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법주사]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탐심을 끊어버리기 위함이다.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에 성내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진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것은 치심을 끊기 위함이다.
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의 연마이다.
[잡아함경]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는 모두 ‘나’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니, 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탐욕을 끊는 공부이고, 내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성냄을 끊는 공부이며, 실체적인 어떤 ‘나’가 있다는 생각을 비우는 것이 어리석음을 끊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탐진치(貪瞋痴)의 뿌리는 한마디로 아상(我相), 아집(我執)에 있다. ‘나’라는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라는 소유욕이 일어나고, 나의 소유물이 없으면 곧 나도 없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과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 탐심의 뿌리를 뽑는 첫 번째 수행이다.
두 번째로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므로 내 생각과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된다.
내가 옳다는 것은 너는 틀리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다툼과 성냄의 씨앗이다. 사실 그 어떤 생각도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주는 것 이것이 진심의 뿌리를 뽑는 두 번째 수행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 모든 뿌리에 있는 생각인 ‘내가 있다’고 하는 착각이 바로 어리석음 곧 치심이다. 나는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겨난 비실체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바로 알고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치심의 뿌리를 뽑는 세 번째 수행이다.
수행이란 이렇듯 ‘나’에 집착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지혜를 연마하여 탐진치 삼독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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