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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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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고 떠나는 즐거움

[사진 : 법주사]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본래부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 또한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무상한 존재인데, 하물며 ‘내 것’이라고 붙잡아 두고 집착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뒷동산의 나뭇잎이 어찌 ‘내 것’일 수가 있으며,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돈을 지불한다고 어찌 ‘내 땅’일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오만한 ..

이것만은 반드시 버려라

[사진 : 법주사]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탐심을 끊어버리기 위함이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에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진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치심을 끊기 위함이다. 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모두 ‘나’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탐욕을 끊는 공부이고, 내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성냄을 ..

업보는 누구에게나 온다

[사진 : 지리산 천은사] ‘내게는 업보가 닥치지 않으리라’고 작은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작은 악이 쌓여서 큰 죄악이 된다. ‘내게는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고 작은 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금씩 쌓은 선이 큰 선을 이룬다. [법구경] 아무리 작은 악업을 짓더라도 그 업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불태운다. 작은 악업의 결과가 미미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당장에는 비켜갔으리라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방울물이 모여 항아리를 채우는 듯 그러한 작은 악이 모여 언젠가는 분명한 큰 재앙으로 온다. 아무리 작은 업이라도 언젠가는 분명한 결과를 받는 법. 지금 몸이 건강하다고, 지금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지금 집안이 화목하다고, 지..

무아, 나는 없다

'나'는 없습니다(無我).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가 없는 이유는 '나' 홀로 만들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며, '나' 스스로 배워 익힌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 생각 또한 내가 아닙니다. 이 몸이란 부모님을 의지해 태어난 것이며, 마음, 생각들이란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살아오며 부딪쳐온 이 모든 환경들로부터 배워 익혀 온 것들에 불과합니다. 어느 하나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결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이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육신의 지수화풍 또한 이 우주의 지수화풍을 잠시 인연에 맞게 빌어다 쓰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 쌀이 있습니다. 분명 쌀과 나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물..

다 놓으면 본래모습으로 간다

[보성 녹차밭] 방하착 방하착 하였 더니 묻습니다. ‘다 놓으면 다 해결됩니까’ ‘놓는다고 다 된다는 것이 어찌 말이 됩니까’ 하고 말입니다. '놓으면 된다 된다 다 된다’ 저는 그렇게 말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속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되는 것과 ‘참’으로 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는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분간하기 어렵 습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에서야 편하고 쉽고 이기심이 충족되는 쪽으로 일이 흐르면 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참으로 되는 것이란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 다. 우리는 거짓나의 생활에 익숙해 있기에 거짓나의 마음이 충족되고, 거짓나가 행복하면 그만입니 다. 그러나 거짓나의 충족과 참나의 충족, 거짓나의 되는 것과 참나의 되는 것은, 어쩌면 때로는..

연기와 중도 - 연기법 강의(6)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기본 법칙을 다른 관점에서 조금 더 확장해 보자. 이 법칙은 나아가 큰 것이 있으므로 작은 것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므로 틀린 것이 있고, 남자가 있으므로 여자가 있고, 깨끗한 것이 있으므로 더러운 것이 있고, 이 생각이 있으므로 저 생각이 있고, 생이 있으므로 노사가 있고,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생사가 있으므로 열반이 있고, 이런 식으로 우리가 분별하고 있는 일체의 이원론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즉 크다 작다는 분별은 사실 고정적으로 크고 작은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큰 것이 있으므로 그것과 견주어 비교되는 작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키가 큰지 작은지는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결정..

우주적이고 다차원적인 연기 - 연기법 강의(5)

우주적이고 다차원적인 연기 - 상의상관성 이상에서와 같이 연기법에 의하면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생겨나거나 또는 홀로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법은 없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다른 모든 존재와 여러 원인,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 그렇기에 정신적, 물질적 모든 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법을 ‘관계성의 법칙’, ‘상의성의 법칙’ 혹은 ‘상의상관성’ 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연기법에 대해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텐데, 부처님 당시에도 코티카라는 제자가 연기에 대해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며 사리푸타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하는 장면이 『상응부경전』12..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라

[대흥사 연못]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괴로우신가요? 이미 지나간 잘못되어진 일로 마음고생 하고 있진 않는가요? 앞으로 있을 막중한 일과 스트레스로 인해 답답하진 않으신가요?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면 '일'로 시작하여 '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일' 속에서 행복을 찾고 또한 괴로움을 느끼게도 됩니다. 일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적성에 맞는 일인지, 돈 벌이가 괜찮은 일인지, 일하는 환경이 좋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지, 일이 잘 풀리는지, 할 일이 많은지, 일이 힘든지 재미있는지... 온통 우리의 삶은 일, 일, 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노는 것 조차 '노는 일'이 되니 말입니다. 이런 속에서 일이 잘 될 때는 '행..

깨달음, 깨달음의 안목

[두륜산 대둔사 부도탑]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깨달음이란 어떤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궁금해 하는 문제일 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한 일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러해야 한다' '내가 알 수 없는 그 엄청난 무엇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더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깨달음과 자기 자신과의 사이를 너무 멀리 잡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깨달음은 그 어떤 특정한 근기의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 말입니 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행자라고 자부하는 이들마저도 '이번 생에는 복이나 짓고 그러다보면 다음 생 언젠가 깨칠 날이 있겠지' 하고 멀찌..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며... 해가집니다.] 힘들고 답답할 때면 우린 내 주위를 탓하기 쉽습니다. 선배의 나쁜 성격을 탓하고, 후배들의 안일함을 탓하며, 사람들의 무능력을 탓하면서 '나'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정작 탓해야할 대상이 누구이며 관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올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수행자의 진면목은 이 세상 모든 일은 '나'로부터 나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올바로 알고 실천 할 줄 아는 모습에서 나옵니다. 탓해야할 '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동료들의 모습에서 나의 이기심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안일하고 게으른 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의 나태함에 채찍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욕하거나 헐뜯는 사람 나에게 발길질하는 사람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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