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의미있는 명상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자세히보기

마음공부 생활수행

나에 대한 의미있는 명상

목탁 소리 2009. 7. 31. 07:16
반응형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나'란 존재에 대해
명상을 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우린 모두
'나'란 틀에 갖혀
그 울타리 안에 있는 것만을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참으로 '나'를 그르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에 대한 명상을
해 보기로 합니다.
물론 이것은 '너'에 대한 명상일수도 있으며
이 우주 전체에 대한 명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일체모든 만유는
시간, 공간적으로 모든 것(一切)에 서로 서로
의지해 있다는 의미심장한 결론을 먼저 내려 두기로 합시다.
그리고 시간적인 면에서 바라본 '나'의 실상과
공간적인 면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시간적인 '나'의 생명을 명상 해 봅시다.
나를 낳게 해주신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할머님, 할아버지
그 위 모든 조상님들, 그리고 또 그 위 조상님들,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 역사 속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형제요 부모 아님이 없습니다.
나로부터 20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209만명
30대를 소급해서 올라가면
약 21억이 넘는 조상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이들 중 한 명만 빠져도
나란 존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시간을 거슬러 일체 모든 과거의 인연들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속의 모든 인물들과 나는
뗄 수 없는 상호 연관된 존재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사랑으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시간의 고리 일체가
나와 통해 있고 지금 이 순간
내 속에 갈무려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 내 속에 나라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따져도 마찬가지 입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지금의 나를 관찰해 봅시다.
옷을 입고, 신발, 양말을 신고 다니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밥을 먹습니다.
그것들 나를 살아가도록 해주는 부수적인 것들은
과연 나에게 그대로 구족된 것인가요?
'나'만의 능력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옷이 지금 내 몸에 붙어 있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노고와 피땀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옷 공장이 돌아가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매달려야 하는가요.
유통과정에서의 도매상, 소매상, 옷가게 주인 등등...
그리고 내가 먹는 밥은 어떠합니까.
단지 내가 내돈 내고 먹으니 내것이고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니
내가 고생해서 내가 먹는 거지라는 생각은
너무도 편협한 생각입니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농부들의 피땀이 필요하고
그 농부가 있기 위해서는 비료 만드는 사람,
삽만드는 사람, 쟁이 만드는 사람,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는 모든 조건,
즉, 땅, 씨앗, 물, 태양, 등등의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지 않고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례로 태양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얼마안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물이 없어도 마찬가지 겠지요.

이처럼 우리는 그저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주위의 모든 조건들과
상호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존재의 무한한 은혜에 의해
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 의상스님의 법성게에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란
바로 이런 사실을 읊은 것입니다.
'한 티끌 속에 온 우주를 머금었다'는
화엄의 법계연기의 세계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시간, 공간적으로
'나'란 존재는
일체 모든 만유, 만생, 유정, 무정의 중생들,
그리고 자연만물과 함께 연관되어서
공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일체의 사소한 미물과도
하다못해 곤충, 짐승, 물, 태양 등과도
나는 연관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간, 공간적으로 일체 모든 존재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인연생입니다.
그러나 유일신에서의 신은
오직 스스로 유일한 존재이기에
불교에서는 수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세요.
모두가 나의 다른 모습들입니다.
나와 인연을 주고 받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의 도반들이며
나의 부처님 이십니다.
이 모두에게 불공 올릴 일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