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은 불확실성이고, 혼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어하고, 정리하고 싶어 하고, 계획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 놓은 계획이 100%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알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혼란의 한 가운데에 그저 있어 주면 어떨까요?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치의 앞도, 1시간 뒤의 미래도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모를 뿐'이 진실입니다. 

그러면, 그저 모르면 됩니다. 

알려고 애쓸 것도 없고, 안다고 말하면서 그 생각에 고집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삶이라는 미지의 무언가에 겸손하게 하심하는 마음으로 내맡겨 보는 것이지요. 

'안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100%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안다는 생각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가장 정직하고, 진실한 것 아닐까요? 

삶은 단순합니다. 

그저 모르면 됩니다. 

모르니, 그저 주어진 삶에 내맡기고 사는 것이지요. 

내가 잘났다고 여겨,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아는 오만함을 버리게 됩니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실수, 실패로 인해 훗날 훨씬 큰 무언가를 더 크게 성공하게 될 수도 있지요.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안다고 오만함을 부리기 보다는, 그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모름의 진리에 온전히 내맡겨 보세요. 

삶이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진리다워질 것입니다.

Posted by 법상

자녀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느냐 하는 점입니다. 

'엄마,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아! 눈에 하트가 그려져' 

이렇게 느끼는 정도가 된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는 그 어떤 역경이나 괴로운 일들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큰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사랑하기만 하면 버릇없이 큰다고 말하곤 하시는데요, 잘못했을 때조차 무조건 잘했다고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늘 그 큰 사랑을 바탕으로 깔고 있게 되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무한한 마음이 커가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으면, 착한 행동을 하면,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그 때 가서 그 결과로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그냥 하염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향한 자비심과 사랑이 내면에 중심을 잡게 됩니다.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그 큰 사랑과 자비심으로 인해 저절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무한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Posted by 법상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우리는 '무슨 소리지?', '새소리인가?', '사람 목소리인가?' 하고 떠올립니다. 

혹은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곧장 그 말에 대해 '무슨 뜻이지?', '어떤 의도로 저 말을 했을까?' 하고 곧바로 생각으로 그 소리와 말을 판단하고 분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리는 소리를 해석, 분별, 판단하기 이전에, 순수하게 들리는 소리 그 자체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들리는 소리 그 자체라는 생생한 진짜를 경험해 놓고는, 곧바로 그 소리를 해석하고 판단한 뒤에, 내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한 그 이미지, 그림자, 의식을 붙잡아서는 그 소리라고 여깁니다. 

이미 소리가 드러나고 사라졌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 그 소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는데도, 그 소리에 대한 내 머릿속 해석, 기억, 이미지, 그림자를 붙잡고서는 그 소리라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사과라는 말이나, 사과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기억은 진짜 생생한 '사과'가 아니듯이, 그렇게 소리가 일어나고 사라진 뒤에 남는 기억, 해석, 이미지, 그림자는 전혀 그 소리 자체의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진짜라고 여겨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그 그림자, 이미지, 상, 분별심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내 단점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말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말을 기억하고 붙잡아서, 내식대로 해석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욕했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정말 내가 그런 단점이 많은가 하면서 계속 그 단점에 마음이 얽매이게 되고, 화도 나고 속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지나간 그 말에 대해 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 그림자, 상, 분별심, 해석을 붙잡아서 진짜라고 여기면서 내 스스로 얽매이고 걸려드는 것일 뿐입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로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두 번째 화살입니다.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것이지요. 

그 사람의 말은 이미 지나갔고, 진짜, 실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왔다가 갔어요. 생멸법으로 이미 사라졌습니다. 

지나간 뒤에 남은 분별, 해석, 그림자, 상을 붙잡아서 스스로 사로잡히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인연따라 그것을 판단도 하고 해석도 하되, 그것은 왔다가 가버리는 생멸법이어서 실재가 아님을 알아 거기에 속지 않고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고,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입니다.

진짜만 상대하세요. 사실, 실재만 보세요. 이미 지나간 쓰레기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