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은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인연따라 생겨난 것들에 대해 그저 내버려두면 됩니다.

일어나는 그대로 허용해 주면 됩니다.

어떤 삶이 경험될 때 경험되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대로,
보이면 보이는 그대로,
들리면 들리는 그대로,
그저 그렇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됩니다.

거기에 생각과 판단으로 온갖 해석을 가하고, 온갖 생각의 덧칠을 입히고, 그것을 믿으면서, 그 생각에 걸리들고, 집착하고, 구속되는 이런 연속된 중생심의 번뇌망상에 끌려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번뇌망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집착하고 거부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요.

애써야 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많습니다.

유위법, 유위행에는 이처럼 힘쓸 일이 많고, 힘들 뿐 아니라, 유위행에는 유위의 결과 즉 과보가 따르듯이, 그렇게 만들어낸 온갖 생각들로 인해 괴로운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가만 두면 아무 문제 없이 그저 인연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면 그 뿐인 것을, 생각으로 판단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거기에 일을 만들고,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인연 따라 첫 번째 작용, 경험이 일어나면,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세요.

해석하지 말고, 그것이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고, 판단하지 말아 보세요.

그저 그 모든 것이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러면 모든 것들은 왔다가 갑니다.

그리고 끝이지요.

인연 따라 온 것에 대해 좋다고 해석하면서 집착하거나, 싫다고 해석하면서 안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여기며 거부하는 등의 취사간택심을 일으키게 되면, 그 대상에 사로잡히고, 그 대상으로 인해 휘둘리게 될 뿐입니다.

인연따라 온 모든 것들에 대해 취사간택하지 않고, 그저 내버려두면,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실상의 작용이 되고, 아무런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게 됩니다.

삶은 가벼워지고, 삶에는 아무런 일이 없어집니다.

인연 따라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만, 거기에 구속되지는 않는 것이지요.

머무는 바 없이, 집착하는 바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흔적 없고 걸림없는 삶입니다.
.....

YouTube에서 '['19.7.21 일요법회] 어떻게 살 것인가? 팔정도 수행, 불교교리 총정리와 팔정도의 정(正)의 실천' 보기
https://youtu.be/zpeS9-dgc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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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대상을 봅니다.

'보는 것'일까요? '보이는 것'일까요?

'보는 것'은 '내가 본다'는 것이고, '보이는 것'은 그저 보일 뿐 거기에 내가 개입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내가 본다'고 말하고, 잘 보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눈앞에 어떤 대상이 탁 들어오면, 그냥 저절로 보이지 않는가요?

억지로 보려고 애써야지만 볼 수 있나요?

그냥 보이잖아요.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들리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소리가 납니다.

애쓰지 않아도 그저 들리지요.

만약에 '내가 듣는다'고 하려면, 내 마음대로 들을 수 있듯이, 내 마음대로 들을 수 없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소리가 들리면, 듣기 싫어도 그냥 저절로 들립니다.

내가 듣는 것이면 내 마음대로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냥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듣는 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요?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그저 보이고 들렸을 뿐입니다.

거기에 '나'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보고 듣기 위해 전혀 애쓰지 않더라도, 그저 무위법으로써,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보고 듣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보고 듣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맛보고, 냄새맡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이와 같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향기가 나면 저절로 향기를 맡게 됩니다.

어떤 대상을 보면 저절로 생각이 떠오릅니다.

감촉을 느끼면 저절로 촉감이 자각됩니다.

이처럼 삶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럽게 무위로써 살려지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아무런 문제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인연 따라 물 흐르듯 살아간다면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매 순간 보일 뿐, 들릴 뿐, 생각할 뿐, 느낄 뿐, 아무런 시비가 붙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위자연이며, 불이중도이고, 일 없는 무사인의 삶입니다.

이렇듯 시비분별만 붙이지 않으면, 이렇듯 이미 문제 없는 실상의 삶이 살아지고 있습니다.

진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완벽하게 주어진 삶을 상대로, '나'라는 허상을 개입시켜, 내가 본 것이 옳으니, 내가 듣기로는 기분이 나빴다느니, 나는 감정이 상했다느니 하는 등의 아상, 에고, 분별심을 내세우면서, 이 완전한 삶이 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내 기준으로 좋거나 나쁜 삶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나라늘 생각과 분별만 없다면, 삶은 지금 이대로 완전합니다.
.. ..

YouTube에서 '['19.7.14 일요법회] 괴로움을 없애는 진짜 수행은 기도, 염불, 좌선이 아니라 중도! 도성제, 사념처' 보기
https://youtu.be/Z_TFv8Zea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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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선영 2019.07.25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님
    저는 지나가는 작고 어리석은 사람중 하나입니다.

    말씀을 듣고
    궁금하고 화가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 글에서 언급하 듯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고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도 들리듯 스님 말씀대로 걸러들을 수 있는 소리는 없지요.
    보기싫은 걸 피할 수도 없지요.
    근데 화가나는 것도 슬픈 마음이 드는 것도
    똑같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도, 힘든 상황들도
    아픈 마음까지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상처받지 말고
    화나지도 말라고 하는 스님의 말씀이
    저는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느껴집니다.

    지나가는 새를 보고도 어떤 날은 눈물이 나고
    어떤날은 화가 납니다.

    그리고 어떤날은 저 새는 가족은 있나 밥은 잘 먹고 사나 생각이 들지요.

    인간이 화가 나고 슬픈 것도 장마가 오고 해가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화를 내는 저는 너무 나약하고 불필요한 감정만 쏟아내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화를 내는것도, 슬픈 마음이 드는것도
    아무이유없이 눈물이 나는 날들마저도
    다 그럴 수 있다
    그런 날도 있다
    근데 화를 참고 분노를 참고 그 시간을 넘어가는 일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러니 노력해보자
    라고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말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불교를 좋아하고 답답하고 궁금한건 못참는 작은 그릇의 사람이라서

    이렇게 대답없을 글에 긴 질문을 남깁니다.

    제 질문을 무례하게 느끼지만 않으시기를 바라봅니다.

  2. Favicon of https://awesomebikes.tistory.com BlogIcon 모놀로그(monologue) 2019.07.29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법상스님.
    어제 찾아뵙고 간단한 인터뷰 드렸던 한국병원신문 이주홍입니다.

    말씀해주신 부분들 정리해서 기사로 올렸습니다.


    http://www.koreahospitalnews.com/news/28610
    [현대인의 정신건강] "괴로움은 줄여질 수 있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통해 없앨 수도 있습니다." - 부산 금련사 법상스님 - 인터뷰


    혹시라도 수정사항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01094076841 이주홍 )

    그리고 신문기사라 표현들이 딱딱하고 존칭이 생략되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법상스님.

    시간되실 때,
    업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찾아뵙고 이런 저런 좋은 말씀들 듣고 싶습니다.

    바쁘신데 인터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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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불사중인 1군단 법당 후불탱화]

있는 그대로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고, 판단하면서 보는 것을 중생의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지혜라고 한다.
경험이 일어날 때, 그저 그렇게 일어나는 경험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이 지혜이고,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이처럼 단순하고, 아무런 깨달음이라는 어떤 실체적인 상태 같은 것이 아니다.
어제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본 것에 대해 그저 지금 이 순간으로 생경하게, 분별없이 그저 볼 뿐이다.
한 사람을 볼 때, 어제, 그리고 과거에 만났던 그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만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그 사람을 실체화시켜서, 그 사람이라는 특정한 존재가 어제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실체라고 여기는 생각일 뿐이다.
그것은 무상이 아니고 무아가 아니다.
그 사람이라는 실체가 외부에 딱 정해져 있어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항상했던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이 항상하다고 착각하고, 실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이 상태가 무상과 무아를 모르는 상태다. 삼법인에 무지한 것이다.
지혜는 단순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어제 보았던 사람이라는 허망한 기억 속의 생각으로 오늘 만나는 이 사람을 판단하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곧, 무상을 자각하는 것이다.
항상한다고 여기면, 어제의 그 사람이 지금의 이 사람으로 항상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않은가?
어제의 기억은 허상이니 신경쓸 것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사람을 지금으로써, 무분별로써, 그저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삼법인의 지혜이며, 있는 그대로 보는 정견이고, 깨달음이다.
.....
YouTube에서 '[음성/행복입문2] 양자물리학 홀로그램과 불교, 파동, 공명, 과학' 보기
https://youtu.be/rYE3JsOE3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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