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출근하면 긴장되고 불안해서 미칠지경입니다. 늘 집중이 안 되고 주변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말이 헛나오고 그러면 더 긴장이 됩니다. 회의에서도 항상 말실수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됩니다. 대학 때 자기소개를 하다가 크게 실수한 뒤로 계속 이러고 삽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과거에 끄달려 있다 보니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것은 근원적으로는 현재로 돌아왔을 때만 치유됩니다.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때 실수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된다고 하셨는데요, 실수하는 것을 잘못 된 것이라고 판단하지 마세요. 실수를 받아들이세요. 실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게 큰 문제인 것이 아니라고 여기십시오. 실수하면 안 된다고 하는 바로 그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내가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정상적으로 보여야 하고 나아가 좀 더 말도 잘 하고 세련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기 욕망이 보일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이미 지난 과거는 놓아버리십시오. 그 과거에 걸리면 그 걸린 마음 때문에 현실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그 과거에 걸려있는 마음이 현재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말의 실수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근원적 처방은 사실 깊이 관찰하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추상적이다 하시겠지만 사실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입니다. 긴장되고 불안한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공부의 재료입니다. 바로 그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그 느낌을 충분히 느껴 보고, 관찰하고, 머물러 지켜보는 것입니다. 모든 과거와 관념과 잘 보이겠다는 자아 등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 직접 대면하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수행이고 명상이고 관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님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스님들은 경전에는 육식 하지 말라는 말이 없다고 하고, 또 어떤 스님들은 불교 경전에 분명히 육식을 금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지요? 불교의 육채식에 대한 근본 입장은 무엇인가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롯이 녹아 있는 아함경이나 니까야, 즉 근본불교 가르침에 의하면 육식을 금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주는 대로 먹는 것’이 근본 입장입니다. 탁발을 하다보니 육식이나 오신채는 빼고 달라고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을뿐더러, 당시 인도의 여건 상 오늘날처럼 음식이 풍성해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겠지요.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누어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었던 만큼 이것 저것 고르고 따지면서 ‘이런 것만 달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점차 많은 경전에서 육식을 자재하도록 권하고 있거나, 또 어떤 경전에서는 육식 자체를 자비 불성의 종자를 끊는다고 하여 금지토록 권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육식에 대한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육식은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비불성의 종자를 끊는 것이고, 환경문제나 생명의 관점에서도 육식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탁발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 아닙니다. 내가 먹고 싶은대로 무엇을 먹겠다는 자기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춘다의 상한 고기를 공양 받고 병이 나셨지만 춘다의 공양을 칭찬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선악업이 있고 천상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지요?
옳고 그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근본법에 관한 사항입니다. 본질에 있어서 본다면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겠지요. 그 분별 속에 사는 존재가 바로 중생이니까 말입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옳고 그름이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굳게 믿으면서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이 생겨나고, 나아가 지옥과 극락도, 선업과 악업에 대한 과보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다 허상이지만, 그 허상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고 하는 것이란 말이지요. 꿈 속에서 울고 웃으며 지옥 갔다가 극락 갔다가 하지만, 꿈을 깨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 허상의 세계 속에서는 옳고 그름도 있고, 선업 악업도 있고, 극락 지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허상을 탁 깨뜨려 버리면 그 모든 것이 공하다 이 말입니다.
본질에서 다 공한 것을 가지고, 시대와 전통과 나라와 문화에 따라서 어떠 어떠한 것은 선이고 어떠 어떠한 것은 악이다 하고 우리 스스로가, 역사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스스로 그 만들어 놓은 것에 빠져 꼼짝 달싹 못하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문화가 어느 나라에서는 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선악을 규정하기로 작정을 하고 그 제 스스로 만들어낸 규정에 스스로 얽매여서 선악의 과보를 받으며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 꿈을 깨는 것, 허상을 깨고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깨달음이고, 그 깨는 작업을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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