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별, 깊이 바라보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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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명상순례

히말라야의 별, 깊이 바라보다

목탁 소리 2016. 5. 1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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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가 촘롱이라는 산중 마을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서 널고 촘롱의 밤 공기에 몸과 마음을 씻으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 또 한 번의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등장한다.


아! 나는 이런 밤하늘을, 이런 별들을, 이런 은하수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그리고 설악산 중청산장과 지난 가을 비온 뒤 강원도 양구에서 보았던 별들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 더 밝고 초롱초롱히 빛나는 별들을, 그것도 몇 배는 많은 숫자를 지금 한 눈에 바라보고 있다.


별빛이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닫고 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지 않고도 저렇게 떠 있을 수 있는지. 내 생에 이렇게 많은 별들의 숫자를 헤아려 본 적은 없다. 지금 이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별에 대한 고정관념, 별빛에 대한 가치들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전혀 새로운 의미로써 새겨지고 있다. 말 문이 콱 막힌다. 도무지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별똥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에게 한 여행자는 태연히 말했다.


"하늘의 별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5분 이상만 눈을 안 떼고 별을 지켜보면 분명히 별똥별을 볼 거예요. 5분, 10분에 한 번꼴로 별똥별이 떨어지거든요."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거의 정확하게 5분에 한번 꼴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저렇게 자주 떨어지는 별똥별을 왜 우리는 보지 못하고 살았을까. 밤하늘에서는 매일 같이 저 고징한 별들의 공연이 5분마다 펼쳐지는 동안 우리는 우리 인생의 30년, 40년 아니 70년, 80년을 단 한 번도 저들을 보지 못하거나 단지 몇 번 보고 소원을 빌 정도로 우리의 관심은 별에서 하늘에서 우주에서 자연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시간과 여유가 없다. 빨리 빨리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업무를 소화해 내고, 남들에게 뒤질세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데 바빠서 잠시 멈추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치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비생산적이며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과연 그런가?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향해 나의 주의와 시선을 모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이 그렇게 무의미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가장 흔히 간과되며,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삶의 비밀스런 진리가 바로 이 '바라봄'에 있다.


'분별 없는 바라봄',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어떤 한 대상을 관찰해 보라. 분별없이 다만 지켜보기만 해 보자. 바로 그 때 우리는 바로 그 대상과의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으며, 진정 의미 있는 관계로 맺어질 수 있고, 참으로 그것을 사랑과 자비로 어루만지게 된다.


보통 우리가 보는 바라봄이란 현재를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어떤 틀이나 관념으로 대상을 끼워 맞추는 것이기 쉽다. 분별망상으로 걸러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그 어떤 틀이나 생각, 관념,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채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고 세상을 눈부신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바라봄의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별이든, 한 송이 꽃이든 그것 속에서 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 순간 내 안에서는 한 송이 연꽃이 만개할 것이다.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축복을 부여받는다.


[불교방송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위 원고에 대한 여행기 전문 바로가기

http://cafe.daum.net/truenature/KING/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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