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를 결심하고 출가하기까지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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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 즉문즉설

출가를 결심하고 출가하기까지

목탁 소리 2010. 12. 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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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60212-142404

출가를 결심했지만 아직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가볍게, 편하게 가야하는데 왜 이리 걸리는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혼자서 결정하고 주위에 통보할 일만 남았습니다. 마침 어제 저녁에 기회가 되어서 어머님께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유일하게 절에 다니시고 제일 이해해 주실 거라는 생각에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많이 놀라셨어요. 밤새 잠 못 주무시고, 출가는 안 된다고만 말씀하시네요. 그냥 절에만 다니라고 했지 누가 너보고 스님하라고 했냐시며 슬퍼하십니다. 어찌 그런 일을 상의도 없이 통보만 하느냐고. 그리고 아침부터 온 식구이 성화네요. 이렇게까지 일줄은 생각지 않았는데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불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 식구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부모님 설득시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 확고한 지 의심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먼저 확실히 해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스님께서 출가하겠다고 찾아온 이에게 ‘100% 확고한가’를 물었고, 거의 99% 확고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안 된다고 나머지 1%까지 확고할 때 그 때 다시 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1%를 채우는 데 아마도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100% 확고하다면 부모님 설득의 문제, 회사 문제, 이런 저런 문제는 아무런 걸림이 되질 못합니다. 생사에서 자유롭고자, 이번 생을 송두리채 버리는 것입니다. 완전히 버리고 떠나는 것,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 버리는 마당에 정이 다 뭐고, 주위의 눈이 다 뭐겠습니까. 부처님의 출가를 생각해 보세요. 붓다는 한 부모님께, 한 가정에만 희망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한 나라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신다는 것은 어쩌면 한 나라가 멸망을 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행복과 깨침을 위해 한 나라 마저도 버리고 가신 분이십니다.
될 수 있다면 부모님 설득도 잘 하고, 회사나 모든 뒷정리를 잘 하고 가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지금 당장에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이런 저런 매끄럽지 못한 뒷정리가 있더라도 부처님 출가의 그것처럼 결단을 짓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 남은 자에 대한 아픔을 수행의 경책으로 삼아 더욱 정진하는 것이야말로 더 크게 빚을 갚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 억겁 다생을 나고 죽고 온갖 가족 인연으로 반복해 태어나면서 내가 진정으로 그분들을 도운 적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길은 이번 한 생으로만 이어진 길이 아니라 수억겁의 전체생에 걸쳐 내딛는 큰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크게 돕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어제는 자취집 정리를 했습니다. 출가의 길은 작게는 동안에 나를 즐겁게 슬프게 했던 물질적인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크게는 나를 고정지었던 생각들을 놓아버리고 가는 그런길이라 하셨는데 그런데, 요즘은 주위의 일상적인 것들을 정리하면서 작은 마음조차도 놓치 못해서 마음조리는 내가 보입니다.
은행에서 카드정리 및 통장들 정리하고 작지만 들었던 보험도 정리하고 인연지었던 소중한 책들 편지와 또 그외 작은것들 어차피 다 내가 가지고 갈 수 없는데도 하나하나를 손에서 놓을때는 온갖 마음들이 다 붙습니다. 적금을 해약할 땐 조금만 부우면 만기인데 좀 아깝다는 생각, 보험을 해약할 때도 그래도 이 보험 덕분에 어디를 가도 든든함이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어찌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더 큰 부처님 빽이 있는데도..^^), 이 화장품은 산지 얼마 안 된거고, 이 옷들도 내가 좋아하는거고, 이 책을 살 때는 어떤 기분이였고 읽으면서도 좋은느낌 주어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는데, 틈틈이 끄적거렸던 일기장의 내용들도 한번씩 읽어보고,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는 사진들 한번씩 훑어보고, 냉장고의 음식거리 정리하는 것 조차에도 많은 생각들이 달라붙더라구요. 필요없는건 버리고 그래도 좀은 쓸만한건 나눠주고 내것이지만 결코 내것이 아니고 내것이라고도 고집 할 필요가 없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인연에 의해서 만나게 되고 또 그 인연이 다 되면 헤어지게 되는것 또한 새롭게 와닿습니다.
짐들 한차 싣고 내려가시면서 도와주신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 "아무 생각없이 결정한 일도 아니고, 또 이제 와서 내가 말린다고 니가 포기할거 아니란거 아니까 반대는 안하지만 명절때마다 집에 와야 하고, 어딜가든 핸드폰은 꼭 가지고 가야 한다." 고 하시네요. ... 명절때도 못 가고, 핸드폰도 곧 해지할거란 얘기는 못드렸습니다. 그냥 그때 꼭 얘기 안해도 시간 지나면 그냥 아실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아침은 밤새 잘 자고 아주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듯 마음이 아주 가볍습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정말 떠납니다.

그러한 정리의 과정이 있기에, 출가가 주는 비움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한 정리의 과정, 아상을 비우고 녹이는 과정, 그 과정이 있었기에 ‘출가 자체만으로도 큰 공덕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집도, 내 가족도, 내 친척이며 내 친구들, 내 통장, 내 옷, 내 물건, 내 짐들 나아가 내 생각이며 가치관들까지 온전히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바로 그  모든 ‘나’라는 아상과 아집들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코 출가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의 세속에서의 삶이며 인연들은 지금 출가를 위해 잠시 거친 스치는 인연이었구나 하고 회상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이 본래 내 길이었음을 말입니다. 지금부터는 순간순간이 놓여지는 삶이어야 하고, 순간순간 참으로 당당한 수행자임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 밝고 맑고 향기로운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섬을 모든 앞선 스님들을 대신해서 가슴 깊이 환영하고 찬탄합니다. 이제 평온하십시오. 여여하시고 마음을 그저 놓아두세요. 그러면 안에서 잘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이끄심을 따라 가볍게 떠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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