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 즉문즉설' 카테고리의 글 목록 (5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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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 즉문즉설 78

출가를 결심하고 출가하기까지

출가를 결심했지만 아직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가볍게, 편하게 가야하는데 왜 이리 걸리는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결정하고 주위에 통보할 일만 남았습니다. 마침 어제 저녁에 기회가 되어서 어머님께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유일하게 절에 다니시고 제일 이해해 주실 거라는 생각에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많이 놀라셨어요. 밤새 잠 못 주무시고, 출가는 안 된다고만 말씀하시네요. 그냥 절에만 다니라고 했지 누가 너보고 스님하라고 했냐시며 슬퍼하십니다. 어찌 그런 일을 상의도 없이 통보만 하느냐고. 그리고 아침부터 온 식구이 성화네요. 이렇게까지 일줄은 생각지 않았는데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불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 식구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부모님 설득시킬 ..

회사만 가면 불안해 미칠지경입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긴장되고 불안해서 미칠지경입니다. 늘 집중이 안 되고 주변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말이 헛나오고 그러면 더 긴장이 됩니다. 회의에서도 항상 말실수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됩니다. 대학 때 자기소개를 하다가 크게 실수한 뒤로 계속 이러고 삽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과거에 끄달려 있다 보니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는 현재로 돌아왔을 때만 치유됩니다.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때 실수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된다고 하셨는데요, 실수하는 것을 잘못 된 것이라고 판단하지 마세요. 실수를 받아들이세요. 실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게 큰 문제인 것이 아니라고 여기십시오. 실..

실연의 아픔, 기도하면 될까요?

깊이 사랑하던 여인과 만난 지 얼마 안 되 헤어졌습니다. 저는 취업도 못한 상태였거든요. 시험에 떨어지던 날 그녀와 이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었고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녀와의 인연을 끝낼 수가 없어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이 아니더라도 인연의 틀을 움직여서라도 다시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참 답답하고 힘드실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바로 법우님께서 그 여자분께 '사로잡혀 있는' 완전히 '속박당하고 있는' 집착상황입니다. 집착의 속성이 뭔지는 아실겁니다. 그것은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집착하고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오직 집착의 대상에만 사로잡혀 완전히 속박당하고 결박당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

절수행에 대한 궁금증들

절 수행 중에 기도의 내용이 매일 바뀌고 어떤 때는 절 하는 중에도 계속 바뀝니다. 오히려 번뇌가 더해가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마음으로 절을 해야 하는지요. 아무 생각 없이 절만 해도 되는지요? 절 하는 도중에 무슨 기도를 한다거나, 무슨 발원을 생각한다거나 그러지 마시고, 그저 절만 하세요. 생각, 바람, 기원 등의 마음도 다 놓아버리고 다만 절만 하면서 절하는 나 자신을 관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발원 할 내용이 있으면 마음을 비우는 기도를 한 뒤에 기도 끝에 하면 됩니다. 마음이 비워진 뒤에 그 텅 빈 마음에서 이타적인 발원이 나오면 거기에 힘이 붙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계속 발원을 하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고 그 발원에 힘도 안 붙어요. 오직 무념으로 생각 없이 관하며 절하시기 바랍니다. 또 어..

남편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요

현실적으로 남편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부처님 앞에 일 잘되게 해달라고 하기가 죄송스럽지만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들 얼굴을 보면 부처님께 내 욕심을 담은 기도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바라는 기도, 기복적인 기도를 해도 될까요?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세속적인 빌 것이 있다는 말인데, 사실은 빌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다면 사실 마음의 이면에 무엇이 연습되고 있는지를 보세요. 그 이면에는 '지금 남편 하는 일이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미래에는 더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즉 잘 되게 해 달라는 말 이면에 우리는 사실 '남편 일이 잘 안 된다'는 말을 법계를 향해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상과 무아면 누가 깨닫나요?

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라고 합니다.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 해탈을 하는지요?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가 '자신이 깨달았다'는 상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아가 남아 있고, 아상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깨달은 자'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자라는 육신이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에 갇힌 생각이 없다는 말이고, 무아와 무상을 완전히 자각한 채 고정적인 실체관념을 비워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는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연기한다'는 ..

공하다면, 참회도 용서도 필요 없나?

내가 없는 것이라면 참회해야 할 나도 없는 것 아닌지요? 모든 것이 공하다면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또 내가 없는 것이라면 무엇에 감사할 대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업도 없는 것인지요? 만약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결정짓고 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무기공에 떨어지는 거예요. 무애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참회도 안 하고, 감사도 안 하고, 악업도 마구 지으면서 업을 받을 나도 없다고 한단 말입니다. 주로 그런 경우는 무아, 공, 연기, 중도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머리로만 이해해도 그렇습니다. 무아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가 없다'라고 하는게 아니예요. 이렇게 내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없다고 했느냐? 그건 이런 내가 없어서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집니다

어디에서 보니 '남에게서 보는 것은 내안에도 있다'는 말이 있데요. 모든 경계가 나의 과보로서 온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업의 나툼'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런 경계를 내안에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바깥 경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내 안에 비춰져서 내 안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우리는 인식하거든요. 그러니 사실은 바깥 경계를 인식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비춰진 경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는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 않지만 우린 그 경계를 가지고 좋다고 나쁘다고 분별하잖아요. 그 자체가 바깥 경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비춰진 바깥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게 바로 내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외부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

벌레가 무서워요

불교에서는 무상과 무아라고 합니다. 항상 하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있어 해탈을 하는지요? 해탈을 하는 '나'도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나'에 얽매여 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있음이 있을 뿐이지, 깨달은 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가 '자신이 깨달았다'는 상에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아직 자아가 남아 있고, 아상이 다 없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깨달은 자'가 없다는 것은 깨달은 자라는 육신이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에 갇힌 생각이 없다는 말이고, 무아와 무상을 완전히 자각한 채 고정적인 실체관념을 비워버렸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나 무아는 '없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연기한다'는 ..

운명인가요? 자유의지가 있나요?

내가 없는 것이라면 참회해야 할 나도 없는 것 아닌지요? 모든 것이 공하다면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또 내가 없는 것이라면 무엇에 감사할 대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업도 없는 것인지요? 만약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결정짓고 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무기공에 떨어지는 거예요. 무애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참회도 안 하고, 감사도 안 하고, 악업도 마구 지으면서 업을 받을 나도 없다고 한단 말입니다. 주로 그런 경우는 무아, 공, 연기, 중도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머리로만 이해해도 그렇습니다. 무아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내가 없다'라고 하는게 아니예요. 이렇게 내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없다고 했느냐? 그건 이런 내가 없어서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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