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5,000고지 이상의 봉우리를 오르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고지를 올라 가 보는 것이다.

4,400고지 딩보체에서 5,086고지 낭카르창까지,

무려 600밑를 수직으로 올라 내 몸이 5,000미터 고지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만히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600미터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서 그 높이를 오른다면 두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훌쩍 오를 수 있는 높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500고지에서 1,100고지,

1,000고지에서 1,600고지 정도를 오르는 한국의 산과

4,400고지엣 5,000고지를 오르는 이곳의 고도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무엇보다도 공기가 부족해 숨쉬기가 불편하다.

벌써 딩보체에서도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나면 숨이 차 옴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고도를 높여 산을 오른다는 것은

다리의 문제거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숨의 문제, 호흡의 문제와 더 연관이 깊다.

더구나 어제도 700미터 고도를 한꺼번에 높이지 않았는가!

사실 낭카르창 피크가

5,086이라는 무게감의 고도를 생각하기 전에

언뜻 보기에는 그저 딩보체라는 작은 마을의

산책하기 좋은 뒷산 정도의 느낌 정도랄까.

보기에는 그렇게 만만한 뒷산 정도로 보일 뿐이다.

사실 출발할 때 뒷산을 가르키며

‘저 곳이 낭카르창’이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그야말로 하루 쉬며 산책을 즐기는 마음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롯지를 나선다.

새벽 6시 30분,

아직 햇살은 저 위쪽 산 중턱까지 내려왔을 뿐,

딩보체 마을은 산 그늘에 뒤덮여 차가운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 고요한 마을을 지텐과 둘이 조용히 빠져나온다.

손발이 시려오고, 몸은 으실으실하다.

햇살이 비치기 전까지 추위와의 일전은 계속된다.

먼저 딩보체 마을 뒷산 작은 언덕을 오른다.

 

 

장쾌하고 장엄한 설산의 풍경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 양 툭 붉어져 나오고

이 명미한 풍광에 모든 감각과 생각이 마비가 된 것처럼

멍하니 얼어붙는다.

 

 

이것이 바로 희말라야구나!

꿈속에서 그려오던 바로 그 풍경이,

희말라야 책자 어디에선가 보았을 법한

바로 그 풍경들이 내 눈앞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1대 1로 마주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 발자국과 함께 터져나온 탄성이

이윽고 무던한 현묵으로 바뀌고

이 신새벽 희말라야의 침묵과 하나가 되는 듯

거기 그것과 여기 나 사이의 간격이 함몰되는 느낌이다.

언덕을 오르자마자 5분도 안 되었나 싶은데

저기 눈앞 발치에서 빛나던 조하(朝霞)의 축복이

산그림자를 밀쳐내면서 금새 내 이마 위로 쏟아져 내린다.

아! 눈부시다. 따스하다.

잠시 눈을 감고 이 다사로움을 느껴본다.

찌릿찌릿 아주 작은 따스함의 줄기가

언 손과 언 발, 온 몸에 미세한 감각으로 축복을 내린다.

이 축복을 혼자서 누리기 미안할 즈음,

독일 여행자 4명이서 서둘러 언덕을 오르며 느낌씨를 연발한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이 대장엄 은령(銀嶺) 극락의 향기를 미쳐 누리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앞장서 낭카르창의 품을 향해 저벅저벅 오른다.

이 언덕 위에서 언덕 아래쪽의 초원길을 따라 발걸음을 돌리면

우리가 내일 가야 할 로부체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가파른 봉우리를 향해 발길을 돌리면

바로 낭카르창의 고지를 만나는 길이다.

아직 우리 둘과 독일인 팀을 빼고는 전혀 사람의 흔적이 없다.

그들이 걷는 길을 밟아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그야말로 오르다가 넘어지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급격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빨리 오르면 두 시간이지만,

고도적응을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쉬엄쉬엄 오르기로 한다.

물론 숨이 가빠 빨리 오르고 싶어도 몸이 뜻에 따라 주지 않는다.

앞에 오르는 저들도 마찬가지다.

거북이를 연상시키듯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가는 느낌만 내며 걷는다.

아주 조금을 올랐을 뿐인데도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더욱이 산그림자 길게 드리운 어둠이 차차 그 세력을 줄이면서

햇발에게 다시 만나자는 인사라도 하듯 빨리 사라지고

딩보체 마을 전체가 따스하게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조금 더 오르니 저기 반대편 언덕 너머에

페리체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걸어오르다 뒤를 돌아 주저앉아

거친 호흡과 저 거친 산군을 바라본다.

왼쪽으로는 지금까지 걸어오며 자주 만났던

아마다블람, 캉테가, 탐세쿠 봉우리가 차례로 줄지어 서 있고,

 

 

정면으로는 남체바자르 방향으로 꽁대 봉우리가

그리고 바로 오른편으로

타보체(Taboche, 6495m), 촐라체(Cholatse, 6335m),

아라캄체(Arakamtse, 6423m), 로부체(Lobuche, 6119m)

등의 봉우리가 줄을 서듯 차례로 도열을 해 있다.

 

 

타보체부터 시작되는 산봉우리의 도열을 따라

네 번째 봉우리와 다섯 번째 봉우리 사이에

바로 내가 칼라파타르(Kala Pattar, 5550m) 순례 이후 넘어야 하는

이번 산행의 최대 고비 촐라패스(Cho La Pass, 5368m)가 있다고

지텐이 귀뜸해 준다.

아! 저 웅부한 산군의 봉우리 사이를 통과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건 그 때 일이고

지금으로서는 바로 이 낭카르창 피크가

내 앞에 놓여있는 다음 발걸음의 최후 목적지다.

이 고지를 오르고 2~3일 후 칼라파타르를 오르고

또 다시 악명 높은 촐라패스를 지나,

고쿄(Gokyo, 4750m)의 고쿄리(Gokyo Ri, 5340m)를

또 다시 올라야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 만들어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뿐이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전혀 내 앞의 실재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은 오직 다음 발자국이 내 목적의 전부다.

왜 오지도 않은 미래의 모든 힘겨움을

벌써부터 짊어지고 가야 한단 말인가.

가 보지도 않은 미지의 그 고지들을

애써 생각으로 오르며 힘겨워 할 필요는 없다.

삶이란 한치 앞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저 봉우리에 내 발길이 먼저 닿을 지, 다음 생이 먼저 닿을 지,

그것도 아니면 고산병으로

다음 발자국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지 어찌 안단 말인가.

우리가 삶에 대해,

앞으로 다가 올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이러한 종류의 근심이 아니던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둔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 속의 계획일 뿐,

그것이 그대로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미래는 오지 않는다.

그것이 오는 순간 이미 그것은 현재가 되지 않는가.

우리가 여기는 미래에 대한 모든 걱정과 근심, 불안감은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공연히 무거운 짐을, 쓸데없는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일 뿐이지!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고 가는 이가

너무 무거워 현자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좀 가볍게 갈 수 있을까요? 삶의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현자는 답한다.

“놓아라, 그 바윗덩이를 놓으라”

그러나 바윗덩이는 내 삶의 전부다.

그것을 소유해야 무언가 의지가 되고,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실체도 없다.

그저 바윗덩이일 뿐이다. 무겁기만 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모든 근심과 불안,

노후준비와 아이들 교육자금과 해야 할 모든 미래의 걱정들은

바로 이 바윗덩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전부인 양 여기서부터 무겁게 짊어지고 가야 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현재를 온전히 가볍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가장 힘 있는 최선의 준비가 된다.

바윗덩이는 사실 아무 필요가 없다.

그것의 무게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활발하게 찬연하게 빛나는

순간순간의 신비를 느끼고 바라보기에

우리가 짊어진 짐은 너무 무겁다.

무거운데 신경 쓰느라 볼 것을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여행자의 과도한 등짐의 무게가

여행 그 자체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것 처럼.

지금 여기에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 미래가 결정된다.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계획이

미래를 결정짓는 실제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현재의 의식 속에서

미래의 모든 것들이 결정된다.

그러니 진정한 미래에 대한 준비는

바로 현재의 순간을 100% 깨어있는 정신으로

누리고 살아내는 것에 있다.

내가 순간순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영적인 의식의 수준이

바로 다음 순간과 다음 주와 다음 달,

다음 해와 다음 생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다.

만약 현재를,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하고 구상하고 근심 걱정하는데 보내게 된다면

그 사람의 미래를 만드는 장소인 현재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미래도 불안하게 될 수밖에 없다.

생각은 아상(我相)의 작용이요

아상은 그 어떤 본질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약속해주지 못한다.

현재라는 최대의 에너지 저장고이자 지혜의 저장고이고

모든 근원적인 힘이 나오는 순간을

본질적이지 않는 생각으로 채워넣지 말라.

과거나 미래 따위를 떠올리고 생각하고 구상하며 계획하고 짜맞추느라

그것의 근원이 되는 ‘지금 이 순간’을 망가뜨리지 말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아이러니요 역설이다.

장밋빛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구상하던 온갖 생각들이

사실은 바로 그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에 휘둘려 공연히 괴로워하지 말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100% 불사르라.

마음을 관하는 순간, 생각은 사라지고

무심(無心), 무념(無念), 깨어있음의 덕목이

존재라는 초원 위에서 아름답게 꽃피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존재 근원의 힘이요, 지혜이고, 사랑이다.

산에 와서도 인간 근원의 어리석음의 뿌리인 아상이

지금 이 순간의 현존을 가로막는다.

산밑에서 걸어오르기 시작할 때

우리 마음은 곧장 산 정상에 올라있다.

걷는 그 순간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빨리 걸어 올라 정상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마음은 미래에 가 있고, 다른 장소에 가 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을 때 현존은 그 빛을 잃는다.

산 중턱을 걸을 때, 그 사람의 목적은

산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음 발자국을 걷는데 있어야 한다.

오늘이 산행 6일 째인데,

빨리 올라야 할 봉우리를 다 정복하고 난 뒤에

내려오는 날을 기다린다면

나의 산행은 그 본연의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무거운 발걸음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이 느낌을 온전히 흡수한다.

나는 지금 이 자리, 산봉우리 중턱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을 뿐이다.

이 산은 눈에 보면 금방 닿을 것 같은데

금새 닿을 것 같던 그 지점에 서면

또 다시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나곤 한다.

 

 

아! 역시 호흡이 만만치가 않다.

산 중턱을 너머서면서부터는

몇 걸음 걷다 서서 호흡을 몰아쉬기를 반복한다.

오르막을 오를 때 일반적으로는

한 숨을 둘로 쪼개

들숨에 왼발, 날숨에 오른발을 일치시키며 걷게 되면

그리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오르막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곤 한다.

그 때 걸음은 그대로 명상이 되고,

호흡과 걸음이 하나의 물결을 이루어 존재 위의 수면을 파도친다.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한국에서나 얕은 곳에서는 딱딱 들어맞던

내 나름의 산행방법이 도저히 들어맞지가 않는다.

한 숨에 한 발로 바꾸고 나니

이제 다시 숨이 제자리를 찾는다.

들숨에 발을 들어올리고 날숨에 발을 내리면서

한 호흡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을 길게 쉬면서 한 발을 걷다보니

그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그런 거북이 걸음이 이 높은 고도에서는 내 몸의 상태와 일치가 된다.

점차 올라갈수록 그 드높던 설산들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시야가 높아진다.

이 높은 고도에도 생명은 빛을 뿜고 있다.

이 작은 생명들이

이 위대하고 장대한 설산을 지키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우주는 가장 작은 것 속에 가장 큰 것이 녹아들어 있다.

 

 

잠시 걷고 쉬고 걷고 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호흡이 가쁜 건 이 곳에서 붙박혀 살아 온 지텐도 어쩔 수 없나보다.

쉴 때마다 머물러 앉거나 누워

매일 보면서도 오히려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는 듯

지텐도 설산 앞에 깊은 휴식을 취하는 명상가가 된다.

 

 

설산을 배경으로 타르초가 불어온다.

바람과 타르초는 한 몸이다.

 

 

발 아래 딩보체 마을이 까마득하다.

 

 

추쿵 마을이 뛰면 한 달음 밖에 안 되어 보일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볼 수 없을 만큼 짙푸르고 파랗다.

 

 

유유한 걸음으로 몇 번이고 걷다 쉬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정상에 도착.

독일인들과 거의 동시에 정상에 올라서 기쁨을 함께 나눈다.

 

 

한 친구가 고도계를 들어 보이며,

정확히 지도에 나온 고도 그대로 5086을 가르켜 보이며

5,000고도를 돌파한 뿌듯함과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우뚝 세워주면서

함께 이 기쁨을 나눈다.

한참을 그렇게 낭카르창의 품 속에 몸과 마음을 기대고

희말라야의 호흡을 따라 숨을 쉰다.

바람이 분다.

오고 간다.

햇살이 좋다.

시선이 고정되고 마음은 멈춘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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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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