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생활수행' 카테고리의 글 목록 (25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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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457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며 살기

그냥 그냥 사는 것이지요. 아무런 이유도 붙지 않고 조건도 붙지 않고 억지로 살려고 살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그냥 살려지는 것이 우리내 인생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산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있건만 아무런 분별도 하지 않고 물은 늘 내맡겨 흐르지만 아무런 시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시냇물은 흐르다가 강으로 또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인연따라 흐르다가 따가운 햇살의 연을 만나면 수중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그러다가 인연따라 빗방울로 혹은 우박이며 눈으로 내립니다. 언제부터 그랬냐 할 것도 없고, 왜 그러느냐 할 것도 없고, 어느 모습을 딱히 고집하여 물로만 있지도 않고, 구름으로만 있지도 않고 빗방울이 되건 눈송이가 되건 탓하는 법이 없습니다...

생각을 강요하게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을 안고 살아갑니다. 생각이 없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그 생각에 고집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고집, 편견들로 인해 우리는 '내 옳은 생각'을 남들에게 주입시키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살아요. 그런데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쉽게 남들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참 이상하겠지요. '내 생각'이 분명 맞는데 왜 이 옳은 생각을 따르지 않을까 싶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남들도 '자기들만의 옳은 생각'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로의 생각이 일치를 볼 때는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참 많거든요. 그럴 때는 '너 참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 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요. 내 옳은 생각에 동조를 안 해주니 상..

이기적 욕심, 이타적 욕심

욕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면서, 방하착 하라고 하면서 왜 서원을 세우라고 하는가 하고 질문하는 분이 계십니다. 다 놓으라면서 서원을 잡느냐고 말입니다. 집착을 놓으라면서 왜 또다시 원에 집착하느냐고 말입니다. 욕심과 서원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들 중생들은 욕심과 집착 때문에 신구의로 온갖 업을 짓게 되며 그 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끊임없는 윤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보살은 서원을 세움으로써 스스로 선택하여 중생계에 뛰어 든다고 합니다. 중생은 업생(業生)이라 하며, 보살은 원생(願生)이라 합니다. 중생은 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어나지만, 보살은 스스로 원을 세워 불계(佛界)를 잠시 등지고 이땅 사바예토에 선택하여 오셨습니다. 중생이 업을 짓는 이유는 욕심과 집착이 끊이지 않기..

상대방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기술

“도대체 날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정말 짜증 나, 미치겠네.” 누군가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찾아와 하소연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어쩌겠어.” “잘 생각해 보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거야” 라고 답하곤 한다.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아줘야 하는 나도 힘들고 하소연하는 상대방 마음도 치유하지 못한다. 그런데 심리치료나 상담에서, 또 불교와 명상에서 취하는 방식은 사뭇 단순하면서도 쉽고, 그러면서도 빠르게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준다. 아주 단순하다. 해결해 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상대방의 현재의 답답한 마음을 받아줌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관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짜증이 많이 나겠구나. 정말 답답하겠다. 방법..

수용과 용서의 호흡명상

감사와 사랑의 호흡관처럼, 수용과 용서의 호흡관도 들숨과 날숨이라는 '지금 여기'의 호흡에 맞춰 호흡이 들어 올 때는 '수용합니다' 라고 말하며, 호흡을 내쉴 때는 '용서합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호흡에 맞춰 수용과 용서라는 생활수행 최상의 진언을 외는 수행법이다. 수용과 용서를 생활수행 최상의 진언이라고 하였는데, 말 그대로 수용과 용서야말로 우리가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데 있어, 최상의 '진리의 말' 진언이기 때문이다. 수용은 생활 속에 닥쳐오는 일체의 좋고 나쁜 경계를 분별하지 않고, 판단이나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명상수행과 불교의 핵심 실천법이다. 왜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내가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지가 지은 업에 대해 내가..

욕망은 어떻게 생기고 소멸되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낸 상징에 불과하다. 모든 개념작용들은 환영과도 같은 공허한 헛것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태초에 텅 비어 있었다. 아무런 개념도, 관념도, 분별도, 상징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꽉 찬 충만함이 여여(如如)하게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시비도, 분별도, 싸움도, 좋고 나쁨도, 행복과 괴로움도, 성공도 실패도 없었다. 나아가 중생과 부처도 없고, 어리석음과 깨달음도 없고, 삶과 죽음도 없고, 인간과 자연의 구분도 없었기에 중생이 부처가 되기 위한 노력이나 수행도 필요 없고, 어리석은 이가 지혜롭게 되기 위한 공부도 필요 없고, 죽지 않기 위해, 늙지 않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으며, 성공을 위해, 부유함을 위해, 승리를 위해, 해탈을 위해 달려갈 필요..

모든 존재가 동등하게 귀하다

현대 과학에서는 유정물과 무정물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곤 한다. 유정물, 다시 말해 생명체는 DNA라는 복제 가능한 유전물질 지니고 있어 생식활동을 통해 자손을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무정물, 무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 광우병의 원인체를 규명하면서 밝혀진 프리온(prion)이라는 원인물질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단백질에 불과하지만 생물체내에서 증식하고 전파되어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비로소 생명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 유정물과 무정물이란 경계가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유정, 무정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분류이자 분별이었을 뿐이지, 본래 그렇게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혜롭게 화내는 방법 - 화를 참지 말라

화가 날 때는 억누르지도 말고 상대방을 향해 폭발하지도 말라. 항상 해 왔던 그 두 가지 고정된 패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화가 날 때 억누르면 내가 다치고, 폭발하면 상대가 다친다. 억누르지 말고 화가 났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주라. 화를 피해 달아나려 하기 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화를 직시하고 받아들여 충분히 느껴보라. 화를 내도 좋다. 아니 오히려 그 화를 똑바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화가 나는대로 화를 내라.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만 그 화에는 책임감이 뒤따라야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도 나도 다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화를 인식하면서, 화를 관찰하고 느끼면서 화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화가 날 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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