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오온
1. 오온의 성립
(1) 십팔계와 촉 –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실체
우리는 앞 장에서 십팔계가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6가지 주관자아계와 6가지 객관대상계 그리고 6가지 의식계가 서로 계역을 이루어 나뉘어 져 있는 의식상태를 십팔계라고 한다고 했다. 이렇게 각각 6가지 주관계, 객관계, 의식계가 계역을 이루며 나뉘어 져 있다가 이 세 가지 계역이 합쳐져 접촉을 하는 것을 ‘촉(觸)’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언제나 함께 모여서 나타난다. 눈으로 색을 보게 되면 안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주관인 눈과 객관인 색, 그에 따른 본다는 의식인 안식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세 가지 계가 각각 존재하고 있다가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는 ‘촉’에 의해 비로소 우리는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고,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나 귀로 소리를 들을 때, 냄새 맡을 때나 맛볼 때, 감촉을 느낄 때나 생각할 때 의식이 함께 접촉하면서 ‘무언가가 있다는 의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눈은 있지만 무언가를 보고 인식하지 않으면 무언가 ‘보여지는 것이 있다’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귀는 있지만 소리가 없어도 ‘들리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즉 ‘촉’이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감촉을 느낌으로써 비로소 ‘무언가가 있다’는, ‘존재한다’는 의식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촉이란 단순한 육근과 육경과 육식의 접촉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의식,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의식을 말한다. 촉이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의식’이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촉을 ‘촉입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입처란 십이입처에서처럼 결국에 우리가 소멸시켜야 할 허망한 의식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십이연기에서도 열두가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지분 중에 하나로 ‘촉’이 나오는 것이다. 즉 촉을 소멸함으로써 결국 괴로움이 소멸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만약에 촉이 단순한 육근과 육경과 육식의 접촉이라면 촉을 소멸해야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12연기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촉이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허망한 의식’이기 때문에 결국 소멸되어야 할 것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은 공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있고, 내가 만나는 세상이 있으며, 내 마음도 있고, 바깥의 물질적 대상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로 ‘있는’ 것이 아닌, 인연가합으로 연기되어 잠시 일어난 공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도 있다고 여기고, 대상도 있다고 여긴다. 왜 그렇게 여기는 것일까? 왜 실재로는 없는 공한 세상을 우리는 ‘있다’고,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촉’이라는 허망한 의식 때문이다.
눈이 있고 눈에 보이는 대상이 있으며 눈으로 그 대상을 볼 때 대상을 분별해 아는 의식이 생겨남으로써 이 세 가지가 화합할 때 비로소 ‘무언가가 존재한다’, ‘있다’는 허망한 의식이 연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가 볼펜을 던졌다. 귀로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볼펜임을 확인해 보고, 몸으로 볼펜의 감촉을 느끼게 된다. 눈으로 보고서 볼펜이라고 분별해서 아는 의식이 생겼기 때문에 ‘볼펜’이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의식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귀로 볼펜 던지는 소리를 듣고 이 소리를 감지해 볼펜 던지는 소리라고 인식하는 이식계가 함께 화합하면서 비로소 ‘어떤 소리가 들렸다’는 ‘있다’고 하는 촉의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몸으로 볼펜의 감촉을 느끼고 인식함으로써 ‘무언가가 있다’는 ‘존재’의 느낌인 촉이 생겨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다 이 ‘촉’의 작용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도 그렇고, 현대 물리학에서도 이 세상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텅 비어 공한 것임을 끊임없이 설하고 있다. 이렇듯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있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무언가가 있다’라고 착각하는 허망한 의식이 바로 ‘촉’이다.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있다’,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계와 객관계, 의식계라는 십팔계가 인연 따라 모여서 ‘촉’함으로써 ‘무언가가 있다’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지난 밤 천둥 번개가 치고, 요란하게 폭풍우가 내렸지만, 한 사람은 그로 인해 벌벌 떨며 걱정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났다고 치자. 후자의 사람에게 폭풍우와 천둥번개는 인식되지 않았다. 십팔계가 이 사람에게는 전혀 ‘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있었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천둥번개도 폭풍우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연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사람에게는 눈으로 폭우를 보고, 귀로 번개 소리를 듣고, 생각으로 온갖 두려운 생각을 품으면서 인식을 했기 때문에 십팔계라는 삼사가 화합하여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있었다’라는 ‘촉’의 생겨난 것이다. 전자의 사람에게는 촉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가 존재’했지만, 후자에게는 촉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십팔계가 삼사화합하여 ‘촉’함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지, 내 바깥에 무언가가 실재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허망한 중생심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 바깥 세상에 천둥번개가 실체적으로 존재했다고 여기고, 그것을 인지하고 감지하는 내가 실체적으로 존재했다고 여기며, 그 천둥번개를 분별하여 인식하는 의식이라는 내가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십팔계와 촉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둥번개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을 감지하는 내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분별해서 아는 의식이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관계와 객관계와 의식계가 화합함으로써 그 인연 따라 촉이라는 ‘실재로 있다’라고 착각하는 망상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있다’고 여기는 일체 모든 것은 이와 같다.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 따라 잠시 잠깐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인연가합의 존재일 뿐이다. 인연가합이란, 인연 따라 거짓으로 합쳐져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사실은 그 무엇도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십팔계라는 인연이 화합하면 ‘있다’라는 촉입처라는 허망한 의식이 생겨나고, 그로인해 진짜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십팔계와 촉의 교리는 불교의 무아(無我), 공(空),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삼법인(三法印) 등의 가르침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왜 불교에서는 무아라고 하고, 공이라고 하는가? 왜 이렇게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실제로는 공하다, 무아다라고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바로 십팔계와 촉의 교리인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불교의 존재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촉입처의 교리야말로 불교의 존재론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인연 따라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설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본래 공하지만, 인연 따라 연기 되어져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실체가 아니고, 고정된 자아가 없으며, 실체가 아니므로 그 어떤 존재에도 집착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본래 없지만 없다는데 집착하면 인연 따라 있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이렇게 현실적으로 있기 때문에 있다는데 집착하게 되면 인연 따라 생겨난 허망한 것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중도적인 안목, 중도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붓다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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