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원인과 아상 - 십이처(2)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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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본 교리강좌

괴로움의 원인과 아상 - 십이처(2)

목탁 소리 2015. 1. 18. 12:47

 

 

 

 

육내처와 아상의 발생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안이비설신의 육근은 육경을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육근이 청정할 때는 육경을 대상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식대로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외부의 대상을 보기 때문에 안팎이 둘로 나뉘지도 않고 분별과 차별도 없으며 그렇기에 괴로움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에게 뚱뚱하다고 말할지라도 그저 뚱뚱한 것을 뚱뚱하다고 했구나 하고 분별없이 받아들이면 괴로울 것이 없다. 뚱뚱하다는 말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살이 안 쪄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말은 듣기 좋은 칭찬처럼 들릴 것이고, 아프리카의 뚱뚱한 것이 미의 기준이라는 부족에서는 최고의 찬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중립적인 말을 내 식대로 해석하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괴로움이 시작된다.

 

사과가 동그랗다고 하거나, 볼펜이 길쭉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를 보고 뚱뚱하다고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니 그 말을 듣고 괴로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나를 놀리는 구나’, ‘내가 뚱뚱한 돼지처럼 그렇게 보기 싫은가’,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 ‘돼지 같은 나를 누가 좋아할까’, ‘난 살을 빼야지만 돼’, 심지어는 ‘난 못난 놈이야’,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 ‘난 쓸모없는 사람이야’, ‘남들이 나를 싫어할거야’라고 과도하게 확대, 해석, 판단, 분별함으로써 스스로를 괴롭히곤 한다. 여기에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된다.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외부 대상을 육근으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대상을 받아들이면서 ‘나’라는 자아의식이 개입된다. 육근을 나라고 생각하는 육입처의 어리석은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나’라는 아상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여기에서 아상(我相)이란, 무아를 깨닫지 못하는 ‘내가 있다’는 어리석은 착각, 허망한 의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나라는 생각’이 아상이다.

 

이처럼 아상이란 육근을 ‘나’라고 착각하여 육내입처가 된 허망한 의식상태에서 생겨난다. 금강경에서 말한 아상의 시작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인상은 ‘너라는 생각’으로, 육경을 외부의 실체라고 생각하여 육외입처가 된 잘못된 의식상태인 것이다. 금강경에서 설파하고 있는 아상타파란 곧,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라는 허망한 착각을 여의고, 본래 청정한 육근과 육경의 순수 작용과 기능, 활동으로 돌아가는데 있다.

 

앞에서, 나에게 뚱뚱하다고 말한 그 소리는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바람 부는 소리나 개울물 소리처럼 중립적인 것이지만, 내 밖에 있는 ‘너’라는 실재적인 어떤 사람이 ‘나’라는 실체적인 ‘자아’에게 뚱뚱하다고 놀리고 욕한 것처럼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관념이 없다면 누가 나에게 욕을 하던, 놀리던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렇게 발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나’에게 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상이 손상되거나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마음은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아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을 뚱뚱하다고 놀렸다면 부처님께서 그것을 괴롭게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자아관념이 없고, 무아를 깨달은 자는 나와 너의 분별도 차별도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없다. 괴롭힐 ‘나’가 없는 이를 어떻게 괴롭힐 수 있겠는가. 타깃이 있어야 그 사람을 목표로 정해서 그 사람을 괴롭히는데, 스스로 ‘나’라는 자아관념이 없다는 것은 괴롭힐 목표, 타깃이 없어진 것과 같다. 그 누구도 무아인 자를 괴롭힐 수 없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 육내처(육입)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성격이 더럽다’고 말했다고 할지라도, 사실 그 말은 나를 상처 줄 만한 실체적인 에너지를 지닌 말이 아니라, 그저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보는 관점을 서술한 말에 불과하다. 그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그것도 아주 제한적인 관점에서, 나의 어떤 특정 행동을 보고 ‘성격이 더럽다’고 말 한 것일 뿐, 그것이 나의 ‘진짜’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내면에 부정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서 모든 사람들 볼 때 부정적으로 보곤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성격 더럽다’고 한 그 말이 더 큰 문제인가? 아니면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괴로움에 빠져든 나에게 더 큰 일차적 잘못이 있는가? 그 말을 그저 가볍게 웃어 넘기고 말 것인지, 그 말에 빠져 큰 상실감을 두고 두고 가질 것인지는 언제나 나 자신이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그 말 한마디는 외부에서 오지만, 그것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부여할 것인지, 또 그 말에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는 늘 나의 선택이다. 즉, 그 주도권은 언제나 육외입처라는 외부 대상에 있지 않고, 늘 나 자신에게 있다. 청정한 육경으로 단지 받아들임으로써 휘둘리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육내입처를 작동시켜 나를 공격하는 나쁜 놈으로 실체화시키고, 그 실체성에 스스로 빠져들어 괴로워 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악플을 보고 자살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한 연예인이 그 악플러를 잡고 보니 초등학생이고 심지어 자신의 펜이었으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악플을 달았다는 말을 듣고 맥이 풀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지냈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도 느꼈고, 나는 진짜 못난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지냈던 지난 날들이 모두 허망한 허상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결국 육내입처인 나 자신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바깥 대상인 육외입처는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바깥에서는 언제나 비도 오고 눈도 오고 좋은 날씨도 있다. 욕하는 사람도 있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향기도 있고 나쁜 향기도 있으며, 좋은 감촉도 있고 나쁜 감촉도 있다. 그것이 세상이고 삶이다. 그것은 전혀 문제 상황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일 뿐이다. 그 자연스러운 상황에 ‘나’를 개입시켜 놓고, 나를 중심으로 적과 아군을 만들어 놓은 채, 온갖 해석, 판단, 분별을 가함으로써 괴로운 상황 혹은 즐거운 상황으로 꾸며내는 주인공은 바로 육내입처인 것이다.

 

이처럼 육근이 육경과 접촉할 때 육근을 ‘나’라고 실체적으로 생각하고, 육경을 ‘외부’라고 실체적으로 생각하면 거기에서 괴로움이 생긴다. 육근을 보고 ‘나’라고 집착한 육내입처와 육경을 보고 ‘외부’라고 집착한 육외입처는 괴로움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육내입처라는 아상이 생겨날 때 모든 괴로움이 연기하는 것이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12연기에서는 생노병사라는 고의 원인이 유에 있고, 유의 원인은 취에 있으며, 취의 원인은 애, 애의 원인은 수, 수의 원인은 촉, 촉의 원인은 육입에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12연기의 모든 지분들은 각각 저마다 생노병사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원인을 의미하고, 그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하면 연쇄적으로 12연기의 각 지분이 소멸함으로써 결국 괴로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촉의 원인을 육입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 말은 곧 생노병사의 괴로움의 원인인 12연기의 지분 가운데 하나가 육입이며 이 육입을 멸할 때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육입이 바로 육내입처를 말한다. 결국, 육내입처를 소멸할 때 모든 괴로움은 소멸되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이러한 육내입처를 멸함으로써 얻게 되는 경지를 멸진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붓다수업] 중에서

 

 


붓다 수업

저자
법상 스님 지음
출판사
민족사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지금은 붓다 시대, 웰빙, 힐링, 뉴에이지, 영성, 치유,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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