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촌 할아버지의 겨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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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산사하루

철거촌 할아버지의 겨울

목탁 소리 2011. 1.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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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새 한 마리
외로이 앉아 있다.

우거지던 초록의 생기도 사라지고,
중년의 마지막 아름답던 단풍마저 떨어지고,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위로
새 한 마리 삶을 기대고 섯다.

바람이 차다.
찬 바람이 숲에서부터 불어 와
살결을 스치우고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곤 한다.

온 몸이 겨울을 맞는다.
새벽녘 추위는 더욱 사납다.
그래도 이 정도 추위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다.

철거촌 다 쓰러져 가는 방안 한 켠에서
외로이 홀로 스러지는 생명 붙잡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할아버지는
고장난 오랜 연탄 보일러를 붙잡고
아침부터 연신 이리저리 살펴보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고쳐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 아니라
이건 완전히 목숨이 달린 문제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의 눈빛은
외롭지만 필사적이다.

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면
겨울비 서럽게 질퍽거리며 오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는
화려하고 드높은 아파트, 빌딩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며
할아버지 연탄아궁이를 얕보고 있다.

어서 빨리 이런 서울시 경관 해치는 집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쭉쭉 뻗은 고층 아파트 만큼이나 집값도 뻗어 올라 간
그런 돈 되고 보기 좋은 아파트 짓자고 세상이 목을 죄어 온다.

이제 남은 건
그럭 저럭 남은 생을 보내는 일 뿐.
생을 보내는 일이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비는 계속해서 서울 하늘을 뚫고 있는데
이웃 집,
몸져 누운 90 넘은 할아버지는
거센 기침을 연신 해 대며
아침에 말리는 할아버지를 뿌리치며
그래도 몇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나간
80이 넘은 할머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먹고 살려고
지금 서울시내 어디에선가 비를 맞으며
신문지, 박스들을 줍고 있다.

사람이 반가운 지
이불에서 겨우 일어나 힘겨운 미소를 보여 보지만
근심 가득한 얼굴을 지울 수 없다.
집나가 몇 백원 벌어오는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거동조차 할 수 없는 할아버지 염려도 피눈물이 되어 가슴을 후벼판다.

그리고 또 이웃 마을에
얼마 전까지 오랜 세월 함께 살부비며 살던 영감이 돌아가셔서
한동안 마음을 그냥 놓고, 사는건지 마는건지
흐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오신 할머니.
절에 자주 가고 싶어도 몸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이래 저래 가기 어렵다며
집 한 켠에 작고 조악하기 이를데 없는 달마상 하나 모셔놓고
염주 하나 불교성전 하나에
할아버지 없는 허전함을 달래다가
이제 아예 남은 생을 거기에 의지하고 사시는
우리 할머니 노보살님까지.

이 겨울은
이 땅의 어떤 이들에게
혹독하고 절망스럽고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그런 얼어붙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겨울은
아름다운 눈 속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리며 트리를 만들고,
스키를 타며 찬 바람을 가르는
낭만적인 계절이기도 하다.

차가운 계절.
따뜻한 마음이,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더욱 그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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