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생활수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19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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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457

습관적 자동반응을 보면 새로운 삶이 열린다

우리가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한 번 행위에 옮긴 것은한 번의 경험이 되어 기억되고,그런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어우리 안에 업습(業習)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그 때에는 자동반사적으로저절로 업습따라, 습관에 따라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즉 과거에 경험하고 행위한 방식대로습관적으로,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일들이 우리 삶에는 대부분을 이룬다. 무의식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게 되면우리는 저절로 습관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집에서 시간이 날 때 TV를 자주 보던 사람은나중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나도 모르게 TV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손에 쥐고 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날 때 자주 책을 보던 사람은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책을 보고 있는 자..

지금 이대로의 너와 나를 사랑하라 허용하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보라. 진정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참된 사랑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면,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를 허용해 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하고 나면 그 뒤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해석이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그를 판단하고 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지금 모습 그대로이길 허용해주라. 당신은 지금 이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다. 돈도 더 많았으면 좋겠..

[기도수행법 강의] 3강 - 참회와 참회기도

참회를 해야 하는 이유 가장 먼저 귀의를 하고 난 뒤에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수행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혼탁하고 번뇌로 오염되어 있거나 과거의 죄업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이라면 아무리 수행을 하려고 해도 마음이 고요해 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참회를 통해 죄의식과 과거세의 업장을 소멸시키게 된다면 청정하고 깨끗해진 마음이 드러나기에 더욱 집중과 관찰이라는 수행에 들어가기가 쉬워질 것이다. 일제시대 수월스님은 견성의 방법을 묻는 용성스님께 “지난 세상 업장은 무겁고 선근은 약하니 견성하기가 어려우니 대비주를 외움으로써 먼저 업장을 소멸시키라”고 하셨다. 용성스님은 아홉달 동안 대비주를 십만번 외우고 났더니 모든 번뇌가 없..

[기도수행법 강의] 2강 - 귀의(歸依)

준비 단계의 수행 - 귀의, 참회, 발원 먼저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든 수행의 바탕이 되는 준비 단계의 기초 수행이 있으니 귀의와 참회 그리고 발원이다. 귀의는 내가 가야 할 수행의 길에서 어느 곳에 의지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참회는 본격적인 수행이 시작되기 전에 과거에 지어 온 죄업을 참회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수행의 토대를 갖추기 위한 수행이며, 발원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원력과 서원을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설정이자 목표를 분명하게 해 준다. (1) 귀의 불자의 첫걸음, 삼귀의 불교 최초로 재가 신도가 된 야사의 아버지가 부처님께 법을 듣고 모든 번뇌가 다하고 법의 눈이 밝아져 부처님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씀드린다. “이제부터 저..

[기도수행법 특강] 1강 - 수행의 개관

이번 달부터 12월까지 약 10회에 걸쳐 월간 봉은 판전에 '심출가, 생활수행'이라는 제목으로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기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연재를 시작합니다. 목탁소리 지대방 카페에 함께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우님들의 생활 속 기도수행에 작은 지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봉은판전의 지면이 좁은 관계로, 원래 적어 놓았던 글을 축약하여 제출하였으나, 목탁소리 지대방에는 본래 적어 놓았던 글 원문 전체를 게재하여 보다 알찬 지침이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법우님들의 일상 생활 속 기도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서원합니다. 봉은판전 특집 '심출가, 생활수행' 수행의 개관 - 수행은 무엇이고, 왜 하는가? 수행은 왜 하는가? 불자들이 타종교 신자와 다른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수행을 한다는 점일..

명상수행이 필요한 이유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태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다. ‘doing’ 의 상태다. 일을 하고 있거나, 밥을 먹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거나, TV를 보고 있거나,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제 뭘 할까?’ 하고 ‘할 것’을 찾기 시작한다.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그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정 할 것이 없을 때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있다’는 것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즉 행위할 때 우리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은 언제 그 목적지에 도착할지에 마음이 가 있거..

당신 앞의 한 사람이 곧 우주

만약 당신이 당신의 노력과 의지로써 원수처럼 지내던 누군가와 결국 관계가 회복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당신과 그 사람간의 관계회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이 우주법계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며, 당신 내면세계가 한층 더 조화롭고 고요한 본성을 회복했음을 의미한다. 당신이 하찮게 생각했던 당신 앞에 있는 바로 그 한 사람은, 사실 한 사람의 평범하거나 못난 모습을 띄고 나타난 이 우주법계의 화현이며, 부처의 화신이고, 그가 바로 이 우주 전체를 대변하는 상징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인 것 처럼 가장하고 나타난 우주 전체다. 이 우주 전체와 둘이 아니게 연결된 우주법계 전체의 드러남인 것이다. 당신이 이 우..

법상스님의 '금강경과 명상수행' 강좌 안내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 14년도 불교아카데미 '금강경과 명상수행' 강좌 수강생 모집 “금강경과 마음공부” 저자 법상스님 직강으로 실시됩니다! ■ 금강경 강좌 및 명상수행 실수(금강경 강좌 + 명상수행 실수) ❏ 일 시 : 2014.3.7.(금)∼7.4(금) 매주 금요일 오전 10:00~12:00 ❏ 장 소 : 서울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화랑호국사 ❏ 동참보시금(교재비) : 30,000원, 동참보시금은 입학 당일납부! ❏ 문의/전화접수 : 화랑호국사 02-972-7747, 이메일 접수 : buda1109@daum.net ❏ 접수는 전화나 이메일로 ‘이름, 핸드폰번호, 주소, 차량번호, 차종’만 알려주세요. (차종/차량번호 등은 육사 위병소 통과 시 필요하며 아카데미 수강생은 위병소 바로 통과됨) ❏ ..

'집착'할 것인가 '선호'할 것인가

집착하는 것을 가졌을 때 행복하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욕망이 충족된 순간의 기쁨은 단순한 쾌락에 비교할 만하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집착의 크기는 늘 집착하는 것을 얻는 능력보다 더 크고 빠르게 증폭된다. 아무리 빠르게 쟁취해 내더라도 그것을 쟁취한 순간, 집착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집착하는 대신 단순히 선호할 수도 있다. 욕망하지 않고 그저 원할 수도 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 수도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행하되 행한 바 없는 무위의 삶이 바로 이것이다.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매 순간 그저 선호한 것을 행해 보라. 선호는 단순히 원할 뿐 집착이 없는 순수한 동기다. 집착이 없다고 선호하는 것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호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이 없기에 오히려..

종교를 보는 또 다른 열린 관점

나의 신앙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불교신자다. 불교 수행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기독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이슬람교며 힌두교의 신자도 될 수 있다. 내가 불교 수행자라는 이유가 나를 기독교 신지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렇다고 나의 이러한 종교적 생각이 나의 불교적인 신앙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참된 불교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렇게 활짝 열려있으며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삶이고, 지혜로운 삶이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에 고집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다만 이름붙인 것일 뿐이다. 진리를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일 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 이름이나 틀 속에 스스로 갇히길 좋아하고,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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