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새벽 예불을 마치고 온도계를 보았더니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데요.
좀 춥구나 싶었는데 몸 온도계가 요즘은 양구의 날씨에 적응을 해 정확하게 측정을 해 내곤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GP, GOP에서 고생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떠올라 요사 안에 앉아 있기가 미안해지네요.
얼마 전에 군승 칼럼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군법당에서 일어나는 또 군승의 일과와 에피소드 등을 적어 달라고 원고청탁이 있어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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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언 칼날로 살갗을 찢는 듯 두 뺨으로 날아와 박힌다. 춥다 춥다 말은 많이 해 봤지만 내 평생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눈만 빼 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두툼한 국방색 안면 가리개와 귀까지 푹 누른 군용 털모자를 쓰지 않았다면, 또 몸에는 두터운 목티에 깔깔이를 껴입고 그 위에 잿빛 두루마기를 입지 않았다면 이런 강행군은 불가능했을 터다.
두루마기 뒤로는 초코파이와 미지근한 커피, 염주를 잔뜩 담은 국방색 더블백이 단단히 메여 있다.
군복과 승복의 오묘한 조화, 철책선을 걷는 내 모습이 국적불명이다. 오늘 내 모습이 이럴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번 GOP에 왔을 때 신병교육대 법당에서 승복 입은 모습만 보았던 불자 장병들이 군복 입은 모습에 사뭇 놀라며 아무리 GOP지만 군복을 입지 않고 승복을 입고 오시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현재 GOP를 갈 때는 누구나 군복을 입도록 되어 있어 우리도 GOP나 GP를 갈 때는 어김없이 승복을 벗고 군복을 입곤 한다.)
1년 내내 군복 입은 사람들만 보다보니 민간인이 그립고, 더욱이 승복 입은 스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기특한 발상을 한 법우의 나름의 생각이 갸륵해 이번 야간위문은 승복을 입고 떠났지만 걷다보니 강원도 양구 최전방 가칠봉 GOP 철책의 바람은 내가 생각했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두 번째 소초를 지날 때 초소 근무를 서고 있던 한 이등병이 “법사님, 감사합니다. 신교대 법당에서 뵈었습니다” 라고 반가워하며 “법사님,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추우실텐데 이거 하십시오” 하며 자신이 쓰고 있던 군용 털모자를, 자신은 이제 근무가 끝나니 괜찮다고 막무가내로 씌워주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순식간에 무슨 일을 당한지도 모르고 내 마음은 뜨거워졌다.
GOP 철책선을 그것도 한겨울 추위 속에서 걷다보면, 근무자들과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짠한 교감이랄까, 진한 사내들의 정겨움이랄까, 아니면 전우애 혹은 법우애 랄까 하는 것이 통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특히 신교대 훈련병 시절에 그 힘들고 배고프던 시절을, 타종교의 화려한 먹을거리와 선물공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법당에 나와 초코파이 두 개로 만족해 주었던 우리 법우들을 다시 만날 때면 감회가 새롭고 반가움을 넘어 그 어떤 가족애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일상적인 사회에서의 만남이 아니라 이 겨울밤 새벽 2시를 넘어선 GOP 철책에서의 뜻밖의 만남이 한 몫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불교를 매개로 한 종교적인 만남이었기에 그 진함이 남달랐지 않았나 싶다.
오죽 했으면 승복 입은 모습이 그리도 반갑고 그리웠을까. 일반적인 일요법회 때 법당에서 만나는 것 보다 이렇게 야전에서 춥고 배고프고 힘들 때 만나게 되면 그 만남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군법사에게 절은 법당만이 아니고, 법회날은 일요일만이 아니다. 어디든, 언제든, 우리가 마음을 내어 찾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법당이고 법회날이다.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고, 또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군승으로 사는 이유가 아닐까.
[불교신문 2393호/ 1월16일자]
군에 있다 보면 일반 절에 있을 때 보다 더 젊고 생기어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 불교계의 사정이 보살님들과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다보니 더욱 젊은이들, 남자들의 포교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요, 그러한 점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곳이 군포교, 군법당이 아닌가 합니다.
군 생활이 힘들다보니 누구나 종교를 찾게 되고, 누구나 의지할 곳을 찾게 되며, 지난 삶을 돌이켜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돌아보고 또 미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이 때에 이렇게 법당에서의 만남과 진리, 지혜와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특히 신병교육대는 모든 신병들이 무조건 한 가지 종교를 택해서 가게 되어 있다보니, 아니, 무조건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초코파이와 먹을거리와 잠깐이라도 쉬고 싶어서 반드시 찾게 되는데요, 그러다보니 종교행사 시간이 더없이 아이들에게는 힘이 되고 위안이 되곤 합니다.
정말 집중력 100%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200~300여 명이 온통 제 말 한 마디에, 제 행동 하나 하나에 시선을 집중하고 부처님 말씀에 기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일 때는 그 어떤 때보다 힘이 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종교에서 먹을거리를 듬뿍 준다는 소문에 많던 장병들이 확 줄어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먹을거리 보다는 부처님 말씀과 종교적인 신앙에 이끌리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해집니다.
그렇게 6번 정도를 함께 법회를 하며 한달 반 정도를 보내고 나면 이제는 알수 없는 끈끈한 정도 느끼게 되고, 자대 배치를 받고 갈 때는 "법사님 우리 부대에 꼭 와 주세요" 소리도 많이 하고, 전화번호를 적어주면 훗날 전화를 걸어 와 목사님은 위문품 잔뜩 가지고 왔는데 법사님은 좀 적다에서부터 우리 부대도 매주 법회를 해 달라거나, 자주 찾아와 달라는 소식들이 접수되기 시작하지요.
그러면서 신교대에서 그렇게 만났던 불자들을 GOP나 GP 혹은 자대 내무반, 훈련장 등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장병 법우들이 먼저 합장을 하고 인사를 건네며, '신교대 때 정말 힘들었는데 법당에서 위안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곤 하지요.
또 한가지, 종교도 종교이지만, 우리는(목사, 신부님, 스님) 주중에도 이렇게 위문도 다니고, 주로 인격지도 교육이라고 하여 정신교육을 많이 다니게도 되는데요, 이 시간이 정말이지 너무나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무교 할 것 없이 이 때는 모든 장병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데요, 불교용어나, 부처님이라는 말은 하나도 쓰지 않지만서도 우리 젊은 장병들에게 지혜의 말씀들을 전할 수 있는, 정말 둘도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군이라는 곳을 잠깐 왔다 떠나는 곳이 되지 않고 이 곳에 조금 더 남게 된 연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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