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백일 절 수행의 회향을 앞두고 있습니다. 백일기도 회향을 하고 나면 무언가 달라지는게 있고, 성취되는 것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물론 어느정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은 있지만, 눈에 보일만한 성취는 아닙니다. 제가 수행을 잘못해서 그런가요? 이런 수행도 공덕이 있을까요?
아무리 작은 수행일지라도 바로 그 수행의 한 순간이, 우리의 절 한배 한배가 고스란히 이 세상 곳곳으로 향기롭게 퍼져갈 것입니다. 바로 그 한 순간의 수행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그 백일기도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내 안에 수미산보다 더 높은 업장을 소멸시켜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쯤 있을 큰 사고가 수행 때문에 사라졌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일 오게 될 큰 병이 가볍게 내 위를 이미 스치고 갔는지도 모르며, 어쩌면 아주 큰 금전적인 손실을 적당한 선에서 막아주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주 큰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누군가와의 다툼과 싸움을 이미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을 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법계의 이치를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의 세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 당시 재가 신자 중에는 부처님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법을 듣고 깨달았는데 어떻게 그런 불행이 있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가 죽음 직전에 깨달음을 성취하였으며, 지고한 행복의 자리로 가셨음을 설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러나 진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정확히 필요한 일이었으며, 나를 돕는 법계의 배려요, 법신부처님의 뜻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쨌든 법우님의 일상이 더 행복해졌든 아니든, 지금까지 실천해 온 백일기도는 법계의 진리대로 삶을 향기롭게 바꾸어 놓았고, 업장을 소멸시켜 주었으며, 나와 이 세상을 향기롭게 만들고 있다는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다만 한 가지, 수행의 결과를 바라는 마음은 놓아버리세요. 그냥 모든 것을 다 믿고 맡기면서 법계로 회향해야지, 그 수행의 공덕이나 결과를 내가 갖겠다는 생각을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회향입니다.
백일기도를 몇 번이고 시작은 하지만 제대로 회향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중간에 며칠 빼먹게 되면 김이 빠져서 그 다음부터는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108배 절 수행을 할 때,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이겠지요? 만약 수행을 못 한 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중도 포기가 잦다면, 절 수행의 방식을 조금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즉 '하루에 108배'를 100일간 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일 동안에 만배를 실천하겠다는 방식으로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불교가 어떤 고정된 실체를 집착하지 않듯, 수행 방식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거든요. 만약 100일 동안 만배를 한다고 정해놓고 나면 때때로 하루 이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날 하루에 108배를 3번이고 5번이고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중간에 포기할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수행이 행복해지자고 하는 것인데, 오히려 절의 횟수나 시간에 얽매이게 되면 그로인해 오히려 마음이 걸려서 더 괴롭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거기에 너무 집착을 하면 남들에게 불편을 주게 될 수도 있고, 내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래 오늘은 동료들과의 회식이나, 가족들과의 만남에 충실하고 오늘 못 한 수행은 내일 대신에 더욱 열심히 하자 하고 턱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게 더 자유롭지, 절대 오늘 못 하면 100일이 그냥 물거품 되는거다 하고 괴로워하며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법상스님 즉문즉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에게 보여지는 것은 내 안에도 있다 (1) | 2011.12.29 |
---|---|
고등학생인데, 출가하고 싶어요 (0) | 2011.12.29 |
본래 부처인데 왜 수행을 하죠? (0) | 2011.12.29 |
스님, 기도가 잘 안되요 (0) | 2011.12.29 |
신경 날카롭고 짜증만 나요 (0) | 2011.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