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 오기까지의 꿈같은 사연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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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명상순례

히말라야에 오기까지의 꿈같은 사연 - 안나푸르나 명상순례1

목탁 소리 2012. 3. 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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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포카라-나야풀-김체)

포카라 사랑콧의 꿈같은 하룻밤

4년 전, 포카라(Pokhara) 페와호수(Phewa Lake)에 나른해진 심신을 띄워놓고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도반들과 나누던 안나푸르나의 품속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 져만 가고 있었다.

포카라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콧(Sarangkot, 1592m)에 올라 거센 오후의 빗줄기를 만났을 때, 또 그 빗속을 뚫고 새벽 첫 안나푸르나 일출의 장엄한 연주를 들었을 때, 아마 그 때부터 나의 그리움은 설산의 은빛 속살을 타고 내 뼛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었을 터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 트레킹이나 라운딩을 마치고 산에서 막 내려온 사람들 모습 속에서 나는 마치 신을 본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고 그을렸으며 며칠은 굶었을법한 퀭한 눈과 낯빛으로 다가 온 트레커들의 산 이야기는 내 안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희말라야와의 오랜 인연을 홀연히 끄집어내어 주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미 설산의 길 위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생각이 나더니 사랑콧과 나갈콧(Nagarkot)에서 보았던 설산 속에 내가 서 있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네팔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다시 출가하는 심정으로 저 희말라야의 품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 가고만 싶었다. 묵직한 배낭 하나 짊어지고, 깎지 않은 수염에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그러나 눈빛에는 아이 같은 천연의 생경함을 담아 초롱초롱한 호기심을 가지고 튼튼한 두 발에 의지하여 저 산 속을 홀로 누비며 걷고 있는 상상의 나래를 단지 마음속으로만 꽃피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로 갈 것이냐 탈영승이 될 것이냐

출가 까지 하며 훌쩍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걸릴 것이 있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가고 싶은 곳에 못 가겠느냐 싶겠지만 출가를 했다고 결코 모든 것에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갈 곳, 아니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군인이었다!

스님이면서 그러나 동시에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특별한 나의 신분과 사정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스님들도 군대가요?”

그럼 가죠! 스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다 군대를 간다. 군종장교(軍宗將校), 군대에서 자신의 군생활을 하며 장병들에게 종교생활을 지도하고 인성함양을 심어주는 수행자이자 장교인 이중적 신분의 특별한 군인들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보다도 군종장교에게는 장교가 먼저냐 성직이 먼저냐, 군인이 먼저냐 종교인이 먼저냐 하는 해묵은 우스개의 농이 있다.

나는 마음이 난다고 그저 쉽게 일정을 변경하여 희말라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다만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다! 스님이고 뭐고 나의 공식적 신분은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 만약 휴가 복귀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을 터다. 그렇다. 탈영! 아마도 세계 최초의 탈영병이 아니라 탈영승이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희말라야에 대한 나의 상사병을 뒤로 하고 한국 땅을 밟았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라고.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일 진데, 여행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병 중에도 큰 병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잊혀 지지가 않는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하고도 한 해 두 해가 지나가건만 희말라야에 대한 일방적인 나의 사랑은 일상 속에 묻혀 희미해져만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또렷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나의 현재의 조건에 있어 희말라야는 꿈일 뿐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를 내 마음처럼 자유롭게 걸으려면 적어도 한두 달 정도는 필요하건만 어떤 군대가 한 달 이상 휴가를 내준단 말인가!

이 즈음 되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희말라야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군인이기를 포기하던가. 시간이 흐르면 희말라야가 포기가 되겠지 하며 지낸 세월이 어언 3년, 그러나 이 그리움은 3년째가 되면서 더욱 커져 급기야는 전역을 신청하고서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에까지 이르렀다.

이게 무슨 열병이란 말인가. 이정도면 이게 집착인가! 그래, 집착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희말라야와 나와의 오랜 인연이 무르익었다는, 드디어 만날 때가 되어간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의 어떤 소식, 혹은 어떤 내밀한 메시지였을지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나의 그리움에는 오래 전부터 꼭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했던 인도의 부처님 성지와 ‘오래된 미래’를 읽고 이 또한 언젠가 꼭 한번 가야지 했던 라다크에 대한 그리움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3개월 정도만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 모든 곳으로의 꿈같은 순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그리움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거짓말 같은 히말라야와의 인연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때 나의 간절함과 그리움과 서원 또한 이루어진 것일까! 이 우주를 뒤덮고 있는 우뚝 선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가 나의 그리움에 탄복이라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이번 생에 나와 이 산과의 인연이 영겁의 오랜 기다림으로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저 설산의 여신 초모랑마가 꿈처럼 나와의 만남을 허락해 준 것이다.

작년 한 해 안나푸르나와 희말라야에 대한 그리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크고 간절했으며 사무쳤고 묵직한 것이었다. 되돌아 보건데 그 한 해 나는 운명적인 히말라야와의 조우를 근원적인 차원에서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토록 한 해 내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네팔의 설산과 고타마 붓다의 고향 인도의 향기를 그토록 진하게 맡을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 일은 참으로 절묘하다. 그야말로 인연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왜 나는 그렇게도 작년 한 해 희말라야와 라다크와 인도에 대한 열병과도 같은 뜨거운 무언가를 깊이 깊이 품게 되었을까. 왜 그리도 가지도 못할 그 곳을 찾아 책, 인터넷, 블로그, 사진 등을 뒤져가며 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마음만은 그 허한 산길을 걷고 있어야 했을까.

왜 그토록 자주 꿈속에서 설산 위를 훨훨 날았으며,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대탑 아래에 앉아 좌선에 들었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일이 일어나기 위한 내 마음 속에서의 메시지이자 힌트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네 안에서 준비를 하라는 우주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이었으랴.

군에는 매년 기독교 군종목사님 중 한 분씩을 선발하여 약 3개월 간의 성지순례를 보내주는 자비(自費)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에 비해 목사님들이 훨씬 많고 군종장교의 상당수를 차지하다 보니 아직까지 스님, 신부님들에 대한 혜택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갑자기 군 종교의 형평성 차원에서 스님들에게도 인도, 동남아 등 불교지역으로의 성지순례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문호가 개방 된 것이다! 갑자기 바로 그 해에! 게다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첫 해다 보니 아직 홍보가 덜 되어 있어서, 군의 선배 스님들께서 그런 제도가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가 보다. 최종 선발 날짜까지 나를 제외한 단 한 명도 신청 접수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나를 위한 제도가 생겨난 셈이 되었다.

 

당신을 위한 우주의 놀라운 계획

생각해보라.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나는 인도, 네팔, 히말라야, 라다크 등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곳을 다 다니려면 적어도 2~3달 정도는 소요가 된다.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진묘하고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곳에 모두 다니려면 2~3개월이 필요했고, 나에게 주어진 공문상 출장 기간은 12주였다. 군승으로써는 3개월을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계기 자체가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기회가 생겨났다. 선배 스님들이 너도 나도 지원했을텐데, 마침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평소 공문이나 인트라넷의 거의 보지도 않던 내가 그날따라 다른 일이 생겨 사무실에 갔다가 시간이 남는 바람에 잠깐 공문을 보았고 그 공문을 본 날이 마감 전날이었다. 또 보통은 3개월이나 부대를 비우기 어려울뿐더러 지휘관이 그렇게 허락하기도 힘들 것인데, 마침 지휘관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추천서를 써 주셨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의 완벽하게 짜여 진 대본처럼 느껴진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하여 만들어낸들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들은, 이와 같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짜 맞춘 듯 그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내 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우주법계의 조화요, 인연의 신묘한 조화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비이며 매 순간이 기적과도 같다. 이와 같은 일만 기적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기도 하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적이다.

 

삶이 보내주는 힌트 알아차리기

우리 삶은 이처럼 우리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조화와 신비들로 뒤덮여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깜짝 놀라게 되는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대학 캠퍼스에서 수업 시간이 늦어 빨리 뛰어가지만 않았더라도 그 여인과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랬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와 자녀들은 없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 때 그 회사에서 사고를 치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사장 자리도 없었을지 모르며, 그 때 배낭여행 중 우연히 그 나라로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의 해외유학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그 날 밤 너무 정숙했던 나머지 사고를 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연인 것 같은 필연과 인연들이 거짓말처럼 얼키설키한 그물코처럼 우리의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잡히게 해 주고 있다. 모든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소중한 인연이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 인연을 열매 맺게 해 주기 위해 이 우주 전체가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른 봄 매화 한 송이가 꽃을 피우는 데에도 전 우주의 장대한 계획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우주적인 계획은 언제나 우리에게 힌트를 보내주고 있다. 삶의 사소한 일상조차도 우주적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그 해 나도 모르게 인터넷을 켜면 인도와 히말라야를 찾고, 가슴 속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룽다가 휘날리는 설산의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피어나며, 꿈속에서조차 히말라야 길 위를 걸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나를 준비시키기 위한 우주법계의 메시지요 힌트였던 것이다. 그 한 해 동안 직관적인 영감들이 왜 그토록 나를 인도로 향하게 했고, 히말라야를 향하게 했는지 그 당시는 분명히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이 투명한 의미로써 다가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고, 직관적인 어떤 느낌의 흐름조차도 차분히 주시해 보라. 삶의 모든 부분들을 놓치지 말고 관찰 해 보라. 애써 해석하지 말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말고 지켜본다면, 당신 삶의 수많은 힌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분명한 메시지로 다가와 직접적으로 당신을 돕게 될 수도 있다.

우주는 이와 같은, 혹은 더 깊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방법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 그 자비로운 도움의 방편들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도 상징적이다. 마음이 투명하여 예술과 감성적인, 그리고 직관적인 의식에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그 상징과 힌트들을 머릿속의 해석 없이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안나푸르나 앞에 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희고 고운 영봉이 올려다 보이는 네팔 포카라(Pokhara, 620m)의 한 식당에 앉아 폐와호수와 마차푸차레를 앞뒤로 바라보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8월말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꿈에 그리던 라다크와 성스러운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고 날도 좋은 10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순례를 위해 잠시 포카라에서 목욕재개하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 다시 생각해 봐도 지금 내가 이렇게 네팔 포카라에 앉아 하얀 설산을 올려다 보며, 폐와호수를 내려다보며 고요한 오후를 보낸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복감이 호수의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는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한없는 풍요, 평화, 혹은 행복! 그 무슨 말로 지금의 이 감격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드디어 오늘, 이렇게 감격스러운 오랜 그리움의 무게로 안나푸르나를 내딛는다.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의 입구격인 나야풀(Nayapul, 1070m)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가량이 걸린다. 나야풀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는 다랭이 논들이 초록과 노오란 진한 빛을 뿜어내며 그림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트래커들이 입산하기에는 늦은 시간인 오후 1시에나 되어 나야풀에 도착. 일반적으로 ABC 트레킹의 첫날 숙박 예정지인 간드룽(Ghandrung, 1940m)까지 가려면 한참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간드룽이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든 잘 곳이 있으면 자면 되고, 걸을 수 있으면 걸으면 되는 것, 산행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www.moktakso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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