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렇듯 세상을 창조해 내는 생각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혜롭고 본질적인 삶은 생각과는 무관하다. 생각이나 관념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로 '나'와 관련된 것들이다. 아상, 아만, 아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를 궁구한다.
그렇다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말란 말인가? 말로 표현하기 부족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깊은 단어를 찾아본다면 직관 혹은 영감이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직관은 생각보다 더 깊다. 가슴이 머리보다 더 깊다. 그것은 때때로 내 안에 있는 붓다의 메시지를 품고 온다.
생각과, 번뇌, 욕심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이들은 언제나 직관보다는 좀 더 빠르고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선호한다. 생각이 만들어 내는 일들은, 그것이 아무리 많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연구 끝에 만들어 진 것일지라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은 전체적이지 않고,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한 가지 문제에 한정하여 생각을 짜내지만, 본질적으로 본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그 한 가지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 온 우주적이고도 연기적이며 상의상관적인 사건으로써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 광대무변한 소식을 우리의 머리가 생각으로 짜 맞출 수 있단 말인가.
밥을 굶고 있거나,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를 만나면 누구나 그 순간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그것은 직관의 차원이다.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영역이다. 그러나 생각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네 재산이 얼마나 된다고 저 사람을 도와?' '다 주고 나면 너는 뭘 먹고 살려고?' 순간 생각은 직관을 무시한다. 나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온갖 생각과 교묘한 관념으로 무장한다. 이제 자신의 행동은 타당한 것이며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런 것들이 생각이 하는 일이다. 언제나 생각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일을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혜롭고 본질적인 일들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온다. 억지스럽거나, 욕망 중심적이거나, 성취 지향적이지 않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생각을 굴려 온갖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하여 결론을 도출해 내려고 애쓰지 말라. 차라리 생각과 논리를 잠시 옆으로 비켜놓은 채 마음을 관함으로써 텅 빈 가운데 충만하게 피어나는 직관의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직관에 반해 생각은 언제나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 옳거나 그르다고 딱 잘라 정할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의 본질은 언제나 무분별일 뿐이다. 그렇기에 직관은 이 일을 선택하거나, 저 일을 선택하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생각처럼 내 안에서 직관의 대답이 분명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직관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열린 가슴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욕망과 증오와 집착과 번뇌 등 아상에서 흘러나오는 번잡스런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가만히 내면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꽃이 피는 소리처럼, 새벽별의 속삭임처럼 들리는 듯 마는 듯 깊은 소식이 들려 올 것이다. 촐싹거리며 생각을 휘둘러 이리 저리 오락가락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직관의 소리를 들으라. 그 소리를 들을 때, 내면의 소리 없는 소리에 존재를 내맡기고 따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본 흐름을 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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