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 육근과 육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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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 육근과 육경(1)

목탁 소리 2014. 12. 30. 19:01

 

 

 

 

육근과 육경의 이해

 

일체법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순서는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 대한 이해이다. 보통 육근은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고, 육경은 각각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응하여 감각되어지는 외부의 감각대상이라고 알고 있다.

 

먼저 간단히 살펴보면, 육근은 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며, 육경은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각각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그에 따르는 감각대상을 가지고 있다. 눈(안근)은 색(색경)을 대상으로 하며, 색은 빛깔과 모양을 지닌 모든 대상을 의미한다. 사람, 산과 들, 나무와 짐승들, 달과 별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색’이다. 귀(이근)는 소리(성경)를 그 대상으로 하고, 코(비근)는 향기(향경)를, 혀(설근)는 맛(미경)을, 몸(신근)은 감촉(촉경)을, 뜻(의근)은 뜻의 대상(법경)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눈귀코혀몸뜻이라는 육근은 쉽게 말하면, 안근은 시각, 이근은 청각, 비근은 후각, 설근은 미각, 신근은 촉각, 의근은 마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의근은 심근(心根)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된다. 즉 마음(의근)으로 지각되어지는 일체 모든 것들을 법경(法境)이라고 한다. 법경은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생각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존재와 비존재를 아우르고 있다. 앞의 다섯 가지, 안이비설신근은 감각기관이라면 의근은 마음으로 지각하는 지각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육근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오근은 각기 그 인식의 대상이 다르다. 눈은 색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으며, 혀는 맛보고, 몸은 촉감을 느끼는 등 다섯 가지 오근은 각기 다른 경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눈이 소리를 듣거나, 귀가 맛을 보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근이 개별적으로 인식한 내용을 모두 다 한꺼번에 경계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의근(意根)이다. 눈귀코혀몸이 각기 자신의 대상 경계를 인식한 것을 하나로 통일시켜 종합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바로 의근이다. 눈은 본 것만을, 귀는 들은 것 만을, 입은 맛 본 것만을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의근은 보고 듣고 맛 본 것 등을 서로 연결하고 종합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귤이 있을 때, 눈은 귤을 보고, 귀로는 귤 까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귤의 향기를 느끼고, 입으로는 귤을 맛보며, 손으로는 귤의 촉감을 느낌으로써 눈귀코혀몸의 오근을 통해 총체적으로 ‘귤’이라고 아는 작용을 하는 곳이 바로 의근이다. 눈귀코혀몸의 오근은 자신의 고유 대상만을 감지할 뿐이지만 의근은 총체적으로 지각해서 아는 것이다.

 

만약 식당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 귤이 있다고 해 보자. 귤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안근인 눈은 귤이라고 인식할 것이지만, 코로 냄새 맡아 보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본 뒤에 이비설신근의 나머지 네 가지 근은 귤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이처럼 오근 가운데 안근에서는 귤이라고 하고, 나머지는 귤이 아니라고 할 때, 최종적으로 종합하여 ‘진짜 귤이 아닌 모조품 귤’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는 작용을 하는 기능이 바로 의근이요, 마음인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심의식(心意識)은 이름만 다르지 같은 것이라고 본다. 즉 ‘의’와 ‘식’과 ‘마음’은 동의어라고 쉽게 이해하고 넘어 가도록 하자.

 

 

육근은 감각기관인가 감각기능인가

 

그런데 이와 같은 육근은 물론 감각기관으로써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는 감각기능 내지는 감각활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육근을 감각기관이라고만 이해하면 우리 몸 속에 여섯 가지 실체적인 감각기관이 있어서 그 기관들이 감각기능을 수행한다고 착각하기 쉬워진다. 사실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들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대상이 나타났을 때 인연 따라 감각기능과 감각활동을 수행할 뿐이다.

 

예를 들어 눈앞에 어떤 대상들이 오고 갔을지라도 우리가 딴 생각을 하거나,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눈앞에 어떤 것들이 오고 갔는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엄밀히 말하면 생각(의근)이 상상(법경)을 하고 있을 뿐, 안근과 색경은 없는 것이다. 분명 눈(안근)도 있고 눈에 보이는 대상(색경)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이라는 보는 감각기관 만을 안근이라고 한다면 안근도 있고, 색경도 있는 것이지만, 눈의 보는 기능과 보는 활동을 안근이라고 하기 때문에 눈이 있었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그 순간 안근의 활동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눈의 보는 기능과 보는 활동을 안근이라고 하며, 귀의 듣는 기능과 듣는 활동을 이근이라고 하고, 코의 냄새 맡는 기능과 활동을 비근, 혀의 맛보는 기능과 활동을 설근, 몸의 감촉을 느끼는 기능과 활동을 신근, 뜻의 생각하는 기능과 활동을 의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육근이라고 할 때 ‘근(根)’이라는 말도 산스크리트어 인드리야(indriya)를 번역한 말로 ‘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육근을 감각기관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육근은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능, 감각활동, 감각능력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불교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경계’가 무엇인지를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스님들의 법문을 듣다 보면 늘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는 말을 듣는데, 그 경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이 경계가 바로 육근의 감각대상인 육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눈귀코혀몸뜻이라는 우리의 감각기능들이 각각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대상으로 감각활동을 하는데, 각각의 감각기능들은 그 대상을 감지하면서 그 경계에 끄달리게 된다.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기 싫은 것, 보고 싶은 것 등을 나누어 놓고, 보고 싶은 것이나 보기 좋은 것은 더 많이 보려고 애쓰고, 보기 싫은 것은 고개를 돌리거나 보지 않으려고 도망치기도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마음이 외부의 대상에 끄달려 가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칭찬은 듣고 싶은데 비난을 듣게 되면 마음이 괴롭다. 외부의 소리 경계에 끄달려 마음이 휘둘리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 보고, 몸으로 감촉 느끼는 모든 것에서 외부의 대상에 끄달리고, 휘둘리게 된다.

 

사실 우리에게 감지되는 모든 대상은 그 대상 자체로는 중립적이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욕망, 탐욕, 바람, 의도 등이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분별하고, 나쁜 것이라고 분별할 뿐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를 맞을 때 우리 몸의 감각기능은 그 감촉을 느끼며 싫어하거나 찝찝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바람 부는 날씨를 좋아하거나, 비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청국장의 맛과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경험해 본 외국인들이라면 도저히 맡기 힘든 냄새거나 맛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육근에 감지되는 모든 대상들은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분별도 없는 중립이지만, 우리가 나름대로의 욕망과 분별심으로 인해 그것이 좋으니 싫으니 하며 마음이 끄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육경을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여섯 가지 우리 마음을 오염시키는 티끌이며, 먼지와도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붓다수업] 중에서

 

 


붓다 수업

저자
법상 스님 지음
출판사
민족사 | 2013-12-13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지금은 붓다 시대, 웰빙, 힐링, 뉴에이지, 영성, 치유,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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