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십팔계와 촉에서 생겨난 수상사
그런데 이 십팔계의 삼사화합을 통해 ‘무언가가 있다’는 의식인 ‘촉’이 나타나게 되면, 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즉 촉에 의해 수상사(受想思)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수상사는 곧 오온의 수상행(受想行)을 의미한다. ⟪잡아함경⟫306경에서는 “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다.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와 성을 연하여 이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 나아가 의와 법을 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그 촉에서 수상사가 함께 생겨난다. 안이비설신을 서로 연결하고 종합하여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의’라고 했으니, 결국, 의계와 법계가 연하여 의식계가 생기고 그 세 가지가 촉함으로써 수상사가 생겨난다는 말은 곧 우리가 마음이라고 여기는 ‘의’와 ‘의식’ 속에서 수상행이라는 오온이 만들어짐을 뜻하는 것이다. 십팔계가 인연 따라 접촉함으로써 마음에서 오온이 생겨나는 것이다. ‘의 – 의식 – 법’ 이라는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함으로써 새로운 ‘있다’고 여기는 오온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오온이란 십팔계와 촉에서 연인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고 착각된 것이다.
쉽게 말해, 십팔계가 화합함으로써 ‘무언가가 있다’라는 존재론적인 착각에 빠지게 되고, 사실은 없는 것이지만, 있다고 착각함으로써 우리는 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있다는 착각이 있으면, 좋은 것에는 애착하고, 싫은 것은 미워하게 되며, 생각으로 따져 보기도 하고, 욕망을 투영하여 가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수상사, 즉 수상행이 생겨나는 것이다. 즉, ‘촉’이 생기면 촉을 인연으로 수상행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무수한 보물을 보고, 큰 돈을 벌었다고 할지라도 꿈에서 깨는 순간,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것임을 알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깨는 순간 그 꿈 속의 금은보화에는 전혀 집착하지 않는다. 본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아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좋아하면서 애착하거나, 싫어하면서 증오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대해 생각할 것도 없으며,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우리의 삶 또한 이러한 꿈과 마찬가지로 허망한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있다’라고 여기고, ‘존재한다’라고 여기는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꿈과 같다. 실존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은 무명에 의해 허망하게 착각을 함으로써 촉입처에 의해 ‘진짜로 있다’고 착각한다. ‘촉’에 의해 진짜로 있다고 착각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좋거나 싫다는 느낌이 일어난다. 바로 이렇게 해서 생겨난 좋거나 싫다는 느낌, 감정을 수온(受蘊)이라고 한다. 이 느낌에서 연이어 과거에 알았던 것과 비교해서 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단하고 사유하며, 생각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온(想蘊)이다. 좋은 느낌이 생기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연이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행동에 옮길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온(行蘊)이다. 이렇게 해서 수상행이 생겨난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수온은 느낌과 감정을 말하고, 상온은 생각, 사유, 표상작용이고, 행온은 욕구, 의지작용으로써 무언가를 행해야겠다는 업의 원동력이 되는 작용이다. 물론 행온에는 이러한 의지작용 외에도 수온과 상온, 식온에 들어가지 않는 수많은 정신작용을 포괄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화 시켜 의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눈 앞에 어떤 여인이 나타났다. 눈으로 그 여인을 보고 분별해 인식함으로써 십팔계가 화합하여 ‘촉’이 생긴다. 즉 그 여인을 ‘실체적인 존재’로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만약 우리가 그 여인이 눈 앞에 나타난 순간, 큰 고민과 걱정거리 때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고뇌에 빠져 있었다면 그 여인은 눈앞에 어떤 존재로 인식되지 못했을 것이다. 즉 그 여인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여인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지라도 나는 그 여인을 인식해 ‘있다’고 여기는 촉의 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화합하여 마침 내가 그 여인을 보았고 인식했으며 ‘있다’고 여겼다. 십팔계에서 촉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연이어 그 여인에 대해 좋다는 느낌이 생긴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감정이 생기고, 호감이 간다. 이것이 수온이다. 그러면 곧바로 상온은 과거에 가졌던 여인에 대한 표상들을 떠올릴 것이고, 아름답다는 개념들을 떠올릴 것이며, 그것을 통해 과거에 만났던 여인들에 비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상온이다. 그렇게 좋은 느낌과 생각이 만들어지게 되면 자연히 그 다음에는 그 여인에게 말이라고 걸어보고 싶고,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고, 사귀고 싶은 욕구, 의지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행온이다.
(3) 오온의 성립
그러면 이제 비로소 오온이 모두 성립되었다. 오온이란 우리가 ‘촉’으로 인해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즉 우리가 ‘있다’고 여기는, ‘존재한다’고 여기는 일체 모든 것들은 전부 오온에 포섭된다. 즉, 일체 모든 존재를 오온으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십이처도 일체라고 했고, 일체를 십팔계로도 나눌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또 다시 일체 모든 존재를 오온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전에서 일체 존재에 대한 다양한 분류 방법을 설하셨는데 대표적인 것이 온처계라고 하여, 오온, 십이처, 십팔계인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눈데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정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5온을 설하고, 물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12처를 설하며, 정신과 물질 모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18계를 설한다고 한다. 이렇게 온처계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근기의 온갖 중생들에게 결국 물질과 정신은 모두 실체적인 것이 아니며, 다만 인연 따라 연기되어진 가합의 존재에 불과하며, 공한 것이고, 무아인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온의 온(蘊)은 ‘모임’이라는 뜻으로 음(陰)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좁게는 인간 존재도 오온이라고 부르며, 넓은 의미로는 일체 모든 존재를 오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인간 존재만을 구별해서 사용할 때는 오취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자아라고 집착한다는 의미에서 오취온이라고 한 것이다.
오온에 의하면 일체제법은 물질적인 색과 정신적인 수상행식으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수상행에 대해서는 설명했는데, 색과 식 또한 이미 설명이 되었다. 색은 물질로써, 우리 몸의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과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을 색이라고 부른다. 눈과 눈에 보이는 대상, 귀와 귀에 들리는 소리, 코와 코로 맡아지는 냄새, 입과 입으로 맛보아지는 것, 몸과 몸으로 감촉 느껴지는 대상 전부를 색의 범주에 넣는다. 그리고 식은 십팔계에서 설명한 육식을 말한다.
앞에서 식의 대상을 명색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수상행식을 명으로, 색을 색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의식의 대상은 명색, 즉 색수상행식 오온인 것이다.
‘나’라는 인간 존재를 오온이라고 했고, 오온은 ‘촉’으로 인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실제로 내가 없는 ‘무아’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바로 ‘촉’ 때문이고, 그 허망한 촉으로 인해 ‘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종류에는 색수상행식 다섯 가지가 있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색인 이 육신을 ‘나’라고 여긴다. 육체가 이렇게 있고,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혀가 있기 때문에 물질인 육신을 보고 ‘내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색온이다.
육신만을 가지고 우리는 ‘나’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정신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 ‘내 마음’이라고 여긴다. 정신 또한 ‘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인 것이다.
그런 정신으로는 첫째, 느낌, 감정 즉 수온이 있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에는 첫 번째로 감정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슬픔, 아픔, 절망, 기쁨, 행복감 등을 느낀다. 좋은 느낌도 느끼고, 싫은 느낌도 느끼며, 그저 그런 느낌도 느낀다. 이렇게 촉을 통해 ‘있다’고 여겨지는 ‘느끼는 존재’, ‘느끼는 마음’을 수온이라고 한다.
정신의 두 번째로는 생각, 사유, 사고하는 마음인 상온이 있다. 느끼는 것도 내 마음이지만, 판단하고 사유하고 추리하는 등의 생각 또한 중요한 마음의 작용이다. 개념 혹은 표상작용이라고도 하는데, 대상을 보고 어떤 것인지 이름을 붙이고, 표상을 부여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수온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상온은 지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들도 보면 감정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성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성적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세 번째로는 바람, 의지, 욕구라고 할 수 있는 행온이 있다. 어떤 행위를 일으키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어디에 가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거나, 말하고 싶다거나 하는 바람, 욕구, 의지적인 마음의 부분이 있다. 이것은 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는 마음이기도 하다. 물론 뒤에 살펴보겠지만 이 행온은 수온, 상온, 식온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다양한 정신적용을 두루 포섭하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주요한 작용이면서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순히 의지 작용이라고만 알아 두자.
네 번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인식하는 마음이 있다. 수상행식이라는 마음 작용 중에 가장 근원이 되는 마음으로, 수상행의 도움을 받아 대상을 분별해서 아는 인식하는 작용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대상을 파악하여 인식할 때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인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연 따라 인식이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우리 안에 어떤 특정한 ‘인식하는 존재’가 있어서 대상을 그 ‘식’이라는 존재가 인식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대상을 종합적으로 분별하여 알고 인식하는 마음을 식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오온 각 지의 세부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붓다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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