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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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누는 생각만 없으면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어떤 생각이나 느낌, 욕구나 반응들을 살펴보다 보면 그 모든 것들의 뒤에는 특정한 신념이 있고, 또한 조금 더 깊이 지켜보면 그 신념으로인해 수많은 둘로 나뉜 이분법적인 차별심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 속에도 그 이면을 파고들어가 보면 거대한 관념의 구조물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구조물은 언제나 우리를 이원성의 나뉨으로 몰고간다. 바로 이 둘로 나누는 생각이 모든 무명의 씨앗이며 우리를 고통의 중생계로 가두는 주범이다. 범부는 항상 너와 나를 나누어 놓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행동을 일으키지만, 성인은 너와 나를 나누지 않기에 동체적 견지에서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모든 행위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후배..

문제를 만들어 낸 수준에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우리가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한 번 행위에 옮긴 것은 한 번의 경험이 되어 기억되고, 그런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어 우리 안에 업습(業習)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그 때에는 자동반사적으로 저절로 업습따라, 습관에 따라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즉 과거에 경험하고 행위한 방식대로 습관적으로,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대부분을 이룬다. 무의식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저절로 과거 습관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집에서 시간이 날 때 TV를 자주 보던 사람은 나중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도 모르게 TV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손에 쥐고 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날 때 자주 책을 보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세상엔 좋거나 더 좋은 일만 있다

삶에는 괴로운 일도 즐거운 일도 없다. 다만 '중립적인 어떤 일'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자비) '정신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지혜) 왔다가 갈 뿐이다. 지혜와 자비의 목적으로 우리 삶 위에 등장하는 중립적인 경험이 있을 뿐이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이 두 가지, 지혜와 자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그러니 모든 일은 고맙고도 감사한 일이며, 좋거나 나쁜 일이 아닌, 크게 보면 모두 좋은 일들 뿐이다. 결국 우리 삶에는 '좋은 일' 혹은 '더 좋은 일'만이 일어난다. 즐거운 일은 '좋은 일'이고, 괴로운 일은 그것을 통해 업장을 소멸하고, 지혜를 깨닫게 되기에 '더 좋은 일'이다. 그러니, 좋고 나쁜 모든 삶의 파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것 외에..

무정물도 존중해야 하는 이유 - 생물과 무생물 구분은 없다

현대 과학에서는 유정물과 무정물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곤 한다. 유정물, 다시 말해 생명체는 DNA라는 복제 가능한 유전물질 지니고 있어 생식활동을 통해 자손을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무정물, 무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 광우병의 원인체를 규명하면서 밝혀진 프리온(prion)이라는 원인물질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단백질에 불과하지만 생물체내에서 증식하고 전파되어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비로소 생명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 유정물과 무정물이란 경계가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유정, 무정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분류이자 분별이었을 뿐이지, 본래 그렇게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도는 닦을 것이 없다 물들지만 말라

마조도일 스님은 “도는 어떻게 닦는 것인가”를 묻는 한 스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도는 닦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닦아서 이룰 수 있는 도라면 그것은 다시 무너지기 마련이니 이것은 성문의 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닦지 않는다면 그는 그냥 범부일 뿐이다.” 도를 닦는다 함은 수행을 말합니다. 아마도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목숨 걸고 수행해야 하고, 수행만이 살 길이라는 말도 듣곤 했습니다. 3,000배며, 1만배 절 수행을 하거나, 몇 시간이고 앉아서 좌선을 이어가거나, 금강경 7독씩 매일 독송을 하고, 대비주를 100독 이상 독송하는 등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오던 수행은 이처럼 끊임없이 혹독한 수행을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

주도적으로 삶을 만들어 가려면

하루 하루, 매 순간 순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와 삶에서 원하는 바의 의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살다 보면, 주변의 온갖 소음과 정보, TV나 라디오, 책과 스마트폰 속의 온갖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 수많은 정보와 사람들의 말들로 인해 우왕좌왕하면서 가야 할 바에 명확히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집중하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관심 가지는 것 등은 모두 현실을 창조한다. 그런데 우리는 매 순간 내가 어디에 집중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어디에 관심을 가지는지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이리 저리 끌려다니듯 주변의 온갖 소음과 정보에 휘둘리며 살아가곤 한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이 현실로 선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먼저 의도를 분명히 하라...

자연의 소리를 듣는 사람

세상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평생가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살뜰한 소리는 고요한 법계法界의 울림과 모든 존재 내면의 쩌렁쩌렁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찌든 온갖 소음들만 끊임없이 듣고 산다. 세상의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작고 여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본래의 청음 능력을 상실한다. 제 삶 속에 자연이라는 경이와 축복이 들어오게 된 것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매 년 반복되는 계절을 그냥 저냥 흘려보내다가 어느 순간인가 자연 속에 깃들어 자연 그 자체가 되는 듯한 깊은 떨림을 느끼면서부터 내 삶에 자..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

남을 돕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에게 베푸는 최고의 보시 행위다. 보시는 남을 돕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돕는 것이다. 남을 도울 때 내 안에 '넉넉함, 풍요, 따뜻함, 행복, 사랑, 일체감' 등의 실질적인 지혜와 자비의 파동이 일어나고, 그 파동은 곧 우주에 있는 동일한 파동을 유유상종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면 머지않아 더 많은 풍요와 부, 행복과 기쁨들이 내 삶에 구체적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 가능성의 파장이기 때문에 마음에 연습하는 대로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주는 마음'을 연습하면, 계속 줄 수 있는 상황, 즉 풍요와 부가 넘쳐나서 계속 줄 수 있는 현실이 창조되는 것이다. 반면에 내 것을 아까워하는 마음이나, 주기 싫은 마음에는 '가난, 결핍, 부족, 분리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라

부처님께서 꼬삼비에 계시던 어느날 부처님을 증오하던 왕비 마간디아는 불량배들을 매수하여 부처님이 탁발을 나오실 때마다 뒤를 따라 다니며 온갖 욕설과 비방, 침을 뱉는 등 거친 행동으로 못살게 굴도록 만들었다. 이에 아난다는 부처님께 이 도시를 떠나자고 간청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거절하며 말씀하신다. "욕설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다 그곳을 떠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곳을 떠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무릇 수행자는 문제와 소란이 있을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떠나지 말고 그 문제와 함께 머물면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제가 해결된 뒤에 길을 가는 것이 합당하다. 마치 싸움터에 나간 코끼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더라도 도망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

우리 모두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전혀 다른 차원을 살아가고 있다. 한 가족 안에서, 같은 집에서,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세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집에서, 한 이불 속에서 살고 있는 부부라 하더라도, 한 부모 아래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가정 형편에서 산 형제라 하더라도,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다를 수 있다. 아니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세상, 같은 나라, 같은 가정 안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구의 3가지로 지은 업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몸으로 지은 업과 입으로 지은 두 ..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

행복해지고 싶은가? 자유롭고 싶은가? 성격을 바꿔보고 싶은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깨달음을 얻고 싶은가? 그 무엇이라도 좋다. 무언가를 얻고 싶거나 되고 싶다면 그 답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당신 앞에 펼쳐져있는 삶 그 자체가 이미, 그 모든 답을 주기 위해 거기에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현실이야말로 그 모든 것의 답이며, 실상이며, 진실이다. 그것이 이 세계를 법계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곳은 법의 세계, 진리가 펼쳐진 세계다. 이미 당신 자체가, 당신의 삶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자체다. 다만 당신은 매 순간 펼쳐져있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의 현실을 머릿 속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좋아하면서 더 ..

구하는 자와 누리는 자

'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누리는 자'가 되라. 구하는 자는 구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은 없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궁핍하며 결핍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얻으려 계속해서 찾아 다닌다. 끊임없이 찾고자 노력해야 하기에 늘 바쁘고, 찾을 때까지는 일을 쉴 수가 없다. 에너지는 고갈되고 힘은 점점 빠져간다. 그러나 누리는 자는 이미 있는 것을 그저 누릴 뿐이다. 누리려면 이미 그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미 모든 것이 주어져 있다. 없다는 생각만 없으면 모든것은 이미 완전하다. 구하는 자는 궁핍하지만 누리는 자는 풍요롭다. 누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 현재에 주어진 것들을 누린다는 것이다. 누리는 자는 늘 한가하고 특별히 해야하거나 구할것..

문제? 괴로움? 그런 건 없다

매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하고 초조해 하는 바로 그 마음이 가장 큰 문제를 가져온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는 것을 문제라고 여기는 바로 그 마음이 문제다. 문제 없는 삶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큰 문제다. 우주법계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통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문제가 생기는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업장이 두텁다고 여기며 스스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업보는 단순한 구조적 요소일 뿐, 그 이면의 진실은 우리를 깨닫기를 바라는 무한한 자비에 있다. 업보가 많아서 괴로운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것이라고? 그건 인과응보적 발상이기는 해도, 표면적인 이해일 뿐이다. 당신은 업보가 많아서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 걱정일랑 할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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