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사랑하던 여인과 만난 지 얼마 안 되 헤어졌습니다. 저는 취업도 못한 상태였거든요. 시험에 떨어지던 날 그녀와 이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었고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녀와의 인연을 끝낼 수가 없어서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이 아니더라도 인연의 틀을 움직여서라도 다시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참 답답하고 힘드실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바로 법우님께서 그 여자분께 '사로잡혀 있는' 완전히 '속박당하고 있는' 집착상황입니다. 집착의 속성이 뭔지는 아실겁니다. 그것은 사람을 눈멀게 합니다. 집착하고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오직 집착의 대상에만 사로잡혀 완전히 속박당하고 결박당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녀를 내 소유로 만드는 것일까요? 결혼에 골인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사랑은 ‘나 좋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좋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사랑은 집착이고 소유욕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상대방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인연이 아니라면 인연을 바꾸어서라도 사랑을 잇고 싶어 기도한다고 하셨는데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그 기도는 아집에 입각한 기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기도를 통해 결국 마음이 비워지고 집착이 놓여진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저 사람이 '내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나 좋자고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집인 것입니다. 그 여자도 그것을 원한다면 사랑이겠지만, 그녀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우님께서 마음을 먼저 비우세요. 비워야 채워집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면 그녀가 다시 내게로 오겠지? 하는 마음도 다 놓아버리시고,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행복이 아니라, 그녀의 행복일 수 있도록 하세요.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셔야 합니다. 아마도, 마음이 비워지지 않은 채로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하더라도 아마 상대방이 그 전화를 부담스러워할 것입니다. 법우님이 집착을 버리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법우님에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다시 연결이 된다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집착을 하고 있는 때는 어렵습니다. 만약에 다시 연결이 된다면, 그것은 법우님의 집착이 놓여진 그 지점에서부터 인연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음식을 먹는게 좋다고 들었습니다. 육식을 하면 그 짐승의 업이 사람에게 전이되어 영향을 미칠까요? 음식이 아이들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동물성 음식을 먹는다고 그것이 곧장 기계적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사람이든 물질이든 짐승이든 음식이든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의 파장이 있습니다. 그 파장은 서로가 서로를 취하여 먹음으로써 당연히 서로 영향을 주게 되겠지요. 육식의 파장과 자연식품 혹은 채식의 파장은 당연히 다를 것입니다. 또한 육식 중에도 어떻게 크고 자라며 죽는 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고기의 모든 세포 하나 하나에 그 동물의 모든 정보, 업 등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을 것입니다. 양자물리학에서도 정보장이라고 하여 모든 물질은 그 하나 속에 전체적인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듯, 세포 하나 속에 그 동물의 업과 삶과 파장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 동물의 삶의 전체 파장을 공유하여 받아들이고, 공명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공명의 법칙에 의해 그 파장과 공명하고, 닮아가지 않겠습니까? 실제 저도 TV에서 본 것인데요, 어떤 아이들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은 지 30분도 안 되어 공격성이 바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아이들이 음식에 따라 공격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집중도 또한 달라진다고 합니다.
요즘 타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봉사 할 때는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은 잊혀지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문제의 본질은 계속 남아 있어요. 그러다보니 ‘내 수행이 먼저인데’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못 챙기면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돕는 일을 그만두고 제 수행에 전념하는 게 좋을까요?
남을 돕는 것과 나 자신을 돕는 것을 둘로 나누어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 를 돕고자 한다면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마음을 비우고 관(觀)함으로써 탐진치 삼독과 욕심, 집착, 번뇌, 망상, 화, 증오 등을 비우는 지혜를 증장하는 일이고, 둘째는 이웃을 돕고 자비와 사랑을 나눔으로써 이타를 실천하는 복덕을 증장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첫째를 하는 이유는 둘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이웃을 돕는 것을 그만 둘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이웃을 돕는 일이 곧 나를 돕는 것이 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이웃을 돕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억지로 의무감에 돕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도 이웃도 괴롭히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을 도우며 동시에 나를 돕는 일을 하세요.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웃을 도울 때, 온전히 깨어있는 일입니다. 산란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 분석적인 마음, 번뇌와 망상, 나 부터 도와야 할 텐데 하는 마음, 그 모든 마음들, 생각들을 가지고 남을 돕지 말고, 그 모든 생각과 마음의 작용들을 다 놓아버리고 남을 돕는 순간, 오직 이타적인 사랑의 마음으로써, 또 그 순간 깨어있는 관찰로써 남 앞에 설 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만이 진정으로 타인도 도울 수 있고, 동시에 나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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