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펑펑 눈이 나리고 있습니다.
침묵의 숲 위로 하얀 눈덩이가 흩날리네요. 눈이 오면 세상은 얼어붙어 조용하지만 군 장병들 목소리는 온 마을을 쩌렁쩌렁 울리게 됩니다.
눈 쓸고 치운다고 수 십명씩 조를 나누어 이 골짝 저 골짝을 윙윙 거리며 다니지요.
고맙게도 법당에도 한 개 조 10여 명 남짓의 장병들이 눈 올 때마다 와서 치워주고 있습니다.
고마워서 초코파이에 커피나 녹차를 주기도 하고, 지난 번에는 라면도 사다 끓여 주고, 지금은 얼마 전 보시 들어 온 컵라면이 조금 남아 있어 컵라면 물을 끓이고 있는 중입니다.
한바탕 눈쓸기가 끝이나고 컵라면을 뜯어 놓고는 물 끓는 것만 기다리고 있네요. 저도 잠시 들어와 이렇게 잠깐의 메모를 남깁니다.
내일까지 계속 온다고 하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도 몇 번을 더 올라와야 하겠는데요.
여기 강원도는 눈이 오면 모든 것이 멈춰섭니다. 차도 멈추고, 사람들의 발길도 멈춰지고, 밖의 일들이 모두 멈춰지고 맙니다.
저도 이런 저런 야외 활동들이나 법회나 교육들이 모두 멈춰질 수밖에 없지요.
차량이 꼼짝을 못 하니까 또 장병들도 이렇게 모든 일을 멈추고 눈 쓸기에 집중을 하니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한동안의 눈쓸기가 끝나고 나면 도량은 또 내 마음은 더없이 한가롭고 여유롭습니다.
이런 날은 큰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을 벗삼아 차를 끊이는 재미, 또 눈을 바라보는 재미, 그리고 때때로 책을 살펴보는 재미에 빠지곤 합니다.
아마도 내 마음도 자주 보는 눈일지라도 그 눈소식에 설레임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요즘 저는 티벳, 네팔, 인도의 성인들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올 가을 즈음에 티벳, 네팔, 인도에서 각각 한 달여씩 3개월 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올 작정이거든요.
벌써부터 제 마음은 그리로 향하고 있지만, 아직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 땅을 지나간 수많은 스님네와 성인들의 삶으로 채워가면서 달래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도 좋네요. 밀라레빠, 파드마삼바바, 간디, 라마크리슈나, 타고르 그리고 바가바드 기타... 한번쯤 스쳐가며 훑어 보기만 했던 성인들의 삶을 조금 더 마음을 모아 살펴보는 즐거움이 요즘의 제 삶에 아주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티벳과 네팔, 그리고 인도는 제 마음 속에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티벳이나 인도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가 보지 못했던 터라 더욱 진한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했던 곳이지요.
작년 초부터는 그 그리움들이 도저히 저를 내버려 두지를 않더니 어쩐 일인지 작년 가을 꿈처럼, 아니면 오랜 인연 처럼 꼭 이 때를 기다려 법계에서 선연을 베풀어 준 것 처럼 그렇게 3개월 간의 만행이 홀연히 찾아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동안 찾고자 했던 것들을 찾아도 보고, 성인들의 자취, 부처님의 자취도 더듬어 보고, 내 안의 자취들도 함께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밀라레빠의 게송 위로 차향이 피어오르고 눈송이가 연기되어 내 뜰을 적셔줍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눈이 내리는 날, 공간적으로는 멀지만 마음의 거리를 좁혀 차 한 잔 이심전심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도반 법우님들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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