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아내는 현실적 욕망이 강해서 제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사사건건 남들과 비교하여 불만을 늘어놓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댑니다. 아내의 뜻을 거부하면 불화가 생기고, 놔두자니 안타깝고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물과 기름처럼 겉돕니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려 해보지만 이렇게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답변]
참 힘들고 아내가 원망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려 해 본다고 하셨는데, 과연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이 과연 아무리 괴로운 삶이라도 그냥 받아들이면서 포기하고 좌절하고 풀죽어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렇게 소극적인 말이 아닙니다. 즉 저런 상대를 배우자로 만났으니 이것도 받아들여야지 하면서, 삶을 변화시키기를 포기한 채 낙담만 하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받아들인다는 말은 나와 상대를, 또 나와 상대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전체적으로,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완전한 수용하고, 상대방의 못마땅한 행동에 대해서도 완전히 용서해 주고, 그 또한 내 문제이며, 내 책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사님께서 수행을 하시는 분이시니, 수행의 관점에서 풀어 본다면 진정한 받아들임은 그 모든 사건과 상황을 분별없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관(觀) 수행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고 불만을 늘어놓을 때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혹 억지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원망과 화를 억눌러 놓고 있는 것이기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잠재워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관하고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마음을 지켜보고 관하기만 하면 됩니다. 받아들이려고 애쓰면 힘들지만 다만 분별 없이 지켜보기만 한다면 저절로 깊은 곳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불만을 늘어놓을 때 내 안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이라는 삶의 수행은 곧장 실천되어지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방이 원망스럽지만, 이렇게 일상에서의 관 수행을 통해 받아들이고 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즉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제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게 되지만, 받아들이게 되면 문제의 본질이 내 안에 있다고 바로 봄으로써 내 안의 문제로 돌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받아들이지 못하면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지만, 받아들이고 나면 상대방을 자비로써, 사랑으로써 바라보게 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제에 대해 의기소침해짐으로써, 문제를 풀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 문제를 상대의 탓으로 돌려서 상대방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게 되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수용하고 인정함으로써 그 시점에서부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받아들이라는 말을 소극적이거나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거나 열심히 노력하지도 말라거나 무기력하게 살라는 말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받아들임과 수용은 우리에게 더 생생한 삶의 관점을 제시해 줌으로써 나 자신을 깨어나게 하고 내 안에서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아내의 잘못된 점에 대해 그냥 포기하고, 어쩔 수 없는 업이니까 그냥 이렇게 괴롭게 살아가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받아들임으로써 아내에게 잘못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용서하며 아내의 단점까지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받아들임입니다. 즉 아내의 잘못과 불만을 있는 그대로 관하고 지켜봄으로써 그 상황에 대해, 또 아내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그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의 잔소리나 불만 투성이의 말들도 다만 허공을 흐르는 하나의 말일 뿐 싫은 것, 나쁜 것이라는 분별이 놓여납니다.

이처럼 관수행은 그 상황에 휘둘리거나 얽매이지 않고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해 줌으로써, 그 상황을 보는 지혜롭고도 자비로운 통찰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렇게 온전히 바라보고, 완전히 받아들였을 때, 이제 새로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아내를 밉게 바라보거나 탓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용하고 나면 먼저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며,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욕구에 대해서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해 주게 되는 것이지요. 일단 이렇게 되면 화해와 용서와 수용을 위한 첫 번째 실마리를 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풀리기도 하지요.

그러고 나서 문제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인과와 업의 문제까지를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내 책임 아래에 놓여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그 다음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네가 변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한 온전한 수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고, 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일 뿐이지요. 온전한 받아들임은 비난의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문제가 내 문제이며, 내 책임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이러한 상황, 이러한 아내를 내 배우자로 만나게 된 것 또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내 업인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것이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나요? 그것은 운명론이나 숙명론적인 발상이지, 인연론, 인과론, 연기법과 업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는 풀 수 있으며, 내게 주어진 업은 내가 지은 것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하고도 신비로운 우주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에 놓여 있는 둘 사이의 악업으로 괴로워 할 때, 그것은 나와 상대방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 완전히 놓아버리고 내 안에서 수용하고 풀어 버리면 상대방과의 악연이 함께 풀려 나간다는 이치입니다.

아내의 잘못된 성격이나 사치스러운 마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 안의 어떤 원인으로 인해 아내의 저런 성품을 만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세요. 물론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의 어떤 성품 때문에, 어떤 업장 때문에 저런 성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지가 오리무중일 것입니다. 모를 수밖에 없어요. 인과응보를 어떻게 우리가 다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회를 합니다. 내 안의 어떤 업으로 인해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면, 그것은 곧 내 안에 참회해야 할 어떤 업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모를지라도, 우리는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참회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참회를 하고, 상대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참회는 다시 말하면 이러한 상황이나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내 ‘책임’ 이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상대와 나와 연결되어 있는 악연(惡緣)의 업장이 소멸됩니다. 내가 참회하고, 나를 바꿈으로써, 내 안의 어떤 악업을 닦음으로써, 상대방과 나와 연결되어 있는 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어진 업을 어떻게 녹이고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은 이제부터 나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나의 자유의지로 더 악화시킬 수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아내의 탓으로 돌려 상대를 원망함으로써 가정을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고, 지금 그 모습 그대로의 아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함으로써 가정을 변화시키는 첫 단추를 끼울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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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2021.07.22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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