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와 히운추리의 일출

이른 새벽,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눈이 뜨인다.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란 사람처럼 앞마당으로 뛰어 나간다. 여전히 새벽별이 하늘을 수놓고 있지만 동녘하늘이 깨어남과 함께 별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어스름한 아침, 어둔 이불을 걷어치우는 촘롱 마을, 그 위로 우뚝 선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와 히운추리(Hiunchuli, 6441m)의 기상이 초연하다.

시간은 정지된 듯 정지된 듯 그러나 침묵의 새벽을 뚫고 쏜살같이 흐른다. 어느덧 창백하던 새벽빛이 황금빛으로 바뀌며 사우스와 히운추리 설봉의 저 위쪽부터 서치라이트를 비추듯 빛이 비쳐 내려오고 있다.

사우스와 히운추리가 금빛 옷을 차려입고 화려한 대자연의 공연을 벌이는 동안 마차푸차레(Machapuchare, 6501m)와 안나푸르나 3봉(Annapurna III, 7555m)은 저만치 떨어진 발치에서 해끔한 눈을 뒤집어쓰고 즐거운 관객이 된 양 두 봉우리의 향연을 지켜보고 있다. 촘롱에서는 새벽 시간의 주인공은 사우스와 히운추리의 장엄한 일출이고, 저녁 시간의 주인공이 바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3봉의 처연한 일몰이다.

해질 무렵이 되면 하루 종일 희뿌옇던 두 봉우리가 저녁놀과 함께 장결한 빛의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두 공연 모두 클라이막스는 잠깐이다. 한 5분에서 10분 정도 봉우리를 붉게 달구며 태양과의 합주를 이루어내고는 이윽고 더 밝아지거나 더 어두워지곤 한다.

안나푸르나 사우스의 일출을 이곳에서처럼 가깝고도 명정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없지 싶다. 산정의 봉우리 빛깔이 비스듬히 비치는 첫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붉게 타오르더니 점차 그 빛을 산 아래 몸뚱이 전체로 흩뿌리며 절정의 빛감을 대지와 나눈다. 봉우리의 빛이 흐려지는 대신 촘롱 전체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첫 새벽의 빛은 화려하지만 좁고, 이윽고 퍼져나가 산 전체를 감싸는 빛은 수수하지만 전체 산맥을 고루 비춘다.

이마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따갑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햇발에 등을 돌린다. 산과 나무와 집과 꽃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햇귀의 축복을 받아 하늘거리며 속삭인다.

일찍 아침을 챙겨먹고는 길을 나선다. 사우스 봉우리는 여전히 당당하다. 산등성을 따라 길게 늘어 선 게스트 하우스, 표연히 나부끼는 룽다(Lungda)와 타르초(Tharchog), 그리고 반짝이는 햇살과 영봉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말고 이 한 자락 그림 풍경에 넋을 잃고 서 있다. 길을 걷다 아쉬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하릴없이 이 수윤한 풍경에 잠긴다.

이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곳은 경전이요 진리가 숨 쉬는 법신(法身) 그대로다. 거기에 타르초의 성성한 수트라 한 구절이 여린 바람에 흩날려 이 대지 위로 법을 설하고 있는 풍경이란!

깊고 중후한 목소리의 노스님 염불소리가 귓전을 씻고 지나가는 듯도 하고, 가난한 시골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성가대의 연주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이 오랜 대지와 산이 만들어내는 진리의 풍경소리가 어찌 인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것인가.

내리쬐는 아침 햇발 사이사이로 따스한 법비(法雨)가 내리는 듯 하다. 산봉우리에서부터 능사면 전체로 퍼져나간 촘롱의 계단을 오랜 마을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걸어내려 간다. 계단 끝에는 사우스에서부터 내려왔을 눈 녹은 시원한 계곡물 줄기가 흐르고 그 위로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지금까지 내려 온 만큼 다시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가을, 산에는 꽃이 피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햇살을 머금고 있는 꽃들과 인사를 나누며 산을 오른다. 꽃들이 참 많다. 지난 주 막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 온 한 여행자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산에 가면 지금쯤 꽃들도 많겠지요?"

하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꽃요? 못봤는데요. 요즘 산에는 꽃 없어요."

였다.

그러면 지금 내 눈 앞에서 이렇게 선하디 선한 모습으로 내 눈길을 반겨주는 이들은 뭐란 말인가! 분명 지천으로 피어난 꽃을 바라 볼 마음의 빈 공간이 없던 거지 꽃이 없던 것은 아니다.

우리 눈이라는 것이 그렇다. 모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 관심사만, 내 마음 속에 혹은 기억이나 업식(業識)에 담겨 있던 것들만을 선택해서 볼 뿐이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우리 눈과 마음은 자동적으로 분별하고 취사선택한다. 내 관심사가 아닌 것은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된 채. 그런 바라봄에서는 지혜가 움트지도 않으며 만물에 대한 평등한 사랑도 깃들 수 없게 만든다.

그 시선 자체가 벌써 세상을 차별하고 나누는 것이다. 카스트만 카스트가 아니라 이런 마음의 창을 닫아버린 모든 시선이 바로 카스트다. 카스트는 겉으로 드러난 차별이다 보니 오히려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고 잘못된 것이라는 앎이라도 있지만, 우리 시선에 깃든 이 엄청난 차별심은 아마도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기 쉽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두라. 닫지 말고 모든 것이, 모든 사물이 아무런 제한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라.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지혜의 길이며, 모든 성자들의 길이다. 왜곡과 색안경과 나만의 필터에 거르지 않은 순수한 야생의 자연 그대로의 것, 날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 삶에는 경이로운 변화와 삶의 진정한 진보가 시작된다. 바로 그 때, 생생한 지혜가 스스로 우리를 찾아온다. 아니 찾아 온다기 보다 그동안 꽉 닫아 놓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둠으로써 그동안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지 못하던 지혜, 사랑, 깨달음이라는 영적인 것들이 비로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이것뿐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향해 나를 완전히 열어두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내 존재 위를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되, 무엇이 오고 가는지 차별 없이 다만 지켜보는 것!

한참을 걷다 잠시 게스트 하우스 식당에서 쉬며 점심으로 색다른 메뉴를 시켜 본다. 맛있게 먹고는 잠시 쉬면서 한숨을 돌린다.

 

'쨍!' 하고 빛나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순간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은 길을 걷는 내내 계속된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꽃한송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싱그러운 생명력을 본 적이 있는가! 날갯짓하는 자유로운 비둘기의 비상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줄기의 거센 웅고함 속에서, 우레와 같은 거친 침묵으로 거기 서 있는 저 희말라야 설산 봉우리 속에서, 때로는 습한 계곡의 작은 이끼들 혹은 이름 모를 풀들의 가녀린 손짓 속에서, 간드룽을 지나며 만난 갓 두 살 바기 아기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일상을 벗어난, 세속을 넘어서는, 말로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쨍!' 하고 빛나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순간을 만나곤 한다. 이런 순간의 침묵의 지켜봄이야말로 우리의 거친 속 뜰에 신의 메시지를 전해주며, 붓다의 지혜를, 생기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계속해서 숲길이 이어진다. 원시의, 몇 천 년을 인간의 인위적 손길이 깃들지 않았을 법한 순수 천연의 야생 숲들이 눈길 가는 곳마다 펼쳐진다. 야생 원숭이들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질주하고, 나무 등걸마다 천년만년 세월을 버텨 온 이끼들로 고색창연한 옷을 뽐내고 있다. 말 그대로 듣기만 했던 원시 밀림이 오롯하게 펼쳐진다.

이곳부터는 사원이 있는 지역이라 일체 고기나 생선 종류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트레커들에게도 정숙과 경건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푯말이 걷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사실 사원이 있든 없든 이 자연 그대로가 사원이요, 이 야생을 흐르는 우리 존재 자체가 이미 거룩한 법당이다. 숲은 모든 존재를 거룩하게 씻어주는 맑은 옹달샘과도 같다. 콘크리트 빌딩과 도시 속에서 매일같이 생존투쟁을 벌이며 싸우고, 욕하며, 사로 먼저 가려고, 더 많이 가져가려고, 더 높이 오르려고 아웅다웅하던 사람들도 도시를 벗어나 청량한 숲에 깃드는 순간 저절로 자연의 마음을 닮게 된다. 대자연이 신성한 갠지즈 강물이 되어 길을 걷는 이를 목욕시키는 것이다. 억겁의 묵은 때를 벗겨내듯, 오랜 업장의 켜켜한 때까지 활활발발하게 벗겨내 주는 것이다. 어찌 자연을 닮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히말라야 생수와 산딸기 천연간식

뱀부(Bamboo, 2310m)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걷는다. 하루 종일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오히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기만 한다. 걷기에 집중이 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저 길들을 올라왔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솟구친 듯 지도를 보면 날아 와 있다.

뱀부에서 점심을 먹고 물통에 물을 사 온다는 것이 그만 깜빡 하고 말았다. 생수를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생수 값은 고도가 올라갈수록 값이 훌쩍 따라 올라간다. 그래서 생수 대신 사 먹을 수 있는 물이 산중을 흐르는 계곡물을 끓여서 파는 물인데, 생수 값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깜빡 하고 그 물조차 사오지 못한 것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 코스가 계속되거나, 계곡 한쪽 옆에서 폭포수처럼 뚝 떨어지는 작은 지류의 계곡물들이 드문드문 보이면서 목마름을 유혹하고 있다. 여행자들 말에 이곳의 계곡물은 그냥 막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현지 포터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현지의 계곡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아무런 탈이 없다. 어떤 포터들은,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포터들이 아예 물통을 가져오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물을 먹고 싶으면 그저 계곡물을 마시면 되기 때문이다. 물통이 따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행자들만 물통이 필요한가!

내 목마름 탓도 있겠으나,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물이 이 울울창창한 밀림과도 같은 숲을 뚫고 흐르는 물이 아니던가. 숲을 통과한 물이란 그 어떤 성능 좋은 정수기 보다도 더 좋은 대자연의 필터로 조화롭게 정제된 생명수일 터다. 이런 생각이 들자 현지의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마셔서도 안 된다고 했던 여행자의 말이 기우처럼 들렸다.

생각이 많은 것 보다는 저지르는 것이 많아야 한다. 짐꾼들이 쉬고 있는 계곡 곁에서 함께 쉬다가 그들을 따라 몸을 납작 엎드린 채 물을 벌컥벌컥 시원하게 들이마시고, 물통에 물까지 채워 둔다. 물 마시는 걸 본 영국인 여행자 한 사람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활짝 웃더니,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표정으로 자신도 아예 얼굴을 계곡물에 푹 파묻고 입을 뾰족하게 내밀어서는 후루룩 하고 물을 들이 마시더니, 이윽고 "카~"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시원스레 불을 마시고, 또 채워 넣고 길을 걷다 보니 이제는 배가 고파온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어느 때 부터인가 길 곁에 빠알간 산딸기가 토실토실 익어 있는 게 아닌가. 분명 한국에서 보아오던, 따 먹었던 바로 그 산딸기가 맞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이 맛있는 산딸기가 이렇게 바로 길가에 풍요하게 열려 있는데 아무도 따 먹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현지인 포터들도 이 산딸기를 따 먹지 않는다. 순간 무언가 내막이 있지 않을까, 먹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지만 기본 상식을 따르기로 한다. 분명 한국에서의 산딸기가 맞는데다가, 가시가 있는 나무의 열매는 백이면 백 독이 들어 있지 않은 열매다.

이럴 때는 남들이 따 먹어 주지 않은 것이 너무나 고맙다. 혼자서 쉬엄 쉬엄 길을 걸으며 한 두 발자국 길에서 더 들어간 쪽에 풍성하게 열려 있는 산딸기를 따 먹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 계속해서 길가에는 산딸기가 멈추지를 않는다. 오후 한 때의 간식으로는 그야말로 제격이 아닐 수 없다.

 

혼자 걷기, 생각과 함께 걷기

쉬엄 쉬엄 걸어 오르는데도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다. 많이 가야 희말라야 롯지(Himalaya, 2,870m) 쯤에서 하루를 묵지 않겠나 하던 계획이 저절로 바뀌면서 희말라야 롯지 위쪽 3,200고지 데우랄리(Deurali, 3,200m)까지 내친김에 오르기로 한다.

3,000고지부터 본격적인 고산병이 시작된다고 하니 2,800고지인 희말라야 롯지보다는 오히려 3,000고지를 조금 웃도는 데우랄리에서의 1박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래야 3,200고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고산병 증세를 하루쯤 묵혀둘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많다. 산에 와서 그저 걷기만 하다 보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상념의 조각들이 얼마나 많이 또 끊임없이 조잘대며 올라오는지가 보다 더 생생하게 보인다. 희말라야 롯지에서 자든 데우랄리에서 자든 사실 뭐 특별할 것이 있겠나. 본래의 계획이야 어떻든 간에 그 때 그 때 바뀔 수 있는 것이니 별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되지만, 이런 별 것 아닌 순간에 조차 생각은 늘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위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내가 혼자 만든 계획을 나 혼자 바꾸겠다는데 무슨 논리가 필요한가 말이다. 그러나 생각이란 녀석은 완전 자동 시스템으로 완벽한 자기합리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우리 생각이란 녀석은 언제나 줄기차게 내 편에 서서 합리적이고도 논리적인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는 든든한 아군이다. 그러나 이 아군이 고맙다고 그 녀석의 논리에 반갑게 동조해서는 안 된다. 생각, 사고는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내 편도 아니고, 나 자신인 것은 더욱 아니다. 그저 생각은 생각일 뿐, 내 아상이라는 편에서 아상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자기 집착의 전형일 뿐이다. 여기에 속게 되면 이제부터 나의 존재는 생각의 늪에 빠져 공허하고 괴로운 연극을 시작해야 한다. 두 눈 똑똑히 뜨고 생각이라는 감옥 속에서 빠져 나오는 것만이 내가 주체적으로 이 삶 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방법이다.

걷다 보면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와 내 존재가 투명하고도 분명한 인식으로 나 자신의 길을 걷는 두 때를 만나게 된다. 전자의 길을 걸을 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고 온갖 기억과 추억과 과거의 또 미래의 흔적 속에서 무수한 소설의 시나리오를 써 가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늘 내 안에 있던 과거 기억들의 반복이요 진부한 스토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이란 녀석은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생각은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생각을 비웠을 때,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창의력과 새로움이 마구 마구 샘물처럼 솟아나곤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일을 계획할 때라도 생각으로 계획을 짜서는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명상 속에서, 무념(無念), 무심(無心) 속에서 텅 빈 공간을 거름으로 피어난 생명은 창조적이고 전혀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 그래서 때때로 어떤 회사원들은 명상을, 참선을 시작하고부터 새롭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샘솟는다고 말한다. 또 어떤 분은 그런 연유로 명상을 할 때면 꼭 메모지를 앞에 두고 시작한다고 한다. 일상이 아닌 명상 속에서, 생각이 아닌 무심 속에서 비로소 우리의 존재는 대지 위에 참생명의 전혀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비로소 내가 가야 할 내 몫의 길 위를 우왕좌왕하지 않고 오롯이 걸을 수 있게 된다.

데우랄리 롯지에 어둠이 덮인다.

촘롱에서보다 더 빛나는 별빛이 눈을 끌어당기지만, 3,000미터 고지를 넘어선 계곡의 산장은 너무 춥다. 차디찬 계곡물이 흐르고, 그 물소리가 쩌렁쩌렁 산장을 울리고, 그 시린 계곡에 목욕한 차가운 바람이 여행자의 뼛속 깊은 곳까지 파동을 심어주고 있다.

돌아보니 오늘은 많이도 걸었다. 거의 1,000여 미터 가까이를 하루 사이에 내달려 오른 것이다. 덕분에 내일은 조금 여유있는 일정이 될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떨어진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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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흰구름 2012.07.02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라는 말밖엔.. 글로 형용할 수 없는 풍경앞에 할말을 잃고 맙니다. 얹아서 저런 풍광을 볼 수 있다니 그리고 큰깊은울림으로 다가오는 말씀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촘롱의 밤하늘, 이것이 별빛이구나

 

촘롱의 초입 즈음에 한 두 채 작은 게스트 하우스가 보인다. 그런데 이 히말라야 산중 마을에, 그것도 지금까지 한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이곳에 익숙한 한글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내용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간다. 한국인이 많은 것인지,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주인이 사는 것인지, 한국 라면에 김치찌개 심지어 한국식 백숙까지 해 준다니!

촘롱은 지나 온 간드룽 보다도 더 크고 더 장대한 품으로 나를 이끈다. 산위 한 쪽 능사면 전체가 저 위 봉우리부터 저 아래 계곡까지 온통 게스트 하우스 천지다. 그 사이 사이로 중간 아래쪽 부터는 평범한 이 곳의 원주민인 구릉족들의 삶의 터전, 평범한 시골 농가가 펼쳐져 있다. 당연하다는 듯 제일 꼭대기의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의자에 앉아 촘롱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 보고 있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조금 전만 해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촘롱 건너편 산 위쪽으로 그림처럼 하이얀 설옹산이 고개를 내밀다 말다 한다. 여유로운 오후 내내 그 의자에 몸을 기대고 촘롱 마을과 사람들과 숲과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20m), 히운출리(Hiunchuli, 6441m), 안나푸르나 3봉(Annapurna III, 7555m), 마차푸차레(Machhapuchre, 6993m) 고고한 영봉들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소리를 듣고 있다.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서 널고 촘롱의 밤 공기에 몸과 마음을 씻으러 나온다.

그런데, 아! 또 한 번의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

아! 나는 이런 밤하늘을, 이런 별들을, 이런 은하수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그리고 설악산 중청산장과 지난 가을 비온 뒤 강원도 양구에서 보았던 별들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 더 밝고 초롱초롱히 빛나는 별들을, 그것도 몇 배는 많은 숫자를 지금 한 눈에 바라보고 있다. 과장 없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별의 축제를 지금 누리고 있는 중이다.

별빛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닫고 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지 않고도 저렇게 떠 있을 수 있는지. 내 생에 이렇게 많은 별들의 숫자를 헤아려 본 적은 없다. 지금 이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별에 대한 고정관념, 별빛에 대한 가치들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전혀 새로운 의미로써 새겨지고 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럴 수도 있구나' '아! 어떻게...'

말 문이 콱 막힌다. 도무지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만약 지금의 이 느낌을 알기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이 자리에 와서 보지 않고서는 이 말을 도저히 공감할 수 없으리라.

'추운 밤공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 야외식당 긴 의자에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별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바로 앞에서 떨어질 것처럼, 내 눈 속으로 빠질 것처럼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눈으로 빠져들어 마음속에 고스란히 박히고 있다.

 

5분에 하나씩 떨어지는 별똥별 관찰

 

별똥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에게 한 여행자는 태연히 말했다.

"하늘의 별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5분 이상만 눈을 안 떼고 별을 지켜보면 분명히 별똥별을 볼 거예요. 5분, 10분에 한 번꼴로 별똥별이 떨어지거든요."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거의 정확하게 5분에 한번 꼴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볼 수도 없을뿐더러, 이토록 선명하게 보여 질 리 만무하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의 밤하늘에서는 이토록 자주 별똥별을 관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금 더 별을 관찰할 여유와 인내, 심연을 갖추었더라면 누구나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저렇게 자주 떨어지는 별똥별을 왜 우리는 보지 못하고 살았을까. 밤하늘에서는 매일 같이 저 고징한 별들의 공연이 5분마다 펼쳐지는 동안 우리는 우리 인생의 30년, 40년 아니 70년, 80년을 단 한 번도 저들을 보지 못하거나 단지 몇 번 보고 소원을 빌 정도로 우리의 관심은 별에서 하늘에서 우주에서 자연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다. 빨리 빨리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업무를 소화해 내고, 남들에게 뒤질세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데 바빠서 잠시 멈추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치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비생산적이며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과연 그런가?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향해 나의 주의와 시선을 모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이 그렇게 무의미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가장 흔히 간과되며,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삶의 비밀스런 진리가 바로 이 '바라봄'에 있다.

'지속적인 바라봄',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어떤 한 대상을 관찰해 보라. 분별없이 다만 지켜보기만 해 보자. 바로 그 때 우리는 바로 그 대상과의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으며, 진정 의미 있는 관계로 맺어질 수 있고, 참으로 그것을 사랑과 자비로 어루만지게 되는, 지극히 평범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속에 가장 비범하고 지혜로우며 깨어있는 어떤 내 안의 에너지를 만나게 된다.

 

힐긋 보기, 진하게 보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잠깐 잠깐 흘깃 흘려 보거나, 생각과 판단으로 대상을 가치판단하며 색안경을 끼고 재단해 보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바라봄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진지함과 진솔함 혹은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어떤 틀 안에 대상을 끼워 맞추는 것 밖에 되지 못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반복이요 지루함의 연속일 뿐이다. 과거의 그 어떤 틀이나 생각, 관념,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채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고 세상을 눈부신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라. 그랬을 때 이 세상의 그 모든 대상은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별이든, 한 송이 꽃이든 그것 속에서 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 순간 내 안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만개할 것이다.

별을 향해 이 몸을 눕히고 벌렁 드러누워 나를 완전히 낮추고 비운 채로 오직 빛나는 별을 바라보기만 한다. 어떤 한 사람을 만날지라도 그 순간 오직 그 사람을 진지한 집중력을 가지고 별을 보듯 지켜보라. 다른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나의 지위와 상대의 지위라거나, 나와 상대의 관계라거나, 과거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과 그로인한 좋거나 나쁜 모든 감정들 또한 텅 비워두고 완전히 새로운 날 것의 한 사람으로 그를 마주하라.

그가 누가 되었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친소유무를 떠나, 나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를 전혀 판단하지 않은 채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바로 그에게 나의 모든 집중과 에너지를 쏟아 주의를 집중하라. 그랬을 때 의미 없을 것 같던 사람 속에서 진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미워하는 사람 안에서도 깊은 사랑을 발견하며, 도움이 안 될 것 같던 사람에게서 큰 지혜를 선물 받게 될 수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텅 빈 바라봄'은 삶의 비밀스런 원칙이요 진리의 법칙이고 신에게 붓다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삶의 매 순간이 선물이요, 매 순간의 진중한 바라봄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힐긋 볼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지혜의 가치와 덕목들이 진하게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무수히 쏟아져 내린다.

별똥별 열 두 개를 무려 하룻 밤 잠시 동안 본다는 것은 어쩌면 안나푸르나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축복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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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산중 도시, 촘롱을 지나며

밤늦도록 빗줄기가 이어지더니 이른 새벽 빗물 머금은 산과 나무와 풀들과 논의 벼까지 모든 생명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고 생기어린 춤을 춘다. 밤새 비는 그쳤고 비 그친 산은 더없이 개운하고 청명하다. 간단히 베지누들수프(야채라면)와 직접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소에게서 짜 끓인 우유로 만든 찌아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떠난다.

오늘은 간드룽을 거쳐 촘롱(Chhomrong, 2170m)까지 갈 계획을 잡고 여유 있는 느린 걸음을 옮긴다. 한두 시간 산길을 오르니 간드룽을 만난다. 얕은 산 정상 즈음에 올망졸망 게스트 하우스들과 시골 농가가 모여 있는 우리나라 작은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그래도 산에서 처음 만나는 규모 있는 도시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첫날 밤을 보내는 곳이니 그럴 법도 하다.

어제 하룻밤을 보낸 숙소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최신시설을 갖춘 깨끗한 게스트 하우스들이 즐비하고, 언뜻 살펴 본 메뉴판에도 훨씬 다양한 먹거리들이 입맛을 유혹한다. 게스트 하우스 뒤로 히말라야의 장쾌한 설산이 두둥 하고 불현듯 나타났다.

마을 곳곳에 히말라야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며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살림살이에 눈이 머문다. 어릴 적 살던 시골집 풍경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 낯설지 않은 풍경 속에서 고향을 느낀다.

마을이 처음에는 작은 듯 하더니, 계속해서 제법 큰 규모의 산중 도시가 본색을 드러낸다.

아직 점심 시간은 이르고 아침 먹을 것도 채 소화가 안 된 터라 조금 더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한 시간 쯤 더 가니 콤롱 고개(Kyumrong, 2,255m) 정상 즈음에 식당과 간이휴게소가 하나 나오고 휴게소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니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 계곡이 흐르고 가파른 내리막과 저 계곡 너머 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이 나를 손짓하듯 부르고 있다.

 

오르막 길의 즐거움

안나푸르나를 내려오며 '어렵게 오르면 그만큼 또 내려가야 하길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고 했던 한 여행자의 허탈한 말투가 생각났다. 하기야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가만 느껴 보면 오르막길은 오르막 길 나름대로의 재미와 묵직한 느낌이 좋고, 내리막길은 오르막에서 지친 다리를 풀고 가볍게 흘러내릴 수 있어서 좋다. 때때로 내리막길보다 오히려 오르막길이 나 자신을 더 진하게 깊이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데서 더 매력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내리막길 보다는 가파르고 힘겨운 오르막에서 몸은 급한 마음을 접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발 한 발을 거북이처럼 걷게 된다. 그런 느릿느릿 힘겨운 숨을 몰아쉬다 보면 저절로 생각은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바로 이 순간이 일반적인 사람들도 때때로 생각을 비우고 집중과 몰입에 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명상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오르막은 내리막에서처럼 마음이 들뜨지 않고 묵직하게 가라앉으며, 입 또한 조잘대기 보다는 저절로 침묵하게 되고, 그간의 끊임없이 어어지던 생각이라는 내면의 소설가도 그 집필을 멈추고 만다. 이 순간을 잘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오르막의 육중한 무게감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고요와 평온의 깊이를 온 존재로써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만 해도 오르막길은 힘들고 어려운 곳이며,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조금 더 힘들여 오르면 내리막이 나오겠지 하며 내리막길이 마치 행복의 조건인 양 내리막길을 좇곤 했다. 물론 삶도 그랬다. 힘겹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이 역경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이 오르막이 끝나고 나면 내 삶에도 반짝이는 내리막길이 있을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오르막과 내리막, 행복과 불행, 역경과 순경계라는 두 가지 차별심을 내려 놓고 그 양 극단의 길을 가만히 현존하며 살펴보니 그 분별이 무의미한 것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오르막도 오르막대로 좋은 점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힘겹고 고되며 슬픔이 지속되는 순간에조차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잠시 내려 놓은 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 상황들과 함께 어울려 있다 보면 그것 또한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며, 심지어 흥미와 묘한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괴로울 때, 슬플 때, 실현 당했을 때, 실패했을 때, 외로울 때, 시련이 찾아왔을 때,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고 애쓰고 애쓰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던 어느 순간, 문득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시 그것과 함께 있어 본 적이 있는가? 벗어나길 멈추고 그것과 함께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해 줄 때 바로 그 의식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에 깨달음과 평화는 찾아온다. 영적인 성숙이란 언제나 그런 순간에서 반짝이며 깃드는 것이 아닐까.

 

내 삶의 클라이막스가 흐른다

한 달음에 가파른 내리막 길을 날아 한 마리 노새가 가볍게 착지하듯 콤롱 계곡(Kyumrong Khola) 옆 콤롱(Kyumrong, 2010m) 마을에 도착해 점심을 먹는다. 주로는 달밧을 시켜 먹곤 하는데 산에서 먹는 음식에, 또 네팔 음식에 조금씩 적응을 해 가는 건지 이제는 달밧이 그저 우리 밥 먹는 것처럼 맛있고 행복하다. 그러나 매번 먹는 달밧이 물렸는지, 색다른 메뉴에 눈길이 간다. 산중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먹는 피자는 어떤 맛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맛은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혹시나 싶은 마음에 시켜본 피자 맛이 일품이다. 하기야 이 배 고픈 때에 무엇인들 맛 없을 수 있으랴.

따스한 오후 햇살과 계곡을 기면서 흐르는 느린 바람의 나지막한 속삭임, 그 달콤한 속삭임에 몸둘바 모르고 사랑에 빠져버린 코스모스의 하늘거리는 춤사위 하며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완벽하다.

세상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족하다. 태초의 자연과 하늘과 바람과 계곡 물소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듯, 이 속에 몸을 박고 숨 쉬며 살아가는 구릉족 원주민들조차 이 야생의 거룩한 신의 품속에서 하나의 자연으로 숨 쉬고 있다.

점심 식사 후의 이 여유로운 바라봄. 대자연과의 하나 되는 순간!

이런 순간이야말로 매 순간 우리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삶의 최고의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그 어떤 거창한 성취나 엄청난 소유, 높은 지위나 명예, 유명세나 인기가 가져다주는 거추장스런 삶의 순간이 클라이막스가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마주할 수 있는 우리 앞의 바로 이러한 생생한 존재와의 대면, 그 대자연과의 마주침, 교감,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음, 그 소박한 평범한 순간이야말로 우리 삶에 최고의 절정이다.

이제 다시 내려온 길과 똑같은 높이의 오르막을 고스란히 걸어 올라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숨, 한 호흡의 색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길을 줄 시간!

계곡과 함께 흐르는 마을 초가들과 논두렁 계단들이 오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인다.

몇 걸음 오르고 고개 들어 저들을 바라보고, 또 몇 걸음 걷다가 하늘을 바라보길 두어 시간 이렇게 오르막은 오르막 대로의 삶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 작은 계곡 물소리가 새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주고 있다.

 

나의 전생은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이었으리라

네팔의 특색 있는 시골 특성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산 중턱이고 정상이고를 가리지 않고 지어진 집들과 논밭의 그림 같은 풍경일 것이다. 네팔 자체가 히말라야의 장대한 산맥들로 둘러쌓여 있다 보니 평지랄 곳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네팔의 마을은 거의가 산을 끼고 그 허리춤이나 머리 꼭대기에 한두 채 삶의 터전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워낙 높은 곳을 좋아하고, 시야가 툭 트인 풍경을 좋아하는 터라 이런 네팔 산마을의 전경들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한국에서도 강원도나 지리산 자락을 다니다 산 중턱에 한 두 채 낡은 집을 만날 때면 당장에 뛰어올라가 내 작은 오두막이나 토굴로 쓸 수 없을지를 여쭙고 싶어질 정도다.

지리산을 종주할 때에도 나는 늘 높은 봉우리만을 쫒아 다니곤 했다. 지리산 하면 가장 떠오르는 풍경도 높은 봉우리 위에 홀로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이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하를 굽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늘 그랬다. 높은 곳 어디 쯤에 앉아 대자연을 굽어보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렇게 앉았다가 바람이 불어올 때는 잠시 눈을 감고 온몸에 젖어드는 바람의 숨결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전생에 높은 산을 표표히 휘감고 여행하는 거센 바람이었나 보다.

언제나 길을 걷다 툭 트인 풍경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곤 했다. 이런 내 취향 상 네팔의 이런 풍경들은 나의 그리움, 나의 소망을 마구 마구 현실로 거두어 들여 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이런 곳에 저 농가 하나를 얻어 나름의 공부처요 터전으로 은둔하며 사는 것도 아름다운 한 생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화엄경이나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나 신약 같은 내밀한 지혜서들을 읊어가면서 말이지. 하하. 이런 생각 끝에는 항상 환한 웃음이 묻어난다. 저들의 웃음처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촘롱이다. 그러고 보니 촘롱까지 오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아름다운 터전에 자리를 잡고 토굴을 짓기도 하다가, 그 생각들은 어느덧 한국의 낯선 농가, 산하를 굽어보는 높은 산촌 마을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도를 닦으며, 소소히 책을 읽은 한도인이 되기도 하고, 한바탕 소설을 쓰고 있지를 않는가. 이것 봐라. 아까 전에 거친 오르막을 거닐 때에는 그 느긋한 발걸음을 챙기고, 그 가쁜 숨을 챙기느라 생각이고 뭐고 없이 무던히 텅 빈 마음으로 걷다가도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의 편안한 길을 걷다 보니 슬그머니 생각이란 놈이 자신만의 오랜 습에 길들여진 이야기를 펼쳐놓지를 않는가.

생각이 끊임없이 솟구치는 시간을 되짚어 보면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던 순간의 자연 풍광은 기억에서 희미하다. 생각이란 녀석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고 있던 순간 나는 더 이상 히말라야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통속적이고 진부한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일 뿐.

가만 보면 생각이란 녀석은 우리 머릿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면서 우리의 내면을 정신 없게 만들곤 한다. 생각에 빠져, 생각이 온갖 소설을 쓰도록 내버려 두는 그 순간에 나는 없다. 그저 생각이란 녀석이 자신의 오랜 이야기를 두서없이 꿈을 꾸듯 시정잡배처럼 마구잡이로 풀어헤칠 뿐!

'아차!' 하며 그 생각을 주시할 때, 비로소 한 편의 공허한 소설은 막을 내리고 이제부터 진짜배기 삶의 순간이 나를 통해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이 솟구치고 있는 순간을 관찰하면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한 마디 경책을 보낸다.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그러고 나면 과거와 미래를 분주히 쏘다니던 생각이 들킨 도둑 마냥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몸 있는 곳에 마음도 함께 붙어서 온전히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몸 있는 곳에 마음도 함께 있는 다는 것이 쉬우면서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과거나 미래를 쏘다니며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다. 명상이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이다. 몸 있는 곳에 언제나 마음도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수행이며 참선이다.

산길을 걷는 모든 순간이 그런 깨어있음의 생생한 진짜 순간이 되게 하리란 다짐으로 다시 길을 걷는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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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진실행 2015.02.12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읽다 보니 제가 안나푸르나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네요

  2. BlogIcon 진실행 2015.02.12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읽다 보니 제가 안나푸르나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네요

  3. BlogIcon 선덕행 2015.08.29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들이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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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산길을 걷는 신성함

홀로 바쁠 것도 없이 홀연한 가벼움을 짊어지고 맑게 비운 가슴으로 소담한 마을 나야풀을 지난다. 오후의 햇살 아래 마을에서는 막 산에서 내려 온 듯한 짐꾼 나귀들이 줄지어 짐을 풀어놓은 채 지친 피로를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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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걷는 이 텅 빈 호젓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산길을 너무 많은 인원이 함께 가게 되면 자신의 페이스와 호흡과 즐거움 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춰야 하다 보니 산행이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보다는 또 다른 산 아래 직장이나 관계 속에서와 똑같은 인간관계의 연장으로 전락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산행은 혼자면 가장 좋고, 아주 좋은 영혼의 깊이를 자연의 깊이처럼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벗이 있다면 그것은 그 다음으로 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초의 스님은 『다신전(茶神傳)』의 차 마시는 법에서 ‘혼자 마시는 차는 신성함(神)이요, 둘이 마시는 차는 뛰어남(勝)이지만 대여섯 명이 마시는 것은 그저 보통(泛)’이라 했고, 중국의 차에 대한 기록인 『다록(茶錄)』에서도 ‘혼자서 차 마시는 것을 이속(離俗)이라 하여 속세를 떠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며, 둘이서 마시는 차를 한적(閑寂)이라 하여 고요한 것이라 했지만 대여섯이 마시는 차는 저속(低俗)이라 하여 속되다’고 했는데, 산길을 오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혼자서 산길을 걷는 것은 신성함이요 속세를 떠나는 이속과 다르지 않고, 정겨운 도반과 함께 산길을 걷는 것은 한적하고 고요하며 뛰어난 즐거움이 있지만 너무 많은 무리를 지어 산길을 걷는 것은 보통이거나 오히려 그 대자연의 출세간적 아름다움을 속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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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는 오르고 내리는데 2주 이상이 소요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해야 하고, 또 나라에서도 엄격히 고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이 곳 안나푸르나는 베이스 캠프까지 다녀오는데 일주일 안쪽의 짧은 날들이 소요되고, 또 5,000 고지 아래의 다소 낮은 곳까지의 트레킹이다보니 애써 포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이런 곳이 고요히 홀로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처음에는 초행길에 포터 없이 걸으면 길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그저 나의 다르마에 내맡긴 채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길을 잃게 되면 그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사실 안나푸르나는 그리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곳곳에 산장과 식당들이 있어 길 잃을 염려도 없고, 꼭 포터가 있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홀로 이 산중의 고요함을 느껴보는데 공연한 불편함만 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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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P Office를 지나며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나야풀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레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니 만큼 작은 가게, 과일가게, 약국, 트레킹 용품점, 옷집, 식당들이 길 좌우로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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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지만 본격적인 트레킹 시즌이 시작되는 9월말이라 그런지 나야풀 거리는 활기차 보인다. 언뜻 보면 한국의 시골마을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정겨운 또 눈에 익은 그런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다.

한 15분 정도 시원스런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걷다 보면 그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고 바로 그 다리를 건너면 좌우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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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트레킹의 본격 출발지인 셈이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안나푸르나의 영봉들을 장쾌하게 전망할 수 있는 푼힐(Poon Hill, 3,210m) 전망대와 푼힐의 베이스 캠프 격인 고라빠니(Ghorapani, 2,860m)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길을 틀면 바로 나의 여행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 갈림길의 중앙에 입산허가증 격인 퍼밋(Pemit)과 트레킹 허가증인 팀스(Tims)를 확인하는 ACAP(Annapurna Conversation Area Project) Office라는 작은 사무소가 마련되어 있다. 다리를 통과해 산에 오르는 모든 트레커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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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만 해도 반정부 시위단체인 마오이스트(Maoist)들이 강제로 트레커들에게 돈을 걷었다고 하는데, 오랜 왕정을 철폐시키고 왕을 하야시키며 선거를 통해 당당히 대통령을 만들어낸 마오이스트들이 이제는 엄연한 정부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곳 또한 합법적인 사무소가 된 것이다. 마오이스트는 중국 마오쩌뚱의 사상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사회에 구현하고자 하는 네팔식 공산당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정부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해 나가다가 결국에는 나라의 주인이 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마오이스트가 정권을 잡고 나서 부쩍 중국인 방문객과 트레커들이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양 트레커다 싶으면 거의 중국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네팔에서 볼 수 있는 동양 외국인들은 거의가 한국 아니면 일본인이었다고 하는데, 마오이스트 집권이후에 중국인 트레커들이 대대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최악의 개미 누들 수프

퍼밋을 보여 주고 신원을 적은 뒤 한 시간 여를 걷다보니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생각이 났다. 배시계는 꼬륵꼬륵 자명종을 울려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오다가 만났던 몇 곳의 식당을 그냥 지나쳤던 것이 기억난다. 걷다 보면 또 나타나겠지 하고 계속 걷다보니 더 이상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보니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그야말로 간이 식당이나 될지 포장마차라고 불러야 할지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작은 간이 식당이 보여 요기를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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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메뉴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허름하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특별한 것을 주문할 생각도 없고 또 시간도 없고 해서 그저 간단히 라면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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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구경하러 들어갔더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 설거지도 하지 않은 아마도 이전 사람에게 음식을 해 주던 것 같은 냄비에 그대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순간 황당한 마음이 일어났지만 인도에서 그랬듯 이 정도야 그냥 지켜봐주며 웃어넘기기로 한다. 여기는 네팔이 아닌가. 인도에서 어떤 여행자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인도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던. 이곳 역시 내 마음 속의 상상 그 이하의 방식으로 라면을 끓이고 있다. 라면을 넣고 스프를 넣는 것이 아니라 무슨 카레 향기의 조미료와 미원을 넣는다. 거기까지도 그냥 너머가 준다. 그런데 그 곁에 있던 전에 쓰던 씻지 않은 국자, 개미들이 다닥다닥 붙어 음식찌꺼기를 먹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설마 설마 했던 그 국자가 곁에서 “잠깐!” 하고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그냥 냄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 즈음에서 아예 포기를 하고 차라리 보지를 말자는 심정으로 제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휴~~ 그래 여기는 네팔이니까”

이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던 너무도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용납이 되고 받아들여진다. 결국 내 앞에 배달된 네팔 라면 한 그릇에는 포크를 들 때마다 면발 사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듯 작은 개미들의 시신이 입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오~ 관세음보살”

“아, 신이시여”

해외 여행길에서 배우는 것이 어쩌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견고하게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른 나라에 가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당연한 상식조차 어떤 나라에서는 전혀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때로는 그 상식이 완전히 무시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경악할 만한 어떤 일들이 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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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vs 한국, 누가 더 더러워?

‘이 사람들 참 더러워 죽겠네’라고 할 만하지만 이 사람들은 반대로 한국 사람을 보고 더럽고 비위생적인 사람이라고 경악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밥과 반찬과 국, 즉 커리와 달밧을 수저 없이 그저 손으로 버무려 먹는다. 그렇다고 내가 보기에 손을 썩 잘 씻는 것 같지도 않다. 처음 여기 적응해 보겠다고 따라 해 보았을 때는 그렇게 찝찝하게 느껴지더니 그것도 몇 번 해 보니 나름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런 음식 먹는 습관이나 조금 전 부엌의 상황과 같은 이런 더러운 모습에 놀라지만 네팔인들은 한국인들이 달밧 하나를 시키고 또 무슨 국이나 수프를 시키고 또 볶음면 같은 프라이드 누들 등을 시켜 각각 자기 것을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펼쳐 놓고 다같이 먹는데서 기절을 한다. 대여섯 사람의 수저가 각자 입에 들어갔다 나와서 달밧으로 국으로 수프로 국수로 그리고 또 입으로 연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상상을 초월하는 더러움처럼 느끼지는 것이다. 자기가 시킨 것을 자기가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다 다른 것을 시켜서 더럽게 나누어 먹는지가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관념도 다 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불구부정(不垢不淨) 아닌가. 더럽고 깨끗하다는 관념이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틀일 뿐이지 본래적으로 본다면 깨끗하고 더럽다는 분별이 있지 않다.

여기 사람들처럼 애고 어른이고 매일 숲에서 들에서 일하고 흙을 만지다가 그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더 더러운가, 아니면 깨끗하게 하겠다고 손에 온갖 크림을 바르고, 지하철, 버스, 공중화장실, 곳곳의 위생적인 현대 시설과 현대적 기계와 자동차, 매연, 가스, 분진 등을 수북히 덮어 쓴 손이 더 더러운가.

이 즈음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이라는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우리에게서 옳은 것이 반드시 저들에게도 옳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여행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이 꼭 옳고 그름을 의미하거나, 더 좋고 나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을 뿐임을 겸허히 수용하게 되는 넓은 가슴과 열린 사고 그리고 나뉨 없는 무차별의 이치 같은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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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낭만 소나기

개미 누들 수프를 즉석에서 극락왕생 염불을 읊조리며 맛있게 먹고는 길을 떠나 다시 걷는다. 계곡 좌우로 산 중턱마다 다랑이 논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한 채, 두 채 네팔 전통 가옥들이 자연의 일부처럼 조화롭고도 고요히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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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다보니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가파를 고갯길로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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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9월 말이면 막 장마가 끝날 시즌이라고 들었는데 막바지 장맛비가 내리려는가! 흐린 하늘 아래 어둑어둑해지는 시골 풍경이, 그리고 시골 집들과 논밭, 그리고 시골 사람들, 꼬질꼬질한 어린 아이들의 노는 모습 조차 그저 이 자연 그대로의 일부인 것처럼 짠하게 마음을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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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녀의 수줍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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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붕을 올리고 있는 청년들의 능숙한 손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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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갈수록 안나푸르나의 속살 풍경은 더욱 그 깊이를 더한다. “와~”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얼마나 올랐을까?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이내 한두 방울씩 막바지 장마구름을 비틀어 짜낸다. 비옷을 꺼내 입고 툭툭거리며 시비걸듯 떨어지는 빗방울에게 “나마스테”로 화답하는 여유와 체력과 설레임이 아직은 남아 있다. 아직 이 곳의 모든 것이 새롭고 흥겨우며 경이롭다.

툭툭 치듯 떨어지는 비들이 한 여행자의 화답을 보며 ‘그래 이 녀석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지 한 번 볼까’ 라고 하듯 김체 게스트 하우스를 50여 미터 남짓 남겨두고 갑자기 거센 소나기로 기세를 완전히 바꾸었다. 하늘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두침침한 시야를 완전히 가리며 전혀 생각지 못한 거센 폭우가 득달같이 쏟아지고 있다. 시쳇말로 이건 완전 대박이다.

산이 드높다고 비바람도 산을 닮았는가! 지리산 봉우리에서 만났던 폭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순간적인 폭우를 보며 ‘그래 너도 희말라야를 닮았구나’ 하고 여전한 농으로 한 마디 내뱉으며 그러나 발걸음은 그 가파른 길 위를 안 보이듯 뛰어오른다.

잠깐 사이, 50여 미터를 뛰어올랐을 뿐인데, 가방도 온 몸도 완전히 젖어버렸다. 누가 본다면 한 몇 시간 쯤은 빗 속을 헤매였다고 볼 만큼 젖어도 푹 젖어버렸다. 날아가듯 빗속을 뚫고 도착한 곳은 고작 게스트 하우스 한 채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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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하우스 한 채가 있을 뿐인데 이 곳도 마을이라고 김체(kimche, 1640m)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곳 희말라야에서는 게스트 하우스 한 두 채만 있으면 거기에 이름이 붙어 하나의 마을이 된다. 하기야 산에서는 다른 어떤 이정표에 이름 붙일 것이 없으니 게스트 하우스가 유일한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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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사람이 과연 살기는 할까 싶은 귀신의 집을 방불케 하는 이 곳에 다행히 사람이 살고 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이 비수기 때나 장마 때는 아랫마을에 있는 다른 집에 살다가 막 지난 달부터 장마가 끝나고 성수기가 시작된다고 다시 올라와 성수기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주인의 말에 다행스런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산중에 거센 빗소리를 맞으며 귀신 나올 것 같은 집 지붕 아래에서 겨우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해야 했을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비닐 하우스처럼 쳐 놓은 게스트 하우스 앞의 식당 천막 아래에 서서 비오는 산 아래를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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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산 중턱의 작은 집들도 한 채, 두 채, 귀한 전깃불을 켜고 있다. 그 불빛들 속에서 이 산중이 전혀 낯선 어느 다른 행성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생명의 터전임을 느낀다. 안심이 된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삶을 일구며 살고 있구나. 저 건너편 계곡 곳곳에 드문드문 불빛들이 점점 더 자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마음은 아련한 외로움의 비로 젖어든다. 아, 이 허하거나 짠하거나 생기롭거나 고독하거나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바다 속에 푹 빠져 그 느낌들을 가만히 누려본다. 외로워도 좋다. 이 거대한 산중에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 그리고 그 고독감에 물을 주고 있는 이 빗방울과 거센 바람의 감촉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감각을 더욱 깨어나게 하고 촉촉하게 해 주고 있다. 이 느낌! 이런 느낌과 하나 되어 충분히 온전히 느끼고 있는 이런 순간이 나에겐 그 어느 순간보다도 보배스러운 때다. 빗소리가 좋다. 조금 거세고 춥지만 바람도 견딜 만 하다.

유령의 집 게스트 하우스

잠시 뒤 주인장 어르신께서 다락같은 이층방 열쇠 꾸러미를 통째로 던져주며 아무 방이나 들어가 짐을 풀어도 좋다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나 하나로 손님이 끝인 듯하다. 하기야 이 시간에 더욱이 이 소나기를 뚫고 여행자가 들어 올 리 만무 해 보인다. 가파른 이층 방에 오르니 그야말로 TV에서나 보았을 법한 고려시대 무슨 감방을 보는 듯도 하고, 흡사 무슨 소 사육하는 축사나 마구간 같기도 한, 그도 아니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귀신의 집 같은 보기만 해도 공포감이 몰려오는 방들이 세 칸 두둥 하고 튀어나온다. 그나마 방 같은 아늑함을 찾아 세 곳을 다 돌아봤지만 어느 한 곳 실망을 주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깨끗해 보이고 아늑해(?) 보이는 중간 방에 짐을 풀기로 한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나마도 이 게스트하우스는 불이 들어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현대식이라고 할 만 하다.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방안에 불이 있기는 어렵고, 특히 에베레스트 지역으로 가면 방 안에 불을 켤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거의 없다. 불을 켰는데, 이 불성실한 집안 구조에 또 한번 놀란다.

방이 세 개라고 했는데, 가만 살펴보니 문만 세 개 달렸을 뿐, 벽채가 그저 달랑 얇은 합판 한 장으로 가까스로 서 있고, 옆방은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큼직한 틈으로 다 보인다. 게다가 천정의 형광등은 두 방에 걸쳐 하나가 있고 벽채로 합판이 얕게 있을 뿐이지 천정은 훤히 뚫려있다. 그야말로 다른 손님이 옆방에 있었다면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일이다. 잠을 잘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옆 방 사람과 협의 하에 불을 켜고 꺼야 하고, 그나마도 두 방에 모두 형광등을 켜고 끄는 단추가 있어야 하지만 중간 방에만 있으니, “불 켜주세요” “불 꺼주세요”라는 인사를 나누며 하룻밤의 패턴을 같이 해야 할 판이다.

행여 옆방에 다른 이성의 여행자가 묵게 된다면 옷 하나 갈아입기도 어려운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도착하는 큰 마을, 큰 게스트 하우스가 즐비한 간드룽을 선택할 여행자가 백이면 백 전부가 되지 않을까! 나처럼 불가피하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엄청난 폭우를 만나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그럴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나.

방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 무거운 가방을 풀고는 방을 나서는데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 주인아저씨께서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피러 올라오셨는데 참, 공포도 가지가지다. 어둠 속에서 불쑥 솟구쳐 나오는 그 묵직한 그림자를 내가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도 가격이 과하게 싸니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한다.

안나푸르나에서의 첫날 밤이다 보니 이 정도의 게스트 하우스가 일반적인 수준인지, 아니면 좋은 수준인지(설마?), 아니면 아주 좋지 않은 수준의 방인지를 아직 알길 없는 나로서는 일단 만반의 각오를 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여행자도 외롭고 산사람도 외롭다

‘행복한 마구간’에서 나와 저녁을 주문하고 저녁 식사가 나오는 동안 천막 아래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가져온 모든 옷가지를 껴입고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의 기세를 느껴본다. 방이야 잠만 자면 되고 지금 상태로 봐서는 눈만 감으면 바로 잠에 떨어져 내일 새벽을 맞을 테니 잠자리야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여기 눈앞에 무거운 수묵으로 번지는 빗속의 장대한 풍경,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성이 폭발할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건물 앞마당을 길 삼아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건너편에 천막이 쳐 져 있으며 그 천막 아래로 의자와 식탁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천막의 끝자락 바로 아래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다. 아니 낭떠러지라기보다는 저 아래로 가파른 다랑이논이 깎아지듯 절벽처럼 서 있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절벽 논 깊은 아래쪽에 설산의 영봉에서 녹아내렸을 회색 계곡 물줄기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또 다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벽, 또 절벽 위에 아스라이 쌓여 있는 계단식 논과 드문 드문 민가 몇 채가 섬처럼 떠 있는 풍경.

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연주해 낸 풍경 위로 폭포수 같은 빗방울들이 오케스트라의 대 장엄을 완성한다. 따뜻한 짜이 한 잔에 몸을 녹인다.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 할머님의 따뜻한 배려와 맛깔나게 차려주신 저녁식사의 행복함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아름다운 풍경이 속 뜰에 짠한 공간을 만들면서 아련한 고독 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었을 터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시는 할아버지의 입담과 따뜻한 관심 덕분에 한 채 밖에 없는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의 휑함과 녹록함이 점차 따뜻함으로 바뀌고 있다. 어쩌면 주인 할아버지 또한 나와 마찬가지 신세인 건지 모른다.

이 산에서는, 더욱이 이렇게 빗줄기가 퍼 붓는 날에는 여행자도 외롭고 산사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아들 둘에 딸 하나, 큰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김체 아래 올라오는 길목에서 작은 식당 겸 슈퍼를 차렸고, 작은 아들은 카투만두에 돈을 벌러 나갔고, 어린 딸은 아직 카투만두에서 대학 생활 중이라며 집안 가득 걸려 있는 가족 사진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신다. 물론 젊었을 때 두 분의 밝고 생기어린 빛바랜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저녁 시간 내내 할아버지의 알듯 모를 듯 독특한 영어발음의 고향 이야기는 계속된다. 저녁 식사 중의 그 많던 이야기하며 특별히 애정과 정성을 쏟아주신 저녁 식사의 풍성함을 보았을 때 아주 오랫동안 손님이 오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동안 손님도 없이 많이 외로웠던가 보다.

외로운 농가, 외로운 노부부의 살림살이에 외로운 여행자 하나 더 끼어 자니 이 또한 풍요롭고 충만한 즐거움이 아닌가.

이런 게스트 하우스의 투박한 정겨움과 따스함이 안나푸르나에서의 첫 날 밤을 포근하게 밝혀 주고 있다. 거센 빗소리는 한 두 시간 내로 그칠 기세가 아니다. 그동안의 오랜 우기로 인해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배부른 몸을 누이니 빗소리가 더욱 처연하게 들려온다.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안나푸르나의 첫 밤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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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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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일차

순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몸살감기에 간절한 차 한 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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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중의 아침이 창창하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진하디 진한 물감을 한껏 풀어 놓은 것처럼 선벽하고 햇발은 그 어느 날보다도 쨍하게 빛난다. 어디 하나 보유스름한 것이라곤 없어 보인다. 아주 선명한 렌즈를 낀 것처럼, 세상에 샤픈(sharpen)을 강하게 준 것처럼 세상이 또렷하고도 역력하다. 저 앞산 뒷산만 없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시거리는 무한대가 되고도 남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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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장하고 쨍한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무겁다. 마음은 경쾌한데 몸은 으슬으슬 떨려온다. 순례길도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 어제 밤에 모처럼 목욕을 하고, 2주 동안 벗지 않았던 내복을 벗고 잤더니 밤새 감기몸살이 찾아 온 것이다. 조금 더 참았다가 카투만두로 완전히 내려가서 목욕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도 끝까지 주의 깊게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지 다 끝났다고 마음을 풀어헤치면 안 된다고 하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구나 싶다. 그래도 한 편 다행인 건, 이 감기몸살이 이렇게 안나푸르나며 에베레스트 순례를 다 마친 뒤 찾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이 다음 일정인 미얀마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 동안에 카투만두에서 몸을 쉬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던 루클라까지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쿰중에서 남체바자까지는 그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다. 올라올 때는 루클라에서 남체바자까지 이틀이 걸렸고, 고산 적응을 위해 남체바자에서 하루를 더 묵었으니 총 3일이 걸렸지만, 내려갈 때는 하루라도 충분하다.

쿰중을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과 아련함이 묻어난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이 쿰중의 소담한 마을을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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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로 가는 언덕을 넘기 위해 힐러리 학교를 지난다. 힐러리 학교는 쿰부 지역의 명문학교로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힐러리 경의 재단에서 세운 학교다. 워낙 유명한 명문학교로 자리 잡은 터라 남체바자에서도 샹보체 언덕을 넘어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식을 위한 교육열은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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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으로 하얀 초르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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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을 지나 샹보체 언덕 쪽으로 가는 길 좌우에는 담장 대신에 높다란 마니석이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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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반쯤 올라 뒤돌아보니 쿰중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샹보체에 오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10일 쯤 전에 들른 곳이지만 어제 들렀던 것처럼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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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와 하얀 꽁대 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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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를 지나 한 발 한 발 지켜보며 묵묵히 내려간다. 걷다보면 조금 나아지려나 했는데 갈수록 몸은 더욱 무겁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보통은 만성 비염 때문에 겨울이 오는 길목에 날씨가 추워지면 한 번씩 몸살과 코감기를 앓곤 했지만 따뜻한 차를 꾸준히 마시면서 언제나 쉽게 낫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지간히 아파도 약을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감기가 걸리면 언제나 차를 찾았다. 최소한의 차를 마시기 위한 다식(茶食) 정도의 의미로 소량의 공양을 한 뒤 언제나 따뜻한 차로 몸을 덮여주고 나면 쉬 감기는 떨어져 나가곤 했다. 몸이 이렇게 떨려오니 자연스레 황차나 보이차, 오룡차 같은 발효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처음 인도로 떠나올 때 황차, 녹차, 보이차, 오룡차 등 다양한 차들을 조금씩 가져왔는데 오랜 여행 속에서 다 마셔버려 이제 한 번 마실 정도의 보이차 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차가 귀하다 보니 뜨거운 물로 몇 번이고 우려내어 더 이상 차색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려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따뜻한 물도 한 잔에 얼마씩 사 먹어야 하다 보니 남은 보이차를 여기에서 먹기가 꺼려진다. 남은 보이차 조금을 가지고 한 주전자 이상은 반복해서 우려 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이곳 롯지에서 파는 레몬차 같은 것을 사 먹고 버텨 보다가 카투만두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을 잔뜩 준비해 두고 남은 보이차를 음미하며 마시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걸어 내려간다.

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행길에서 때때로 가져 온 차를 마시며 차에 대한 감사와 찬탄과 감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가가 되곤 했다. 한국에서야 차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내가 차를 좋아하는 줄 알고 지인이나 벗들이 차 선물을 더러 해주었다. 평소에는 적당량의 찻잎을 다관에 넣고 진하게 우려 마시면서도 차의 고마움이나 그 향기와 맛에 대해 그다지 깊이 누려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런 여행길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여행길에서는 가져 온 차가 많지 않다 보니 처음부터 찻잎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넣어 연하디 연한, 때로는 그야말로 차인지 맹물인지 분간도 안 될 만큼 연하게 우려 마셨고, 그것도 열 번도 넘게 우려 마시면서 그 날 마시고 나서 그 다음날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 몇 번을 더 우려 마시고 내가 생각해도 참 애쓴다 싶을 정도로 아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감이 몇 배는 더 크게 증폭되고, 차향과 차의 맛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우러나오게 된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걸어가며 따끈한 한 잔의 보이차를 떠올리다 이내 포기하고 묵묵히 다시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 고쿄에서 쿰중까지 가볍게 걸으면서도 너무 쉽게 내려온 것을 떠올리며 한 걸음에 루클라까지 도착할 것 같았는데 몸이 무겁다 보니 길은 더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먼 길에 대해서도 고민한들 무엇 하랴, 미리 도착에 대한 애착을 포기한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생각도, 건강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우고 그저 걷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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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바라보는 즐거움

 

몸이 아프니 오히려 다른 잡념이 생기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잡념이나 상상, 계획, 욕구, 바람, 과거나 미래 따위의 모든 생각의 에너지도 힘을 잃고 뒤안으로 물러나 있다. 그러다 보니 걸으며 걸으며 그야말로 걷기만 할 수 있다. 아니 그저 걷기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려 낼 에너지 조차 죄다 고갈된 듯 하다.

무거운 몸을,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묵직한 몸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해 본다. 아픈 내가 힘겹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어떤 한 존재가 그저 걷고 있음이 보인다. 아무런 생각도, 해석도, 판단도 붙이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바라보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몸은 건강하고 쨍쨍할 때보다 이렇게 주춤거리며 아플 때 한결 지켜보기는 쉽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가운데에도 아픔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아프지가 않다. 그저 아프다고 이름붙인 어떤 현상이 거기에서 전개되고 있을 뿐. 오히려 그 느낌을 지켜보면서 한편에는 미묘한 즐거움이랄까, 바라봄에 대한 깊고 내밀한 차원을 누려보게 된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사실은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느낌으로 느껴지고, 거기에 그런 현상을 충분히 느끼며 걷는 한 존재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무겁지만 무거움을 바라보는 것은 무겁지 않다. 으슬으슬 떨려오지만 그 떨림을 바라보는 것은 떨리지 않는다.

우리가 아상(我相), 에고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꺾일 때 오히려 그 너머의 차원에 가 닿기 쉬워지는 것이 아닐까. 건강할 때, 잘 나갈 때, 주목 받을 때, 아상은 한없이 자기 잘난 생각에 빠져 잘난 자신이 실체적이며 실존적이라고 믿는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낮추는 생각과 이어져 나와 너를 나누고 차별한다. 아상이 높은 이는 아상 너머의 보다 깊은 차원의 영적인 길을 걷기 어렵다. 그러나 아상이 꺾일 때, 비로소 그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보다 깊게 바라보게 된다.

사람도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며 아주 잘 나가고 돈도 벌고 명예도 늘려나가는 시절에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나가던 사람이 꺾이고,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상실하고, 부자가 가난해지며, 명예도 지위도 떨어지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과 진지한 통찰이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세상에서 보면 실패한 것 같고, 좌절된 것 같고, 상실된 것 같은 바로 그 때가 수행과 명상이라는 영적 전통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각성(覺性)의 시작이 되는 때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은 출세간에서 보면 위기이고, 세상에서 한풀 꺾이는 것은 오히려 출세간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 더 크게 본다면 어느 한 쪽을 더 반기거나 어느 한 쪽을 밀어내려 애쓸 것도 없다. 좋다고 붙잡아 집착하거나 싫다고 버리려 애쓸 것도 없고 좋고 나쁘다는 그 양변의 집착을 모두 여의고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의 걸림 없는 길이다.

아프다는 상황도 더 큰 차원의 질서에서 본다면 나를 돕기 위한 우주 법계의 자비로운 도움의 손길인 것이다. 이 아픈 상황으로 인해 나는 좌절할 수도 있고, 오히려 자비와 사랑이 바탕 된 우주의 도움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일들은 언제나 완전하고 완벽한 우주의 사랑이며 자비로우신 배려다.

이 세상은 언제나 완벽하다. 모든 것은 완전하다. 우리 삶에 어느 한 가지 사건도, 사람도 불완전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쓸모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정확한 우주적인 필요에 의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 내 몸에서 왜 감기 몸살이 오게 되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그 이유나 목적을 다 알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나를 돕기 위한 우주적인 사랑으로 온 것이며, 바로 지금 나에게 바로 그것이, 그러한 상황이 전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애써 밀어내거나 붙잡아 집착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명이요, 이 순간의 몫임을 아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체바자에서부터 루클라까지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 온 그 한나절의 때가 나의 이번 순례를 아름답게 회향하도록 해 준 소중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하루 동안의 걷기야말로 어느 순간보다도 진한 ‘오직 걸을 뿐’의 깊은 침묵의 순간이었다. 오랜 순례를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생각 너머의 깊은 침묵과 텅 빈 비움으로 맑혀주고 씻어준 감사한 걷기가 아니었던가.

남체바자에서 처음 걸어 내려올 때 무거운 몸 때문에 일어났던 모든 분별심들이 루클라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묵직한 침묵의 향기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루클라까지 내려오면서는 주변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 구간의 이미지나 영상이 아무리 돌이켜 떠올리려 해도 전날들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지지가 않는다. 사진도 한 장 찍지를 못했다.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 모든 구간 구간을 사진에 담아 두고두고 순례를 기록하리라 생각했던 그 생각마저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아팠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저 자신과 함께 오직 걷기만 하는 행운과 회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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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루클라에서

루클라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루클라 이정표 앞에서 외국인 여행자 몇몇이 자랑스럽다는 상기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이 긴긴 여정을 끝내고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들을 향해 일종의 연대감 섞인 환한 미소와 박수를 보내며 걸어가는데 사진 찍기를 마친 그들이 나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며 환호를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산 친구들은 쉽게 쉽게 벗이 되곤 한다.

롯지를 잡기 전에 먼저 비행기 표를 교환하기 위해 여행사에 들른다. 3일 후 아침 카투만두 행 비행기 표를 내밀며 내일 아침 비행기 표로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표를 바꿀 수 없으면 며칠 루클라에서 머물면서 쉬다가 내려가야겠구나 싶어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다음날 아침 비행기 표로 바꾸어 준다.

마을 입구의 롯지에 방을 잡고 잠시 앉는다.

쉼!

묵연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것들을 살피며 안으로 쉼의 빛을 쪼인다. 가물가물 앉은 채로 나른한 선잠에 빠져든다.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루클라 시내를 잠시 걷기로 한다. 이미 해는 기울었고 루클라에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카투만두에 현지인 오랜 벗에게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도 미얀마 비자가 발급되었고 계획대로 미얀마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미얀마는 비자를 받고 2달 안에 들어가야 하는 조항이 있는 나라인데, 나는 인도와 네팔에서 2달 이상을 보내다가 미얀마로 들어갈 예정인 터라 미얀마 비자를 한국에서 받지 못하고 왔었다. 여행자들에게 물었더니 인도에서 미얀마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 누구도 네팔에서도 미얀마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해 주는 이가 없었다. 미얀마 대사관이 있으니 당연히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산에 오기 직전 미얀마 대사관에 신청을 해 놓고 나머지 업무를 벗에게 일임하고 왔었는데 이렇게 잘 되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에 든다. 밤새 오들오들 떨며 뒤척이다 새벽을 맞는다.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식사 후에 짐을 정리하여 공항으로 간다. 한두 시간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작은 비행기들이 그 작은 활주로 하나를 공유하며 쉴 사이 없이 앵앵거리며 오고 간다. 몇 대가 그렇게 오고 간 뒤에야 내가 탈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아, 이곳과도 이제 작별이구나.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와 보게 될까. 이번 생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올 수가 있기는 할까? 이 곱디고운 아름다운 순례길 위를 언제 다시 걷게 될 것인가.

바로 지금!

생의 매 순간 순간은 언제나 순례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

히말라야 순례를 마감하며 또 다른 삶의 히말라야를 내딛는다. 히말라야는 지리적인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꽉 짜여 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묶임으로부터의 벗어남, 욕심과 집착 속에서 허덕이다가 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한 생각 돌이켜 내려 놓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해탈, ‘내 삶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는 고정된 꽉 짜여진 일과와 틀로부터 훌쩍 벗어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인생’이었음을 돌연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틀로부터의 떠남이 바로 해탈이요, 여행이며, 순례의 길이다.

탐욕, 집착, 성냄, 질투, 짜증, 증오, 미움,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이기심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홀연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벗어남의 길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삶 속의 히말라야다.

히말라야를 열두 번도 넘게, 수백 번도 넘게 오르고 내린들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집과 에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떠남도 아니고, 순례도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그 모든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과 울타리와 고집과 생각과 번뇌와 차별적인 모든 마음에서 놓여날 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순례 길을 걷는 것이고, 투명한 히말라야 오랜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는가? 삶이 팍팍해서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는 여행자도 있고, 풀리지 않는 꽉 막힌 삶의 흐름을 여행을 통해 뚫어보려는 이도 있으며, 그저 여행을 업처럼 삶처럼 되풀이하는 이도 있다. 때로는 너무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마음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삶의 여행이다. 인생의 여정을 경건한 순례의 길로써 여기는 자에게는 매 순간의 삶이 바로 거룩한 순례의 길이며, 그러한 이가 바로 구도자이며 또한 순례자다.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간 하늘로 솟아올라 타원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그간의 쿰부의 순례 길을 비춰 준다. 점점 멀어지는 쿰부 계곡과 설산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이제 진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고쿄 순례기.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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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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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고쿄 라운딩 12일차

하산, 신의 거처 마체르모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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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설산 마을에서 한생을 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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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잠긴 고쿄의 새벽을 두드린다. 서리차고 맑은 공기가 호수의 시린 안개와 어우러져 고쿄는 더없는 신비에 잠긴다. 이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바지 단잠을 몰아 자느라 이 선경과 만나지 못한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먼동에 호수도 언덕도 봉우리도 마을도 사람들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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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 년, 몇 만 년 전의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 지구 행성의 모습도 이러했으리라. 오직 태곳적 비경과 침묵과 이제 막 시작된 대자연의 여리고 깊은 몇몇 생명들이 자유롭게 이 드넓은 대지와 초원과 푸른 언덕을 누벼왔을 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푸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곳 쿰부의 자연은 그다지 큰 훼손 없이, 변화 없이 인류의 자취를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본연의 모습을 지켜왔을 것이다. 그 장대한 역사와 숨결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안에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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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하릴없는 내리막의 연속이다. 마음은 더없이 홀가분하고 몸도 가볍다. 이른 첫 아침 식사를 먼저 시켜먹고는 지텐과 함께 여유로운 길을 나선다.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싱그러운 내음을 맡으며 신새벽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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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쿄 호수를 지나니 또 다른 작은 호수 타보체초(Taboche Tsho, 4740m)를 만난다. 호수 옆 작은 초원 언덕에는 발아래 적당히 부서진 바윗돌들을 정성으로 쌓아올려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자연 초르텐들이 다보탑, 석가탑 못지않은 고색창연함으로 그렇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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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을 분주히 오가는 짐꾼들의 발걸음도 가볍다. 걸음과 걸음 사이에 반짝이는 햇살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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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넘어서면서부터 타보체초 호수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개울을 이루더니 이내 거대한 계곡물로 바뀌며 길 위에 물과 바위와 바람의 악기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주고 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생명력 넘치는 음악처럼 계속된다. 발걸음에도 선율이 여울진다. 그 계곡을 작은 다리로 건너가고, 그 아래로 계곡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더니 이내 물소리가 클라이막스를 연주하듯 장쾌하게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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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으니 점차 물소리가 멀어지고 가훼(嘉卉)의 초원 길, 푸른 언덕, 그림 같은 작은 집들 몇 채가 이취를 자아니며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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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이제 저 멀리 발아래 깊은 곳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깊은 계곡 건너편 산 중턱에는 외진 마을, 외딴 마을, 그리고 외로운 마을, 작은 세 마을이 지척의 거리에서 외로움을 서로 달래주며 의지하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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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쿄 고을 단한한 고독경 속에서 이처럼 멀지 않은 곳에 도반과도 같은 이웃 마을이 끊일듯 끊일 듯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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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의 무수한 윤회 가운데, 이 올연한 산중에서 고고히 한 생을 삭거(索居)해 보는 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리란 생각이 스친다. 여러 생을 깨어남에 바친 눈밝은 수행자라면 그런 한 생의 유적함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고방한 독성(獨聖)의 경지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발걸음과 요 며칠 동안의 성산 순례가 이미 한 생의 삶이 아닌가. 육신의 나고 죽음을 한 생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렇지 사실 삶은 계속된다. 계속되는 영원한 삶 속에서 겉모습의 작은 변화에 따라 우리는 나고 죽음이라고 이름붙이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매일 매일이 하나의 생(生)이고, 매 순간이, 하나의 호흡지간이 곧 하나의 생이기도 하다. 하나의 사건도 한 생이며, 한 사람과의 관계 또한 한 생의 사건이다. 이렇게 성스러운 히말라야에서 걷고 걷고 또 걸으며, 쉬고 또 쉬면서 어쩌면 짧지만 하나의 진한 생을 유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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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은 이어진다. 내 발걸음과 연하는 길 또한 더 이상 인간계의 그것이 아니다. 초원의 언덕 뒤로 번쩍하듯 설산이 솟아올라 있고 그 언덕 아래 이 속에서 삶을 저어가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담한 집 몇 채가 귓속말을 걸어오듯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집에서 뛰어나와 눈 깜짝 할 사이에 옆집으로 숨어버린다. 이 모든 정겨운 풍경이 순례자들을 멈춰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든다. 그저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작품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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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속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길은 서로 이어지며 끊어짐 없이 흐른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도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하나의 길이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무수히 많은 길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열어 주기도 한다. 길과 길의 중첩, 인드라 망과도 같은 길과 길의 조화가 언덕 아래 삶과도 같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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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바위나 초원 위에서 또 다른 길과 같은 사람이 앉아 길을 주시하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길은 사람을 걷게 하고 또 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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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그 길 위로 야크의 행렬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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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나타나고 그 끊어짐은 또 다른 삶의 터전 속에서 확장되다가 다시 하나로 모여지곤 한다.

 

신들의 마을을 지나 계절을 관통하다

이 투명한 길이 마체르모(Machhermo, 4470m), 이름처럼 그림 같은 마을에서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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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체르모! 두고 두고 쿰부 순례를 떠올리면 내 안에서 불쑥 마체르모의 평온한 마을이 스르륵 마음의 문을 열고 튀어나오게 될 것만 같다. 우뚝 선 설산 아래 검푸른 높다란 언덕이 있고 그 아래 옴팡진 곳으로 마체르모, 선연한 작은 마을이 계곡을 끼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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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돌담과 돌담 사이로 몇몇 롯지가 들어 서 있고 그 돌담 안에는 때때로 야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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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양쪽에서 숨숨한 푸른 초원의 언덕이 거친 바람을 막아주고 명주실처럼 쏟아져 내리는 다사로운 햇살과 그 볕을 받아 또랑또랑 빛나는 계곡 작은 물줄기가 허허로이 흘러간다. 그야말로 이 교박하고 황량한 고지 위에 생명이 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쿰부의 여신은 마체르모에 선사했다.

이 아름다운 마을 마체르모가 있어서 고쿄 순례 길은 더욱 빛이 난다. 언덕을 내려가 마체르모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고한 집들과 고풍스런 돌담과 사람과 야크와 구름과 햇살과 푸른 하늘, 푸른 언덕, 오랜 신들의 정원에 맑은 물이 흐른다. 바람도 잠시 쉬어가는 이 마을에서 마음을 쉬고 발길도 잠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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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사이를 지나 마을을 가로질러 이 마을의 근원인 맑고 깊은 계곡 앞에서 숨을 고른다. 졸졸졸 졸졸졸 쉼 없이 흐르는 물이 있어 마체르모가 더욱 풍요롭다. 그 물 위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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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너편 언덕을 쉬며 가며 오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체르모는 더욱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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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오르면 룽다와 타르초가 마체르모의 일주문처럼 거센 바람의 연주에 맞춰 푸두둥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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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길 위를 걷는다. 사람도 걷고 야크도 걷는다. 바람도 구름도 풀꽃들도 함께 이 길 위를 걷는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를 마다하고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쿄 트레킹만을 하고 돌아가는지 이 길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아름답다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 말을 써 버리고 나면 저마다의 안에서 자기 식대로 영근 아름답다는 제한된 말의 의미에 갇히게 되지 않겠나. 아, 이 아름다운 곳을 두고 아름답다고 쓸 수 없다니, 언어의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 비로소 언어를 넘어 선 낱말 너머의 침묵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순간이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의 쉼이 있다. 걷다 걷다 걷다 보면 저절로 초원 위에, 흙 위에, 그리고 바위 위에 앉게 된다. 앉아서 비로소 허리 한 번 펴고, 풍경 한 번 바라보고, 하늘 한 번 보고, 그러면서 이 산 위에, 길 위에 서서 걷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문득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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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길을 저어 당도하는 마을이 ‘루자(Luza, 436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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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 또한 마체르모의 그것과 흡사한 구조와 아름다움을 온전히 부여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마체르모보다는 다소 작지만 오히려 그 담소한 풍경이 더없이 충만한 향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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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의 여울진 개울을 건너 뒤를 돌아보니 이 마을의 진한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얕은 다리 위로 사람들의 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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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올라올 때는 지도상의 거리감이 꽤나 멀게 느껴지더니 내려갈 때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지도의 좌표가 금방 금방 지나간다. 사실 고쿄에서 루자까지의 거리만 해도 오르막에 있어서는 하루도 더 가야 할 거리겠지만 아직 점심때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점심은 돌레에서 먹어도 충분하다고 지텐이 말했을 때 설마 했었는데 이 정도의 속도를 보면 그러고도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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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고쿄든, 칼라파타르든 내려갈 때는 하루만 잡아도 된다고 했던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길은 산의 7부 능선 정도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이 길이 이어지는 반대편 산의 비슷한 고도에 같은 속도로 길게 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절벽 처럼 깊고 가파른 계곡 저 아래로 머얼리 맑은 물소리가 흐르고 있다. 건너편 산중 오솔길 사이사이로 조금만 평지가 나타나더라도 어김없이 그 위태로운 자리를 보금자리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은 인간의 삶에의 의지가 눈물겨워지는 순간이다. 제법 큰 마을도 몇몇 곳 눈에 띈다. 지도를 보니 크고 작은 그 모든 마을들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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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자를 마주하고 서 있는 마을이 토레(Thore, 4300m)이고, 그 옆으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마을이 타레(Thare, 4390m), 그리고 가는 길 방향으로 보일 듯 말 듯한 마을이 코하나르(Kohanar, 4048m)다. 두 길이 두드코시(Dhudh Kosi) 계곡 강줄기를 사이로 사이좋게 마주보며 거닐고 있다. 몇몇 아름다운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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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이 아슬아슬하고 황량한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인지 인간의 생명력이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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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품과 배려는 도대체 얼마나 드넓고도 풍유한 것인가. 그곳이 어디든 자연이 살아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이 함께 한다.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척박해 보일지라도 자연은 아무 조건 없이 언제나 우리에게 무한정 베푼다. 인간의 욕심만 기형적으로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연 속에 깃드는 것을 자연은 언제나 반긴다.

사실 땅뙈기 어느 정도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자연이 알아서 책임져 줄 것이다. 단 그것은 최소한의 필요로 만족할 수 있는 무집착과 무욕의 청빈한 마음이 바탕이 될 때의 얘기다. 지금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벌이고 있는 이 욕심추구와 만족을 모르는 공룡 같은 기형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이상 지구의 미래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제 더 이상 자연이 품어줄 수 없을 만큼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가 만족하지 않는 이상, 너도나도 더 큰 성공과 부와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이 아름다운 지구별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 지구 전체 차원에서 거대한 만족과 청빈과 무욕의 정신이 물결처럼 파도치지 않는 이상 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릴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금의 현실은 지구 전체 차원의 보다 효과적인 파괴와 개발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류 전체 차원의 집착과 욕심과 만족을 모르는 퇴락한 정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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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라바르마(Lhabarma, 4330m) 작은 마을을 지나 돌레(Dole, 4200m)로 이어진다. 라바르마를 지날 때 발아래 사뿐사뿐 반짝이며 뛰어노는 나비 두 마리를 보았다.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자세히 보니 아예 이 녀석들이 ‘우리 나비 맞아. 진짜야. 와서 자세히 보렴’ 하듯이 길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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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전 잠깐 사이에 고도를 많이 낮춘 것이다. 날씨도 많이 포근함이 느껴진다. 나비, 나비라니! 오전 시간 잠깐 사이에 5,000고지 그 겨울 같던 곳에서 나비가 살 수 있는 이 따스한 봄으로 내려 온 것이다.

역시나 돌레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경은 180도 바뀌기 시작한다. 수목한계선을 뚫고 내려온 것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솟아올랐고 꽃들의 웃음이 만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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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벌과 숲 속의 구성원인 모든 작은 생명들이 숲과 함께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작지만 내 안에서도 조금 더 편안해진 무언가를 감지한다. 숨쉬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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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레에 도착한 시간이 11시가 조금 넘어서 내친김에 포르체 탱가(Phortse tenga, 3680m)까지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돌레 주위의 숲은 흡사 한국의 가을을 연상케 할 만큼 낙엽들이 오색으로 물들어 떨어지고 있다. 물론 그 물듦이 단풍이라고까지 명명할 수 없을 만큼 소박하긴 해도 겨울에서 순간 가을로 이동을 해 가는 느낌은 선명하다. 폭포수도 가을처럼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온갖 꽃들도 생기를 되찾아 꽃무리를 이루며 재잘거린다. 푸르른 숲이 우거진 나무 그늘이 한낮의 땀을 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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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과의 연대감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숲길, 나무숲의 터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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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든 생명이 거리낌 없이 생명력을 발산하고, 온갖 존재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높은 고도를 걸을 때의 그 황량한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감이랄까, 조화로운 생명의 에너지가 비로소 춤을 추고 있음을 느낀다. 그저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꽃과 나비와 숲을 보면서 일종의 동질감,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며 ‘그래 여기가 너와 내가, 우리가 살기 알맞은 곳이지’ 싶은 반가운 하나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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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너희들처럼 너희들도 나처럼 같은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조화로운 한 가족, 한 생명이로구나. 너희가 저 위의 고도로는 올라갈 수 없듯이 나 또한 그곳에서는 숨쉬기 힘든 버거움을 느꼈단다. 이제 이렇게 다시금 어머니의 품, 고향으로 돌아오니 나의 오랜 벗들이 이렇게 나를 반겨주는구나.’

역시 생명의 뿌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내가 살기 힘들면 자연의 모든 생명도 살기 힘들어지고, 내가 살기 좋은 터전에 모든 생명도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느덧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미미하게나마 내 몸도 내가 살아가기 최적의 조건에 딱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과 함께 꽃도 초록도 나비도 숲도 만나게 되니, 우리 모두가 진정 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 가족이었고, 둘이 아니었다는 깊은 일체감에 사로잡힌다. 아, 이 생명들과 내 생명이 하나였구나,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생명이로구나. 홀로 여행을 떠나왔다는 고독증에서 벗어나, 이 온누리 생명의 벗과 함께 하고 있다는 대자연과의 친근감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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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지구에 어느 한 작고 여린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조건으로 바뀌어 버리고 나면, 그 종이 소멸하면서 사실상 우리 인간 존재의 일부도 함께 스러져가는 것이다. 종의 소멸은 곧 있을 인간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사라져가는 생물 종이 하루에도 140여 종, 일 년에는 최소한 5만 종의 생물종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년 이내에 지구상 생물종의 1/4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인 열대우림과 숲이 1분에 29ha, 즉 축구 경기장 40개에 달하는 면적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는 참사람 부족이 더 이상 오염되어가는 지구별에서 살 수가 없어 부족 스스로가 더 이상 후손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써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세계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환경오염과 생물종의 멸종, 지구온난화의 가속 등으로 인해 남성의 정자 수가 급감하고 불임이 늘어 인간 자체능력만으로 임신을 계속할 수 없어 이런 상태로 2017년까지 가면 결국 인간도 멸종의 길을 걷게 됨을 강력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지구라는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과 나아가 생명 있고 없는 모든 존재들 모두의 공통의 거처인 이 별을 더 이상 인간이라는 하나의 무탄트, 하나의 별스런 희귀종이 자신들만 편히 살자고 다른 생명과 존재와 지구 전체를 무참히 오염시키다 결국 폭발시켜 버리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저들 순수한 생명은 오늘도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숲이 뿜어내는 직접적인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또한 두 눈으로, 두 귀로, 코로, 몸으로 이 숲의 빛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며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가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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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도시, 쿰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다

예상보다 일찍 포르체 탱가까지 도착해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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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체 탱가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부터 작은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하산 길의 유일한 오르막을 만난다. 아, 그런데 역시나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오르막길이 숨 가쁘지 않고 그리 힘들지 않다. 공기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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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고 조금 더 내려가니 올라갈 때 만났던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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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갔더니 올라가며 보았던 바로 그 삼거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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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남체바자 쪽이 아닌 쿰중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오후 3시 즈음에 쿰중 마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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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중은 생각보다 더 큰 도시다. 남체바자와 거의 맞먹을 정도의 큰 규모의 시내가 펼쳐지는 풍경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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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텐이 추천해 주는 롯지를 잡아 짐을 풀어 놓은 뒤 잠시 창밖으로 펼쳐진 쿰중의 선연한 풍경을 바라본다.

잠시 쉬었다가 쿰중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한다. 산책하다 보니 베이커리 빵집을 만난다! 빵집이라니 참 오랜만이다. 들어가서 빵을 하나 시키고 음료를 하나 주문하여 꿀맛 같은 모처럼의 군것질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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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강을 하며 빵집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자니 비로소 히말라야의 일정이 끝나고 있구나 하는 녹록한 여운이 밀려온다. 그간의 일정을 회상하다 가물가물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다 깜짝 놀라 일어선다. 아주 짧은 시간의 졸음이 깊은 단잠처럼이나 달콤한 휴식을 가져왔는가!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졸음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설산을 걷는 꿈을 꾸다가 이제 막 깬 것처럼 그간의 걷기가 아련하게 느껴진다. 진짜 꿈을 꾼 건 아닐까! 2주 간 설산에서 보낸 날들이 꿈처럼 거짓말인 것처럼 기억 속에서 하늘거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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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설산 뒤로 넘어가고 있다. 쿰중이 어둠에 잠긴다. 롯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났더니 몸도 마음도 완전히 긴장이 풀린 것인지, 이제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럴 때 따뜻한 물에 목욕이나 하고 푹 자야겠다 싶어 모처럼 돈을 주고 따뜻한 물을 사서 온몸을 덥힌다. 며칠만의 목욕인가.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목욕을 하고 나서 여느 때보다 일찍 단잠에 빠진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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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포카라-나야풀-김체)

포카라 사랑콧의 꿈같은 하룻밤

4년 전, 포카라(Pokhara) 페와호수(Phewa Lake)에 나른해진 심신을 띄워놓고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도반들과 나누던 안나푸르나의 품속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 져만 가고 있었다.

포카라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콧(Sarangkot, 1592m)에 올라 거센 오후의 빗줄기를 만났을 때, 또 그 빗속을 뚫고 새벽 첫 안나푸르나 일출의 장엄한 연주를 들었을 때, 아마 그 때부터 나의 그리움은 설산의 은빛 속살을 타고 내 뼛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었을 터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 트레킹이나 라운딩을 마치고 산에서 막 내려온 사람들 모습 속에서 나는 마치 신을 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그을렸으며 며칠은 굶었을법한 퀭한 눈과 낯빛으로 다가 온 트레커들의 산 이야기는 내 안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희말라야와의 오랜 인연을 홀연히 끄집어내어 주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미 설산의 길 위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생각이 나더니 사랑콧과 나갈콧(Nagarkot)에서 보았던 설산 속에 내가 서 있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네팔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다시 출가하는 심정으로 저 희말라야의 품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 가고만 싶었다. 묵직한 배낭 하나 짊어지고, 깎지 않은 수염에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그러나 눈빛에는 아이 같은 천연의 생경함을 담아 초롱초롱한 호기심을 가지고 튼튼한 두 발에 의지하여 저 산 속을 홀로 누비며 걷고 있는 상상의 나래를 단지 마음속으로만 꽃피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로 갈 것이냐 탈영승이 될 것이냐

출가 까지 하며 훌쩍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걸릴 것이 있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못 가겠느냐 싶겠지만 출가를 했다고 결코 모든 것에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갈 곳, 아니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군인이었다!

스님이면서 그러나 동시에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특별한 나의 신분과 사정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스님들도 군대가요?”

그럼 가죠! 스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다 군대를 간다. 군종장교(軍宗將校), 군대에서 자신의 군생활을 하며 장병들에게 종교생활을 지도하고 인성함양을 심어주는 수행자이자 장교인 이중적 신분의 특별한 군인들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보다도 군종장교에게는 장교가 먼저냐 성직이 먼저냐, 군인이 먼저냐 종교인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우스개의 농이 있다.

나는 마음이 난다고 그저 쉽게 일정을 변경하여 희말라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다만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스님이고 뭐고 나의 공식적 신분은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 만약 휴가 복귀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을 터다. 그렇다. 탈영! 아마도 세계 최초의 탈영병이 아니라 탈영승이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희말라야에 대한 나의 상사병을 뒤로 하고 한국 땅을 밟았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고.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일 진데, 여행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병 중에도 큰 병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잊혀 지지가 않는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하고도 한 해 두 해가 지나가건만 희말라야에 대한 일방적인 나의 사랑은 일상 속에 묻혀 희미해져만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또렷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나의 현재의 조건에 있어 희말라야는 꿈일 뿐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를 내 마음처럼 자유롭게 걸으려면 적어도 한두 달 정도는 필요하건만 어떤 군대가 한 달 이상 휴가를 내준단 말인가!

이 즈음 되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희말라야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군인이기를 포기하던가. 시간이 흐르면 희말라야가 포기가 되겠지 하며 지낸 세월이 어언 3년, 그러나 이 그리움은 3년째가 되면서 더욱 커져 급기야는 전역을 신청하고서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에까지 이르렀다.

이게 무슨 열병이란 말인가. 이정도면 이게 집착인가! 그래, 집착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희말라야와 나와의 오랜 인연이 무르익었다는, 드디어 만날 때가 되어간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의 어떤 소식, 혹은 어떤 내밀한 메시지였을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나의 그리움에는 오래 전부터 꼭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했던 인도의 부처님 성지와 ‘오래된 미래’를 읽고 이 또한 언젠가 꼭 한번 가야지 했던 라다크에 대한 그리움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3개월 정도만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 모든 곳으로의 꿈같은 순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그리움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거짓말 같은 히말라야와의 인연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때 나의 간절함과 그리움과 서원 또한 이루어진 것일까! 이 우주를 뒤덮고 있는 우뚝 선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가 나의 그리움에 탄복이라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번 생에 나와 이 산과의 인연이 영겁의 오랜 기다림으로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저 설산의 여신 초모랑마가 꿈처럼 나와의 만남을 허락해 준 것이다.

작년 한 해 안나푸르나와 희말라야에 대한 그리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크고 간절했으며 사무쳤고 묵직한 것이었다. 되돌아 보건데 그 한 해 나는 운명적인 히말라야와의 조우를 근원적인 차원에서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토록 한 해 내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네팔의 설산과 고타마 붓다의 고향 인도의 향기를 그토록 진하게 맡을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 일은 참으로 절묘하다. 그야말로 인연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왜 나는 그렇게도 작년 한 해 희말라야와 라다크와 인도에 대한 열병과도 같은 뜨거운 무언가를 깊이 깊이 품게 되었을까. 왜 그리도 가지도 못할 그 곳을 찾아 책, 인터넷, 블로그, 사진 등을 뒤져가며 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마음만은 그 허한 산길을 걷고 있어야 했을까.

왜 그토록 자주 꿈속에서 설산 위를 훨훨 날았으며,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대탑 아래에 앉아 좌선에 들었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한 내 마음 속에서의 메시지이자 힌트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네 안에서 준비를 하라는 우주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군에는 매년 기독교 군종목사님 중 한 분씩을 선발하여 약 3개월 간의 성지순례를 보내주는 자비(自費)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에 비해 목사님들이 훨씬 많고 군종장교의 상당수를 차지하다 보니 아직까지 스님, 신부님들에 대한 혜택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갑자기 군 종교의 형평성 차원에서 스님들에게도 인도, 동남아 등 불교지역으로의 성지순례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문호가 개방 된 것이다! 갑자기 바로 그 해에! 게다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첫 해다 보니 아직 홍보가 덜 되어 있어서, 군의 선배 스님들께서 그런 제도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가 보다. 최종 선발 날짜까지 나를 제외한 단 한 명도 신청 접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나를 위한 제도가 생겨난 셈이 되었다.

 

당신을 위한 우주의 놀라운 계획

생각해보라.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나는 인도, 네팔, 히말라야, 라다크 등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곳을 다 다니려면 적어도 2~3달 정도는 소요가 된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진묘하고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곳에 모두 다니려면 2~3개월이 필요했고, 나에게 주어진 공문상 출장 기간은 12주였다. 군승으로써는 3개월을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계기 자체가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기회가 생겨났다. 선배 스님들이 너도 나도 지원했을텐데, 마침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평소 공문이나 인트라넷의 거의 보지도 않던 내가 그날따라 다른 일이 생겨 사무실에 갔다가 시간이 남는 바람에 잠깐 공문을 보았고 그 공문을 본 날이 마감 전날이었다. 또 보통은 3개월이나 부대를 비우기 어려울뿐더러 지휘관이 그렇게 허락하기도 힘들 것인데, 마침 지휘관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추천서를 써 주셨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의 완벽하게 짜여 진 대본처럼 느껴진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하여 만들어낸들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들은, 이와 같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짜 맞춘 듯 그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 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주법계의 조화요, 인연의 신묘한 조화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비이며 매 순간이 기적과도 같다. 이와 같은 일만 기적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기도 하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이다.

 

삶이 보내주는 힌트 알아차리기

우리 삶은 이처럼 우리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조화와 신비들로 뒤덮여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깜짝 놀라게 되는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시간이 늦어 빨리 뛰어가지만 않았더라도 그 여인과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와 자녀들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 때 그 회사에서 사고를 치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사장 자리도 없었을지 모르며, 그 때 배낭여행 중 우연히 그 나라로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의 해외유학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 날 밤 너무 정숙했던 나머지 사고를 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인 것 같은 필연과 인연들이 거짓말처럼 얼키설키한 그물코처럼 우리의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잡히게 해 주고 있다. 모든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소중한 인연이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 인연을 열매 맺게 해 주기 위해 이 우주 전체가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른 봄 매화 한 송이가 꽃을 피우는 데에도 전 우주의 장대한 계획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우주적인 계획은 언제나 우리에게 힌트를 보내주고 있다. 삶의 사소한 일상조차도 우주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그 해 나도 모르게 인터넷을 켜면 인도와 히말라야를 찾고, 가슴 속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룽다가 휘날리는 설산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피어나며, 꿈속에서조차 히말라야 길 위를 걸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나를 준비시키기 위한 우주법계의 메시지요 힌트였던 것이다. 그 한 해 동안 직관적인 영감들이 왜 그토록 나를 인도로 향하게 했고, 히말라야를 향하게 했는지 그 당시는 분명히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투명한 의미로써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고, 직관적인 어떤 느낌의 흐름조차도 차분히 주시해 보라. 삶의 모든 부분들을 놓치지 말고 관찰 해 보라. 애써 해석하지 말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말고 지켜본다면, 당신 삶의 수많은 힌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분명한 메시지로 다가와 직접적으로 당신을 돕게 될 수도 있다.

우주는 이와 같은, 혹은 더 깊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방법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 그 자비로운 도움의 방편들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도 상징적이다. 마음이 투명하여 예술과 감성적인, 그리고 직관적인 의식에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그 상징과 힌트들을 머릿속의 해석 없이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안나푸르나 앞에 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희고 고운 영봉이 올려다 보이는 네팔 포카라(Pokhara, 620m)의 한 식당에 앉아 폐와호수와 마차푸차레를 앞뒤로 바라보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8월말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꿈에 그리던 라다크와 성스러운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고 날도 좋은 10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순례를 위해 잠시 포카라에서 목욕재개하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 다시 생각해 봐도 지금 내가 이렇게 네팔 포카라에 앉아 하얀 설산을 올려다 보며, 폐와호수를 내려다보며 고요한 오후를 보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복감이 호수의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는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한없는 풍요, 평화, 혹은 행복! 그 무슨 말로 지금의 이 감격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드디어 오늘, 이렇게 감격스러운 오랜 그리움의 무게로 안나푸르나를 내딛는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의 입구격인 나야풀(Nayapul, 1070m)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가량이 걸린다. 나야풀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는 다랭이 논들이 초록과 노오란 진한 빛을 뿜어내며 그림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트래커들이 입산하기에는 늦은 시간인 오후 1시에나 되어 나야풀에 도착. 일반적으로 ABC 트레킹의 첫날 숙박 예정지인 간드룽(Ghandrung, 1940m)까지 가려면 한참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간드룽이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든 잘 곳이 있으면 자면 되고, 걸을 수 있으면 걸으면 되는 것, 산행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www.moktakso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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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려진 미래라는 환상에 속지말라

벌써 에베레스트 순례가 11일차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고도 아쉬워 며칠 더 묵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또 한 편에서 올라오는 마음을 관찰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내일이면 드디어 내려가는 구나’ ‘3~4일 쯤 후면 카투만두에 도착하겠지’ ‘빨리 이 트레킹을 끝내고 미얀마로 가야지’ ‘빨리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구름처럼 폴폴거리며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진짜 내 본심인가. 이 역설적인 두 가지 마음을 관찰해 본다. 그러고 보면 꼭 이번만이 아니라 늘 내 마음 속에는 다음 순간의 그 어떤 일을 꿈꾸는 누군가가 존재해 왔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고 늘 미래를 기다리고, 다음 순간에 있을 즐겁고 설레는 무언가를 꿈꾸는 또 다른 나, 그것이 바로 아상(我相)이요, 에고였다.

이놈의 아상은 시도 때도 없이 슬그머니 기어 올라와 나를 지배하려고 애를 쓰곤 한다. 아상은 지금처럼 늘 내일을, 미래를 꿈꾼다. 내일 있을 어떤 일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더 매혹적이고 설레며 좋은 것일 것이라는 그 어떤 막연한 과장과 기대를 담고 있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지금 여기’가 아닌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보다 더 부풀려져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꿈꿔오던, 혹은 기대해오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을 때 과연 지금 생각처럼 그 현실이 실로 매력적이고 설레는 순간으로 다가오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 되면 또 다시 그저 그런 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내가 그렇게 원했던 그 순간에조차 그 순간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만끽하며 느껴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다음에 있을 미래를 과장하여 계획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이런 삶의 끊임없는 반복이다. 매 순간 미래의 환상에 속으면서도 습관처럼 또 다시 환상을 품는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아상이 꾸며내는 일의 실체다. 어차피 무언가를 기다리고 상상하며 부푼 꿈으로 계획하는 미래가 사실은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매혹적이지 못하다면 왜 자꾸 그런 미래를 기다리느라 ‘지금 여기’ 현실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현재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가. 왜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우리는 언제나 미래를 꿈꾸고 기대하느라 현재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현재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는 늘 재미도 없고 밍숭맹숭하다.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럴 바에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게 낫다고 여긴다. 정말 그럴까?

‘더 나은 미래’는 없다. 그 미래가 실현되는 순간은 언제나 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방식은 언제나 현재를 홀대해 왔다. 현재를 홀대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지금 여기의 삶을 소외시켜 왔고, 오직 환상과 기대와 막연한 꿈의 신기루 속에서 주어진 삶을 외면해 왔다. 그러니 아무리 환상적인 미래가 온들 그것이 현재가 되었을 때 다시 그것은 여지없이 습관처럼 홀대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가 되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고? 우린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현재를 그다지 중요히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우리의 습관적인 삶의 방식이다.

이게 얼마나 가치가 전도된 일인가. 진실은 이렇다. 미래는 없다. 우리에겐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환상적으로 부풀려지고 꾸며진 미래는 우리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허구에 에너지를 쏟느라 ‘지금 여기’라는 진실을 끊임없이 축소시키고 있다. 우리 삶의 모든 에너지와 생명력의 원천인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과거와 미래 전부를 놓치는 것이다.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매 순간 삶 전체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 우리가 부푼 기대와 추구로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결코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아름답거나 신비롭지 않다. 아무리 대단한 성취와 장밋빛 미래일지라도 그것은 결정코 현재와 별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래의 그 어떤 순간도 바로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향기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심지어 강박적으로 무언가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는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기다림의 끝에는 언제나 ‘현재’밖에 없다. 그렇다면 긴긴 기다림의 끝에 얻을 수 있는 현재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당장에 기다림이라는 중간 과정을 없애고 바로 지금 당장에 그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는가.

빨리 산을 내려간들, 카투만두에 도착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들 그 때 무슨 대단한 더 좋고 나은 일이 기다리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딛는 발걸음, 이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미래는 없다. 이보다 더 생생하고 진한 삶의 이야기는 없다. 지금 이 발걸음 하나를 놓치면 그것은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 물론 기대하고 추구해 오던 미래의 빛 또한 조금씩 그 흔적을 잃어가고 만다. 다음 순간에는, 내일에는 무언가 새롭고 신선하며 특별한 미래가 나를 기다릴 것 같지만 바로 그 새롭고 신선하고 특별한 것은 바로 지금의 한 호흡과 한 발걸음을 지켜보는 그 속에 있다.

고쿄리를 오르며 침묵의 연주를 듣다

어설픈 미래를 추구하려는 에고의 기대를 알아차리며 닥낙 롯지를 출발해 ‘지금 여기’의 한 발 한 발을 고쿄(Gokyo, 4750m)를 향해 옮긴다. 이쪽 닥낙에서 저쪽 고쿄까지 가려면 그 중간을 거대하게 흐르고 있는 빙하 언덕을 지나야 한다. 나는 지도에서 빙하지역이라 해서 거대한 얼음이나 눈으로 뒤덮인 큰 강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은 다 녹았는지 없고 다만 거대한 강줄기의 흔적, 혹은 얼음 빙하 흐름의 흔적만을 남겨둔 채 먼지 나는 모래 언덕만이 내내 펼쳐지고 있다.

지나치는 발자국마다 먼지를 폴폴 일으켜가며 빙하지역을 빠져나오니 드디어 저쪽 언덕 너머 아름다운 고쿄의 풍경과 설산을 배경으로 압도하는 거대한 호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고쿄의 풍경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것들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특히 빙하 호수와 그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설산과 우뚝 선 고쿄리(Gokyo Ri, 5340m), 그리고 드넓은 호수 곁에 롯지 예닐곱 개 정도의 작은 마을이 꿈결처럼 펼쳐져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의 마을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롯지에 여장을 풀고 식당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 쿰부 지역의 대부분 롯지가 그렇듯 이곳 또한 식당의 삼면이 너른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바깥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식당에 앉아 넓은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저 창밖의 이랑지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예쁜 동화의 이야기 속에 들어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고 이렇게 사람을 깃들게 하는 롯지가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투명하고 눈에 쏙 들어오는 몽외지경의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대자연의 예술적 감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창을 통해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조차 너무나도 감동스럽다. 눈이 부시다.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 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이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저 침묵 속에서 바라만 볼 뿐이다. 말 그대로 무아몽중! 나를 잊고 매 순간순간 일념일동(一念一動)의 감흥에 젖어든다.

롯지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짐을 방에 내려놓은 뒤 곧바로 오후가 되기 전에,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고쿄리를 다녀오기로 한다. 롯지를 출발해 호숫가를 건너 호수 너머로 우뚝 서 있는 맨송맨송 나무 없는 민둥산 고쿄리를 오른다. 호수에 반짝이는 햇살이 천진한 아이의 눈처럼 맑다. 저 멀리 설산의 물이 녹아 흐르다가 이 큰 호수와 만나는 지점에 작고 허름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 아래를 흐르는 물이 속살을 훤히 드러내며 무색투명하게 꿰비치고 있다. 걷다 말고 고개를 돌렸더니 그 호숫가를 배경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의 고쿄 마을이 서 있다. 호수 옆길을 끼고 돌면 곧바로 가파른 흘올(屹屼)의 고쿄리 산이 시작된다.

저만치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거북 걸음으로 전혀 속도감 없이, 그야말로 바람 한 점 없는 날 구름의 속도로 저어간다. 한 발 한 발 가파른 산길에서 호흡과 걸음을 일치시키며 걷는다. 길을 따라 걸으면 너무 먼지가 많아 길 없는 초원 쪽으로 홀로 오른다.

습관처럼 오르다가 뒤돌아보고 오르다가 뒤돌아보기를 반복한다. 고도를 조금만 높여도 저 아래 호수와 고쿄의 마을 풍경이 달라진다. 호수에 비친 여행자의 실루엣이 고요하고도 평화롭다. 조금씩 더 높이 오를수록 고쿄 마을과 빙하지대 건너편 내가 그동안 지나온 곳들의 설산 봉우리들이 불쑥 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중턱을 조금 넘어섰을까. 칼라파타르에서 보지 못했던 에베레스트 봉우리가 가까운 검은 산봉우리 뒤로 조금씩 그 우뚝 선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초오유(Cho Oyu, 8201m) 봉우리도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발아래를 돌아보니 호수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들이 산의 계곡에서부터 흘러나와 춤을 추듯 드넓은 호수의 품에 안기고 있다.

바람이 좋다. 햇살이 따스하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 어느 구석에도 부조화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공의 모든 존재들이 제 몫을 정확히 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과 나 사이에 전혀 거리낄 것 없는 전체적인 관계성이 놓여 있다.

생각해 보라. 아니, 느껴보라. 이 우주적인 조화, 이 장결한 설산과 눈부신 태양, 저 아름다운 호수가 나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것들과 나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이 순간에 온 우주가 합연해 내는 대 장엄의 음악이 침묵으로 연주되고 있다. 연주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 소리를 빌지 않더라도 침묵 속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오디오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현재와 연결되는 순간, 내 앞의 모든 존재가 우주적인 하모니로 대 장엄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해 낸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렇게 생생히 들려오는 이 침묵의 연주는 무엇이란 말이냐!

알고 떠나는 여행, 모르고 떠나는 여행

정상에 가까워올수록 숨이 차고 가쁘다. 몇 발자국 내딛는 것이 너무나도 힘에 겹다. 공기가 희박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마치 거센 폭풍우와 휘몰아치는 바람 속을 정면으로 돌진해 나가는 것처럼 더디고 힘에 부친다. 바로 저기 눈앞에 보이는 열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를 한참을 걸려 갈 수밖에 없다는 이 기막힌 상황이 직접 겪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아 큰 맘 먹고 열 발자국 정도를 한 호흡에 내달리듯 걸어 보기로 한다. 아, 이놈의 급한 성미 때문에 말이다. 그랬다가 열 발자국 걸은 뒤에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니 드러누워 죽을 것 같은 거친 숨을 한참 동안 미친 사람처럼 몰아 쉬고 있다. 완전히 KO를 당한 패전 선수처럼 헉헉거리며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한다. 열 발자국 빨리 가려다가 되려 그보다 더한 시간을 앉아 지체해야 했던 것이다.

이곳은 그런 인간의 생각이나 욕심 따위로 제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느리지만 정직한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저 엎어지면 코 닿을 것 같은 거리조차 도저히 도달해 낼 수가 없는 곳이다. 칼라파타르에서 정상을 불과 30여 미터 앞두고, 일반적인 생각 같아서는 고작 이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그 먼 길을 비행기 값에 비싼 돈을 주고, 귀한 휴가 기간을 들여 찾아 와 놓고 포기하고 내려가나 하겠지만, 이곳이 바로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정상은 눈앞에 벌써부터 보이지만 생각처럼 몸과 호흡이 뒤따라 주지 않다보니 그 짧은 길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도착한다. 도착해서도 한참동안 거친 숨을 고른다. 호흡을 본래로 되돌려 놓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숨을 되찾고 나니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가 불현듯 꿈처럼 솟아오른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칼라파타르뿐만 아니라 고쿄리 트레킹을 그리도 많이 하는지를 알겠다. 눈앞에 이 쿰부 지역의 전체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룽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벽공(碧空)을 배경으로 청연하게 푸두둥거린다.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바위에 몸을 기댄 채 이 깊은 풍경에 빠져 숨을 죽이고 있다. 룽다는 쉼 없이 흔들린다. 이 묵직한 풍경 속에 움직이는 것은 오직 룽다와 새들, 그리고 사람 뿐이다.

 

저 멀리 눈앞에 수많은 설산의 봉우리들이 경이롭다 못해 존외스러움으로 우뚝 서 있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한가. 무슨 설명이 필요하며 심지어 설산 봉우리의 이름들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저 봉우리 이름은 무엇이고 언제 처음으로 어느 나라 등산가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그 이후로 몇 차례 사람들이 올랐고, 그 과정에서 누구누구가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또한 저 봉우리는 몇 만 년 전에 어떤 역사를 가지고 솟아올랐다는 등의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반드시 저 봉우리를 보고 느끼는 데 필수적인 것일까? 어떤 문화재 전문가는 “아는 만큼 본다.”는 유행어까지 남겼는데, 과연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아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할까? 지식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볼 때 우리 안의 지식으로 걸러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봉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으로 걸러서, 즉 과거라는 색안경으로 걸러 보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제한한다. 그 드넓은 자유로움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아마 내 안에 저 봉우리들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역사와 이야기들을 죄다 꿰고 있으며 모든 봉우리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의 봉우리가 나타날 때마다 ‘봄’에 앞서 ‘지식’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저 봉우리는 이름이 뭐고 어떻게 그 이름이 명명되었으며 어떤 역사와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수많은 정보가 나의 순수한 ‘바라봄’ 그 자체를 가로막았을 터다. 지식과 정보와 역사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일 뿐이지만 ‘바라봄’은 오직 지금 여기의 생생한 현재다. 현재와 과거는 공존할 수 없다. 과거가 끼어들면 현재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우리의 바라봄이 현재와 온전한 관계를 맺게 될 때 과거의 모든 흔적들은 사라지고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에너지가, 생생하고 깊은 현존의 숨결이 우리의 ‘봄’에 지혜와 사랑의 파장을 보내게 될 것이다.

세상의 지식 사회에서는 “아는 만큼 본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너머의 영적 뜨락에서는 그저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지식은 순수한 ‘바라봄’을 제한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고쿄리 정상에서 내 눈에 들어 온 봉우리들의 이름이 왼쪽부터 초오유, 푸모리, 에베레스트, 눕체, 로체, 마칼루, 촐라체, 타보체 등이라는 것은 지금에서야 글을 끄적이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아마도 고쿄리 정상에서 하나하나의 봉우리마다 이름을 붙여가며 더불어 온갖 정보와 역사와 과거로 무장된 지식들을 뒤섞어 바라보게 되었다면 그 순간의 그 느낌이 과연 순수할 수 있었을까!

요즘 매일 밤 나의 오감을 투명하게 해 주는 별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별을 바라볼 때 별자리에 관한 정보며, 그 명칭이며, 역사와 과학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할까. 오히려 별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바라봄은 제한적이고 순수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말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그런 풍경 속에서 우리는 말을 잊고, 글을 잊으며, 생각과 지식을 잊는다. 오직 장엄한 풍경 앞에서 모든 것이 멈춰진다. 세상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침묵할 뿐이다. 별 앞에 설 때나 푸른 초원의 언덕 너머로 떨어지고 솟아오르는 일몰과 일출을 마주할 때, 이와 같은 설산의 산령 앞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은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 그저 경이감에 현묵할 수밖에 없다. 그 숭고함은 언어를 초월해 있고, 시성(詩聖)의 그 어떤 표현보다도 더 깊고 넓다. 바로 그 모든 것이 침묵하는 외경과 신비의 순간,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 우주 본연의 아름다움과 무한한 깊이의 생명력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도저히 지식과 정보와 온갖 종류의 과거의 흔적이 끼어들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바라봄이다.

 

한 두 번 가 보고 여행기를 출간한다고?

조금 다른 비유로, 여행하며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다 보니 특히 오래도록 수많은 나라를 여행한 사람일수록 ‘한두 번 그 나라를 가보고 아는 척 책 내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편견과 심지어 최악의 평가를 동원하며 평가 절하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어떤 여행자의 말이다.

“나는 인도를 수십 번 다녀봤지만 아직도 인도를 잘 모르겠는데 인도에도 몇 번 가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인도를 어떻게 안다고 여행기를 낸다는 것인지 웃기지도 않아요.”

물론 그 책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정보 지식을 전해주는 소개서 내지 가이드북 같은 것이라면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여행기라는 것이 꼭 그런 지식을 위한 책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식’에 대한 책이 아닌 ‘봄’에 대한 책, 혹은 ‘느낌’에 대한 책은 왜 아름다운 가치로 인정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습관이 오직 지식과 정보에만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보니 ‘봄’의 문제, ‘느낌’의 문제,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생생한 현재의 문제’와는 접촉할 기회도 가르침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인도 여행을 수백번도 넘게 했을지라도 인도를 다 알 수는 없다. 아니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산 사람이라도 인도를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안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다 알 수 없다. 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고, 지식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는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학력도 필요 없으며, 교양도 필요 없다. 그것은 많은 경험과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번 보고 배워야 하지만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더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투명하며 전혀 과거나 지식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바라봄은 첫 번째의 ‘봄’이 더 깊다. 어제 본 것을 다시 보는 마음과 난생 처음 전혀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처음’이라는 말의 가치, ‘처음처럼’이라는 의미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넓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하여 첫 번째 일으킨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가장 순수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그것이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했다. 그 첫 마음은 지식도 정보도 과거도 끼어들지 않은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태초의 새벽처럼 선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에서든 일상에서든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처음으로 볼 때 그 느낌은 어떤가. 그 눈은 어린아이의 순박하고도 천진스런 맑은 호수 같은 시선이다. 거기에는 때가 끼어있지 않다. 그 어떤 정보와 지식, 과거로 오염되어 있지 않다. 그저 눈앞에 있는 새로운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순실하게 볼 뿐이다. 그 ‘봄’에는 그 어떤 판단도 분별도 좋고 나쁘다는 차별도 없다. 그 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것을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바라봄의 시선은 ‘오직 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분별과 차별이 개입될 수 있겠는가.

‘오직 모르는 시선’ 그것이야말로 투명하고 지혜롭다. 왜 그런가. 사실 우리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자기 자신을 전체적으로 다 알지 못한다. 하물며 내 아내, 내 자식, 내 오랜 친구의 마음을 전체적으로 완전히 알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사실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그 시선이야말로 진실하며 투명하고 바른 길이다.

그래서 틱낱한,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의 살아있는 3대 생불이라 불렸던 숭산 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화두로써 진리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뭣고?’라는 화두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으로 이끈다. 그런 ‘오직 모를 뿐’의 텅 빈 바라봄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직 모르는’ 그 시선으로 처음 그것을 대하듯 내 앞의 모든 익숙한 일상을 대해 보라. 아무리 익숙한 것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일 뿐이다. 이것을 옛 사람들은 “똑같은 강물에서 두 번 목욕할 수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러니 어떤가. 오직 모르는 시선은 첫 번째일 때가 가장 투명하다. 첫 마음, ‘처음처럼’, 초발심이야말로 모든 투명한 시선과 가깝다.

그러니 몇 번씩 그곳을 여행하게 될수록 거기에 대한 온갖 정보와 지식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곳을 지식으로 걸러서 볼 수밖에 없다. 처음처럼 숫접고 신선한 눈으로 보는 천진함을 잃게 된다. 그 때 오직 남는 것은 쌓인 지식뿐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첫 여행에서는 주로 그것을 그저 느낄 뿐이지만 여행이 두 번, 세 번 계속될수록 느낌보다는 생각과 과거의 경험이 더욱 그 여행을 지배하기 쉽다. 익숙한 것일 때 그 지각은 피상적이기 쉽다. 하지만 새로운 것일 때 우리의 오감은 더욱 예민해지고 활짝 열려 있는 개방성으로써 모든 것을 더욱 생생하게 살핀다.

물론 그 중 어느 쪽이 더 좋고 다른 쪽은 더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지식과 정보를 담은 책도 중요하지만, 봄을 담고 있는 책 또한 나름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의 몫이 있으니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 모든 평가와 판단과 분별이 사라진 텅 빈 시선, 차별 없는 봄 속에서부터 삶의 지혜와 사랑은 싹튼다.

이렇게 고쿄리 위에 서서 ‘저 봉우리는 어떻고, 저것은 저것만 못하고, 이쪽 봉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하며 분별과 비교를 일으킨다면 우리는 이 먼 곳까지 와서 히말라야 대자연 어머니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별적 일상을 다시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곳이 히말라야가 아닌 집이나 직장일지라도 일상의 모든 순간에 만나는 대상과 상황과 사람들을 바라볼 때, 판단과 분별과 비교 없이, 배경지식과 정보와 과거라는 색안경에 걸러짐 없이 그저 순수하게 처음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는 그 일상에서 히말라야를 친견하고 붓다를, 신을 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엄청난 풍경과 최고의 경치를 이렇게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내 안에 또 하나의 우월한 비교 대상만 만들어 놓는꼴이 된다면 이 여행은 차라리 오지 않느니만 못하다. 이 거대한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발아래 피어난 매일 보아오던 사소하고 볼 품 없는 풀꽃 또한 그에 못지않은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이 히말라야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 설악과 지리의 산맥을 마주하며 ‘히말라야에 비하면 이것은 산도 아니다.’라고 비교하고 평가절하 한다면 그는 과거와 비교와 에고에 얽매여 있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차별 없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을 배워간다면 동네 뒷산의 평범하지만 차분한 아름다움 속에서도 쿰부와 칼라파타르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 참된 아름다움이란 비교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쿄리의 거센 바람을 피해 바위 뒤 바람 잦은 옴팡진 곳에 몸을 묻었다가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는 하산을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을 기점으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구나! 진짜 하산이네.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표현했듯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내려가는 길에서는 오르막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 보다 생생한 하늘색과 봉우리 사이로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들과 호수 위로 반짝 이며 이랑지는 눈부신 보석들의 반짝임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연주하는 이름 모를 새들의 동선의 유연함, 언덕과 봉우리와 산맥이 만들어내는 선과 선의 아름다운 조화며 발아래 수줍은 풀꽃들의 애잔한 속삭임, 그리고 이 모든 것들과 조우하는 순간순간 내 안에서 피어나는 진하고 짠한 감흥들까지, 오르막에서보다 더 많은 것들이 투명하게 감지되고 있다.

길 위에는 언제나 오르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과 내려가는 이들의 가벼운 발자국이 함께 찍힌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며 교차되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선명한 이치를 함께 남긴다. 삶의 오르막에서 힘겹게 비틀댈지라도 그것은 곧 흘러가고 사라진다. 내리막에서 어려움 없이 가볍게 순조롭게 질주하더라도 그 또한 곧 흘러가고 사라질 뿐이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역경이든 순경이든 그 모든 것은 무상하게 흐르고 흘러 우리 앞을 유유히 지나간다. 그 모든 것들의 본질은 무상(無常)과 덧없음이니 그 양쪽의 삶에 너무 비통해 하거나 너무 으스댈 것도 없다. 잘 나갈 때 오히려 조심할 줄 알아야 하고 침체되어 있을 때도 거기에 너무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힘겨운 오르막 뒤에는 가벼운 내리막도 있을 테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모든 것은 무상하게 지나갈 뿐이니, 어느 것도 잡아 세우거나 가두어 내 것으로 붙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순탄함과 어려움,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이 삶의 연극 대본 하나 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할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은 곧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이는 애초부터 그 상황을 역경, 순경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여여(如如)하게 매 순간을 넘긴다. 그 어떤 역경(逆境)이 오더라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 어떤 순경(順境)이 오더라도 붙잡아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그에게 오르막과 내리막은 둘이 아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이 나를 휘두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겉모습에 속지 않는다. 우뚝 선 자기중심으로 자유롭고 걸림 없이 사는 것이다.

고쿄 롯지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배도 슬슬 고파 온다. 모처럼 점심으로 피자를 시켰더니 깜짝 놀랄 만한 맛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이 높은 고지 롯지에서는 주로 맛은 생각지 않고 그저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먹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음식 맛을 더러 만나기도 한다. 어떻게 이 높은 고지 고쿄에서 이런 피자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행여나

이 글을 보고 고쿄를 찾는 분이 있다면 제일 높은 롯지의 피자를 기억하시라. 인도, 네팔에서도 그랬지만 이 동네 피자는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커서 여럿이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게 아담한 싸이즈로 구워 나오니 혼자 여행 오신 분에게도 제격이다.

점심 식사 후에 조금 쉬었다가 고쿄 마을을 가볍게 산책한다. 고쿄는 그래도 제법 큰 마을이라 구멍가게 같은 작은 롯지 매점에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각종 트레킹 장비와 등산 필수품에서부터 생필품, 학용품, 간식, 기념품에 책까지 그 작은 매점 안에 촘촘히 많은 것들을 구비해 놓았다. 마침 떨어진 휴지를 구입했는데 물론 아래에서보다 값은 두 배가 넘는다.

마을길을 걷다 보니 여기 저기 야크똥을 말리고, 차곡차곡 쌓아둔 풍경이 보인다.

하늘빛도 진한 푸른빛을 띠면서 마을을 비추고, 벽담의 호면 위로 반짝이는 햇살의 부서짐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흘러간다. 호수 건너편으로는, 내가 오전에 고쿄에 당도할 때 쯤 일 나갔던 야크 떼가 막 마을 어귀로 들어오고 있다. 마을에 도착해서는 짊어지고 온 무거운 짐들을 풀어놓고 사람들은 그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마을 다른 한켠에는 텐트촌도 눈에 띈다.

꽤 많은 롯지 식당들마다 통유리창 너머로 평화로이 책을 읽거나 고즈넉이 햇살을 받으며 호수를 바라보거나 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풍경이 유적하기만 하다.

이 온아적정한 마을을 따스하게 비춰주던 태양이 머뭇머뭇 봉우리 뒤로 사라져 간다.

다시 롯지 식당으로 들어가 떨어지는 태양과 떨어진 뒤에 오래도록 남는 붉은 여광의 흔적을 지켜본다. 어디선가 나른한 오후를 보내던 여행자들이 하나 둘씩 식당을 메운다.

그 조용하던 롯지와 마을 도대체 어디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로 식당은 금세 만석이다. 식당이 분주해지면서 창밖으로 비춰진 고쿄 마을은 순간 괴괴한 정적이 흐른다. 이렇게 고쿄의 밤은 깊어가고 있다. ‘이제 내일부터는 내려가는 길만 남았구나’ 하는 시원섭섭한 마음에 쉬 잠이 오지 않는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중에서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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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패스 정상을 향해 걷다

처음 보는 히말라야 식 텐트에서의 하룻밤, 이만하면 유수하다. 침낭이 크고 든든해 그런지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오히려 열댓 명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보다는 훨씬 은연하고 고요하다. 옆 텐트의 일본인 어르신 두 분은 조금 비좁기는 했어도 훨씬 따뜻했을 터다.

새벽에 일어나 잠시 앉아 있자니 침낭 안과는 다르게 텐트 안의 공기는 무척 차고 음한하다. 텐트가 따뜻했던 것이 아니라 침낭의 보온효과가 뛰어났던 것임이 증명된다.

텐트 밖을 나선다. 롯지 사방의 어슴프레한 조무(朝霧)가 새벽빛을 받아 신령스럽게 깔린다.

첫 햇살의 이 따스하고 눈부신 사광(斜光)을 나는 몹시도 사랑한다. 그 빛이 내 온몸으로 파도쳐 들어올 때 그 빛 방향으로 마주서서 지긋이 눈을 감곤 한다. 가만 가만 그 화난한 빛을 온 몸의 감촉으로 느끼고 귀로 듣는다. 어머님 품처럼 따뜻한 빛의 찜질이 시작된다. 밤새 얼어 있던 온 몸을 포근히 녹여준다.

새벽 공기는 창창하다. 그 찬 공기와 따스한 햇살이 오묘한 조화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춰주는 듯하다. 오늘 아침의 빛은 그 어떤 날 보다도 더 적력하고 투명하다.

보통 종라 롯지에서 촐라패스를 넘으면 점심 때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준비가 안 되어 있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종라에서 닥낙으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반대로 고쿄리를 올랐다가 닥낙에서 종라 방향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 닥낙의 롯지에서만 주로 점심 도시락을 싸 준다고 한다. 우리처럼 거꾸로 넘는 사람들은 그저 아침을 든든히 먹고 일찍 출발해서 최대한 점심 전까지는 어렵더라도, 늦은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게 부지런히 도착하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6시에 아침을 먹고 6시 30분에 바로 출발한다. 종라 롯지에서 바로 작은 언덕을 넘으니 텐트촌이 보인다. 새벽을 녹이는 모닥불 김도 모락모락 나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저 멀리 보이는 촐라체 아래까지는 그저 준평한 초원길이다.

그 초원 중간으로 작은 물줄기가 언 채로 흘러내린다.

아직 햇살은 눈부시다. 산 아래까지 걸었더니 종라 쪽에서 현지인 한 사람이 빈 몸에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그저 빈 몸으로 촐라패스를 넘는 것이다. 물도 하나 챙기지 않고, 먹을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말이다! 연유를 물었더니 저쪽 반대편 닥낙에 일행들이 있는데 자신은 그들의 포터로 어제 미리 촐라패스를 넘어 이곳 종라에 그들을 위한 롯지를 잡아 놓고 오늘 새벽부터 다시 촐라패스를 넘어 닥낙으로 갔다가, 자신의 짐을 챙겨 또 다시 촐라패스를 넘어 와야 한다는 것이다. 맙소사!

우리는 한 번 넘기도 힘든 촐라패스를 이틀에 걸쳐 무려 3번이나 넘어오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현지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뒷산 오르는 듯 빈 몸으로 가볍게 눈앞에서 사라져 저벅저벅 저 가파른 촐라의 절벽을 오르고 있다.

드디어 촐라패스를 본격적으로 오를 순간이다. 마음이 이 촐라패스를 오랜 시간에 걸쳐 다 오르겠다고 생각하면 그 긴 시간의 부담과 힘겨움을 매 순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건 그 높은 촐라패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르는 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칼라파타르에 다녀오는 것이 힘들었다고 하자 지텐이 촐라패스는 그 두 배 정도 힘들다고 겁을 주었었다. 그랬으니 그 무거운 마음으로 미리부터 두려운 마음을 짊어지고 오른다면 그야말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격이다. 첫 번째로 실제 오르는 것이 힘들어 첫 번째 화살을 맞으면서, 두 번째로는 실제 있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현재에까지 가져와 미리부터 근심을 짊어지고 올라감으로써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다.

매 순간 걸을 때는 오직 다음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그저 다음 발걸음을 매 순간 현재에 걸으면 되는 것이지 매 순간을 미래의 부담감, 저 높은 촐라패스를 몇 시간에 걸쳐 넘어야 한다는 무거움을 짊어지고 걸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미래는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일 뿐이다. 내 스스로 허구를 만들어 놓고 그 허망한 생각에 짓눌려 현재를 무겁게 살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촐라패스를 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다음 발자국은 언제나 가볍다. 늘 부담이 적다. 그저 한 발자국이니까. 물론 나중에 가서 다리가 아플지라도 그건 그 때의 일이지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짊어진 마음의 무게가 가벼우면 매 순간이 가볍다.

조금 오르다 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절벽 같은 가파른 바윗길을 수직으로 톺아 올라야 한다.

바위산이 부서져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큰 바윗돌들을 계단삼아 저 높이까지 기어오르듯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 또한 한국에서처럼 낮은 고도에서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여기는 고도가 높다보니 몇 발자국 기어오르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바위 몇 개를 오르고 나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앉아 쉬어 줘야 한다. 호흡이 가빠지고 더욱 거칠어진다. 두 발로만 오르는 게 아니라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 네 발로 느릿느릿 헉헉거리며 오른다.

중간 쯤 오르다 보니 저 멀리 발 아래로 어제 내 옆 텐트에서 주무셨던 일본인 어르신 두 분이 포터, 가이드와 함께 이제 막 촐라패스 입구에 도착해 있는 것이 보인다.

 

아슬아슬 빙하지대를 넘는 사람들

 

반벽강산의 풍광을 읊조리며 가파른 초애(峭崖) 위를 올라서니 이제부터는 툭 터진 만년 설원의 눈 세상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직접 눈을 밟는 것은 이번 트레킹에서 지금이 처음이다. 낭벼랑 끄트머리에 올라서서 뒤돌아 아랫녘을 바라보자니, 아! 정신을 잃은 듯 요연하고 아득해진다. 비로소 말 그대로 설산 위에 하얀 눈을 밟고 선 것이다!

그렇다고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아이젠이나 스패츠 없이 못 걸어갈 정도는 아니다. 눈 사이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다녀가 길이 잘 나 있다. 미끄러지거나 잘못 디디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눈길을 잘못 디디게 되거나 자칫 실수로 미끄러지면 저기 아래 빙하 지역까지 거칠게 미끄러질 판이다.

10여 년 전부터 산에 다닐 때마다 신어 오던 등산화를 발에 익숙하다고 그냥 신고 왔더니 그전에는 몰랐는데 이 곳 산길을 걸으면서 많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에는 바위를 다녀도 발이 바위에 착 달라붙는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전 같지가 않다. 신발 바닥을 살펴보니 너무 닳아 있는 탓이다. 그래도 어쨌든 발과 신발이 착 달라붙어 한 몸처럼 익숙하니 지편하기로 따진다면이야 새 신발과 견줄 수 없다.

처음 보는 히말라야의 눈 속에 흔적 하나 남겨 본다. 이 설산 한 자락에 나의 오랜 원력이 작고 여린 꽃처럼 피어나는 곳, 내가 이 생에서 작게나마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인드라망인 목탁소리(moktaksori.org/net/kr) 이름을 내 작은 원력을 담아 히말라야 여신께 공양 올려 본다.

천천히 저어가듯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눈 덮 인 오르막에서는 현지인 포터나 짐꾼들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능수능란하고 오랜 경험이 있는 이들일지라도 조심조심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어도 미끄러지기 일쑤다. 나는 올라가는 처지라 오히려 덜 미끄러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더듬더듬 거리는 근밀한 모습이 볼 만하다. 오랜 경험으로 어떤 험난한 산세에도 끄떡 없을 것 같던 포터나 짐꾼들도 오히려 이런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니 더 정감이 가고 저들도 이곳에서는 역시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은 인간미마저 느껴진다.

포터 한 명이 우당탕거리며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활짝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모두들 미끌미끌 넘어지고 앉아서 설금설금 기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조마조마하게 눈덮인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간다. 이 구간에서만큼은 경력도 경륜도 별 소용이 없고, 현지인이며 여행자며 할 것 없이 모두가 소심익익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모든 차이가 없어지고 대자연의 장대함 앞에 한 인간으로써 겸손한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이 위험천만한 마의 구간에서는 모두가 절친한 친구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는 벗이 된다. 반질반질 미끄러운 내리막을 아스라이 내려와서는 활짝 웃고 합장하며 “나마스떼!”를 외치는 짐꾼의 미소가 천연스럽고도 다정하다.

꽈당거리며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이 사람들은 심각하지가 않다. 매우 즐겁고 유쾌하게 미소 짓고,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그 무거운 짐을 운반해 간다. 등짐품이라 생각하고 심각해진 사람이 이 길에서 한바탕 넘어졌다면 결코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이 긴긴 오르막을 일로써 오르내리면서도 그다지 심각하거나, 이런 삶을 비관하거나, 마지못해 돈벌이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저 이 삶을 받아들이며 이왕에 주어진 것 무겁고 힘겨워도 웃으며 나아간다.

하기야 이렇듯 아름다운 히말라야 설산을 무대로 산과 하나 되어 걷는 사람의 표정이 무겁고 심각하며 삶의 찌든 때를 다 안고 걷는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이 설산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심각하고 비관적이던 사람일지라도 산의 영적인 기운과 파장이 그 사람을 영감어리고 신비로우며 생기와 총기가 넘치는 대자연의 천연 주파수로 바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삶의 덕목인가.

 

삶을 심각해 하지 말라

 

삶을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너무 인생을 짐 진 사람처럼 무겁게 힘겹게 살아갈 것은 없지 않은가.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 대부분은 무언가에 그만큼 유우하게 빠져 있거나, 집착하고 있거나,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어떤 마음의 짐들을 너무 많이 짊어진 탓이기 쉽다. 그야말로 자기 스스로 마음의 짐을 만들어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얼마나 힘들고 무겁고 심각해지겠는가.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라. 어떤 것에도 너무 과도한 중요도를 부여하지 말라. 어떤 한 가지 대상이나 일이 너무 중요해지면 곧장 경직되고 심각해지게 마련이다. 삶에 긴장을 풀고 모든 것들에서 유머와 해학을 찾으라. 마음의 무게감에 힘을 빼고 어떤 대상에도 가치나 값을 과도하게 메기지 말라. 사실 우리 삶에는 그리 심각할 만한 어떤 것도 없다.

세상 모든 것이 실체 없이, 항상 하는 바 없이, 그저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가는 것들일 뿐이지 않은가. 소유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가족도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잠시 왔다가 100년도 안 되는 잠깐 사이에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어떤 천상세계에서는 우리의 1,600년이 그들의 하루에 불과하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욕심을 채우고 삶에서 성공하려 애쓰는 그 각급한 세월이 천상에서 본다면 그저 잠깐 사이의 찰나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부처님 경전에 보면 실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천상 세계의 여인이 남편과 함께 꽃을 따는 작업을 오전 중에 하다가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한두 시간 사이라 남편은 별 생각 없이 어디를 좀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그 짧은 순간 동안 아내는 인간으로 환생하여 수십 년 동안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살다가 이렇게 죽어 다시 남편 곁으로 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삶이 얼마나 무상한가. 그러한 무상의 이치를 이해한다면 그 허망한 것들을 꽉 붙잡지 못해 안달할 것도 없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지위가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돈도 많았다가 적어지고, 사랑도 왔다가 가고,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그렇게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만 연극처럼 꿈처럼 인연 따라 잠시 오고 가는 것들일 뿐이니 그 순간 주어진 삶을 충분하게, 그 삶의 연극을 즐기며 살기에도 바쁜 시간인 것이다. 욕심 때문에 삶을 충분히 진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런데도 사실 많은 사람들은 욕심과 집착을 키우느라 정작 중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충분히 순간순간 주어진 삶을 누리고 만끽하며 변해간다는 이치를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변화할 뿐인 것이다.

사랑이 온다고 좋을 것도 없고, 떠나간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연극의 주인공이 맡은 배역을 열심히 하되 연극이 끝나면 바로 그 배역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살아가듯, 사랑이 떠나가더라도 그 인연이 다 했고 그저 가야 할 때가 되어 가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그 사람은 언젠가 떠나갈 것이었다.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유쾌하고 즐겁게 살라. 기분 나쁘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 오더라도 한바탕 웃음과 천진한 익살로써 넘길 일이다. 모든 것을 심각하게 여기거나, 삶에 너무 긴장감을 느끼면 그만큼 삶이 피곤해지고 버거워진다. 삶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해 너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하는 투쟁과 다툼의 장이 아니라 다만 즐거운 하나의 놀이이며 흥미로운 드라마다.

이 5,330m 고지, 눈 덮인 촐라패스를 미끄러져 가는 저들의 웃음처럼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묵직하거나 더넘스러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잘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 앞에서일지라도 사실 알고 보면 그리 크게 심각해 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누구나 그 순간은 겪게 마련이다. 언젠가 찾아 올 일이 다만 지금 찾아 온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죽음에 대해 우리는 절심하게 느끼고,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그동안 배워왔고 주입 받아 와서 그렇지 죽음이 왜 고통스럽고 엄혹한 것이어야만 하는가. 사실 죽음이란 다만 삶의 또 다른 연장일 뿐이다. 그것은 종말이 아니고 끝이 아니다. 그 또한 다만 하나의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그리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래서 장자는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아내의 죽음이 그저 사계절의 자연스런 변화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더라도 곡을 하거나 울지 말라고 말한다. 유교식에서는 죽은 귀신을 불러들이고 후손들 곁에 남아서 돌봐달라는 의미로 못 떠나게 하려고 곡을 하며 눈물을 흘림으로써 혼백을 붙잡아 두려고 애쓴다. 그러나 불교적 전통에서는 죽은 자는 더 이상 이 생에 미련 없이 잘 떠나도록 해 주는 것이 영가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배려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후손의 선물이라고 본다. 그래서 흔히 유교의 제사는 ‘오십시오’라고 하는 의식이라면 반대로 불교의 재는 ‘가십시오’라고 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가야 할 분은 자신의 길을 찾아 온전히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변화할 때가 되면 변화하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아니 사실은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적인 질서이고 그 자신의 온전한 삶의 길이다. 아마도 그가 살면서 아름답고도 선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오래된 낡은 몸뚱이를 버리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부모와의 새로운 인연으로 아름답게 거듭날 것이다. 그것은 어둡고 탁하며 두려운 느낌이 아니라 새롭고 찬란하며 축하해 주어야 할 무엇이다. 물론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말하듯 조금 더 깨어있는 삶과 지혜를 닦은 사람이라면 죽는 순간이 가장 깨달음을 얻기 좋은 때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의 저 빛과 숲 너머의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된다면 삶의 그 어떤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의 죽음조차 그리 심각한 어떤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어떤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만한 지혜 속에서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어떤 고민도 근심도 걱정도 한바탕 웃음과 해학으로써 흥겹게 받아들이며 넘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촐라패스를 즐겁고 유쾌하게 넘어가는 저들의 천진한 미소처럼 말이다.

 

최악의 오르막을 앞두고 펼쳐진 콘서트

 

햇살에 순수하게 반짝이는 투명한 눈길을 스멀스멀 굼뜬 걸음으로 흘러간다. 처음으로 어렵게 구해 온 선글라스를 끼어본다. 그야말로 이 정도의 선명한 눈과 투명한 햇살이 반사되면서 피부와 두 눈을 뚫고 스며들어오는 빛의 침투력은 충분히 시력을 앗아가고도 남을 법하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그야말로 두 눈을 반짝이며 뜨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눈 부비며 일어날 때 눈을 뜰 수 없는 것처럼 이 높은 고도에서의 햇살은 쨍하다 못해 아뜩할 정도다.

어느덧 촐라패스 가장 높은 고지가 바로 저기 코앞이다. 촐라패스의 고갯마루 가장 높은 고지에 가까이 오니 조금씩 반대쪽 닥낙에서 출발해 촐라패스를 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이쪽 종라에서 닥낙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닥낙에서 종라로 넘어가는 것이 더 쉽고 수월하다 보니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쿄를 먼저 들렀다가 촐라패스를 넘어 칼라파타르로 향하곤 한다고 한다. 직접 넘어보니 그 연유를 충분히 알겠다.

드디어 눈길을 저어 촐래패스의 가장 높은 협곡까지 도착.

오고 가는 순례자들이 극침(棘針)의 강쇠바람 골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앉아있다.

찢어질듯 휘날리는 룽다가 반가이 사람들을 맞아준다.

고지에 서자마자 바로 저 고쿄와 닥낙 쪽 풍경이 거침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설산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 전혀 다른 별유선경(別有仙境)이 ‘두둥!’ 하고 시야 앞으로 툭 터진다.

아, 이제야 알겠다. 이래서 쿰부 지역을 고쿄와 칼라파타르 두 지역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저 쿰부설산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고쿄 지역과 칼라파타르 지역을 나누는 것일까 하던 궁금증이 단박에 해소되었다. 이 쿰부의 골짜기가 뭐 다 비슷비슷하겠지 하던 생각이 감사하게도 쾌쾌히 빗나가 주었다.

한참을 아득히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의 상태가 춥고 배고프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가져왔던 비상식량을 지텐과 둘이 앉아 주섬주섬 주워 먹는다.

지텐이 먼저 내려가며 닥낙 롯지를 예약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즐기며 내려오라고 한다. 이제부터는 눈길이 끝나고 자잘하게 부서진 바윗길, 돌길의 가파른 급사면을 내려가야 한다. 이 또한 거의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말 그대로 주판지세(走坂之勢)의 급경사길이다. 더욱이 이 벼랑진 하산길은 말이 돌길이지 특별히 길이라고 할 만한 길도 없을뿐더러, 전부가 부서진 바윗돌 위를 걷는 것이다 보니 발자국의 흔적 같은 것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감각으로 걷거나, 저기 멀리서 올라오는 이들을 보고 그 방향을 가늠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 작게 부서진 바윗돌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부서져 내리고 있는 것인지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리고 미끄러지고 움직이느라 자칫 잘못 발을 내디뎠다가는 크게 내동댕이 쳐 질 판이다. 어느 돌을 밟아야 할지가 매 순간 관건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흔들바위 같은 흔들돌길을 땅만 보고 걷는다.

30여 분쯤 내려오니 짐꾼 여럿이서 바위 여기저기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쉬고 있다. 저 여유와 행복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신발도 변변찮은 것들을 신고 저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쉬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환히 웃으며 흥겨운 노래라니! 아마도 우리 같으면 ‘이제부터 진짜 가파른 길이 시작될 것인데...’ 하면서 미리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곁에 앉아 있는 이들은 때때로 ‘얼쑤’ 하듯 추임새를 보태거나, 따라 부르거나 혹은 간간이 박수를 치며 환호함으로써 이 낭색의 생생한 음악회 자리가 점점 흥겨워지고 있다. 뒤따라 올라오던 외국인 여행자들도 힘겨운 발걸음에 무겁던 얼굴이 일순간 활짝 피어나며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순간 이 쩍지고 버거운 촐라패스의 중턱 고비가 즐겁고도 흥겨운 작은 축제처럼 바뀌면서 마음에도 신명진 흥과 운치가 솟아나는 듯하다.

주변 사람들의 환호에 힘입어, 또 여행자들의 힘겨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심각하던 얼굴들에 미소가 띄어짐을 보자 내친 김에 제 스스로 앵콜곡까지 두어 곡을 내리 불러 재낀다. 노래가 네팔 국민가요라고 할 만한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로 이어지면서 작은 콘서트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나도 너무나 익숙해 거의 외웠을 법한 노래가 바로 레쌈 삐리리다. ‘레쌈’은 비단 손수건, ‘삐리리’는 흔든다는 의미로 ‘손수건을 흔들며’ 정도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내용을 보면, 사랑의 감정을 사냥에 비유해 만들어진 노래라고 하는데, 그 뜻은 대강 ‘한 방 두 방 총을 쏘아 보지만 내가 진정 쏘고 싶은 것은 사슴이 아니라 사랑하는 님의 마음’이라고 하는 그야말로 통속적인 사랑가다. 그래도 우리나라로 치면 아리랑 같은 네팔 전통 민요인데, 네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선 어김없이 쉽게 들을 수 있는 터라 네팔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노래다.

하하! 참 이 장엄한 대 자연 설산 한 가운데서, 그것도 가파른 최악의 오르막을 눈앞에 두고 이런 정감어리고 살풋한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덕분에 내 가슴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나도 저절로 흥이 나 몇 소절 따라 불렀더니 환호성과 노랫소리가 더욱 활기를 띤다. 그리고 한바탕 노래가 끝나자 또 다시 아쉬운 여흥을 뒤로한 채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묵직한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내 마음도 덩달아 흥이 붙었다. 흥얼흥얼 혼자 노래를 부르며 내리막길을 걷는다.

내리막길도 끝났구나 싶어 이제 다 왔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큰 언덕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언덕을 오르기 전 드넓게 펼쳐진 숨숨한 초원 위에서 잠시 길을 벗어나 앉았다가 아예 등을 대고 벌러덩 드러눕는다. 햇살이 따가워 모자로 얼굴을 푹 눌러 덮는다. 그리고는 숨을 느끼고 햇살의 따스함과 간들거리는 선선한 바람과 등 뒤에서부터 스며드는 흙내음을 가만가만 느껴본다. 지금 이 순간의 아늑한 평화와 평안을 안으로 안으로 살며시 살펴본다. 아주 잠깐 사이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여윈잠이 달콤하게 스쳐간다. 잠시지만 깜빡 이 낯선 곳에서 잠이 들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

영마루 위에 올라 하염없이 펼쳐진 초원과 산과 하늘을 바라본다. 아마도 처음 보는, 닥낙 이정표가 바윗돌에 새겨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이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트레커들이 찾는 곳임을 생각했을 때 이 산 어디에도 이정표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히말라야의 매력이 아닐까. 만약 포터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갈림길이 나오면 그저 알아서 찾아가거나, 자신의 감에 의지하거나, 그도 아니면 기다렸다가 다른 포터나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자의 뒤꽁무니를 슬그머니 따라가야 한다. 처음 보는 닥낙 이정표가 오히려 신선할 정도. 하기야 이것 또한 말이 이정표지 커다란 바위 끄트머리 한 켠에 누군가가 특별히 의도한 바 없이 재미삼아 써 본 것이라는 추측이 들 정도로 꾸불꾸불한 서체의 ‘Dragnag’이 쓰여져 있을 뿐이다.

계곡을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이 내리막이 금세 끝날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길다.

계곡 물소리에 말을 맞추며 생각이 끊어진 채 그저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덧 1시간 조금 넘어 드디어 닥낙 마을에 도착한다. 지텐이 먼저처럼 또 한참을 미리 나와서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방은 여전히 없고 어렵게 도미토리를 구해 놓았다. 롯지 도미토리 침대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앉았는데, 거의 닥낙에 도착하면서부터 머리에 지끈지끈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깨질 것처럼 더욱 아파온다. 도착과 함께 마음이 풀려서 그런지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입맛도 없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기운이 죄다 빠져나가는 듯하다. 지텐이 곁에서 여느 때와 달리 축 처져있는 나를 지켜보더니 사실은 자신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주로 촐라패스를 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벼운 고산 증세로 편두통을 경함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오른 고도와 또 그렇게 오르고서 다시 갑자기 고도를 뚝 떨구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두 시간 쉬면 금방 나아질 것이라던 지텐의 얘기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두어 시간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 상태가 다시 돌아와 있다.

롯지 앞 계곡에서 끌어 온 호스에서 계속해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샤워는 못 할지언정 그간 밀린 빨래도 하고 몸도 씻고 났더니 한결 홀가분해진다.

이렇게 촐라패스를 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조금씩 이 쿰부에서도 하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쉬워라.

저녁을 먹고 롯지 바깥으로 나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별들이 눈 호수로 뚝뚝 떨어져 들어온다. 롯지 식당은 아직 여행자들의 이야기꽃으로 훈풍이 돈다. 이렇게 또 하루가 흐르고 있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불광출판사, 법상) 중에서

히말라야내가작아지는즐거움법상스님과함께하는쿰부트레킹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법상 (불광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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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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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re 2011.08.18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과 영상 감사합니다.
    "삶을 심각해 하지 말라" 라는 글귀를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슴깊이 새기게 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2. 후니파파 2018.06.05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얼마전에 같은 곳은 아니지만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보름 동안 다녀와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되는군요.
    그런데 글이 절반 정도였으면 어떨까 싶네요. 너무 많은 글이 오히려 공감대를 흐리게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느껴져서 조심스레 전해봅니다.

    늘 건강하세요.

개발과 발전으로 히말라야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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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라 길을 택해 언덕길을 오르니 3일 전에 지나왔던 탕라와 딩보체 언덕, 페리체 마을이 한 눈에 환히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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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촐라패스 길로 접어든 실감이 난다. 언뜻 보기에도 저쪽 페리체 길보다 이쪽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워낙 험한 설경(雪徑)이라 촐라패스를 넘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다. 어쩌다 눈이라도 내리거나 매서운 날씨를 만나게 된다면 촐라패스를 포기하고 다시 오던 길을 내려가서 휘휘 돌아 다시 고쿄로 올라야 한다. 올라오면서 만난 팀들 중에도 칼라파타르로 갔다가 다시 내려가서 고쿄 쪽으로 다시 오르는 코스를 택하는 팀들이 여전히 더 많다. 그만큼 촐라패스는 악명이 높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아 날씨만 조금 받쳐준다면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3~5년 전만 해도 이곳의 풍경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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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설산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7,000~8,000m 고지 봉우리 위쪽만 해끗해끗하게 눈이 덮여 있을 뿐이다. 4,000~5,000 고지쯤에서는 요즘 같은 10월에 눈을 보기조차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4,000 고지 이상에서는 요즘에도 거의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아이젠, 스패츠가 필수 장비였을 만큼 거의 모든 구간이 눈길이었다고 한다. 불과 3~5년 사이에 이렇게 급속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촐라패스는 아무나 넘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일반인 트레커들이 촐라패스를 넘어 다니는 것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눈도 많이 뒤덮여 있었고 더욱이 절벽 같은 산을 올라야 하니 눈이 많을 때는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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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도 사실 놀란 것이 그래도 히말라야이고 에베레스트 순례인데 산들이 다들 눈옷을 벗은 채, 위쪽 봉우리들만 눈이 살짝 쌓여 있는데다가 그것도 완전히 눈 봉우리가 아니라 햇살 좋은 곳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이게 명색이 설산인데 그 체면을 완전히 구긴 것이 아닌가. 이 모두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니, 우리 인간들이 벌이고 있는 개발, 발전의 결과가 지금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이곳에서는 더욱 분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더 빨라지고 있는지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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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 전체는 거대하고도 정교한 관계성에 의해 움직인다.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idam-pratyaya-ta), 연기적(緣起的)인 관계성에 의해 인간도 자연도 바람도 구름도 풀 한 포기도 서로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로서 삶의 장결한 맥박을 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긴밀한 관계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그동안 저질러 왔던 수많은 자연 파괴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통찰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왔다. 자연이 파괴되면 그것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존재하는 인간 존재 또한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상의상관성에 대한 무지!

이 우주를 이루는 크고 작은 일체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은 없다. 풀 한 포기와 구름 한 점조차, 저 발 아래 곤충과 이름 모를 작은 꽃 한 송이조차 지금 이 순간 나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들을 훼손하면 그들도 나를 훼손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베는 순간 우리 안의 생명의 일부가 동시에 스러져 간다. 하물며 인간이 저 편하고자 자연을 온갖 방법으로, 기술과 과학과 산업발전,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하에 합법적으로 파괴하고 훼손해 온 역사는 이제 거대한 우주적인 관계성 속에서 서서히 그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파괴당하고 훼손당한 자연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염된 자연은 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인간의 그것처럼 자기 정화, 자연치유를 시작한다. 그러나 황폐해진 자연이 스스로 치유되려면 그 전에 많은 아픔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온갖 기상이변이고 지구온난화이며 엘리뇨, 라니냐 등의 전 지구를 휩쓰는 이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구도 자신을 유지시키려면 그런 방법으로라도 자기 정화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도 내적인 병이 축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 감기 같은 것으로 며칠씩 앓고 일어남으로써 자기 정화, 자기 치유를 이루어 내듯, 지구도 그런 방식으로 자기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도 어지간한 질병은 자연치유가 가능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게 되면 질병에 의해 자신의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듯, 가이아(Gaia)라는 살아있는 지구 생명체 또한 어느 정도 인간에 의한 파괴의 도가 넘게 되면 그런 방법을 쓸 수조차 없게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지금의 기상이변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덕분에 그나마 지구는 조금 더 맑은 지구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가. 이러한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소식들의 무서운 속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를 더욱 빠르고 과학적인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파괴하고 있다. 물론 그 파괴는 자연파괴라는 이름이 아니라 개발, 발전,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의 이름으로 대체되어 장밋빛 공양처럼 퍼지고 있다. 아마도 이 지구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또한 그것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더욱 더 우리 고장이, 우리나라가 개발 발전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 더욱 더 정교하고 폭발적으로 파괴되기를 원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일부에서는 자각의 물결이 일고 있지만 그들 역시 생각은 멈추길 원하면서도 몸은 그것의 안락과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전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너무나도 우리들 삶의 곳곳에까지 개발과 발전이라는 복음이 속속들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유럽과 미국, 한국과 일본 등 선진국과 일부 잘 사는 나라들에서 주로 행해졌던 이런 개발과 발전이라는 파괴의 물결이 이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중국 13억 인구가, 인도 11억 인구가, 그리고 아프리카의 그 거대한 땅 덩어리와 사람들이, 그리고 아직 덜 파괴된 야생이 살아있는 그 모든 나라들이 이 엄청난 파괴의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발전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일어났지만 앞으로 있을 이 나머지 나라들의 파괴는 이미 개발되어 있는 온갖 인프라와 눈부신 과학기술력, 그리고 세계화와 정보화 등에 힘입어 실로 엄청난 속도감을 가지고 속도전을 치르듯 전쟁처럼 치러지게 될 것이다. 불과 10년, 20년 만에 거대한 공룡 같은 신도시들이 세계 곳곳에 늘어나고 있다. 이 엄청난 속도를 보건대, 이대로 가다가는 이 지구의 운명이 불과 몇 백 년, 아닌 어쩌면 몇 십 년밖에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그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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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사는 즐거움

어떤 환경론자는 말했다. 지구의 운명은, 마치 거대한 빙하로 돌진하고 있는 배 안에서 안락하고 평온한 쾌락의 즐거움에 빠져 그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뻔히 빙하로 돌진하는 배를 보고도 멈추려 하지 않는것과 같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당장에 아무 일도 없으니 그저 괜찮겠지 하며 눈앞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리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아니 모두가 자기 개개인의 성공과 돈과 명예를 추구하느라 이 지구 공동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관심 밖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지를 털고 깨어나야 한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면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푸른 자연, 깨끗한 물을 원치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히말라야의 감동스런 풍경과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자연의 천진함과 무한함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지켜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이 엄청난 파괴의 일에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 모든 모순을 깨고 나부터 이 지구 행성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지라도 그 작은 것이 우주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윽하고도 강력한 공명의 힘을 가지고 주위로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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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길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환경을 살린다고 되겠느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시작할 때 그 겉모습은 작고 소박할지언정 그 힘은 무한한 공명과 울림을 싣고 전 우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순수 지혜의 실천의 힘은 곧 우주 전체의 힘과 연결되고, 전파되며, 강력한 동력의 단초가 된다. 내가 시작하는 것이 곧 우주가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현대 문명의 이기가 주는 달콤한 편리함에서 나와 조금씩이나마 불편을 감수하고 오히려 즐기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간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 몸을 덜 쓰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리로 걸어가야 할 것을 자동차로 대신 움직이게 하고, 손이 해야 할 빨래며 집안 청소며 온갖 일들을 세탁기, 청소기와 온갖 기계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몸이 여름에 더워서 불편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불편하니 온풍기와 에어컨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온갖 문명의 이기들의 출발점에는 불편함을 극복하려는, 불편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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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거꾸로 우리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히려 불편함이 주는 이익과 즐거움을 누리는 차원으로까지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다면 차로 갈 것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나 부채를 들 수도 있으며, 물론 더 작게는 에어컨 온도를 낮추는 데서 출발해도 좋다. 온풍기나 보일러를 줄이는 대신 내복을 끼어 입을 수도 있고, 빨래도 너무 자주 하지 않고, 비누 없이 세수를 해 볼 수도 있으며,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을 수도 있다. 이런 작은 ‘불편의 즐거움’ 속에 지구를 살리는 엄청난 계획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불편함 속에, 자족과 청빈이라는 덕목 속에 인류의 모든 성인이 말씀했고 걸어갔던 삶의 근원적인 통찰의 지혜가 숨 쉬고 있다.

히말라야를 걷다보니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편한 것 투성이다. 따뜻한 잠자리도 없고, 온풍기며 전기난로를 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추운 밤을 보내면서도 방 안에 추위를 극복하도록 해 주는 것은 오직 달랑 침낭 하나뿐이다. 그렇다고 건물 벽채가 두텁고 견고하여 외부의 추위나 열을 완전히 차단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몸 누일 공간에 벽이라고는 고작 얇은 목재 합판 하나 달랑 붙여 놓은 것이 전부라 옆방에서 자는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불편하다면 불편하고 친근하다 생각하면 그런 대로 친근한 공간이다. 어떨 때는 자다가 바로 옆에 누가 누워 자는 것 같은 숨소리와 잠꼬대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기도 한다. 그저 달랑 얇은 합판 하나를 경계로 침대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보니 그 사이에 낯선 그와 내가, 혹은 그녀와 내가 숨소리까지 공유하며 함께 누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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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인가. 오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렇다고 먹을 것이 풍족하거나 다양한 것도 아니다. 샤워를 제대로 할 수도, 빨래를 할 물도 부족하다. 먹는 물조차 200루피를 주고 사 먹어야 한다. 그러니 다른 그 어떤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처음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얼마 안 가서 곧 적응을 한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이토록 적응력이 뛰어나다. 조금 적응하고 나면 이윽고 이 불편함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불편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그 가운데서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소박한 행복들이 깃든다. 적응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불편함을 누리며 은근히 만끽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일상 속에서는 머릿속이 복잡해 질 것도 없다. 일과 욕심과 집착과 온갖 계획들로 마음이 무거울 것도 없다. 마음이 단순 명료해 지다 보니 그 빈 공간 속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이나 고요함, 평화 같은 소식이 가만 가만 노크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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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롯지의 평온한 오후

저 설산의 산맥과 봉우리 그리고 계곡과 푸른 호수, 그리고 발 아래 피어난 꽃들의 속삭임이 걸음 걸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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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봉우리를 흘러내린 눈의 호수가 발아래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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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안 가 바로 지척에 롯지 2개의 작은 마을 종라(Dzonglha, 4830m)가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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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텐이 언덕 위까지 마중을 와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방을 못 구했다고 한다. 대신에 텐트를 200루피에 얻었는데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텐트 방이라도 하룻밤 몸을 누일 수 있는 것이 어딘가. 롯지에 도착해 텐트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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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쓰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을 듯싶다. 값도 싸고, 추위야 침낭을 겨울용으로 빌려 두었고, 또 가져 온 모든 옷가지들을 모두 끼어 입고 자면 되니 별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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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라 롯지와 주변 풍광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저기 눈 앞에 내일 넘어갈 촐라패스와 그 옆에 우뚝 선 촐라체(Cholatse, 6440m)가 보인다. 촐라체는 에베레스트 서남서 17㎞ 지점에 위치한 6,440m 봉우리로 얼마 전 소설가 박범신의 소설로 유명세를 타게 된 곳이다. 산악인들에게는 꿈의 고지라고 하는 바로 그 촐라체의 한쪽 어깨 언덕을 내일 넘어가야 한다. 물론 일반 순례자들이 가는 곳은 촐라체 정상 봉우리가 아닌 봉우리 바로 옆에 있는 촐라체의 1,000m 아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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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롯지에서 따뜻한 물을 작은 포트에 주문하여 텐트 안에서 속칭 뽀글이로 해결을 본다. 높은 지역은 밥값이 비싸다고 하여 라면 몇 개를 사왔더니 이렇게 때때로 밥 대신 한 끼를 거뜬히 해결해 준다. 작은 텐트 안에 앉아 침낭을 덮고 봉지라면에 물을 부어 먹는 이 맛과 운치가 색다르고 그윽하다. 이 텐트가 그야말로 수행자들이 참선하는 토굴로는 손색이 없겠다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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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는 조용히 텐트 안에 앉아 심유함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포터들이 밖으로 우르르 몰려와서는 바로 내 텐트 옆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쬐면서 카드놀이를 벌이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 보았더니 우리 지텐도 그 사이에 끼어서 한바탕 카드놀이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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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에서 포터들이 유일하게 모여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카드밖에 없다. 보아하니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돈이 매 판이 끝날 때마다 오고 가고 탄성과 환호성이 교차하며 시끌시끌 웃음소리가 계곡을 쩌렁쩌렁 울린다. 저 나이 지긋한 포터 분들 사이에 낀 우리 어린 포터 지텐이 크게 돈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판돈을 조금 보태어 줄까 싶다가도 밥값도 아니고 팁도 아니고 아무리 작은 놀이라지만 노름판에 돈을 보태준다는 것이 께름칙해 참기로 한다. 대신에 곁에서 한 마디 응원을 해 주었더니 으쓱 어깨가 올라간다. 다른 포터들이 코리아, 코리아를 외치며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하고 아는 한국말을 왁자지껄 죄다 쏟아낸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최소한의 한국말들은 어지간히 알아듣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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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하다가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식당 안에서도 여행자들과 가이드, 포터들이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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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좁은 롯지 식당 안이 트레커들로 꽉 찬다. 어제 닥낙(Dragnag, 4700m)에서부터 촐라패스를 넘어 이곳 롯지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나 말고 두 팀 정도가 나처럼 내일 촐라패스를 넘어 닥낙으로 갈 여행자들이다. 그 중에는 일본인 중년 남성 두 사람이 있는데, 이분들은 너무 늦게 롯지에 도착하는 바람에 방도 없고 텐트도 부족하여 하나 남은 내 옆 1인용 텐트에서 좁으나마 두 분이 함께 새우잠을 주무셔야 하게 생겼다. 롯지 야외 텐트가 두 채 있는데, 그나마 혼자 밖에서 자게 생겼구나 했는데 옆 텐트에 동지가 생겨서 반갑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내일 있을 촐라패스를 위해 파이팅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대신한다.

식당 중간 난로에서 야크 똥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온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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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불광출판사, 법상) 중에서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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