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한담 산사하루' 카테고리의 글 목록 (14 Page)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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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산사하루 166

마음을 일으키면 우주가 움직인다

진정한 수행자는 마음 하나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일체를 놓고 있기에 일체가 마음 일으킨 그 순간 이미 내 것으로 화하여 줍니다. 일체가 내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진정 모든 것을 버린 자만이 도리어 세상을 움켜 쥘 수 있습니다. 은사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는 마음 한 번 일으켜 법계를 움직이느니라." "법계는 그 수행자를 위해 움직이니 법계의 주인이 되거라." 은사스님은 지금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약 10 여 곳에 큰 불사를 진행중이십니다. 참으로 밝으신 불사를 하십니다. 인도의 부처님 4대성지에 한국 사찰을 짓고 계시며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의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에 가람을 다시금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곳에서부터 불교의 씨앗을 뿌리면 이제 ..

빗소리 속에 차를 마시며

[작년 여름 7월 7일 써 놓았던 글입니다.] 비가 계속해서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한다. 여느때처럼 이런 날은 그냥 법당 안에 들어 앉아 다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면서 한참을 빗소리를 듣다가 또 한참을 비 떨어지는 풍경에 집중하다가 또 때때로 책을 읽기도 하고 벌렁 드러누워 책을 보기도 하다가 몸이 찌뿌둥하면 틈틈이 배웠던 요가를 하기도 한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다실 방 바깥으로 보이는 빗속의 자연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있노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좋기만 하다. 좋다는 말도 그렇고 그냥 그냥 고요하고 적멸하다. 요 몇 일을 계속 그러고 있다. 크게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일이야 이 도량에 온 뒤로 계속 많고 바쁘지만 바쁜 가운데 한가할 수 있는 여유..

없이 살 때가 좋던 시절

[벌써 몇 년 전 여름이었나? 우리 목탁소리 법우님들과 함께 한 몇 일 남쪽지방으로 만행을 떠났었다. 그 때의 기억들이 사진을 보니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왼쪽부터, 두하, 성연법우(지금 무상스님), 서원 법우(지금 인하스님), 법기스님, 법상스님, 원광스님, 심연, 여여, 진석법우] 오늘 아침은 추위가 한창이다. 얼마 전 군에 온 지 6년이 되었다고 기념으로 국방부에서 얻어 입게 된 겨울철 누비 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그 기쁨에 오전 내내 도량 주위를 서성였다.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낙엽을 쓸다보니 지치지도 않고 쓰는 일이 그렇게도 홀가분했다. 오늘은 조금 춥긴 해도 날씨 또한 끝내주게 좋은 날이었거든. 작년 겨울 법기스님이 거사님께서 사 주신 누비두루마기를 입고 이거 하나 있으니까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

마음을 돌리면 모든 상황이 행복!

[임진강의 낙조] 우리의 삶에서 마음 씀씀이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같은 조건 속에서도 같은 환경 속에서도 어떤이는 지옥이 될 수 있지만 어떤이는 천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당당한 수행자입니다. 내 마음인데 내가 자유롭게 써야지 다른 경계에 이끌린다면 그건 내 마음 떳떳한 주인공이 아닌 노예의 나약한 마음일 것입니다. 이 마음을 자유롭게 쓰는 방법, '마음 돌리기'의 가르침을 깨우치게 된 작은 인연이 있었기에 적어 볼까 합니다. 한번은 논산 군법당 법회에 참석키 위해 은사스님을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법회 시간은 다가오는데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겸손, 공경, 하심의 수행

[설악산 봉정암] 나를 낮추고 하심(下心)하는 데서 나는 진정으로 한없이 높아짐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내세우고 높이려고 애쓰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나는 정말 못난 놈이라고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대부분 '나다'라고 하는 아상(我相)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내가 욕을 얻어 먹으니 괴롭고, 내 여자 친구가 나를 떠나갔으니 괴롭고, 내 돈을 잃어버렸으니 괴롭고, 내 명예를 잃어 괴로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나'라고 하는 것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나'라고 하는 것은 무아(無我)입니다. 다만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가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나무 막대기와 판자라..

오는 것 오게 하고, 가는 것 가게 하라

모든 것은 오고 간다.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그것이 진리의 모습이다. 그러니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올 때는 오도록 갈 때는 가도록 그대로 놔두고 다만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모든 온 것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시 왔다가 잠시 머물러 가야할 때 갈 것이다. 생각도 잠시 왔다가 가고, 인생도 잠시 왔다가 가고, 돈도 잠시 왔다가 가고, 명예도, 권력도, 지위도, 사랑도, 행복도, 성공도, 실패도, 나라는 존재 또한 그렇게 잠시 왔다가 갈 것이다. 모든 것은 올 때가 되면 왔다가 갈 때가 되면 간다. 오고 감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 그저 내 존재 위를 스쳐 오고 가도록 그저 내버려 두라. 행복이 온다고 잡으려 애쓰지도 말고 행복이 간다고 붙잡으려 애..

드러냄, 참된 관계의 시작

대인관계의 핵심, 그것은 바로 나를 활짝 열어 보이는 데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깊은 관계는 시작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를 숨기려 하고, 치장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의 모든 관계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고 괴로움이다. 그 사람 앞에서는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한다. 연극에서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힘을 주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 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억지스럽고 에너지만 끊임없이 낭비 될 뿐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 지 몰라도 그 깊은 속에서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언제나 습관처럼 세상을 향해 웃고는 있지만 과연 그 웃음이 ..

부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지혜

실제 수많은 민족지 조사 연구 결과 고대사회, 원시사회는 최초의 풍요사회였다. 그들 원시인들은 하루에 서너시간만 일하고도 먹고 남는, 연간 필요소비량 이상의 잉여를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발달시켰다. 원시사회는 생계경제가 아니라 풍요의 잉여경제였다. 그것도 잉여를 끔찍한 대규모 전쟁이나 쓰레기로 낭비하는 현대 산업문명과는 달리 잉여를 이웃 공동체와 서로 나누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최적의 생계순환형 경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초기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과 농민들, 전세계 대다수 인민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침략 아래 생계경제에 허덕이고 있다. [왜 자립경제인가]박승옥 중에서... ..

아는 만큼 보기, 보는 만큼 느끼기

[서산 안면도 황도] 새벽 도량이 쨍쨍하다. 유난히 새벽녘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대충 흘려들어도 예닐곱 종류 이상의 새들이 매일 아침 예불에 동참한다. 조용히 새소리를 듣다 보면 이놈은 어떤 새일까, 또 저 목소리를 가진 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많이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새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마찬가지로 도량 주위로 포행을 하다보면 사소하게 피어난 온갖 들풀이며 야생꽃들 또한 내 마음을 한참 동안 빼앗아 가곤 한다. 산에 사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 꽃 그리고 새들이며 곤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름을 알고, 그 인연을 알고 마주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니까. 그렇..

우주는 평형을 맞추는 쪽으로 흐른다

[봄 속에서 가을을 본다. 봄 꽃과 연초록의 새순 안에서 가을 단풍을 본다. 봄 단풍잎과 가을 단풍잎, 그 신비로운 변화] 삶이란 끊없는 평형작용이다. 내 몸을 깃점으로 들이고 내는 것은 항상 평형을 이룬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항상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많이 들어오면 반드시 나가게 되어 있고, 많이 내보내면 반드시 다시금 들어오게 되어 있다. 먹는 음식도 많이 들어오면 곧 나가는 신호가 오고 또 많이 나가면 다시 몸의 조화와 평형에 필요한 무언가를 찾게 마련이다. 업도 상대에게 악업을 지으면 상대에게 악의 과보를 받게 되고, 상대에게 선업을 지으면 상대에게 선의 결과를 받게 되지 않는가. 사실 인과응보나 업보설이란 우주의 평형성을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다. 내가 남에게 사기를 치면 우주의 에너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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