보려고 나도 함께..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

새벽 예불을 모시고 대웅전 계단 앞에 섰더니 오늘따라 짙은 안개가 이 작은 산사를 한껏 감싸고 있습니다. 저 작은 텃밭도 새벽 짙은 안개 속에서 더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이른 아침부터 싱그럽게 깨어있는 여린 채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새벽녘에도 잠들어 있는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해 주는 엄한 스승님을 만난 것 같은 고마운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터벅 터벅 걷는데 이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아주머님들 손길이 바쁩니다. 이른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뵈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띄어지고 그 분의 생기어린 하루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밭에 나가 일하는 것 뿐 아니더라도 이른 새벽에 깨어나 명징한 하루를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싶은..

변하는대로 변하게 내버려두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일체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어느 한 순간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어떻게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변한다는 진리를 멈출수는 없다. 진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그렇듯 끊임없이 변화해 가기 때문이다. 고정된 진리는 하나도 없다. 끊임없이 변화할 뿐. 변화한다는 그 사실만이 변치않고 항상할 뿐. 진리와 하나되어 흐를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이 그대로 진리가 된다. 우리 자체가 곧 진리의 몸이 되어 버린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되어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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