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4일차
순례, 삶이라는 또 다른 히말라야로
몸살감기에 간절한 차 한 잔 생각
쿰중의 아침이 창창하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진하디 진한 물감을 한껏 풀어 놓은 것처럼 선벽하고 햇발은 그 어느 날보다도 쨍하게 빛난다. 어디 하나 보유스름한 것이라곤 없어 보인다. 아주 선명한 렌즈를 낀 것처럼, 세상에 샤픈(sharpen)을 강하게 준 것처럼 세상이 또렷하고도 역력하다. 저 앞산 뒷산만 없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시거리는 무한대가 되고도 남을 법하다.
이 장장하고 쨍한 아침을 맞이하는 몸이 무겁다. 마음은 경쾌한데 몸은 으슬으슬 떨려온다. 순례길도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 어제 밤에 모처럼 목욕을 하고, 2주 동안 벗지 않았던 내복을 벗고 잤더니 밤새 감기몸살이 찾아 온 것이다. 조금 더 참았다가 카투만두로 완전히 내려가서 목욕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도 끝까지 주의 깊게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지 다 끝났다고 마음을 풀어헤치면 안 된다고 하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구나 싶다. 그래도 한 편 다행인 건, 이 감기몸살이 이렇게 안나푸르나며 에베레스트 순례를 다 마친 뒤 찾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이 다음 일정인 미얀마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그 동안에 카투만두에서 몸을 쉬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으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처음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던 루클라까지 되돌아가는 일정이다. 쿰중에서 남체바자까지는 그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되는 거리다. 올라올 때는 루클라에서 남체바자까지 이틀이 걸렸고, 고산 적응을 위해 남체바자에서 하루를 더 묵었으니 총 3일이 걸렸지만, 내려갈 때는 하루라도 충분하다.
쿰중을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과 아련함이 묻어난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이 쿰중의 소담한 마을을 뒤돌아보게 된다.
남체바자로 가는 언덕을 넘기 위해 힐러리 학교를 지난다. 힐러리 학교는 쿰부 지역의 명문학교로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힐러리 경의 재단에서 세운 학교다. 워낙 유명한 명문학교로 자리 잡은 터라 남체바자에서도 샹보체 언덕을 넘어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식을 위한 교육열은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학교 옆으로 하얀 초르텐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초르텐을 지나 샹보체 언덕 쪽으로 가는 길 좌우에는 담장 대신에 높다란 마니석이 줄지어 서 있다.
언덕을 반쯤 올라 뒤돌아보니 쿰중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샹보체에 오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10일 쯤 전에 들른 곳이지만 어제 들렀던 것처럼 익숙하다.
남체바자와 하얀 꽁대 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체바자를 지나 한 발 한 발 지켜보며 묵묵히 내려간다. 걷다보면 조금 나아지려나 했는데 갈수록 몸은 더욱 무겁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보통은 만성 비염 때문에 겨울이 오는 길목에 날씨가 추워지면 한 번씩 몸살과 코감기를 앓곤 했지만 따뜻한 차를 꾸준히 마시면서 언제나 쉽게 낫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지간히 아파도 약을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감기가 걸리면 언제나 차를 찾았다. 최소한의 차를 마시기 위한 다식(茶食) 정도의 의미로 소량의 공양을 한 뒤 언제나 따뜻한 차로 몸을 덮여주고 나면 쉬 감기는 떨어져 나가곤 했다. 몸이 이렇게 떨려오니 자연스레 황차나 보이차, 오룡차 같은 발효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처음 인도로 떠나올 때 황차, 녹차, 보이차, 오룡차 등 다양한 차들을 조금씩 가져왔는데 오랜 여행 속에서 다 마셔버려 이제 한 번 마실 정도의 보이차 밖에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차가 귀하다 보니 뜨거운 물로 몇 번이고 우려내어 더 이상 차색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려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따뜻한 물도 한 잔에 얼마씩 사 먹어야 하다 보니 남은 보이차를 여기에서 먹기가 꺼려진다. 남은 보이차 조금을 가지고 한 주전자 이상은 반복해서 우려 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이곳 롯지에서 파는 레몬차 같은 것을 사 먹고 버텨 보다가 카투만두에 도착하면 뜨거운 물을 잔뜩 준비해 두고 남은 보이차를 음미하며 마시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걸어 내려간다.
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행길에서 때때로 가져 온 차를 마시며 차에 대한 감사와 찬탄과 감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배가가 되곤 했다. 한국에서야 차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내가 차를 좋아하는 줄 알고 지인이나 벗들이 차 선물을 더러 해주었다. 평소에는 적당량의 찻잎을 다관에 넣고 진하게 우려 마시면서도 차의 고마움이나 그 향기와 맛에 대해 그다지 깊이 누려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런 여행길에서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여행길에서는 가져 온 차가 많지 않다 보니 처음부터 찻잎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넣어 연하디 연한, 때로는 그야말로 차인지 맹물인지 분간도 안 될 만큼 연하게 우려 마셨고, 그것도 열 번도 넘게 우려 마시면서 그 날 마시고 나서 그 다음날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 몇 번을 더 우려 마시고 내가 생각해도 참 애쓴다 싶을 정도로 아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감이 몇 배는 더 크게 증폭되고, 차향과 차의 맛이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우러나오게 된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걸어가며 따끈한 한 잔의 보이차를 떠올리다 이내 포기하고 묵묵히 다시 걷는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 고쿄에서 쿰중까지 가볍게 걸으면서도 너무 쉽게 내려온 것을 떠올리며 한 걸음에 루클라까지 도착할 것 같았는데 몸이 무겁다 보니 길은 더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먼 길에 대해서도 고민한들 무엇 하랴, 미리 도착에 대한 애착을 포기한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생각도, 건강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우고 그저 걷기만 한다.
아픈 몸을 바라보는 즐거움
몸이 아프니 오히려 다른 잡념이 생기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잡념이나 상상, 계획, 욕구, 바람, 과거나 미래 따위의 모든 생각의 에너지도 힘을 잃고 뒤안으로 물러나 있다. 그러다 보니 걸으며 걸으며 그야말로 걷기만 할 수 있다. 아니 그저 걷기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다. 심지어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려 낼 에너지 조차 죄다 고갈된 듯 하다.
무거운 몸을,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묵직한 몸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해 본다. 아픈 내가 힘겹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어떤 한 존재가 그저 걷고 있음이 보인다. 아무런 생각도, 해석도, 판단도 붙이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바라보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몸은 건강하고 쨍쨍할 때보다 이렇게 주춤거리며 아플 때 한결 지켜보기는 쉽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가운데에도 아픔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아프지가 않다. 그저 아프다고 이름붙인 어떤 현상이 거기에서 전개되고 있을 뿐. 오히려 그 느낌을 지켜보면서 한편에는 미묘한 즐거움이랄까, 바라봄에 대한 깊고 내밀한 차원을 누려보게 된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사실은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느낌으로 느껴지고, 거기에 그런 현상을 충분히 느끼며 걷는 한 존재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무겁지만 무거움을 바라보는 것은 무겁지 않다. 으슬으슬 떨려오지만 그 떨림을 바라보는 것은 떨리지 않는다.
우리가 아상(我相), 에고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꺾일 때 오히려 그 너머의 차원에 가 닿기 쉬워지는 것이 아닐까. 건강할 때, 잘 나갈 때, 주목 받을 때, 아상은 한없이 자기 잘난 생각에 빠져 잘난 자신이 실체적이며 실존적이라고 믿는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을 낮추는 생각과 이어져 나와 너를 나누고 차별한다. 아상이 높은 이는 아상 너머의 보다 깊은 차원의 영적인 길을 걷기 어렵다. 그러나 아상이 꺾일 때, 비로소 그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보다 깊게 바라보게 된다.
사람도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며 아주 잘 나가고 돈도 벌고 명예도 늘려나가는 시절에는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진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잘 나가던 사람이 꺾이고,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상실하고, 부자가 가난해지며, 명예도 지위도 떨어지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과 진지한 통찰이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세상에서 보면 실패한 것 같고, 좌절된 것 같고, 상실된 것 같은 바로 그 때가 수행과 명상이라는 영적 전통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각성(覺性)의 시작이 되는 때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은 출세간에서 보면 위기이고, 세상에서 한풀 꺾이는 것은 오히려 출세간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그러니 더 크게 본다면 어느 한 쪽을 더 반기거나 어느 한 쪽을 밀어내려 애쓸 것도 없다. 좋다고 붙잡아 집착하거나 싫다고 버리려 애쓸 것도 없고 좋고 나쁘다는 그 양변의 집착을 모두 여의고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의 걸림 없는 길이다.
아프다는 상황도 더 큰 차원의 질서에서 본다면 나를 돕기 위한 우주 법계의 자비로운 도움의 손길인 것이다. 이 아픈 상황으로 인해 나는 좌절할 수도 있고, 오히려 자비와 사랑이 바탕 된 우주의 도움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일들은 언제나 완전하고 완벽한 우주의 사랑이며 자비로우신 배려다.
이 세상은 언제나 완벽하다. 모든 것은 완전하다. 우리 삶에 어느 한 가지 사건도, 사람도 불완전하거나, 불필요하거나 쓸모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정확한 우주적인 필요에 의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 내 몸에서 왜 감기 몸살이 오게 되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그 이유나 목적을 다 알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나를 돕기 위한 우주적인 사랑으로 온 것이며, 바로 지금 나에게 바로 그것이, 그러한 상황이 전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애써 밀어내거나 붙잡아 집착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명이요, 이 순간의 몫임을 아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체바자에서부터 루클라까지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 온 그 한나절의 때가 나의 이번 순례를 아름답게 회향하도록 해 준 소중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하루 동안의 걷기야말로 어느 순간보다도 진한 ‘오직 걸을 뿐’의 깊은 침묵의 순간이었다. 오랜 순례를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생각 너머의 깊은 침묵과 텅 빈 비움으로 맑혀주고 씻어준 감사한 걷기가 아니었던가.
남체바자에서 처음 걸어 내려올 때 무거운 몸 때문에 일어났던 모든 분별심들이 루클라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묵직한 침묵의 향기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루클라까지 내려오면서는 주변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 구간의 이미지나 영상이 아무리 돌이켜 떠올리려 해도 전날들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지지가 않는다. 사진도 한 장 찍지를 못했다.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 모든 구간 구간을 사진에 담아 두고두고 순례를 기록하리라 생각했던 그 생각마저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아팠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저 자신과 함께 오직 걷기만 하는 행운과 회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루클라에서
루클라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루클라 이정표 앞에서 외국인 여행자 몇몇이 자랑스럽다는 상기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이 긴긴 여정을 끝내고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들을 향해 일종의 연대감 섞인 환한 미소와 박수를 보내며 걸어가는데 사진 찍기를 마친 그들이 나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며 환호를 해 주고 있다. 이렇게 산 친구들은 쉽게 쉽게 벗이 되곤 한다.
롯지를 잡기 전에 먼저 비행기 표를 교환하기 위해 여행사에 들른다. 3일 후 아침 카투만두 행 비행기 표를 내밀며 내일 아침 비행기 표로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실 표를 바꿀 수 없으면 며칠 루클라에서 머물면서 쉬다가 내려가야겠구나 싶어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다음날 아침 비행기 표로 바꾸어 준다.
마을 입구의 롯지에 방을 잡고 잠시 앉는다.
쉼!
묵연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것들을 살피며 안으로 쉼의 빛을 쪼인다. 가물가물 앉은 채로 나른한 선잠에 빠져든다.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시계의 긴 바늘이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루클라 시내를 잠시 걷기로 한다. 이미 해는 기울었고 루클라에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카투만두에 현지인 오랜 벗에게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도 미얀마 비자가 발급되었고 계획대로 미얀마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미얀마는 비자를 받고 2달 안에 들어가야 하는 조항이 있는 나라인데, 나는 인도와 네팔에서 2달 이상을 보내다가 미얀마로 들어갈 예정인 터라 미얀마 비자를 한국에서 받지 못하고 왔었다. 여행자들에게 물었더니 인도에서 미얀마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 누구도 네팔에서도 미얀마 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해 주는 이가 없었다. 미얀마 대사관이 있으니 당연히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산에 오기 직전 미얀마 대사관에 신청을 해 놓고 나머지 업무를 벗에게 일임하고 왔었는데 이렇게 잘 되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이른 저녁을 먹고 잠에 든다. 밤새 오들오들 떨며 뒤척이다 새벽을 맞는다.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식사 후에 짐을 정리하여 공항으로 간다. 한두 시간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작은 비행기들이 그 작은 활주로 하나를 공유하며 쉴 사이 없이 앵앵거리며 오고 간다. 몇 대가 그렇게 오고 간 뒤에야 내가 탈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들린다.
아, 이곳과도 이제 작별이구나.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와 보게 될까. 이번 생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올 수가 있기는 할까? 이 곱디고운 아름다운 순례길 위를 언제 다시 걷게 될 것인가.
바로 지금!
생의 매 순간 순간은 언제나 순례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
히말라야 순례를 마감하며 또 다른 삶의 히말라야를 내딛는다. 히말라야는 지리적인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꽉 짜여 진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묶임으로부터의 벗어남, 욕심과 집착 속에서 허덕이다가 문득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한 생각 돌이켜 내려 놓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놓여나는 해탈, ‘내 삶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하는 고정된 꽉 짜여진 일과와 틀로부터 훌쩍 벗어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인생’이었음을 돌연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틀로부터의 떠남이 바로 해탈이요, 여행이며, 순례의 길이다.
탐욕, 집착, 성냄, 질투, 짜증, 증오, 미움,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이기심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홀연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벗어남의 길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여행길이며 삶 속의 히말라야다.
히말라야를 열두 번도 넘게, 수백 번도 넘게 오르고 내린들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집과 에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떠남도 아니고, 순례도 아니다. 그러나 일상의 그 모든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과 울타리와 고집과 생각과 번뇌와 차별적인 모든 마음에서 놓여날 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순례 길을 걷는 것이고, 투명한 히말라야 오랜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는가? 삶이 팍팍해서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는 여행자도 있고, 풀리지 않는 꽉 막힌 삶의 흐름을 여행을 통해 뚫어보려는 이도 있으며, 그저 여행을 업처럼 삶처럼 되풀이하는 이도 있다. 때로는 너무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마음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삶의 여행이다. 인생의 여정을 경건한 순례의 길로써 여기는 자에게는 매 순간의 삶이 바로 거룩한 순례의 길이며, 그러한 이가 바로 구도자이며 또한 순례자다.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간 하늘로 솟아올라 타원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그간의 쿰부의 순례 길을 비춰 준다. 점점 멀어지는 쿰부 계곡과 설산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이제 진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고쿄 순례기.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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